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 공적 감정

우울: 공적 감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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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우울은 개인이 책임져야 할 심리적 문제일까? 가능한 한 빨리 벗어나야 할 질병일 뿐일까? 우울은 단순히 개인적이고 병리적인 상태가 아니라, 사회적이고 역사적인 맥락에서 이해해야 할 공적 감정이다. 이 책은 현시대에 만연한 우울한 삶을 쉽게 비관하지도 단순한 처방을 내리지도 않으면서, 주류 정신건강 담론에 도전하며 우울에서 정치적이고 창조적인 새로운 가능성을 찾는다.
저자

앤츠베트코비치

AnnCvetkovich
텍사스대학교오스틴캠퍼스여성학및젠더·섹슈얼리티연구교수로,같은대학LGBTQ연구프로그램의초대책임자였다.캐나다온타리오주오타와의칼턴대학교페미니즘사회변혁연구소명예교수이기도하다.저서로『복잡한느낌들』(MixedFeelings,1992),『느낌의아카이브』(AnArchiveofFeelings,2003)가있다.『학자와페미니스트온라인』의“공적감상들”특집호와『정치적감정들』(PoliticalEmotions,2010)을공동편집했다.『GLQ:레즈비언과게이연구저널』의공동편집자이기도했다.
앤츠베트코비치는2000년대초반로런벌랜트,헤더러브,데버라굴드등과함께“퍼블릭필링스”프로젝트를결성해감정을정치적분석의중요한대상으로삼은연구와다양한활동을해왔다.흔히개인적인것으로여겨지는감정이공적인차원에서형성되고유통되고작동한다는점을드러내고,감정이어떻게사회적·정치적삶과연결되는지를학술연구와예술,정치실천을결합하는실험적인활동으로탐구해왔다.특히이책에서츠베트코비치는우울을단순히개인의심리적문제나병리로설명하는기존의의학적접근에의문을제기하며,부정적인감정을치료하고극복해야할대상이아니라,현재의사회구조를분석하는주요단서이자적극적으로사유해야할키워드로제시한다.

목차

감사의말
서론

1부우울일기(회고록)
침몰
수영
귀향
성찰:퍼블릭필링스연구방법으로회고록사유하기

2부퍼블릭필링스프로젝트(사변적에세이)
1우울을글로쓰기:아케디아,역사,그리고의학모델
2박탈에서급진적자기소유로:인종차별과우울
3일상습관의유토피아:공예,창의성,영적실천

에필로그
옮긴이해제


참고문헌
도판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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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마티앳시리즈5권
『우울:공적감정』출간

“이책은우울을사적영역에서꺼내우리시대의복잡한정치속으로불러낸다.츠베트코비치는회고록,문화사및의학사,문학과이론적논의를엮어내면서몸,인지,정동에대해전통적이지않은방식의글쓰기와성찰을시도한다.”-메리앤허슈


이제는우울을공적감정으로다루자

한국사회의심각한‘우울’은어제오늘일이아니다.20년넘게OECD회원국중자살률1위를차지하고있으며우울증유병률도매우높다.2024년우리나라성인절반이상이울분을느낀다는연구결과가발표되었고,국립정신건강센터에따르면10명중7명이지난1년간극심한스트레스,지속적인우울감등정신건강문제를겪었다.정신과진료환자수는지난해434만여명으로2020년에비해약90만명이급증했고,우울(증)에관한서사에서는‘병식’을갖고의학적치료를통해‘극복’하기를권장하는목소리가자리잡았다.

그러나우리는아직우울에대해충분히경험하고탐구하고이야기하지않았다.현재의치료문화는우울한사람이양산되는흐름을막지못한다.그속에서우울이라는감정과감각은개인화되고의료화되고탈정치화되며,이는정상성규범을공고히하고우울한자아를자기계발영역에의탁하는것으로이어진다.그결과는F코드진단서,약물,상담,자조모임등을이용해빈틈없이‘멘탈관리’도해내야하는각자도생의세계다.

앤츠베트코비치의『우울:공적감정』은우울을단순히개인적이고병리적인상태가아니라,사회적이고역사적인맥락에서이해해야할공적감정으로개념화한다.우울은이시대를구성하는핵심정서다.또한후기자본주의사회에서의노동,신자유주의의압박,노예무역·원주민학살·성차별등폭력적인역사속에서형성된감각이다.츠베트코비치는여러분야의문헌을살피고다양한장르의글쓰기를활용하여우울을개인이감내해야할고통이아니라집단적으로사고하고정치적으로조직해야할정동적경험으로재해석하고,정신의학과임상심리학을중심으로한주류정신건강담론에도전한다.

퍼블릭필링스프로젝트,
일상의정동으로신자유주의문화정치를들여다보다

츠베트코비치의작업중심에는로런벌랜트,헤더러브,데버라굴드등과함께2001년9·11이발생한즈음에결성한‘퍼블릭필링스’(PublicFeelings)프로젝트가있다.이들은감정과일상의경험을학문적분석의주요대상으로삼고,감정도지식생산의일부가될수있다는점을주장해왔다.또한감정을배제하기보다는긍정적감정(낙관,행복,동기부여,향상심등)만을강조하며부정적감정(불안,수치심,혐오,공포등)은비정상적이거나해결해야할문제로취급하는신자유주의적사고방식을거부한다.“나쁜느낌은실제로변화의토대가될수있다.…이책은우울을다루고있지만,동시에희망과심지어행복도다룬다”(19).

퀴어페미니즘과정동이론의중요한교차점을이루고있는츠베트코비치의저작은더근본적이고고착된이분법을의문시하고흩트리는데로나아간다.개인적인것과공적인것,영적위기와세속적번아웃,경험및감각과이론,생산성과무기력,낙관과비관에대한이원론적구분을벗어나,쉽게극복을말하는대신우울자체의고유한특성과그에내재된생산적가능성을탐색해가는것이다.특히「서론」은이책의요지뿐아니라,퀴어정동이론의지형과‘정동적전환’을주창하는연구의흐름을파악하는데도탁월한글이다.

자전적에세이의확장,경계를넘는글쓰기실험

주류담론이우울을다루는방식을넘어서기위해이책은형식과스타일면에서도기존의학술연구나비평의한계바깥으로전진한다.츠베트코비치는취업시장에뛰어들어야하는시기에겪은첫우울삽화에서시작해자신의우울경험을섬세하게기록한다.무기력,불안,침대에서일어나기위한고투,장보기의고통,무엇도쓸수없는답보상태…온몸으로,마음으로겪는우울의생생한현장이펼쳐진다.아버지의조울증과아메리칸드림의관계,이민자가족으로서의기억,정착민식민주의에연루된백인중산층으로서고향땅에대한복합적감정,퀴어커뮤니티에서받은돌봄등이한개인이겪은우울경험의다양한층위를드러낸다.그뿐아니라기업화된대학,경쟁과능력주의에붙들린학계에서느끼는고단함,무력증,성취압박을솔직하게파고든다.

이런당사자로서말하기는단순한‘고백’이아니라자본주의사회구조가어떻게심리적고통을만들어내는지를분석하는과정의역할을한다.저자는자기경험을생물학적인과(유전자또는호르몬)로설명하지않으며,개인서사를하나의정치적서사로전환하는작업을수행한다.그럼으로써1부의자전적에세이와2부의비평에세이는에세이장르를“사변적사유를위한공적장르이기를열망하는확장된글쓰기의형태”(54)로실험한다.동시에정동이론이분석적도구이기만한것이아니라몸의감각,삶의감각을포착하고표현하는형식이될수있음을보인다.

이런글쓰기실험과이런시도에대한저자자신의비평은근년간양적·질적확장을이뤄온국내에세이출판을정확하게성찰하고,다양한질병서사와소수자들의에세이를정당하게비평하는데꼭필요한목소리이기도하다.

우울의역사는어떻게지워지고또표현되는가

이책이수행하는문화연구의고유함은츠베트코비치가구축해온‘우울의아카이브’에서나온다.2부는우울이문화적으로어떻게표현되고형상화되는지를분석한다.기독교문헌,19세기소설부터신노예서사까지의문학작품,퀴어·페미니스트·아프리카디아스포라등다양한주체들의회고록,주류미술사에서충분히조명받지못한수공예작가들의작업등대문자역사에서배제되기쉬운것들을비공식적이고감각적인형태로기록하고기억하는아카이브가그기반이다.

예컨대2부1장은우울이라할만한증상을다룬기록으로아케디아(“우울과유사한영적절망”,56)에관한초기기독교문헌부터앤드루솔로몬의『한낮의우울』을비롯해대중적·비평적찬사를고루받은현대의우울회고록과대중의학서를살펴본다.이렇게우울을논하는여러종류의학문적계보를따라가다보면,동시대우울이놓여있는복잡한사회적·문화적맥락을지워버린다는사실을깨닫게된다.

2장에서는식민주의,노예제,집단학살이라는역사적맥락에서우울을다룬다.츠베트코비치는아프리카계디아스포라연구자인세이디야하트먼과재키앨리그잰더의저작을통해두사람이겪는답보상태에초점을맞춘다.이들의우울에는노예제로인한언어상실의상태와‘정치적우울’이수반된다.물리적폭력과억압이자행된시점은먼과거지만,아프리카계미국인이겪는일상적인종차별뿐아니라,미국문화에도아프리카토착문화에도연결되지못하는데서오는절망역시깊이지속되기때문이다.그럼에도그것을그저‘우울증’이라명명할때,“지리적·정치적박탈의역사”(58)가삭제되는것은너무나자명하다.

기괴하고과잉되고사랑스러운
퀴어한것들과연결되기

이어서저자는우울을수용하면서도완화해가는삶을연습하고시도하기위해퀴어문화를활용한다.그가만들어온퀴어아카이브에는모성멜로드라마적카바레공연,퀴어펨드래그퍼포먼스,‘뜨개질폭격’실천들,거대한뜨개설치로회복적공간을구성하는실라페페,과잉된질감과색채로괴이하지만사랑스러움을지닌레즈비언괴물들을창조한앨리슨미첼,다양한자전적영상작업등이소장되어있다.수공예작업이다수를차지하는이유는그것이요구하는반복성,영적이고의례적실천을닮은속성이다.

이런퀴어아카이브와함께츠베트코비치의“우울탐구는즐거움과기쁨과활기를탐색하는작업”(349)이된다.그는뜨개질을포함한수공예작업이나글쓰기를일상활동이자습관으로익혀나가는과정을제안한다.그렇게하면몸과의연결,일에의미를부여하는감각과의연결을잃게되는우울의특징속에서도초월적이고않고지금내일상에뿌리를둔‘쓸모있는’유토피아를만들어낼여지가생긴다.

감상주의를벗어난유머,매끄럽지도세련되지도않은인위성,파편적인서사등을특징으로하는츠베트코비치의아카이브는우울과치유모두일상적임을가르쳐준다.치유는의료나기업가적자아로서행하는자기관리가아니라‘일상생활의예술’에있다.그것에집중하는것이야말로그저비관하거나손쉬운처방을제시하지않으면서,우울을통해새로운감각적경험과회복적이고창조적인가능성의장을넓혀가는길이다.

정치적우울과함께일상을변혁하는법
느리고꾸준한몸과작업

이책은우울한상태와관련된감정들이공동체의기억과저항의힘이될수있다고말한다.퀴어한삶과곧잘맞닿아있는부정적감정은퀴어커뮤니티공동의기억이자경험의일부가되고,그렇게공유된정동적경험은(자긍심이아니더라도)연대와저항의기반이될수있기때문이다.우울로인한중단과답보상태,말잃은상태,그리고신자유주의사회에서배제되거나수정되어야할대상으로취급되는아프고취약한몸,비효율적이고비표준적인몸.그런상태로,그런몸으로생존하고일상을살아내는것이곧자본의속도와생산성논리에대한저항이되기때문이다.

츠베트코비치가제안하는경험과활동,방법들은너무“소박한형식”을띤다고느껴질지몰라도결코나이브하지는않다.우울을키워드로삼는시도의기저에는“우울로생을마감한친구들에대한공적인애도”(389)가있을만큼그는많은퀴어청소년,동료,작가들의(때이른)죽음을겪었다.몸의감각에주의를기울이고새로운삶의방식을마련하라는우울의요구에귀기울이는것이계층과인종과젠더에따라훨씬더어려워진다는것도물론알고있다.그가‘느리고꾸준한작업’을말하는것은마법의묘책이란없기때문이다.사회적사건과구조적요인은우리에게큰충격과트라우마적경험을안기기도하지만,그영향은미세하고끈질기게우리의일상을붙들기때문이다.

내란성우울과
광장에서책읽고뜨개질하고게임하는우리를설명하다

츠베트코비치자신과퍼블릭필링스또한좌파퀴어로서겪는정치적우울을이론과실천의자원으로삼아온사례이기도하다.이런정동연구자들의논의는정치의감정적자원으로“분노와주권의식보다는실망과비주권적행동에주목한다”(옮긴이해제,395).정치적우울은“직접행동과비판적분석을포함해정치에대응하는관습적형태가더이상세상을변화시키는데별효과가없으며,우리의기분을나아지게하는데도그다지효과가없다는느낌”(16)과연결된다.

지금한국에열린광장에서도정치적우울을정치의원료로,변화를도모할힘으로삼은사례들을수집할수있다.내란에저항하는문구를새긴뜨개를들고나오고“탄핵뜨개모임”이열리기도한다.수많은형형색색의깃발과피켓가운데“전국정신건강의학과개근환자협회”처럼‘정병러’로서정체성을담은문구들이있다.책읽기,뜨개질,게임등즐겨하던행위를광장에서이어가기도한다.“내란성불면”,“내란성우울”이라는조어가널리통용된지금,그리고정치적우울이더만연해질수있는다가올날들에이책의우울논의가더없이시의적절하다.일상을되찾기위해,일상의우울을견디기위해서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