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주택유전자』이후,박철수교수의유작
『마포주공아파트』는『한국주택유전자』를쓴고박철수시립대학교건축학부교수의유작이다.2021년출간된『한국주택유전자』는출간후학계와출판계에서높은평가를받으며학술서가받을수있는모든상을수상했다(세종우수학술도서,한국출판문화대상,롯데출판문화대상,우수편집상등).그러나안타깝게도박철수교수는건강이악화되어2023년2월세상을떠났다.『마포주공아파트』는그가와병중에마지막으로집필한원고를출판사가인계받아,사후편집을거쳐출간되었다(출간전후의사정에대해서는“편집자서문”과“저자서문”참조).
5.16쿠데타세력의핵심프로젝트
1961년5월16일쿠데타로정권을장악한군부는1963년민정이양을약속했다.2년후선거에서정권을유지하기위해서는가시적인성과가필요했다.“마포주공아파트”는군부의능력을과시하기에더없이적합한모델이었다.서울시민들의눈앞에새로운정치세력의능력을드러내는데새로운주택보다더적합한것은없었다.당면한주거문제를해결하고생활혁명의본보기로제시하기위한모델이되어야하는프로젝트였다.
쿠데타의주요인물이었던장동운은1961년5월28일대한주택영단(현LH공사의전신)이사장에취임한다.취임과동시에장동운은서울안에고층,단지식아파트를건립할계획을세운다.이전까지아파트는충정아파트처럼도시가로에면한한동짜리5층내외의집합주택이었다.장동운의계획은중앙난방을공급하고엘리베이터가설치된10층규모의아파트를단지로구성해1000세대를수용하는단지를건설하는것이었다.이가운데어느것도1962년한국에서가능하지않았다.역설적으로,불가능했기에1963년이전에구현되어야했다.“혁명주체”가무능한이전정부와다르다는“시범”을보여야했기때문이다(3장“국가프로젝트의이데올로기”참조).
경부고속도로,포항제철신화의원형
1962년서울에1000세대를수용할땅은없었다.그러나프로파간다가작동하기위해서는아파트가서울안에건립되어야했다.장동운은서대문형무소에서노역장으로사용하던땅으로눈을돌린다(2장“근대산업시설태동지:도화동연와공장”참조).급히땅을마련한장동운은주택영단건축가들에게10층규모의아파트설계를요청하지만,당시주택영단건설이사겸건축부장이었던엄덕문은난색을표한다.(73쪽)유사한경험이전무했기때문이다.이난관은극복의신화를만드는요소이기도하다.“두려움은이내자부심으로바뀌고,이과정에서마포아파트의이데올로기는증폭된다.엄덕문은‘최고전문가들을자문위원으로위촉해밤낮을가리지않고매진해단3개월만에10층아파트설계를마무리했다’며전형적인극복의서사를들려준다.”(77쪽)경부고속도로,포항제철신화의원형이1962년서울에서이미펼쳐진것이다.
“군사혁명”을“생활혁명”으로
수세식화장실,입식생활을위한설비,보일러를이용한온수공급,엘리베이터,더스트슈트등“군사혁명”을“생활혁명”으로전환하기위한만반의준비를갖춘마포주공아파트계획안(1000세대,10층,11개주거동)은예상치못한복병을만난다.원조에크게의존하던당시한국정부의여러정책에공식적으로개입할수있었던한미경제협력위원회(USOM)가주공의계획에노골적으로반대하고나섰기때문이다.냉전체계속에서정권에대한미국의인정을바랐던박정희정권이미국의반대를쉽게무시할수는없었다.박철수교수가발굴해전작『한국주택유전자』에서처음공개한USOM의코멘트에따르면,마포아파트건립계획은모든것이부족한수준미달의계획이다.(223~227쪽)요컨대당시한국의경제사정과기술적수준을고려하면10층높이의아파트는터무니없는공상에불과하다는평가였다.미국의의견을완전히외면할수없었던한국정부와영단은10층에서6층으로규모를줄인다.그러나건립계획을결코포기할수없었던한국정부는USOM의지원없이예산을마련해아파트를세우기로강행한다.
임대에서분양으로
한국주택공급의결정적분기점
1962년12월1차완공,1964년최종준공이이루어진마포주공아파트는모두임대아파트였다.급격한도시화와인구증가에대응하기위해19세기말부터유럽과미국에서먼저시도된정부주도의집합주택은예외없이모두임대주택이다.공공주택을통한시장안정과도시의공공성담보를위해건설이후에도계속해서정부가주택을관리하는일을당연하게여겼기때문이다.쿠데타정권의프로파간다프로젝트로시작한마포주공아파트도마찬가지로임대아파트였다.그러나1967년자금난을겪던대한주택공사는마포주공아파트를분양하기로결정한다.이전환은한국의주택공급과아파트의역사에결정적인분기점이된다.이후한국의거의모든아파트단지는분양을전제로개발된다.동시에정확히이시점에대한주택공사는아파트만공급하기로결정한다.아파트단지만건설하고모두분양하기로한이결정은이후한국주택공급의거의유일한방법으로자리잡는다.
모든것이입주자의책임이자권리,K-Housing의완성
1960년대후반이후,기존시가지를재정비하기보다는새로운택지를마련해아파트단지를만들어분양하는방식이완전히고착화된다.복잡한이해관계가얽혀있는구시가대신한강매립지나영동(강남),잠실등의신시가지를개발하고여기에주공이직접아파트를건설하거나민간업체에땅을팔아주택을공급하게하는일은정부입장에서는무척손쉬운방법이었다.단지까지진입하는도로를건설하는것만으로충분했기때문이다.단지내도로,놀이터,공원등은모두입주자가부담해야했다.최소한의투자만하고주거에필요한여러기반시설을확보하는이방법은정부의예산은부족하고주택은압도적으로부족하던시절,주택을단기간에대량공급하기에유용한방법이었다.그러나이는주거지대부분이아파트단지로재편되자도시가크고작은‘빗장공동체’의집합으로변모하는결과를낳았다.(314쪽이하)
20세기한국의최대발명품
마포에서시작된아파트단지의신화는이촌동,반포를거쳐잠실에서완성된다.최초의아파트단지였던마포주공아파트가최초의재개발아파트단지가되며신화를이어갔다.기존시가지에공원,주차장,놀이터같은필수기반시설을투자하지않고아파트단지건설로대응한결과,아파트단지는한국사회의태양이되었다.아파트가격은정권의명운,개인의인생을좌우하며,정치·경제적이해관계,계층재생산,입시와교육체계를좌우하는결정적인자다.건축적으로비슷한유형은전세계어디에나있지만,정치·경제·사회·문화적으로한국과유사한아파트단지는전세계어디에도없다.늦은근대화와산업화를겪은한국의최대발명품은아파트라고해도과언이아닐것이다.그리고우리는여전히마포주공아파트체제에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