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상의 지위와 최고의 특권과 보장된 자율 속에서 호우지절을 보낸 그네들은 이제 벚꽃이 피어 북진하는 순서대로 망할 것이라는 절체절명의 위기 속에 있다.
연작소설 『대학 1, 2』는 1980년 이후 철옹성 같은 대학을 지켜온 몇몇을 통해 그네들이 지난 40여 년 동안 무엇을 했으며, 지금은 무엇을 하고 있는지를 보여줌으로써 대학은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하고, 할 수 있을 것인지를 풍자적 리얼리즘을 통한 담론 소설로 묻는다.
“많이 배웠다는 자들이 교언영색으로 진리를 잡도리질하고, 곡학아세로 권력에 아부하고, 조삼모사로 자기 이득을 찾는 기술이 날로 신묘해져 놀랍다”는 열전 형식의 연작을 통해 교수 사회의 ‘요지경과 난맥상’의 실체를 낱낱이 볼 수 있다.
고광률
1961년충북청주에서태어났다.대학에서국어국문학을전공했고,대학원에서국문학으로석사,문예창작학으로박사학위를받았다.
단편「어둠의끝」(1987)과「통증」(1991)을발표하면서작가의길에들어섰다.
소설집으로『어떤복수』,『조광조,너그럴줄알았지』,『복만이의화물차』가있고,장편소설로는『오래된뿔1,2』,『시일야방성대학』,『뻐꾸기,날다』,『성자(聖者)의전성시대』가있다.
일러두기340
주요등장인물343
그때왜그러셨어요349
데우스엑스마키나383
내무덤에침을뱉어봐443
대학사용법509
잃어버린정의를찾아서539
해설│교수사회의요지경과난맥상-최재봉687
작가의말│대학,호우지절을말하다703
발표지면709
영국의비평가겸작가데이비드로지의소설『교수들』은교수세계의천태만상을꼬집은작품이다.이소설에서세계각국의영문학전공교수들은국제학술회의를계기로모여발표와토론을하고친교를맺는다.그러나이렇게말하는것은사태의거죽만을건드리는셈이다.어찌보면발표와토론과친교는그저핑계일뿐교수들의진짜목적은따로있으니까.그들이국제학술회의를쫓아다니는까닭은진리추구나새로운사실의발견과는거리가멀다.교수들의진짜관심은명예와지위,권력과사랑을획득하는것,그것도수단과방법을가리지않고그것들을확보하는데에있다.경쟁자의책을읽지도않고공격하고,한번쓴논문을재탕삼탕하거나표절도서슴지않으며,학술회의에참가한이성에게치근대는가하면,성적을빌미로제자와성관계를맺기도한다.
고광률의『대학』은로지의소설무대와는다른또하나의작은세계를보여준다.길고짧은중단편열편으로이루어진이책은중석대라는지방대학을배경으로삼았는데,대학사회를이루는여러구성원이나오는가운데교수들이특히사태의중심에놓인다.
연작소설집『대학』을역사서에견주자면그것은연대별서술방식인편년체가아닌,인물별·사건별서술방식기전체를택하고있다하겠다.
대학을이루는다양한인물들이차례로등장해깜냥껏자신의이야기를펼쳐보임으로써대학이라는커다란모자이크화를이루는것이다.교수들이그그림의핵심을이루고있음은물론이다.
“조교생활2년차인자광은이래서교수들이싫었다.자기부정,무오류,유체이탈등등을일상속에끼고사는신이내린특권층들이었다.”(─『대학1』,「조교우자광」,37쪽)
“그도중석대구성원으로재직해오는동안교수들의곡학아세,교언영색,표리부동한작태들을신물이날정도로겪어봤기때문이었다.”(─『대학2』,「내무덤에침을뱉어봐」,501쪽)
“교수들이이래요.개구리모양우물속에들어앉아권한만행사하고의무와책임이뭔지모르고사시니사회성지수가낮아요.”(─『대학2』,「대학사용법」,531쪽)
각각조교와교직원,학생의시점으로서술된인용문들에서교수들은이기적이고부정직하며사회성이떨어지는집단으로평가된다.교수들을관찰하고판단을내리는이들의상황과처지가제각각인만큼평가의근거와맥락은상이하지만,관찰자들이대체로동일한결론에이른다는사실이주목된다.교수들이도대체어떻길래이들은약속이나한듯이렇게대동소이한결론에이른것일까.
두단편「조교우자광」과「허틀러행장기」는동일한인물의이야기를담은연작속의연작이라할법한작품들이다.「조교우자광」에서레거시신문의지역주재기자출신인허삼락이국어국문학과교수로부임해오자학생들이대자보를붙이고시위를벌이며반발한다.학위가없는무자격자다,임용과정에부정이있었다,과거행적이교수로서부적절하다,중복전공선발이다,실력없는사이비교수다…….학생들이허삼락의교수임용에반대하는이유는여럿이고그하나하나가나름대로근거가없지않은데,중요한것은그런학생들의배후에학과의기존교수들이있다는추정이다.허삼락의신규임용에부정적인교수들이학생들에게정보를제공하면서임용반대운동을펼치도록은근히부추기고있다는것이다.
이작품의주인공인우자광조교는허삼락과정의명등기존교수들사이를오가며중재노력을펼치는데,그결과사태는원만히해결되는듯하지만엉뚱한곳으로불똥이튀었으니우자광자신이곤란한처지에놓이게된것이다.
“문제는저였어요.모든것이없었던일인양끝난것과는달리제처지는아주고약하고난감하게꼬이고말았어요.(…)일단허교수사퇴시위가잦아든4월말이후부터학과교수들이저를상대하지않고따돌리기시작했어요.교권을농락·조롱하여교수의위상을실추시켰고,이로써교수집단의위계와질서에심대한손상을줬다는거예요.”(─『대학1』,「조교
우자광」,62쪽)
「허틀러행장기」는「조교우자광」과무려18년의시차를둔이야기이다.우여곡절끝에국어국문학과교수로임용되었던허삼락은“곧바로자신이전직주류중앙지주재기자시절에확보한다종다양한정보와인맥을바탕으로빼어난로비역량을발휘하여교육부로부터실용문예창작학과신설인가를받아냈고,그때부터줄곧학과창업주이자터줏대감으로서중석대전대미문의절대권력을행사”해왔다.허틀러라는별명이그에서비롯되었거니와,비정년강의전담교수로허삼락의“개인비서이자집사이자머슴”노릇을하며17년가까이그를모셔온박박이라는인물이이소설의화자이다.박박이허삼락을그토록지극정성으로모셔온까닭은두말할나위도없이교수임용을노려서였다.실용문예창작학과의‘창업주이자터줏대감’으로서허삼락이교수임용에관해거의절대적인권한을지니고있기때문.“본래대학이라는것은실체가없고학과가실체”인데,더구나이학과의창립과유지에서허삼락이지니는절대적위치때문에“실문과(실용문예창작학과)는허삼락교수의사유물”이라는것이박박의판단이다.그런판단에따라온갖수모와역경을감내하며17년동안모셔온허삼락교수가교통사고로갑자기죽는바람에닭쫓던개신세가된박박의암울한처지가이소설의핵심이다.
“장장17년동안간난신고중에좌고우면하며애지중지쒀온죽솥이,엎어진것도아니고깨져버렸는데더는살아무엇하겠어요.제나이쉰둘인데어디가서다시솥을구하며,누구밑에가서다시죽을쑤겠습니까.”(―『대학1』,「허틀러행장기」,225쪽)
실용문예창작학과와허삼락교수의사례가극단적이기는하지만,학과의주인이교수이고특정학과내교수들사이에서도권력관계가명확하다는것은이책속다른작품들에서도확인된다.
단편「우아한정식」은대학원학사운영팀장인교직원고시철이국어국문학과대학원박사과정에입학했다가환멸을느끼고휴학하는과정에서목격한교수사회의요지경을꼬집는다.학과동료교수들사이에상관(相關)과불륜,권력다툼이난무하는가운데고시철의친구이기도한대학원생지종순은그런상황을적절히이용해가며실익을챙기기도한다.사태가이렇듯어지러운데도“대학은무소불위의교수중심집단인지라그들의패륜적행위를비판하거나심판하려드는자가없었다.”
중편「죽은,어느교수의일기」에서와인바를운영하는애인의집에서복상사한피도린교수의딸피마리판사는아버지가불어불문학과동료교수들의따돌림과괴롭힘때문에죽었다며평소친분이있던성조기교수에게조사를의뢰한다.딸의믿음과달리고인의사인이엉뚱한데에있음은물론인데,죽은이가남긴일기를통해드러나는학과교수사회의난맥상이소설의핵심을이룬다.
“공동교재저작료와교양교재채택료”를둘러싼교수들사이의다툼은차라리애교라치자.“교직원도시중에형성된공시호가라는게있”어서기부금또는학과발전기금명목으로거액을요구하고,“교수업계에서자기보다잘난놈을절대뽑아서는안된다는불문율”이신규임용을좌우하는가하면,“교수들간의세력과이권다툼에서비롯된세대전쟁성격을띤무능교수퇴출음모에학생들이동원”되기도한다(교수들사이의싸움에학생들이동원되는상황은「조교우자광」에서도만나본바있다).
교수사회의이런난맥상이교직원들과부딪치면서빚어지는갈등양상들이야말로이연작소설집의알짬에해당한다.「조교우자광」에서교수들사이의갈등을해결하고자동분서주한결과소기의성과를얻어낸조교우자광이문제해결뒤에오히려불이익을받게된사정은앞서설명한바있다.비슷한상황이다른여러작품에서도약간의변주와함께되풀이된다.
단편「그때왜그러셨어요」의주인공동태걸은건축기사자격증을지닌인물로원래시설관리과소속이었으나윗사람들의눈밖에나는바람에전공인건축과는아무런관련도없는단과대운영팀장으로전보발령이난다.게다가그가배치된교양학부대학식스아츠칼리지(SAC)의학장엄영숙은무능한데다고집불통에거짓말이몸에밴인물이어서업무가제대로진행되지않고그책임은온전히동태걸의몫으로돌아온다.견디다못한그는학교에팀장사직서를제출하고,그것이받아들여지면서팀장자리에서물러난다.여기까지만해도분통이터지는상황이라하겠는데,그보다더어처구니없는일은나중에일어난다.해외여행지에서우연히마주친엄영숙이동태걸에게이렇게따지는것아니겠는가.“그때,저한테왜그러셨어요?”똥묻은개가겨묻은개나무라는격─이라기보다는적반하장이라는사자성어에딱어울리는상황이라고해야마땅하리라.
단편「데우스엑스마키나」의교직원설상구는집중감사에시달리는인물이다.“중석대개교이래33년동안교원과직원을통틀어서자체조사와감사를가장많이,가장길게받았던사람이나였다.”공민구와마찬가지로설상구역시원칙과합리성의인간이므로그에게씌워진혐의들─교비유용,지시불이행,업무방해등─역시결국은근거가없는것으로결론이나지만,그러기까지그가겪어야하는수난과고초가덩달아없었던일이되는것은아니다.
이작품말미에는약간의반전이있다.금상필총장이학교와법인의몇몇측근을대동하고군산근대건축기행행사를마련하는데,설상구팀장과동태걸건설실장역시동행자에포함되게된다.기행이끝난뒤의만찬자리에는또중석대의‘오너’인금기태이사장이참석해서는동태걸실장과설상구팀장을위한건배제의를한다.평소입바른말을잘해서교수들과학교경영진에게밉보인두직원을일부러챙겨주는것.금이사장은특히설상구를가리켜‘데블스애드버킷’,그러니까악마의변호사라부르며한껏추어올린다.
“조직에는반항하고,저항하고,불화하는사람도필요합니다.새로운입장과관점에서보려고하지않고,관행이나습관에따라전체의흐름에어우렁더우렁휩쓸려가게되면,요즘같은위기시대에서조직의생존은불가할것이오.”(─『대학2』,「데우스엑스마키나」,40쪽)
여기서알수있는것은금이사장의만만치않은사람됨이다.금이사장은부동산업과금융대부업을수익사업으로겸하는노회한경영인이자,‘군인정신’을“이데아요절대이성이요물자체요궁극의절대가치”로삼는강퍅한인물이다.그런그의주위에는‘십상시’로표현되는아첨꾼및첩보원들이포진하고있어서그의눈과귀를가로막는다.그럼에도이인사는때로‘데블스애드버킷’운운의배포큰언행으로아랫사람들을포용하는면모를보이기도하는것이다.
‘악마의변호사’라는표현은이책에서가장긴중편「잃어버린정의를찾아서」에도등장한다.이소설집의총괄과도같은이작품에서는명예이사장으로물러난금기태전이사장이주인공인교직원천정철중국장(미디어팀장)과악수를나누며같은표현을쓴다.“잘부탁하네,중국장.자네가악마의변호사가되어주게”이에앞서금기태의조카이자현이사장인금상구역시천정철에게같은취지의말을한다.“천팀장은앞으로도오늘처럼우리와다른생각을말해주시오.”그러나이런아름다운말들에도불구하고절대권력인이사장의전횡과그의눈을가리는십상시의농단이라는현실이바뀌는것은아니다.그리고그런사실을금이사장자신이너무도잘알고있다.
중편「오,모세」에서금이사장의아들이자병원장인금상설이십상시들의농단에놀아나는아버지의행태를지적하자금이사장은이렇게받아친다.“교수들의위선과가식이내힘이다.그들의위선과가식이없었다면우리대학은벌써망했다,이놈아.너도머지않아알게될것이다.”
「잃어버린정의를찾아서」에서는다름아닌천정철이과연악마의변호사답게금기태명예이사장면전에서그를‘절대권력자’라일컬으며비판하자당사자는이렇게딴청을부린다.“그게무슨말인가?절대권력자?처음듣는말일세.난절대권력자가뭔지도모르고,중국장말대로내가만약절대권력자라면자네가지금내앞에서이럴수있겠는가?”그런그에게정철은비수를꽂듯다시질문을던진다.“이사장님으로계실때,이사장님이하시고자하는일에이의나반대의뜻을달아제지하거나방해한교직원이있었습니까?”
정철의이런질문에금기태가더는항변을하거나분노를터뜨리지않고입을다물었다는사실이그의자기객관화능력과너른품을보여주는사례일수도있겠다.그러나문제는금이사장의절대권력이십상시들의농단은물론다른교수들의문제역시부추겼다는점이다.「잃어버린정의를찾아서」에서정철의시점에가까운삼인칭서술자의이런진술을보라.
“학구선생(=금기태이사장)은평생돈만좇느라제대로배우지못한탓인지,교수의자존심과교권을성역처럼알고건드리면저주나재앙이라도받는양생각했다.”(─『대학2』,「잃어버린정의를찾아서」,548~549쪽)
교수들에게권한은주되책임은묻지않는이사장이라니,교수들처지에서보자면금이사장은매우훌륭하고모범적인사학운영자일테다.
개인적으로그는시인박용래를좋아해서그의시50여편을암송할정도로나름낭만과품격을과시하며보직교수들도그런그에게잘보이고자덩달아박용래의시를암송하고는한다.
“금이사장이박용래시인을좋아한다는것은특이취향이었는데,어쨌든견도금이사장이애송하는시50편중에10여편을구구단인양줄줄외웠다.물론대다수본부보직자들도한두편정도는외워술자리에서분위기를띄우고이사장의취흥을돋우는데활용했다.이게중석대만의자랑스런문기(文氣)이자낭만이었다.”(─『대학1』,「오,모세」,281쪽)
그러나사학의절대권력자가교수들을상대로인품과풍류를과시하는그늘에서교수들의무소불위와안하무인격행티가제약없이번성한다는것이이책의문제의식이다.
“상식과도리보다자신(=교수)들의우월적신분과지위가우선이었다.즉자신의사고와판단과행위자체가진리이자정의였다.”(─『대학1』,「조교우자광」,35쪽)
“저는S대를나온‘죄’와‘실력’으로허교수논문의9.5할을썼습니다.논문뿐만이아닙니다.지방문단에발표하는시도허교수가초고를쓰고제가마사지만해줬지만,중앙문단에발표하는시는허교수가주제를잡아주면제가거의쓰고,쓰고난시를허교수가감수했답니다.”(─『대학1』,「허틀러행장기」,210쪽)
“안그래도대학은신분우선사회인지라,전공학문빼고─심지어는포함해서─여러모로모자란교수들이능력과경험있는직원들을함부로대하면서업신여기는바람에학사행정이종종산으로올라가는비합리적이고비효율적인조직이었다.”(─『대학2』,「내무덤에침을뱉어봐」,463쪽)
설립자겸이사장의전횡과‘십상시’의농단,교수들의부정과부패가사태를악화시킴은물론이지만,중석대가놓인상황은정도의차이는있을지언정다른많은지방대학들이맞닥뜨린현실을대변한다고도할수있다.이책곳곳에는“궁벽진시골대학”(「우아한정식」,「그때왜그러셨어요」),
“시골구석에처박힌‘지잡대’”(「오,모세」)같은자조적표현들이나오는데,이런말들은사태에대한비판과함께오늘날지방대학이놓인어찌할수없는현실에대한체념섞인비관역시담고있는것으로보인다.「오,모세」는그런불가항력적인현실을잘보여주는작품이다.
이소설에서금기태이사장은“리버럴아츠교육이한국대학의새로운교육트렌드로자리잡고있으니,더늦기전에선진적교양교육을당장실시하라고(아랫사람들을)닦달”했고그지시에따라‘글로벌사이버콘텐츠창의학부’(글사콘창)와그후신격인‘식스아츠칼리지’(SAC,sixartscollege)라는요상한이름의학부가탄생한다.식스아츠칼리지란고대중국의여섯교과목‘육예’(六藝:禮樂射御書數)를영어로옮긴것인데,“예는윤리와법률,악은문학과예술,사·어는군사와체육,서는문자,수는과학을의미한다고했다.”어쨌든금이사장이교양교육에눈을돌린것은그를통해오늘날대학특히지방대학이놓인위기상황에서벗어나고자하는몸부림이라하겠다.글사콘창과SAC를위해그는서울소재대학에서정년퇴직을1년앞둔안장생교수를초빙해석좌교수니특임부총장같은타이틀과그에걸맞은대우를제공하지만,결과는신통치않았고,“절대권력자인금이사장을뒷배삼아중석대교양교육을장장14년동안이나쥐락펴락해온안장생이특임부총장잔여임기를6개월가량남겨놓고”줄행랑을놓기에이르는소동이이소설의전말이다.
“SAC는중석대의비상구이자숨통”이라고,안장생이도망친뒤금이사장은아들인금상설병원장에게강조하지만,거듭되는신입생미충원사태와교육부의‘부실대학’지정같은위기를SAC가해결해주는것은아니다.
단편「대학사용법」의화자인콜걸출신학생사비아는“개인역량강화와국가경쟁력강화를위해4차산업형컨실리언스(통섭)융·복합교육을하기로했다”는학교방침에따라외교통상학과(5년전입학때는정치외교학과)소속인자신이수강해야하는육예의교양필수과목을소개한다.‘수의소통’,‘에너지톺아보기’,‘나노야놀자’,‘나는뭐야’라는이름을지닌그과목들인즉결국포장만바꾼수학,물리,화학,생물학이었노라며냉소적이고부정적인태도를보이는그의모습에서SAC의암울한운명을짐작할수있음이다.
사비아의개명전이름이‘사귀자’(史貴子)라든가,항공사승무원을희망하는그가취업면접을위해평소자신에게추근대던교수와잠자리를같이한다는등의삽화에서보듯이소설은대학사회의치부를블랙유머스타일로까발린작품이다.사귀자는학사서비스팀직원을상대로자신이입학했을당시의교양과목을수강할‘권리’를주장하며따지는데,그과정에서자신이휴학한2년동안해마다한두차례씩교육목표나교과과정이바뀌었다는사실을알게된다.그는자신이학사운영팀근로장학생으로일하면서파악한사실을근거로“‘학생중심교육’이라는것은개뻥까는얘기고요,교육부중심교육인것같았어요”라는관찰을내놓는데,이거칠고조야한관찰은뜻밖에도날카로운통찰을담고있어서주목할만한가치가있다.금이사장이악마의변호사로인정한천정철의관점을담은「잃어버린정의를찾아서」의이런대목을보라.
“교육부는자신들의무분별한대학설립인가와증과증원남발그리고출산율절벽에따라발생하고있는대학의정원미충원문제에대한모든책임을대학으로떠넘겼다.자기들이깔아준판에서놀았던것인데,그판을너무많이깔아문제가터지자,그동안판을깔아주고삥을뜯어온놈들은빠지고,깔린판에서논놈들에게모든책임을지우는것과다를바없는짓거리였다.”(―『대학2』,「잃어버린정의를찾아서」,54~555쪽)
사비아의관찰못지않게거칠고투박한판단이지만,문제의핵심이교육부와교육정책에있다는사실만은적확하게겨냥하고있다하겠다.
『대학』의총괄편인「잃어버린정의를찾아서」의결론역시미적지근하기짝이없다.
“벚꽃피는순서대로대학들이망해나갈것이라고난리를부리는쓰나미상황에서잃어버린정의를찾겠다는명분으로제몫을더챙겨나가겠다는선배교수들에게후배교수들은싫은내색조차하지않았다”(─『대학2』,「잃어버린정의를찾아서」,651쪽)
“소송교수들,아니하병우를비롯한5인방의최종목표가금기태명예이사장님이법인과학교경영에서완전히손을떼도록몰아내는거라고합디다.내년에교수노조가정식출범하면분규대학으로만들어서관선이사파견을이끌어내고,경영권을빼앗는다,뭐이게최종목표랍니다.”(─『대학2』,「잃어버린정의를찾아서」,655쪽)
천정철의시점을택한위의인용문과금교필사무처장이정철에게귀띔하는교수들의동향을담은아래인용문에서교수들은위기에처한학교를구하기보다는자신들의이익과권한을챙기는데에한층열심인것으로묘사된다.『대학』의무대인중석대교수사회라는‘작은세계’역시『교수들』의그것못지않게혼탁하고암울하다는반증이겠다.하긴지금중석대와‘중석대들’이놓인상황은교수몇사람이마음을고쳐먹고모종의행동에나선다고해결될일은아닐테다.교수들의문제는오늘날대학이처한위기의원인이기보다는그결과라보는편이타당하지않겠나.연작소설집『대학』을이루는작품들각각과이책전체의기조가한결같이답답하고우울한것은그때문일것이다.
―최재봉(한겨레신문선임기자),해설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