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첫 노래 (이강원 장편소설)

아버지의 첫 노래 (이강원 장편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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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아버지의 첫 노래』는 이강원의 첫 이야기다. 세상의 모든 ‘첫’들이 그렇듯이 작가에게 첫 소설은 그야말로 싱그러운 바람의 대상이면서 동시에 무한 진통의 소산이다. 때때로 뮤즈의 은총에 힙 입어 일필휘지 쓰이기도 하는 단형 서정시와는 달리 소설은, 특히 단편이 아닌 장편은, 작가의 엄청난 탐문과 산문적 수고를 경유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기에 무한 진통의 결과물일 터이다. 그런 진통을 거치면서도 오로지 독자와 교감할 수 있는 나만의 이야기 지평을 형성하겠다는 고유한 원망, 그 떨리는 기대의 대상이 바로 작가의 첫 소설이다.
상금을 내건 장편 현상 공모를 거치지 않고 장편으로 독자에게 첫 선을 보인 사례로 복거일의 『비명을 찾아서』(1987), 하일지의 『경마장 가는 길』(1990) 등을 떠올릴 수 있는데, 이강원의 『아버지의 첫 노래』도 그 귀한 계보에 속하게 되었다.
저자

이강원

1964년전북고창에서태어나지금은백제의고도부여에살고있다.
원광대학교대학원문예창작학과석사과정을수료하였으며,《21세기부여신문》에『아버지의첫노래』를연재하면서작품활동을시작했다

목차

선재의비파7
뿌리뽑힌노래25
선사시대48
은하69
아버지의노래88
그리고바라지가락117
이제십일월은152
설연화189
삼만구천이백사십가닥의소리와206
시원의노래251
처음으로소리가시작되는별262
해설|시원의노래와존재의시원|우찬제309
작가의말320

출판사 서평

시원의노래와존재의시원

1.바라지가락과생명의리듬

『아버지의첫노래』는우리에게도상여소리말고다른음악이있었을지모른다는것,죽음을보살피고애도하는그바라지가락이야말로존재의시원으로부터발아되어그시원으로다시돌아가는생명의리듬에걸맞은소리였을것이라는상상에서비롯된이야기다.
작가는소설의첫머리에서독자들을백제금동대향로앞으로안내하는데,그향로에서다섯명의악사도그런음악을연주하지않았을까,혹시‘정읍사’도그런경우아닐까,하는생각으로이야기를엮어나간다.‘정읍사’의관악부가지금까지전래된‘수제천’으로이어지고,현악부가바라지가락으로갈라져나왔을것이라가정하고,주인공이선재를통해그바라지가락을탐문하는과정의이야기를촘촘하게형상화했다.이선재가계로내려오다가돌연중단된바라지가락을그가다시이어가는과정과아울러연구자인오무진이그가락의해석적맥락을보충하는것으로작가의가정과추론에설득력을더해간다.그결과작가가형상화한‘아버지의노래’는이런가락이다.

‘아버지의노래’는여기가아닌저기에서울리는것같았다.먼과거,아득한시간어디쯤에서부터울려오는소리,시원에서비롯한소리.비파는제가떠나온곳을기억하고있을거라고,처음으로소리가시작되는곳이라고,자기어머니가가실곳이라고말하던선재의목소리가‘아버지의노래’선율처럼가슴속으로굽이쳐왔다.별안간마을이환해졌다.웬일인가싶어그는주위를둘러봤다.선재네였다.기와지붕을뚫고빛이쏟아져나오고있었다.빛은커다랗고둥그렇게뭉치면서오색찬란한자태로허공으로떠올랐다.‘아버지의노래’도흘렀다.바람처럼가볍게빛덩이속으로스며들었다.빛이된노래는요강바우재로날았다.어긔야어강됴리,나난구리를향해솟아,날았다(306~307쪽).

소설의마지막장면이다.자세히해설할필요도없이여기서‘아버지의노래’는시간적으로과거와현재와미래,공간적으로차안과피안을넘나들며공현전하는가락이다.지금여기의순간과시원의영원사이를교감하며스미고짜인다.어둠에빛을선사하는별의지도가되기도한다.그러기에가락은역동적인생명의리듬이다.존재의숨결이다.

2.생의비의秘意를탐문하는소리

그렇다면왜바라지가락인가?왜죽음을보살피는노래인가?그것은죽음을통해삶과존재전체의비밀을거듭심원하게탐구하기위한근원적성찰의일환으로보인다.소설에서선재는환각처럼매월당의질문을받는다.“너는지금무엇을보고있느냐.네가서있는곳은어디냐.너는지금어디로가려하느냐.네가가려는곳은네가진정으로가고자하는곳이냐.”(100쪽).바로답을하지못한그는끊임없이그질문을찾아나선다.“나는지금무엇을보고있는가.어디로가고자,어떻게살고자몸부림치는가……내삶의비밀은내게있다.나만이안다.나만이그비밀을캐낼수있다.”(173쪽)선재는생의비의를탐문하는단초가바로자기자신에게있음을절감한다.당연한것아니냐고물을수도있다.지극히당연하지만그럼에도여전히유예되는진실,그러기에조금도그중요성이덜해지지않은질문이바로이것이다.말하자면낯설지는않되,익숙한질문이되,그답을구하기어려워,줄곧충격을주는과제가바로이것아니겠는가.그질문에마주한작가이강원의성찰은참으로어지간하다.自는모든일이자기로부터비롯된다는것을의미한다.自에는얽매임이없다.

自에는저절로는있어도결코방임은없다.自에는억지스러움도없고自에는흐트러짐도없다.自는바람보다는물의성질이강하다.그저한없이흘러가는물처럼自에는능동적인생명력이꿈틀거린다.自는살아있는활동을말한다.自에는파멸이아니라스스로사라지는,때가되면스스로거두어가는적멸이있을뿐이다.自에는그래서거스를수없는단호함이존재한다(97쪽).

인용문과같은사려깊은성찰은이소설의여러곳에서순금처럼빛난다.작가는이런성찰을위해멀리서서바라보고심연의뿌리처럼사유하고오래도록고뇌한다.그래야조금더온전한실체에접근할수있겠기때문이다.신화적이고우주적인성찰과아울러민속학적음악적탐문또한상당한수준이다.그자신의음악적추론을자연스럽게풀어가기위해많은자료를섭렵하고체험하면서자연스러운이야기가되도록소리의숨결을살렸다.한편의소설을완성하기위해작가가얼마나많은공력을들였는지짐작케하는대목은그외에도많다.앞에서우리는『아버지의첫노래』가잃어버린바라지가락을재구성해나가는과정을그린소설이라고했다.잃어버린가락을되찾아가는과정은곧잃어버린언어를복원해가는과정과맞물린다.주인공선재는남다르게토박이말에관심이많은인물로그려진다.“중고등학교때와대학다닐때,그이후로도간간이새로듣게된우리말이나잊힌단어들을찾게되면”노트에적어두었으며,“마을어른들이쓰는사투리들도기억해뒀다가메모해두곤했다”는선재는그렇게개인적으로“일종의사전”을만들어왔다(129쪽).가령다음과같은식이다.

고잔잔하다:잔잔하다못해침울할정도로고요하다.고는苦인지도모름
신푸녕스럽다:근심걱정이너무많아사소한일도돌아볼여유가없다
무장무장=서나서나=시나브로
애젖하다:몹시애가타다
꽃잠:숙면또는첫날밤(은하)
인연=인다라망=관계=고리=업=원인과결과의되풀이=윤회↔해탈
횟대=말코지.끈이나나무를벽에가로로쳐놓아물건을걸때씀(290~291쪽)

이소설을읽으면서독자들은‘흐놀다’‘흔뎅거리다’‘호아가다’‘허대다’‘물이못나게’‘처설프게’‘앓음답다’‘나난구리’등등의여러단어들을그냥지나칠수없었을것이다.작중무진이말했던것처럼,“사전에안나온말들이얼마나수두룩한데요.”(286쪽)라며사전을찾아보았을터이다.이런점에서도작가이강원의미덕을새삼확인하게된다.무릇작가란잃어버린겨레의혼과말을복원해내는영매자이기도한까닭이다.이강원의언어탐구는너무나도쉽게쓰이는요즘의소설창작환경을생각하면아주소중한미덕중의미덕임에틀림없다.

3.‘줄’의사상과무하유지향無何有之鄕

이소설에서죽음을보살피는바라지가락은‘아버지의노래’로불린다.선재의아버지,아버지의아버지,조부의아버지,증조부의아버지……그렇게시원을헤아리기어려울정도로윗대부터있어왔던가락으로얘기된다.그러나그‘아버지의노래’로인해선재의아버지와어머니의불행,그리고선재의울분과절망,분노,이웃의오해와갈등으로,가락은중단되고만다.바라지가락을떠나배회하고방황하며성찰하던선재는고통의통과제의를거쳐다시비파를타도좋겠다는생각을하기에이른다.자기안에서이전과는다른‘아버지의노래’가들려오기시작했기때문이다.“울분과절망과분노로뒤범벅돼버렸던아버지의노래는자기에게서떠난지오래고지금은그것들에서벗어난소리,울분과절망과분노들을품은소리로들려왔다.그는‘아버지의노래’가자기안에서강물로넘실거리는것을,바다로흘러가는것을바로보게되었다.”(231쪽)그렇게되찾은‘아버지의노래’로선재는어머니를잘보내드릴수있게된다.마을공동체도이전의갈등을넘어서그가락과더불어치유의지평으로나가는것처럼얘기된다.이소설에서가락은나개인의존재론적시원을,그리고공동체와민족의시원을떠오르게하는상상의탈것이다.그가락을통해존재하는모든것들은스스로를비우고텅빈충만의세계로입사할수있게된다.그런면에서작가이강원이제시한‘줄’의사상이주목된다.울림통을통해소리와가락을빚어내는현에대해작가는다음과같이성찰하고있는데,이소설에서가장빛나는대목이기도하다.

줄은결코머무르지않는다.줄은줄전체로제안의소리를드러낸다는것을그는안다.줄은항상제몸을닳려가면서교감을원한다.제한가닥을닳리고또한가닥을닳리면서자신의마음을드러낸다.비파의울림통을탓할것없이,연주하는사람의손가락을탓하지도않고오로지제몸을닳려가면서세상과일체가되는순간을기다린다(236쪽).

이렇게머물지않고제몸을닳려가면서소리를내는줄,그러니까제몸을내주면서교감의소리를펼치는줄,울림통이나연주자의손을허물하지않고오로지제온몸을내주면서세상과일체가되는순간을기다린다는줄……작가이강원이상상한‘아버지의노래’는그런줄에의해비로소울림의가능성을연다.
그리고그울림은존재하는모든것들로하여금어디에도없는마을,『장자』에나오는그무하유지향無何有之鄕을떠올리게한다.
-우찬제(문학평론가·서강대학교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