작가 피정 : 경계와 소란 속에 머물다 -  온(on) 시리즈 3

작가 피정 : 경계와 소란 속에 머물다 - 온(on) 시리즈 3

$19.00
Description
옮기는 삶, 옮겨낸 삶
마티의 온(on) 시리즈 3권이 출간되었다. 『마이너 필링스』, 『진정성이라는 거짓말』 등을 옮긴 ‘믿고 읽는 번역가’ 노시내의 『작가 피정』이다. 미국, 일본, 오스트리아, 스위스, 러시아, 파키스탄으로 옮겨 다니며 26년 넘게 타국 생활을 하고 있는 그는 전작 『빈을 소개합니다』, 『스위스 방명록』을 통해 과거에 박제되지 않은 도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한 도시의 이모저모를 때론 냉정하게, 때론 애정 어린 시선으로 읽어내며 내부자이자 외부인으로서 독특한 균형 감각을 여실히 보여준 그였다. 세 번째 작품 『작가 피정』은 그의 바깥이 아니라 그의 안에서 시작한다. 책을 옮기는 일, 오랜 지병을 품고 있는 몸, 곁에 있는 사람을 고향으로 여기는 삶... 자신에게 오롯이 집중하는 피정의 시간을 가지며 써내려간 글은 어느덧 독자를 그의 곁으로 끌어당긴다.

저자가 여기에서 저기로 거처를 옮겨 다니는 생활을 하며 능숙해진 것이 있다면 “더하기보다 없애는 일”이다. 지금 가장 필요한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판단하는 것. 이 포기가 쉽지 않아 고민할 때면 “무엇을 갖기보다 무엇을 하는 데” 정성을 쏟는다. 그중 하나는 번역이다.
그에게 번역은 “낯선 곳을 돌아다니며 사느라고 새로운 환경과 급변하는 일상에 스트레스를 받을 때, 안심하고 들어설 수 있는 한결같은 공간”, “익숙한 언어를 포기할 것을 강요당하지 않는 공간”이다. 이 안전한 공간에서 자신의 정체성과 맞닿아 있는 책을 번역한다.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사람들, 여성, 소수자, 이민자의 이야기, 혹은 통념에 도전하는 이야기를 찾았다.
그는 이 책도 번역을 하듯 썼다고 말한다. 시시때때로 선명하게 느끼는 정체성을 관통한 경험을 전하는 것이 번역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소수자’들이 안고 사는 불안과 우울, 수치심과 분노의 감정에 대해 쓴 캐시 박 홍의 『마이너 필링스』를 번역하며 깊이 감응했던 일(62쪽), 아시아 여성의 얼굴을 초밥에 빗대어 만든 로고에 분노하여 유명 초밥 체인점에 항의 메일을 보냈던 일(147쪽), 취리히의 관광명소에서 식민주의의 역사를 되짚어본 일(140쪽), 모어가 아닌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발생한 오해(187쪽) 등 그는 자기 안에 오랜 시간 응축된 일들을 진솔하게 옮겨냈다.
저자

노시내

연세대학교에서법학을공부하고조지워싱턴대학에서정책학박사학위를받았다.미국,오스트리아,스위스,러시아등여섯개나라,열개도시를거치며26년넘게타국생활중이다.어딜가나지금살고있는곳을제일좋아한다.지금은열번째도시이슬라마바드에머물며글을짓거나옮기고있다.『마이너필링스』,『책임정당』,『진정성이라는거짓말』,『누가포퓰리스트인가』,『사랑,예술,정치의실험:파리좌안1940?50』등의책을옮겼고,『빈을소개합니다』,『스위스방명록』을지었다.

목차

들어가며

서울에서취리히로

일일째
이일째
삼일째
사일째
오일째
육일째
칠일째
팔일째
구일째
십일째
십일일째
십이일째
십삼일째
십사일째
십오일째
십육일째
십칠일째
십팔일째
십구일째
이십일째
이십일일째
이십이일째
이십삼일째
이십사일째
이십오일째
이십육일째
이십칠일째
이십팔일째
이십구일째
삼십일째
삼십일일째
삼십이일째
삼십삼일째
삼십사일째
삼십오일째
삼십육일째
삼십칠일째
삼십팔일째
삼십구일째
사십일째

취리히에서이슬라마바드로

나가며
주워모은말들
찾아보기

출판사 서평

옮기는삶,옮겨낸삶

저자가여기에서저기로거처를옮겨다니는생활을하며능숙해진것이있다면“더하기보다없애는일”이다.지금가장필요한것과그렇지않은것을판단하는것.이포기가쉽지않아고민할때면“무엇을갖기보다무엇을하는데”정성을쏟는다.그중하나는번역이다.그에게번역은“낯선곳을돌아다니며사느라고새로운환경과급변하는일상에스트레스를받을때,안심하고들어설수있는한결같은공간”,“익숙한언어를포기할것을강요당하지않는공간”이다.이안전한공간에서자신의정체성과맞닿아있는책을번역한다.어디에도속하지않은사람들,여성,소수자,이민자의이야기,혹은통념에도전하는이야기를찾았다.

그는이책도번역을하듯썼다고말한다.시시때때로선명하게느끼는정체성을관통한경험을전하는것이번역처럼느껴졌기때문이다.‘소수자’들이안고사는불안과우울,수치심과분노의감정에대해쓴캐시박홍의『마이너필링스』를번역하며깊이감응했던일(62쪽),아시아여성의얼굴을초밥에빗대어만든로고에분노하여유명초밥체인점에항의메일을보냈던일(147쪽),취리히의관광명소에서식민주의의역사를되짚어본일(140쪽),모어가아닌언어를사용하는사람들사이에서발생한오해(187쪽)등그는자기안에오랜시간응축된일들을진솔하게옮겨냈다.

언어의묘미에취하다

번역가라는직업때문일까,오랜타국생활의영향일까.그는낯선단어나사람이름을보면그뿌리와역사를추적하고,귀에흘러들어오는대화소리를듣고어느나라언어인지,어느지역억양인지추측하기를즐긴다.취리히골목을걷다가광고판문구‘파스콰인치타’(PasquainCitta)를보고이탈리아부활절빵‘콜롬바파스콸레’(colombapasquale)를떠올리며유럽언어들부터히브리어까지단어들의어원과어파를살피거나(283쪽),추운날씨에식당야외좌석에앉아요란하게수프를먹으며슬라브억양이섞인미국식영어로웨이터에게말을거는사람을보고는러시아인이아닐까짐작하다가곧그가러시아어로통화하는소리를듣고반가워하는식이다(69쪽).그러나이런추측에러시아인을일반화하는선입견이담겨있음을이내자각한다.다양한사회를경험하며그가적실히알게된바가있다면사람은국적,인종,언어를불문하고저마다의개별성과고유성을지니고있다는사실이다.

피정의장소취리히에서그의언어감각은한층더예리해진다.스위스는독일어,프랑스어,이탈리아어,로만슈어네개공용어를쓰는나라이고,취리히인구의3분의1이외국인이다.공영방송이네개언어로제작되며,물건에붙은라벨에는최소두개공용어가표기된다(47쪽).문밖으로나가면온갖언어의향연이펼쳐진다.종종언어로인한해프닝이벌어지고,“이민자를현지사회로통합하는일에장벽”이생기기도하지만,“남이나와같은언어를꼭쓰지않을수도있다는사실을온국민이인식하며살아”간다.다양성을포용하는태도,다원주의가품고있는가능성은단일언어를사용하지만이미오래전에다문화사회에진입한한국독자들에게생각거리를잔뜩던져준다.

주워모은말들

이책말미에는저자가오랜시간보고듣고배우고익힌말들,그중에서도오래도록마음에새겨진단어와문장들을적어내려간「주워모은말들」(315쪽)을실었다.러시아어,스위스독어,표준독어,우르두어,이탈리아어,미국식영어,남아시아식영어,일본어,프랑스어...여섯개나라,열개도시에서주워모은스물두개의말들을소리내어읽어본다면,그말들이품고있는다채로운이야기가생생하게느껴질것이다.

물한잔이열어주는것들

음식에보수적인사람이진짜보수적이라는세간의평에빗대어저자를보면이토록열린사람도없어보인다.그는제일먼저미생물에자신의소화관을내어준다.물이깨끗한스위스에서든,물이심각하게부족한데다식수의안전성마저낮은파키스탄에서든,새로운곳에도착하면“신속한적응을위해”물을한잔벌컥벌컥들이켠다.현지의미생물을받아들이면앞으로마주치는온갖낯선것들도잘받아들일수있게된다.

한번마음을열면자꾸만호기심이생기고,그는시선이가닿는대로부지런히현지음식을탐색한다.이는저자가무언가를소유하는대신택한또하나의정성을쏟는일.음식은먹으면사라지지만,풍미를만끽하는현재에집중하게하고,타인과대화의물꼬를터주고,나와다른세계의연결점이되어준다.파키스탄현지인의집에서양고기를대접받으며그들의식문화와환대의방식을배우고(86쪽),모스크바의과자가게에서무얼살지망설일때,불쑥자신의과자봉지를열어맛을보라고권한러시아사람에게서러시아식다정함을느끼며손을넣어호의에응답한다(31쪽).그는파키스탄사람들이라마단을어떻게보내는지도자세히들여다본다.라마단동안의금식은마음을비우고삶을돌아보게한다는데의미가있다.그러나규율을철저하게지키는것은주로서민이며,금식해제뒤에먹을음식만드는노동은여성의몫(155-159쪽).열린마음과호기심을따라가다보면때때로한사회의씁쓸한진실앞에도달하게된다.

“Enterinandpartake”
들어가서참여해

떠남과머무름,만남과헤어짐을숱하게반복하며저자는‘집’과‘고향’의정의를바꾼다.물리적공간에의미를두는대신곁에있는사람들을고향으로삼는다.타국생활에서인간관계가깊어지는것은좀처럼쉬운일이아니지만,그곳에서만난사람들을“현지문화를가르쳐주는선생님”으로삼고,질문을던지고그들의말에귀를기울인다.물론가끔은“만사가귀찮고허무해져서잠깐머물다떠나는여행자처럼지내고싶은유혹”이들었다.그럴때면오래도록마음속에새겨둔따뜻한격려를떠올렸다.

“Enterinandpartake─itisawayoflife,asallcommunitiesare.”
(들어가서참여해─모든공동체가그렇듯,그게살아가는방법이야.)

그는어떤일에참여해남이주는것을받고내것을나눈다는의미가있는partake라는단어를곱씹으며“사람을사귀고,말을배우고,현지음식을즐기고,역사책을읽고,현지신문도자주들춰”보며성실한생활인으로서그도시의내부로발을내디딘다.그가고향으로삼고,선생님으로삼고,서로의일부를나누고자했던이들과보낸시간들에서유독훈훈한온기가느껴지는것은인연의소중함,타인과관계맺는일의어려움을누구보다잘아는그가진심으로상대를아끼고돌보며참여하는모습이담겨있기때문일것이다.

자신으로부터시작해바깥으로나아가기

저자의피정은날아드는기억과생각으로소란했다.그에게자신을들여다보는일은고요히자기안으로침잠하는것이아니라,내가마주한사회를이해하고,동시대를살아가는시민의식을잃지않고,직접부딪혀보며낯선것들을하나하나새롭게배우는일이었기때문이다.자기를노출하는에세이가호황을맞은시대다.많은사람이일기를쓰고,자기고백을하고,나의취향,나의감정,나의느낌에골몰한다.‘나’들의범람속에서저자는“책임감과자신감과두려움사이를끊임없이오가며,그사이에서어떤균형점을찾”는다.나를파고드는대신,나를둘러싼것들을응시하고,탐구하고,주저하면서도열린상태로해석하고,소화하고,썼다.자기로부터시작해다시자기에게로안착하지않고,바깥으로시선을확장해나가는저자의글쓰기는독자들의시야를트이게해줄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