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것과정치적인것사이에서,북한에서는어떤소설들을읽고썼을까
북한에도(우리가흔히생각하는바와같은)‘좋은’소설이있을까?북한에서최고로꼽는소설작품은무엇일까?북한의문학제도는어떨까?북한의작가들은어떻게양성되고,어떻게등단하는것일까?여전히작품에대한검열이존재할까?북한소설에는비극이없다고하는데정말일까?남한의문학과북한의문학은무엇이같고다를까?이책의제1부에서는오늘의북한문학을개괄하면서,대표적인주요작가들의작품을통해북한문학의보편성과특수성을살펴본다.
북한문학은사회주의리얼리즘의전통아래‘노동과일중심의서사,비극이없는낙관주의,개인주의에대한비판과집단주의의추구’등을특징으로한다.이를테면2014년혜성처럼등장해북한문학의신성新星이된젊은작가,서청송의〈유봉동의열여섯집〉(2017,홍수피해의고난극복과정을낭만적으로형상화한작품)을통해오늘날북한문학계의미적기준을가늠해볼수있다.
그러나다른한편으로기존의문학관습에저항하는새로움의물결도있으니,북한문단에서도최고의작품중하나로꼽는김해룡의〈서른두송이의해당화〉(2016,해안간석지건설장에서벌어진청년돌격대의활약상과사랑이야기)에서는‘혁명적낙관주의’를깨뜨린비극적서사가눈길을끈다.또한북한문단에서는크게주목하지않지만리준호의〈나의소대원들〉(2016,탄광설비소대원들의일상과내면세계를그린작품)의경우,개성넘치는성격묘사로비주류하층노동자의세계를섬세하게형상화한‘모더니즘적노동소설’로서,북한문학의예외적인작품으로꼽히는문제작이라할수있다(“위대한수령님”과같은정치지도자에대한헌사도전혀등장하지않는다).
최근10년동안활발한작품활동을하면서북한평론계의지속적인관심을끌고있는주요작가로는김혜인,김철순,서청송등을꼽을수있다.
김혜인은치밀한성격창조와내면묘사를통해,어린시절의순수했던양심의문제와현재직면한선택의문제를대비시켜갈등을서사화하는데탁월한능력을발휘한다.이를테면쌍둥이형제를주인공으로한성장소설〈가보(家寶)〉(2010)는‘누가가보를물려받아야하는가’를둘러싸고,‘혁명가의핏줄’(앞세대의업적)이중요한북한사회에서부모의업적에의존적인(우리식으로말하면‘부모찬스’를쓰는)젊은세대에대해각성을촉구하는주제의식을담고있다.〈아이적목소리〉(2012)역시탄광과도시를배경으로노동현장에서발생하는양심의문제를다루는데,북한사회의관료주의비판으로도손색이없는서사적긴장을담고있다.김혜인의작품들은북한문학에서드물게가족적요소와사회적양심의문제를다루기에눈길을끈다.
김철순은청년과학자들의사랑이야기를과학적성취와연결함으로써열정의창조적전환을그리는데뛰어나다.사랑은문학이탐구해온가장중요한주제중하나로,소설속사랑에대한서사는그사회가지향하는‘관계맺기’의심층을드러낸다.그의소설〈인연〉(2013)과〈꽃은열매를남긴다〉(2012)는과학기술발전에대한헌신과청춘남녀의사랑을엮어낸작품들로,자기욕망에충실한사람과냉정하고현실적인사람간의관계가사랑의서사를끌고나가기도하고,세련된플롯과극적인반전으로‘애국주의적사랑’을낭만적으로탁월하게형상화하기도한다.
서청송의작품들은젊은시대감각과새로운개성들로넘쳐난다.‘손전화통보문’(문자메시지)이나‘휴대용콤퓨터’(노트북),‘다매체화’(멀티미디어화)같은용어도자연스럽게소설에녹아들어북한젊은이들의일상과언어를발랄하게재현한다.〈영원할나의수업〉(2014)은컴퓨터수재인자신만만한젊은교사의좌충우돌일상을경쾌한어조로그려낸소설로,12년의무교육시행이라는정책변화에부응해교사들의재교육문제와과학기술분야의교육현안을서사화한작품이다.〈무지개〉(2014)는발표당시북한사회에서화제의중심에섰던작품으로,평양의방직공장노동자합숙소108호실을배경으로일곱명의개성넘치는여성노동자를통해‘(노동)영웅은자신의헌신적노력을통해탄생하는것이아니라직장의권력자에의해만들어진다’는문제의식과관료주의비판을드러낸다.미스터리기법으로극적긴장감을높이며,단문을활용해읽는속도감도빠르다.유머와소소한이야기를잘결합해재미요소도겸비했다.북한문학에나타나는무거운교양적분위기를가벼운유희적분위기로바꾸어내려는작가의노력이인상적이다.
한편1990년대고난의행군부터2019년하노이회담에이르기까지,고립과제재속에서북한사회의‘자력갱생’담론이어떻게문학적으로형상화되고있는지를살펴보는것도의미있는작업이다(특히하노이회담결렬이후‘자력갱생’의분위기는더욱강고해졌다).이를통해2020년현재북한사회의지향이어디로향하고있는지를짐작해볼수있기때문이다.고난의행군시기를배경으로민중의빈곤했던생활상을사실적으로그린김옥순의〈동창생〉(2018),외국산제품에맞서‘우리식파마약개발’을둘러싸고세계제일의과학기술에대한염원을형상화한렴예성의〈사랑하노라〉(2018)는오늘날북한사회가‘자기혁신’,‘세계와의경쟁’이라는강박적관념에어떻게반응하고있는지를잘보여준다.아울러시대의변화상과함께가부장적질서에대항하는북한여성의욕망표현이이전보다훨씬자유롭고주체적인양상을띠는점도흥미롭다.
페미니즘소설부터지하문학까지,겹겹의목소리를듣다
북한소설에도장르적다양성이있을까?이책의제2부와3부에서는생태소설,페미니즘소설,실화문학,지하문학,전쟁문학등다양한소재와주제의작품들을통해북한문학특유의다채로움을엿볼수있다.아울러청년,여성,세대갈등과젠더갈등,가족과지역공동체와국가기구의긴장관계등북한사회의내밀한이야기에도좀더가까이귀기울여본다.
고난의행군이후황폐해진산림을복구하기위해북한에서는대대적인‘산림복구전투’운동이펼쳐졌는데,이를형상화한작품을통해북한사회의생태환경에대한인식을알수있다.산림복구사업을둘러싼지역공동체와국가기구의긴장관계,미래세대의윤리문제,무분별한벌목과개간을둘러싼공적/사적욕망과생태주의의충돌,반환경적인생산력중심주의에대한성찰등흥미로운지점이많다.[황철현의〈푸른숲〉(2016),김창림의〈생활의선율〉(2017),김향순의〈두번째작별〉(2016),박성호의〈출발의아침〉(2016)]
2000년대북한의문학작품에서여성은어떻게형상화되고있을까?그리고고난의행군이나선군시대ㆍ선군정치같은사회적사건은어떤방식으로여성의일상에개입해왔을까?고난의행군시절에대한고통스러운기억과공포,생산력증대를위한농촌여성들의힘겨운노력,그리고그과정에서불거지는세대갈등과젠더갈등등을통해,당시국가기구의‘국민총동원체제’(남성성의이데올로기)에포박된북한여성의상황의일면을엿볼수있다.[조인영의〈한녀인에대한추억〉(2005),윤경찬의〈넓어지는땅〉(2001),김영선의〈불길〉(2005)]
북한문학에서특기할만한점은‘실화문학’(우리식으로는‘르포문학’)이하나의장르로서중요하게다뤄진다는점이다.작품공모전에서도‘소설문학’부문을‘단편소설,단편과학환상소설,단편실화문학,수필’등으로구분할만큼실화문학은별도의영역으로취급된다.실화문학은‘사실’과‘문학’이중첩된장르이기에그어떤장르보다북한사회의생생한현실이담긴‘내밀한이야기’다.북한민중이공유하는‘진짜이야기’,민중의생활사가투영된작은역사의구현물이라고도할수있다.그런점에서남한의독자들에게는특별한매력으로다가온다.[한철순의〈보석은땅속깊이〉(2012),리성식의〈필요한사람〉(2014),리룡운의〈초석〉(2014),전충일의〈재부(財富)〉(2012)]
이외에도,2011년김정일사망직후애도와치유의문학이어떻게‘기억의정치’를구현했는지,최고지도자의‘현지지도’라는독특한통치술이당과인민에게어떤영향을미쳐왔는지등을살펴보고[김하늘의〈영원한품〉(2012),최종하의〈깊은뿌리〉(2012),김금옥의〈꽃향기〉(2012),석남진의〈사진에깃든이야기〉(2012)],북한에서거의유일하게‘아름다운비극’이허락된전쟁서사를통해북한사회가안고있는분단의공포와불안의심연을들여다본다[오광천의〈대렬선창자〉(2016),백상균의〈로병동지〉(2017),김기성의〈금반지〉(2016)].
한편,2017년남한에서는제3의문학적사건이일어났다(1980년대후반대학가의북한문학읽기붐과,2002년북한역사소설《황진이》의합법적인국내출간에이은).북한의한익명의지식인작가,필명‘반디’의소설집《고발》이극적인과정을거쳐국내출간되어큰반향을일으킨것이다.(원래2014년‘조갑제닷컴’에서첫출간되었으나당시에는일부독자의제한된호기심만불러일으켰다.한강의《채식주의자》를번역한데버라스미스가이작품을영어로번역해‘영국펜’EnglishPEN의2016년하반기번역상수상자가되자,남한독자들의눈길이반디의불타는책에머물기시작했다.)《고발》은북한사회의내밀한이야기가은밀하게남한독자에게전해진것으로,무엇보다북한에서창작되어검열을거치지않고남한에서출간된유일한작품집이기에,향후남북통합문학사에서기념비적작품집으로기록될것이다.
《고발》에는1989년12월에창작한〈탈북기〉에서1995년12월에창작한〈복마전〉까지,6년여동안쓴일곱편의작품이수록되어있다.각각의작품은북한문학이따르는서사적관습이나금기를과감히깨뜨리면서다른문학적형상화로나아가고있다.그의작품에는인간의권리,개인에대한존중의태도가배어있으며,북한의‘공적세계’에대비되는사생활,가족,개인의가치를그린다.반디는내부자의시선으로,당시북한이직면했던경제위기가권위주의적정치체제,민중을배제하는억압적신분질서(혈통주의),민중생활을억압하는과도한통제에있었음을증언한다.그는민중의성실한노력이배반당하는북한의현실에절망했고,아래로부터의세계관으로북한체제의변화와민주주의를열망했다.그러므로《고발》은북한에서보내온문학적탄원서이자,남한민중에게보내는연대의호소문이기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