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정록(큰글자도서) (조선군 사령관 신류의 흑룡강원정 참전기)

북정록(큰글자도서) (조선군 사령관 신류의 흑룡강원정 참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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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17세기 흑룡강원정(나선정벌)의 실상과 야전의 생생한 현장감을 담다
조선시대에는 ‘북정록北征錄’이라는 제목을 단 자료가 여럿 존재했다. 이 책에서 다룬 《북정록》은 1658년 제2차 ‘흑룡강원정(나선정벌)’의 조선군 사령관 신류가 남긴 진중일기를 이른다. 《북정록》은 당시 원정의 추이를 상세하게 전할 뿐만 아니라, 17세기 무렵 조선의 해외 원정 방식, 무기 체계와 화력의 성능, 청나라와의 관계, 대외 인식 등을 종합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중요한 1차 자료다.
흑룡강원정(나선정벌)이란 17세기 중반 북만주로 남하하는 러시아(나선)를 저지하려던 청나라의 출병 요구에 따라 조선군이 송화강松花江(쑹화강)과 흑룡강黑龍江(아무르강·헤이룽강) 유역으로 1654년과 1658년에 걸쳐 두 차례 출정한 사건을 이른다. 1차 원정(1654)에 대해서는 사령관 변급邊?이 개선 후에 올린 보고 내용이 《효종실록》에 잘 남아 있고, 2차 원정에 대해서는 사령관 신류가 작성한 《북정록》이 원정의 실상을 매우 상세하게 전한다.
저자

신류

申瀏(1619~1680)
본관은평산平山.1619년(광해군11)경상도인동에서태어났다.1645년(인조23)무과에합격해선전관,비변사낭청직을거쳐1655년(효종6)훈련원부정겸내승이되었다.1657년함경북도병마우후(종3품무관)가되었다.
1654년에이어1658년흑룡강원정(나선정벌)을위해청나라가조선에원군을요구했다.이에조선조정에서는신류에게출병을명했고,신류는함경도의총포수250여명을거느리고참전해,흑룡강까지원정했다.이때러시아의스테파노프선대11척가운데10여척을화공으로불태우고적장과병사들을괴멸시켰다.하지만조선과청나라연합군도많은사상자를내고심각한피해를입었다.이때의일을《북정록》으로남겼다.
1658년세운공으로가선대부에올랐고,이후경상도김해부사·경상좌도병마절도사·황해도병마절도사를지냈으며,삼도수군통제사가되었다.1677년(숙종3)포도대장에임명되었다가1679년역모사건에연루됐다는이유로파직되었다.1680년고향으로낙향했다가사망했다.

목차

머리말
《북정록》에대하여

북정록

신류연보

출판사 서평

야전사령관의개인일기이자,당시조선과청나라의상황을보여주는역사서

신류의《북정록》은야전의현장감을매우생생하게전해줄뿐만아니라,17세기중반효종孝宗재위(1649~1659)당시조선의여러상황까지다양하게제공하는소중한자료다.《북정록》의내용을통해손쉽게파악할수있는‘직접’정보외에도,내용에대한다양한분석을통해추출해낼수있는‘간접’정보도무궁무진하다.《북정록》이갖는자료가치를몇가지로간추리면다음과같다.
첫째,전투에참여한지휘관이일지형식으로기록한일종의진중일기다.조선의흑룡강원정(나선정벌)은1650년대에4년터울로두차례있었는데,1차원정(1654)때사령관변급이별도의진중일기를남기지않은데비해,2차원정(1658)사령관신류가일지형식의기록을남긴점은그중요성을아무리강조해도지나치지않다.조선시대에나온진중일기가운데으뜸이이순신李舜臣(1545~1598)의《난중일기》임은다른설명이필요없을정도로타의추종을불허한다.내용의규모면에서신류의《북정록》이《난중일기》에비할바는아니지만,그꼼꼼함은결코뒤지지않는다.특히해외출정에임하는야전사령관의감정과심리상태를솔직하게표출한면에서는오히려《난중일기》보다더세밀한부분이적지않다.전쟁사관련1차자료가대개전황판단이나전투결과보고서내지는지휘부의전략과전술관련내용을주로담는데비해,야전사령관본인의주관적감상을세밀하면서도담담하게기록한점에서,《북정록》에는이순신의《난중일기》보다뛰어난면도있다.
둘째,내용의사실성과정확성이사료적가치를더욱높인다.1차자료라고해서모두정확성이뛰어나지는않다.어떤역사현장을직접경험하거나목도한사람이기록을남긴다고해도,자기입장에따라사실의취사선택은얼마든지가능하기때문이다.그런데《북정록》은피아간의전투병력과전투상황을매우객관적으로정확하게기록한점에서사료로서가치가더욱두드러진다.《북정록》에보이는이런특징은당시전투에서패해퇴각한러시아군병사들이상급지휘본부에서심문을받을때진술한전투상황내용과거의완벽하게일치한다는점에서더욱돋보인다.
셋째,전투상황뿐만아니라조선군이청군靑軍에어떻게편제되었는지에대해서귀중한정보를제공한다.2차원정(1658)당시영고탑寧古塔(닝구타)에서청나라군대에합류한조선군은청나라의8기제八旗制에따라편성돼있던청군의여덟부대에분산,배치되었다.이는‘연합군’이라는말이무색할정도로,조선군이신류휘하의독립부대로작전에임하지못했음을여실히보여준다.차라리용병이라면그대가로돈이라도받았겠지만,당시조선군출병은청나라의청병淸兵이아니라거역할수없는징병徵兵에따른결과였다.1차원정(1654)때의부대편성기록이전하지않는탓에진실을알수는없으나,8기제가공고하던청나라부대편제를감안할때,그때도마찬가지로분산·배속됐을것으로보아도무리는없을것이다.이는명-조선관계보다,청-조선관계가훨씬더수직적이었음을잘보여준다.이렇듯《북정록》은청-조선관계의상하질서가얼마나엄혹하고현실적이었는지가감없이보여주는자료다.
넷째,저자신류가청군지휘관들에게어떤호칭을사용했는지살핌으로써당시청나라에대한인식을엿볼수있다.예를들어,출정중에작성한일기에서는청나라군인들을대개청장淸將,대장大將,부수副帥,부장副將,성주자城主者,청인淸人,피배彼輩,청차淸差,차인差人등으로칭했다.이는청나라와조선사이에서어떤상하관계도느낄수없는,있는그대로의직함이나호칭을사용한것이다.그런데청나라군속중에서도만주족이아닌사람들을한인漢人이나서촉인西蜀人처럼그종족을분명히기록한점이흥미롭다.그런데작전임무를마치고조선으로귀국한후에작성한부기附記에서는청군지휘관에대한호칭이모두괴호魁胡나부호副胡라는비칭으로확연히바뀌었다.영고탑주둔청나라병사들도더이상청인이라부르지않고,영고지호寧古之胡라낮춰불렀다.이는신류의의식체계속에서만주족의청나라는곧‘오랑캐나라’라는의식이얼마나뿌리깊었는지잘보여준다.청나라에대한이런의식은신류만이아니라당시조선조야에도매우광범위하게퍼져있었다.이렇듯,어떻게활용하는가에따라《북정록》은전쟁사의범주를넘어다양한정보를발굴할수있는귀중한자료다.
다섯째,17세기무렵만주일대의인문지리연구에도큰도움을준다.조선원정군은함경도일대포수들을군현별로차출해구성했는데,모두회령會寧에모여서점호를받고두만강을건너영고탑의청군사령부로이동했다.병사들의행군속도로약7~8일걸리는이노정에대해신류는비교적상세하게지리·지형관련기록을남겼다.각종지명은그자체만으로도매우소중하다.또한현재의목단강牡丹江(무단강)과송화강을가리키는옛지명들을비롯해,영고탑에서목단강과송화강을거쳐흑룡강에이르는지세와각종지명및부락이름도매우풍부하다.따라서《북정록》은역사지리자료로도손색이없다.
이밖에도,17세기당시조선군·청군·러시아군의개인화력(조총)비교,함경도일대의병사차출방법,강상전江上戰의일반유형,휘하병사들에대한사령관신류의섬세한인간적관심등등.《북정록》을통해알수있는정보는거의무한정이라해도과언이아니다.

북쪽바닷가에오랑캐도적떼가있는데,그소굴이어느곳에있는지모른다.그들은배를집으로삼아흑룡강黑龍江상ㆍ하류를오르내리면서왈가曰可지방을노략질하고있었다.청나라사람들이여러차례싸웠으나모조리패했다.갑오년甲午年(1654,효종5)에처음으로우리나라에와서구해달라고요청했으며,최근에다시도와달라고요청했다.
-본문23쪽

이른아침에열벌마을을떠나흑룡강어귀를지나20여리쯤내려가니,적선열한척이닻을내리고강가운데에주둔하고있었다.모든배가노젓기를재촉해적선을향해곧장다가가자,적선은돛을올리고하류로10여리를달아나강가언덕에의지해배들을연결시켜놓았다.적의병사들은판옥위에올라관망하면서정찰하고있었다.모든배가번갈아들락날락하면서적선과의거리가한마장쯤떨어졌을때일제히대포를쏘면서교전에들어갔다.
-본문54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