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지기 전에 단 하나의 이야기를 (서연아 장편소설)

사라지기 전에 단 하나의 이야기를 (서연아 장편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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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어느 날 벼랑 아래에서 한 소녀가 발견된다
어쩌다, 어떻게, 왜 이런 일이 벌어진 걸까?
소녀를 벼랑 끝으로 내몰았던 이야기와, 소녀가 마지막으로 하고 싶었던 이야기
여기 한 소녀가 있다. 이름은 이미소. 나이는 열여섯. 보육원에서 자랐고, 두 번 입양 갔다가 두 번 파양 당했다. 학교는 여러 번 정학을 당한 끝에 자퇴했고, 술 담배를 했고, 물건을 훔치기도 했다. 여기까지 듣고 나면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다. 노는 애. 아니면 문제아. 아니면 양아치. 조금 점잖은 표현을 쓴다면 비행청소년. 아니면 ‘저런 애랑 어울리지 마’에서의 저런 애. “설탕에 개미가 꼬이듯, 가로등에 나방이 꼬이듯, 미소에게는 문제가 꼬였다.” 한 사람의 삶을 한 토막으로 잘라버리는 건 너무나도 간단한 일이어서, 이 소녀가 벼랑 아래에서 발견됐을 때 모두가 의심 한 점 없이 이렇게 생각한다. 자살이라고.

그렇지만 미소에게는 한 문장으로 축약되지 않는, 축약될 수 없는 이야기가 있다. 다른 모든 사람이 그러하듯이. 사람들에게는 제각기 다른 자기만의 이야기가 있다. 손금처럼, 주름처럼, 눈동자처럼, 언뜻 보기에는 비슷하거나 거의 똑같은 것 같아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놀랄 만큼 다른 이야기가. 말하자면 모든 묘에는 (잡초가 무성하든 아니면 깔끔한 비석이 세워져 있든) 한 사람의 평생에 달하는 기나긴 이야기가 담겨 있는 것이다. 미소에게는 잡초 무성한 묘마저도 없었지만. 아니, 어쩌면 그런 묘마저 없었기 때문에, 살아서도 자기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이 없었고 죽어서도 자기 이야기를 들려줄 사람이 없었기 때문에, 미소는 백년나무 아래에서 깨어난다. 죽음이 억울하다거나 슬프다는 말이 아닌, 바로 자기 이야기를 찾기 위해서. “꼭 하고 싶은 말이 있었다. 반드시 해야 하는 말이었다. 그게 무엇인지는 아직 모르겠지만.”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가 무엇인지 알지 못하기 때문에, 미소는 다른 묘에 잠들어 있던 이야기들을 듣는다. ‘옛날 옛적에’로 시작되는 이야기들, 백년나무가 들려주는 이야기들을.
저자

서연아

국어국문학과를졸업했다.지금은호주선샤인코스트에콕박혀글을쓰면서‘내안의우주’를돌리고있다.2016년《브로커의시간》으로한국안데르센상아동문학부문대상을받았고,2021년아르코문학창작기금을받았다.지은책으로《브로커의시간》,《야차,비밀의문을열어라》,《귀신사는집으로이사왔어요》가있다.

목차

모든이야기가시작될즈음
그날오후
무서운자장가
장씨가보지못한것은
노인은처음부터노인이었다
산호는벼랑에선다
미소는느낄수없다
산호는질문한다
죽은자들은이야기한다
쌍둥이묘
백현우는뭔가알고있다
미소는묘지들의이야기를듣는다
왕형호는대답을피한다
동이는떠나지못한다
김과장은왜산으로갔을까
노랑머리는미소를마지막으로본다
노인은오랫동안외로웠다
백현우는퍼즐을맞춘다
미소가찾는이야기는
산호는체념했지만
벼랑은기억한다
두사람은거짓말을한다
노이사는재수가없었다
수수께끼
진실은말이없다
누군가는가고누군가는온다
노이사는달린다
사람은누구나이야기가된다
산호는다시벼랑에선다

얼굴없는이야기

출판사 서평

?한국안데르센상아동문학부문대상수상작가?
?2021아르코문학창작기금선정작?

“살만루슈디의소설《한밤의아이들》에서주인공인살림시나이는‘나는누구-무엇인가?’란질문에이렇게대답한다.‘나는나보다앞서일어났던모든일,내가겪고보고행한모든일,그리고내가당한모든일의총합이다.’그렇다면이런대답도가능하지않을까.
나는내가들은모든이야기와내가만든모든이야기의총합이다.
이책은나의네번째책이며,삽화가들어있지않은첫책이다.나는내소설속인물들의눈코입이어떻게생겼는지모른다.실컷이야기를나누고서사라진손님의얼굴처럼책속의주인공들도정확한형체가없다.아니,읽을때마다조금씩모습이변한다는말이더맞을것같다.변하지않는건이야기이다.그들이들은모든이야기와그들이만든모든이야기가이책속에담겨있다.”_작가의말

나뭇잎하나하나가다르듯이
    사람들에게는저마다의이야기가있다-

여기한소녀가있다.이름은이미소.나이는열여섯.보육원에서자랐고,두번입양갔다가두번파양당했다.학교는여러번정학을당한끝에자퇴했고,술담배를했고,물건을훔치기도했다.여기까지듣고나면자연스럽게떠오르는이미지가있다.노는애.아니면문제아.아니면양아치.조금점잖은표현을쓴다면비행청소년.아니면‘저런애랑어울리지마’에서의저런애.“설탕에개미가꼬이듯,가로등에나방이꼬이듯,미소에게는문제가꼬였다.”
한사람의삶을한토막으로잘라버리는건너무나도간단한일이어서,이소녀가벼랑아래에서발견됐을때모두가의심한점없이이렇게생각한다.자살이라고.

그렇지만미소에게는한문장으로축약되지않는,축약될수없는이야기가있다.다른모든사람이그러하듯이.사람들에게는제각기다른자기만의이야기가있다.손금처럼,주름처럼,눈동자처럼,언뜻보기에는비슷하거나거의똑같은것같아도자세히들여다보면놀랄만큼다른이야기가.
말하자면모든묘에는(잡초가무성하든아니면깔끔한비석이세워져있든)한사람의평생에달하는기나긴이야기가담겨있는것이다.미소에게는잡초무성한묘마저도없었지만.아니,어쩌면그런묘마저없었기때문에,살아서도자기이야기를들어주는사람이없었고죽어서도자기이야기를들려줄사람이없었기때문에,미소는백년나무아래에서깨어난다.죽음이억울하다거나슬프다는말이아닌,바로자기이야기를찾기위해서.
“꼭하고싶은말이있었다.반드시해야하는말이었다.그게무엇인지는아직모르겠지만.”
자신이하고싶은이야기가무엇인지알지못하기때문에,미소는다른묘에잠들어있던이야기들을듣는다.‘옛날옛적에’로시작되는이야기들,백년나무가들려주는이야기들을.

그러니까《사라지기전에단하나의이야기를》이라는제목에는적어도두가지이야기가담겨있는셈이다.하나는미소가사라지기전에하고싶은이야기.다른하나는미소가듣는이야기,즉다른영혼들이사라지기전에묘에묻어둔이야기.여기에한가지이야기가더붙는다.산호,지역신문사수습기자이자,형을잃은동생이자,미소가자살한게아닐지도모른다고생각했던거의유일한사람의이야기다.

결국누군가를이해한다는건
    그들의이야기를안다는뜻이다-

소설속에서미소의이야기와산호의이야기는계속해서교차하고때로포개지기도하지만둘사이에는아무런접점이없다.미소는죽었으니산호를알지못하고,산호가미소를알게되는건바로그미소가죽었기때문이다.이죽음은선배기자인백현우가보기에의문을가질여지없이너무나도분명한자살이었고,거의아무도애도하지않은죽음이었고,세상에알려지지않은죽음이었다.미소에게는너무많은딱지가붙어있었기때문에.“고아,반항아,가출청소년,절도범,폭력범처럼이름앞에붙일수식어가많은아이는동정받을수없다.”

산호도처음부터미소의죽음에의문을가진건아니다.“어른들의세계에서이미소는보호구역밖의아이였고,어울리지말아야할아이였다.산호는솔직히자신이그런어른이아니라고말할수있을것같지않았다.길거리에서미소를봤다면비호감이라는인상을받았을것이다.여동생이있었다면저런애를조심하라고충고했겠지.”

하지만미소가어떻게살았는지,또어떤사람들에게어떻게시달렸는지를알게된후산호는미소의죽음을뒤쫓는다.미소에게달라붙은딱지들이가리고있던이야기,미소자신만이알고있던이야기를조금이나마알게됐으니까.“결국누군가를이해한다는건그들의이야기를안다는뜻”(《귀신사는집으로이사왔어요》작가의말)이니까.그러니까,《사라지기전에단하나의이야기를》은이야기를통해전혀다른누군가를이해하는소설이라고말할수도있을것이다.하지만이건반만맞는말이다.

이소설은무엇보다도이야기만이갖는재미를알고있다.노인이미소에게들려주는기구한운명의이야기들을시작으로미소의이야기에서산호의이야기로,산호의이야기에서노인의이야기로,노인의이야기에서동이의이야기로,동이의이야기에서노이사의이야기로……꼬리에꼬리를물고이어지는이야기들을읽어나가다보면마치셰에라자드앞에앉아있는것만같다.수많은여성의목을벴으면서도셰에라자드의목만은베지못했던샤리아왕(《천일야화》)이그러했듯이,이야기에매료된채,이야기속에등장하는어떻게생겼는지도모를이들이슬퍼하면함께눈물을흘리고그들이기뻐하면함께웃음을짓고말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