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로 4: 나무과 콘크리트

미로 4: 나무과 콘크리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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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연 3회 발간되는 건축잡지 『미로』는 한국 현대 건축의 담론을 발굴하고 기록하는 것을 목표로 삼는다. 매호 선정한 주제에 집중하는 글로만 구성되는 텍스트 중심의 잡지로 4호의 주제는 “나무와 콘크리트”이다.
『미로 4: 나무와 콘크리트』를 엮으며
『미로』 창간을 준비하던 무렵 어렴풋하게나마 4, 5호까지의 특집 주제를 미리 정해두었다. 1호부터 3호까지의 주제 “참조와 인용”, “일본”, “OMA”는 크게 보자면 일종의 영향관계를 물었다. “참조와 인용”은 당대 건축가들이 이 문제를 어떻게 인지하고 있는지를 다루었다면, “일본”은 지금도 한국에서 여간해서는 겉으로 드러나지 않고 숨어 있는 타자를 소환해보려 했다. 과시적이며 매혹적인 대상이자, 동시대 건축 실무와 이론의 척도 역할을 해온 OMA까지 『미로』 1-3호는 연속적인 면이 있다. 그러고나서 분위기를 바꿔 재료, 그러니까 건축을 둘러싼 많은 힘들 가운데 가장 무거운 재료를 다루고 싶었다.

나무와 그의 상대, 콘크리트를 불러오다
건축의 본질은 벽과 기둥, 바닥이 아니라 이것들로 이루어진 ‘공간’, 다시 말해 무형의 것이 더 중요하다는 생각은 현대 건축의 가장 중요한 발견이자 굳건한 입장이었다. ‘공간’의 위세가 예전만 못한 것은 분명하지만, 건축은 기하학이나 질서, 유형 등 추상적이고 비물질적인 것을 높이 평가한다. 건축은 물질 덩어리에 속박되어 있기에 예술의 서열에서 제일 밑바닥을 차지한다는 헤겔에 항변이라도 하듯 말이다. 물론 텍토닉 등의 논의가 여기에 반기를 들기도 했다. 그러나 텍토닉은 물질에서 출발해 정신으로 도약하길 원하는 거꾸로 선 미학이었다는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최근 물질은 어느 때보다 우리의 시선을 붙잡는다. 건축가는 도면을 그리고 시공업자가 건물을 짓는다는 이원적 구도가 (삐걱거릴지언정) 여전히 유지되지만, 양상은 꽤 달라지고 있다. 무형의 것에 질서를 부여하는 자라던가, 아이코닉한 형태를 부여하는 자로 건축가를 설정하는 일은 이제 시대착오적으로 들리기도 한다. 건축가가 어떤 형태를 만들었는지만큼, 어떻게 생산된 재료를 어떻게 가져와 어떻게 사용했는지에 대한 섬세한 말들이 오가기 시작했다. 이번 호는 이 소리를 듣고자 했고, ‘나무’를 둘러싼 이야기로 4호 전체를 꾸리려 했다. 그러나 필자를 섭외하고 각 꼭지의 이슈들을 점검하면서 이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한국 건축계에 이와 관련된 논의와 쟁점을 포괄적이고 ‘메타’적으로 장악하고 있는 이는 없었다. 윤리적이고 당위적인 자리에 자신을 두고 훈계하는 식의 글쓰기가 아니라면 말이다. 그래서 나무의 상대, 지금 우리의 환경 대부분을 만든 콘크리트를 불러왔다. 재료의 전환을 부각시키는 데도 유리하다고 여겼다.
저자

강난형

물질,문화,만듦의관점에서도시건축을연구하는아키텍토닉스대표이자건축가,연구자.도시개발,유산복원,수공예콘크리트기술사를주제로한연구를수행해왔으며,최근에는아시아개발국가의맥락에서산업화과정과어바니즘을탐구하고있다.주요연구로는「1960년대서울시범도시계획연구」(2020),『HURPI구술집』(2022),『경복궁의모던프로젝트』(심원건축학술상,2018)등이있으며,연구기반전시로는《아파트카탈로깅》(DDP,2024),《짓는집부수는집:집의생애지도》(서울시립미술관,2020)등을진행했다.

목차

박정현●『미로4:나무와콘크리트』를엮으며_
김선형●나무없는건축,건축없는나무-Formwork의시대를지나,다시Framework의시대에대한고찰
에이드리언포티/임윤택번역●현대콘크리트의기원신화들
조남호●부분과전체,생태미학의건축
박정현●콘크리트:행성적모더니즘
최혜정●유기물의두얼굴-나무와플라스틱
박지현,조성학●샛기둥의가능성
이연경●시멘트의잃어버린시간을찾아서
정이삭●허공에발치에티끌에
전태규●젠틀몬스터사옥과브루탈리즘적콘크리트이미지
이세웅●무구한마음의영원한햇살
송영대●가장전통적인,가장미래적인
강난형●분해를위한카탈로깅:짓고부수는계획의물질,시멘트
이승환●목재산업:가장오래된,동시에지속가능한미래의자원
김재경●공포,동아시아목조건축의정체성-기원,발전,지역적변용과현대적재해석

출판사 서평

나무에서,나무로의전환
나무를다루는필자는하나같이자신의실천이변화해오는과정속에서걸러진이야기를들려주었다.그래서이론적인접근을하더라도경험적인경우가대부분이다.목조건축을가장적극적으로활용하면서새로운문법을모색하는조남호역시이행의과정에서이야기를펼친다.모더니즘미학과철근콘크리트에빠져있던그가어떤연유로목조에관심을가지게되었고,목조의가능성을시공현장과대학에서동시에실험하게되었는지는건축가의인생여정과나란히읽을때에만의미를지닌다.그리고이과정은여전히계속되고있고,그가나무의특이성에서보편성으로이행해가고있음을확인할수있다.현장의경험을통해나무가강제하는한계와그속에숨은가치들을발견해나가는이야기는박지현과조성학의내러티브에서도나타난다.우연과필연이겹쳐시작한경골목구조주택설계를거듭해나가면서목조건축이무엇인지깨달아나가는이야기는단순히그들만의에피소드가아니다.또래의동료들이라면비슷한경험을공유할것이고,학생들이라면앞서출발한이들의길을따라걸어볼수있을것이다.
한국은산림녹화에성공한예외적인국가다.한국전쟁직후민둥산이었던흔적은수십년만에사라졌다.그러나전국의산에심어진나무는지금그다지쓸모가없고,목재산업과목조건축에기여하는바가적다.건축학과교육에서도나무는온데간데없이사라졌다.김선형은어긋난역사의추이를추적하며이둘을다시이을가능성을찾아나선다.이세웅은우려와걱정을전한다.기능과기술에무감한한국건축계가나무라는재료앞에서수수방관과속수무책이라고지적한다.재료와결구에대한사려깊고감각적이며과학적인태도가우선해야한다는전언이다.굳이반복할필요도없을정도로뻔한교과서에나나올법한말이지만,디테일은건축가의공예가적기질을뽐내는장치가되는현실에서는뻔하기보다는드문일이다.
한동안한국에서목조건축은곧전통건축이고,전통건축의특징은공포와지붕에서가장잘드러난다고여겼다.이런연유로한국적인것을앞세운건축물들은공포와지붕을콘크리트로모방하곤했다.이런시절이꽤지루하게길게이어져서인지,공포의현대화에몰두하는이는드물다.김재경은여기에반기를든다.디지털기술이공포를재해석하고나무를효율적으로재단하는새로운기회를열어준다고주장하며,오랫동안천착해온공포연구의일단을소개한다.나무를건축재료로사용하지않은지역은없다.각국은나무를다루어온오랜전통이자국에있음을저마다의방식으로뽐낸다.한국,중국,일본,베트남등동아시아가복잡한지붕결구방식을내세운다면,덴마크를비롯한북유럽은바이킹의선박건조기술을언급하곤한다.수십년뒤,2025년을전후해건축재료의변화를이야기한다면틀림없이올해개최된오사카-간사이국제박람회를빼놓지않을것이다.박람회에서선보인세계에서가장큰목조건축물그랜드링은갑론을박을불러일으켰다.『미로』이번호는이에대한비평이나리뷰,방문기보다내부자의이야기를실었다.그랜드링을설계한소우후지모토사무실에서시니어건축가로일하는송영대는박람회를준비하면서겪은개인적인감상을바탕으로일본에서벌어지고있는나무로의전환을들려준다.
나무를특집으로한다면,건축재료로서의나무는산업의규모로만존재한다는잊기쉬운지점을짚어보고싶었다.부피가큰나무의운송,보관,제작에는엄청나게큰항만,창고,공장이필요하다.인천북항에는목재산업에할당된부두와단지가별도로존재한다.목재업체를경영하는이승환은나무산업의꽃은목조건축이라는간명한주장과함께국내목재산업이처해있는현주소를가감없이전하며,필요한정책등을제안한다.나무가산업으로존재하기위해서는여러처리과정이필수적이다.습기나열에견디게하는것은물론이고대형건축물에사용할수있을정도의구조성능을내기위해서나무는다른물질과결합해야한다.최혜정은이물질이플라스틱이라고말한다.예전보다훨씬더단단한나무가지구에서새롭게자라나는것은아니니이는놀랄일이아니다.하지만나무는자연과환경보존의원천이고,플라스틱은인공,환경파괴의주범이라는이분법에사로잡히우리는나무가플라스틱과결합되어공학목재가된다는사실을보지못한다.최혜정의글은이맹점을날카롭게파헤친다.

콘크리트이후,해체와희망
나무로의전환을요구하는가장큰요인은단연기후위기다.지난세기배출된이산화탄소의삼분의일정도가건설산업에서나왔다는통계가있다.이는거의모두콘크리트구조물을만드는과정에서발생한다.석회석을채굴해서거대한가마에서구워시멘트를만들고이를건설현장에보내어굳히는매순간이산화탄소는뿜어져나온다.현대를만든이콘크리트는누가발명한것일까?에이드리언포티에따르면현대콘크리트의기원을두고여러설이있고,그가운데어떤것도단일한하나의기원을지목하지않는다.포티는콘크리트기원설을크게셋으로잡고,각기원설화가정확한기원을말해주기보다각주장이제기된시대를오히려잘설명해준다고주장한다.지식이담론으로구성되어있다는입장에서서술된이글은원래취리히연방공대에서발간하는잡지gtapapers에수록되었다.저자와출판사에연락하고번역한임윤택의노력으로이글을『미로』에실을수있었다.아무런대가없이번역게재를허락해준에이드리언포티와취리히연방공대에감사를전한다.시작이있으면끝이있는법이니,지어진콘크리트덩어리들은해체되어야만한다.재료가가진내구연한에달하기전에경제적이유로허물어지는일이더많은콘크리트건축물은폐기물과재활용사이를오간다.강난형은물질관리의차원에서이짧은여정을기록한다.
1945년식민지에서독립한국가로산업화에성공한국가,다시말해외부식민지없이고도경제성장을이룩한유일한나라인한국의개발사는시멘트생산의역사이기도하다.지난세기한국은건물은말할것도없고도로,하천,절개지등사용가능한지표면모두를시멘트로덮다시피했다.이연경은유엔한국재건단의지원으로설립된한국최초의시멘트공장인문경쌍용양회의역사,그리고이와얽힌건축과원조,산업의역사를들려준다.반면,박정현은시멘트-콘크리트-모더니즘의양상을거시적으로,행성적차원에서읽어보자고제안한다.지질학,탈식민주의,문학사등최신연구를두루원용해건축사연구의관점을바꾸어야한다는주장이다.한편거대한콘크리트건축물은최근브루탈리즘이라는복고적인유행과함께생명을연장하고있다.매끄러운디지털이미지에대한반작용때문인지1970-80년대지어진거친콘크리트건축물은SNS와출판등에서크게반향을불러일으키고있다.현대건축의대체어,동의어처럼들릴정도다.전태규는콘크리트(가짜)폐허가도처에널린성수동에시대착오적이면서시대친화적으로들어선젠틀몬스터사옥을브루탈리즘의맥락으로읽어나간다.
도시와공간을자본축적의도구이상으로여기지않는분위기가팽배한한국에서건축은기후위기부정론자에가깝다.세운상가일대의을지로재개발,노들섬등개발이익과랜드마크에대한열망에서린광기는좀처럼사라지지않는다.나무역시더많은이익을보장하는새로운형태와공간을만드는불쏘시개로여겨질것이다.그럼에도불구하고재료의전환은피할수없는일이다.우리는이전환이이전보다는더윤리적이기를희망하면서글들을엮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