징비록(큰글자도서) (지옥의 전쟁 그리고 반성의 기록)

징비록(큰글자도서) (지옥의 전쟁 그리고 반성의 기록)

$33.00
Description
리더스원의 큰글자도서는 글자가 작아 독서에 어려움을 겪는 모든 분들에게 편안한 독서 환경을 제공함으로써 책 읽기의 즐거움을 되찾아 드리고자 합니다.

《징비록》의 밑바탕이 된 《서애집》
그 속에서 찾아내 엮은 ‘종군의 기록’ 추가 수록!

‘2014 개정증보판’ 《징비록》은 기존 《징비록》(2003년 출간)의 내용상 오류를 바로잡고 편집을 새롭게 했을 뿐 아니라, 유성룡이 《징비록》을 쓰는 데 밑바탕이 된 글을 모아 ‘유성룡 종군의 기록’이란 이름으로 뒤에 덧붙였다. 그 글은 유성룡의 저작집인 《서애집》에 흩어져 있는 기록들을 옮긴이가 직접 가려 뽑고 요약, 정리한 결과물이다. ‘때에 맞춰 해야 할 일을 분야별로 아뢰는 글’, ‘평양을 수복한 뒤 세자에게 아뢰는 글’, ‘굶주리는 백성의 구원을 진정하는 글’, ‘훈련도감을 설치한 기록’, ‘이순신을 애도하는 시’ 등의 기록을 통해 독자들은 《징비록》과 임진왜란을 보다 입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계사년 10월, 거가가 환도하니 불타고 남은 것들만이 성안에 가득하고, 거기에 더해 전염병과 기근으로 죽은 자들이 길에 겹쳐 있으며, 동대문 밖에 쌓인 시체는 성의 높이에 맞먹을 정도였다. 그 냄새가 너무 더러워 가까이 갈 수조차 없었다. 사람들은 서로 잡아먹어, 죽은 시신이 보이면 순식간에 가르고 베어 피와 살이 낭자했다.
- ‘유성룡 종군의 기록’ 중에서
저자

유성룡

임진왜란당시군사와외교에서핵심업무를맡았던문신이다.1542년경상도의성에서황해도관찰사유중영의아들로태어나16세에향시에급제했다.청년기에는퇴계이황의문하에서공부했고스물다섯에문과에급제한뒤중요한관직을두루거쳤다.임진왜란이일어났을때에는좌의정과병조판서를겸하고있었으며다시도체찰사에임명되어군사와국방외교에서막중한임무를맡았다.임금의피난,명나라구원병교섭,평양과서울탈환,권율과이순신의발탁,군사력을강화하는일들에서큰공을세워전쟁중에다시영의정에오르지만,정유재란이후반대파의탄핵을받아관직에서쫓겨난다.그뒤에는오로지글쓰기에만몰두했다.1607년66세를일기로세상을떠났으며,호는서애西厓이고시호는문충文忠이다.

저서로『징비록懲毖錄』『서애집西厓集』『난후잡록亂後雜錄』『신종록愼終錄』『영모록永慕錄』『관화록觀化錄』『운암잡기雲巖雜記』등이있다.

목차

개정판을내며
유성룡과《징비록》

스스로쓰는서문
징비록1권
징비록2권
녹후잡기

유성룡종군의기록
참고문헌
유성룡연보
찾아보기

출판사 서평

《징비록》의밑바탕이된《서애집》
그속에서찾아내엮은‘종군의기록’추가수록!
‘2014개정증보판’《징비록》은기존《징비록》(2003년출간)의내용상오류를바로잡고편집을새롭게했을뿐아니라,유성룡이《징비록》을쓰는데밑바탕이된글을모아‘유성룡종군의기록’이란이름으로뒤에덧붙였다.그글은유성룡의저작집인《서애집》에흩어져있는기록들을옮긴이가직접가려뽑고요약,정리한결과물이다.‘때에맞춰해야할일을분야별로아뢰는글’,‘평양을수복한뒤세자에게아뢰는글’,‘굶주리는백성의구원을진정하는글’,‘훈련도감을설치한기록’,‘이순신을애도하는시’등의기록을통해독자들은《징비록》과임진왜란을보다입체적으로이해할수있을것이다.

계사년10월,거가가환도하니불타고남은것들만이성안에가득하고,거기에더해전염병과기근으로죽은자들이길에겹쳐있으며,동대문밖에쌓인시체는성의높이에맞먹을정도였다.그냄새가너무더러워가까이갈수조차없었다.사람들은서로잡아먹어,죽은시신이보이면순식간에가르고베어피와살이낭자했다.
-‘유성룡종군의기록’중에서

지옥의전쟁,‘임진왜란’에관한가장입체적인역사기록
《징비록》은서책으로는드물게국보제132호로지정되어있으며,우리역사에드물게보존되어온기록문학이다.그내용은임진왜란이전의국내외적정세로부터임진왜란의실상,그리고전쟁이후의상황에이르기까지를체계적이며종합적으로구성하고있다.
1592년왜군은조선을침략,파죽지세로조선땅을약탈했다.그러나하늘을찌를듯하던왜군의기세는평양성에서멈췄고,명나라군대의개입과의병의활약그리고이순신등뛰어난장수들의노력으로왜군은후퇴의길을걷게된다.이후에도1597년정유재란으로침략은재발했지만결과는마찬가지였다.전쟁의끝은새로운시대의개막으로이어졌다.
전쟁당사자인조선과일본그리고참전국인명나라,명나라와경쟁하던청나라등의전쟁관련국들에게도임진왜란이끼친영향은대단히컸다.다만전쟁의직접피해자인조선정권은붕괴하지않았다.이러한내용이《징비록》에동영상처럼생생히묘사되어있다.

명재상유성룡이눈물과회한으로쓴반성의기록
유성룡은임진왜란발발당시포화의한가운데서전쟁의참화를실제로겪은고위관리였으며,특히전쟁수행책임자가운데최고위직에있던인물이다.따라서그의증언은임진왜란의실상을이해하는데가장효과적이라할수있다.
한편유성룡이서문에서밝히고있듯‘징비懲毖’란《시경》‘소비小毖’편에나오는문장,‘予其懲而毖後患(내가징계해서후환을경계한다)’로부터유래한다.즉자신이겪은환란을교훈으로삼아후일닥쳐올지도모를우환을경계토록하기위해쓴글이다.이러한집필목적을달성하기위해유성룡은자신의잘못부터조정내의분란,나아가임금에대한백성들의원망등임진왜란을둘러싸고발생한모든일을있는그대로기록했다.그러기에《징비록》이라는책을통해수백년후우리에게임진왜란의참상을생생하게전해줄수있었다.

나와같이보잘것없는자가흩어지고무너져내린때를맞아나라를지키는무거운임무를맡아위기를극복하지도못하고쓰러지는나라를지키지도못했으니,그죄는죽음으로도씻을수없다.그럼에도산골전답사이에서쉬며구차하게목숨을연명하고있으니이어찌두려움을씻어주시는임금의은혜가아니겠는가.그때일을생각할때마다두렵고부끄러워몸을지탱할수조차없다.
-유성룡의서문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