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지원
저자:유지원 미학을공부했고,시각예술분야에서기획하고,글쓰고,번역한다.아르코미술관,서울시립미술관등에서근무했으며,현재리움미술관큐레이터로재직중이다.더불어2016년부터미술글쓰기콜렉티브'옐로우펜클럽'의멤버로활동했고,2022년에개관한프로그램및전시공간YPCSPACE를운영한다.
프롤로그:상자를열다전시보고옥상에서만나요굿-즈의불나방미술을소비하고소유하는방법예쁜것이못생긴집에와야한다니장이서면달려가야한다같이살다보면알게되는것들물욕의정체컬렉션은곧독해,어쩌면자기예언시간을얼려보관하기새로운놀이의규칙우리가만나면무슨일이벌어질까신기루와롤케이크미끄럽고,울퉁불퉁하고,기울어진땅열린공간닫힘이야기는계속된다에필로그:사는일에서사는일로미술사물도감
기대감소시대를살아가는우리들의미술신생공간으로부터당도한이야기2010년대서울의홍대,종로,중구등지의공장지대,시장통,주택가골목에미술공간이생겨나기시작했다.'신생공간'이라는이름이붙게된이들공간은1980년대에태어나2008년미국발금융위기와함께미술대학을졸업하며사다리를걷어차인작가들이자생하기위해만든것이었다.자기만의취향을계발하고전시하는데에익숙한같은세대의관객들이이에반응했다.총80명/팀의신진작가가참여해2015년10월14일부터10월18일까지5일간열린미술장터《굿-즈》는5,800여명의관객을불러모으며큰화제를모으기도했다.1990년대에경직된주류미술에대한대안을표방하며등장한대안공간운동과달리(93쪽),각공간이나작가의산발적플레이가어떤흐름을형성하며'신생공간'을보통명사에서고유명사로바꾸었다.새로운열기속에여기저기에서때때로열린미술장터에서는지갑이얇은창작자와관객사이에활발한거래가오갔다.저자는이즈음부터미술을사기시작했다.한번도가깝다고여겨본적없는미술에풍덩뛰어들어살다보니,벽,책장,장롱이꽉차버렸다.이책은미술을사다가미술로먹고살게되었고,그래서미술이살아가는모습을애정어린눈으로바라보게된저자가한국의동시대미술사에서특기할만한실천들이쏟아진2010년대를관통하며쓴에세이다.신생공간과그곳에서만난작가들에대한회고와작품들에대한비평이뒤섞인이책에서저자는창작자간의느슨한연대,비평적관객의탄생,소셜미디어로연결된익명의동인등신생공간을둘러싼문화적현상들에주목한다.눈으로만보지마세요미술을산사람의특권《굿-즈》전(세종문화회관,2015.10.14-10.18)으로대표되는젊은창작자들의미술장터에서는작업과정에서나온부산물이나작품의파생물형태의작업물이거래되곤했다."80년대이후출생창작자들이10대부터일본의대중문화개방과국내만화시장의성장으로부터서브컬처문법에익숙하거나케이팝을비롯한대중문화소비의직접적인당사자였다는점은파생아이템생산에가속기를달아주었다."(27쪽)이렇게가공된미술품은생활비를조금아끼면구매할수있는가격대인데다한창취향계발에몰두중이었던저자는양손가득작품들을사들였다.노르께한벽지위에드로잉을걸자리를찾고,책장칸마다조각이들어찼다.제자리가아닌듯한느낌도잠시,저자는미술과살을부대끼며사는법을터득한다.표지에쓰인"눈동자가아래를향하는두쌍의눈알처럼"보이는박아람작가의〈굴리기〉(2012)를따라눈알을아래로데구루루굴려보기도하고,배경의연필선을따라바삐눈을움직이며칠을더하기도한다.(51쪽)조각들은더손을타는데,권세정작가의노견조각중하나인〈어깨-팔꿈치〉(2018-2019)는"털이나얼굴생김새등개체를특정할수있는정보는지워진채몸통만덩그러니남겨져,그것과비슷한크기였던나의늙고병들었던강아지와겹쳐"져쓰다듬고싶다는충동을불러일으킨다.(48쪽)"다양한재료의조각과상상의여지를남기는드로잉이일상을침범할때,비활성화되어있던감각이순간순간살아난다."(53쪽)눈으로만보라는미술관의지시를무로돌리고,물리적인접촉면을늘려가는감상법은미술을소유한사람만의특권이된다.흥행은모르겠고,흥겨웠던것은분명하다저자가미술을살수있었던배경에는'신생공간'이있다.창작자와관객의거리가매우가깝고,가격태그가붙어있을만큼'굿즈'화된형태로내놓은작품을많이선보였다.2010년대에등장한'신생공간'은앞으로미술사를기술할때빼놓을수없는사건이다.기존의미술관과는전혀다른장소(시장통이나주택가골목등)에들어서서흰색벽은고사하고창문도없는건물에서전시를여는가하면,반지하도버젓한미술공간으로서관객을맞았다.그래서인지"전시감상에는어김없이그곳에도착하는길에보았던풍경이스몄고,건물과전시장의상태또한괄호치기할수없었다."(14쪽)공간을운영한창작자들은작품의완성도보다는창작의성격,작업과정등에관심을기울이며서로를공간에초대했고,관객들은대가없이성실하게감상평을소셜미디어에올리며창작자와신생공간을응원했다.느슨하지만함께있다는감각은신생공간이버텨나가는원동력이되었음이분명하다.기성미술계가저어해온'애호와동인'의감각으로움직이는미술세계가형성된것이다.아무도돈을벌지못했지만(않았지만),흥성흥성한분위기속에서젊은작가들과관객들은짧지않은시기를함께보냈다.기성제도또는시장의어떤공백,어떤돌파구,어떤분출구였던신생공간은그러나오래가지않았다.이제는얼마간그때와거리두기를할수있게된저자는"뚜렷한이해관계나수익구조없이무척다른사람들이한데어울려무언가를즐기는사건은지속되는편이더수상할것이다.이생태계혹은놀이의참여자는이흐름이언젠가끝날것을직감적으로알고있으면서,끝이있기때문에한순간도놓치지않겠다는듯'지금,여기'에서할수있는일에몰두했다"(80쪽)고회상한다.심지어물건조차아닌것이사고싶어지다신생공간으로향하는사람들의관심을가져가려는듯아트페어가젊어지고있지만,저자는이곳에서는작품을거의사지않는다.신생공간에서미술을산것은단순히취향의계발,안목의증명이아니라누군가의미술활동을응원하는행위였다.신생공간이대부분운영을종료한지금,저자는"미술이아닌,심지어물건조차아닌것"을사고싶어한다."어쩌면여유란고가의작품을사들일수있는능력이라기보다중대한갈림길에서고민하는동료의이야기를들어줄시간과마음,서로긍정적인영향을주고받을수있는동료들을이어줄수있는통찰,유해한선례를남기지않도록옳은선택을할수있는용기같은것"(122-123쪽)에가깝다고생각해서다.그렇기에#미술계_내_성폭력해시태그운동이있은후저자는차곡차곡쌓아둔상자들속에서남길것과버릴것,잠시가지고있을것등을분류했다.(98-105쪽)자신이소유하고있는것이창작자가걸어온시간과동떨어진사물이아님을알고있었기때문이다.그렇다고완전히떨어져나온것도아니다.저자는여전히자신의비루한공간속에쌓여있는미술사물들을보며"새로운연결"과"의외의만남,의미심장한사건,예상치못한폭발적인에너지"를기다린다.이책은한개인의소비영수증이어떤세계의연대기를보여줄수있음을어렴풋이증명하며동시대미술사에아직쓰이지않은페이지를채워넣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