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의좌표를이룬책들
‘안쪽으로’11권의책들
책의1부는이윤영이다시읽은한국인저자의책11권으로꾸몄다.글쓸때분야를분류할의도는애초에없었지만,서평의대상은시인과소설가의문학작품이4권(조세희,김수영,박상륭,김석범)이고,인물과시대의기록이4권(김윤식,조영래,조은,손정목),문화와삶에대한글이3권(최순우,이오덕,법정)이다.
이윤영의문학비평은작가들의언어를세밀하게분석하면서도작품을낳은시대에대한조망을품고있다.“서평이초역사적위치를점하지않도록가급적현재한국사회의상황과연동시키는방식으로글을쓴다”는스스로의원칙에따른것이나,그래서‘지난날의책’이‘젊은날’의우리를읽었을뿐아니라여전히‘오늘날의사회’를읽고있다는점을의식한다.
“조세희의연작소설들은1975년과1978년사이에쓰여졌지만,40년이훌쩍넘게지나도어떤현실은바뀌지않는다.거의,또는전혀.”(18쪽)
“현재의역사를과거사로환원할수는없지만,과거사가현재의역사에빛을비춰줄수는있다.”(85쪽)
이광수의친일(김윤식),전태일의분신(조영래),가난에대한탐구(조은),서울에대한기록(손정목)을다룬글에선지금의한국사회와한국인을이루는심성,계급구조,공간과시간감각을되짚는다.
문화와삶에대한서평에서도그책의저자들이당대와투쟁했던일들을환기하며,당시어떤독자들은알았지만이제는많이잊혀진역사를오늘의독자들을위해소환한다.
하지만,그리하여이윤영의서평11편이그시대의책11권을들어한국의근현대사를논하는것은아니다.우리가지나간시대를기억할때,어떤대통령시절이었는지무슨정치적사변이있었는지를들수도있고어떤최신의전자제품이나왔는지무슨노래가유행했는지를기준삼을수도있겠지만,이윤영의글은지금의나를이룬것은그런정치나상품만이아닌그시대의책,그시대를앞선예리한지성,그래서어쩌면지금도기억하는하나의문장이기도했었구나,하는것을일깨워준다.그렇게기억하는역사가오롯이나의것이다.
‘우리를읽은책들’을다시펼쳐주는글이고마운이유다.
다른시대,다른나라‘책과의우정’
‘바깥으로’12권의책들
책의2부는이상길이다시읽은외국저자들의책12권으로꾸몄다.
문화연구의‘창설텍스트’로꼽히는리처드호가트(『교양의효용』)에서부터,역사(노르베르트엘리아스의‘문명사’,카를로긴즈부르그의‘미시사’),자본주의와현대사회분석(앙리르페브르의‘일상성’,피에르부르디외의‘아비투스’,발터벤야민의‘기술복제시대의예술’,어빙고프먼의‘자아연출의사회학’),지식의탄생과작동방식(미셸푸코의‘권력과지식’,브뤼노라투르의‘행위자-연결망이론’)을망라하며문화연구의핵심적저작들을모았다.
한국에선주로1990년대이후,(남한사회에서만의)격렬한이념투쟁을동구권의몰락과함께청산하며뒤늦게지식사회를유혹한‘서구권’의‘포스트모더니즘’조류라고흔히오해되는저작들이다.문화연구자이자꼼꼼한번역자로서이상길은이12권의‘외국서적’이출간된과정과국내수용의배경을서평마다환기시키며일종의‘번역사회학’을시도한다.
이상길이소개하는책들의서지사항만살펴보는것으로도흥미롭다.
“『권력과지식』은푸코의철학적여정을잘보여주는데,이미반세기전에나온글들의모음집이라는사실이믿기지않을만큼현재성을지니는여러주제―인민적정의,건강과질병,섹슈얼리티,진실의정치등등―를다루고있기도하다.”(172쪽)
푸코의『권력과지식』은1977년이탈리아에서나온편역서를참조해1980년영미권에서편집됐고국내번역은1991년이었다.
“『시뮬라시옹』이인터넷은고사하고IBMPC가겨우첫선을보인해(1981년)에나온저작이라는사실은지금도놀라운감이있다.”(224쪽)
장보드리야르의『시뮬라시옹』은1992년국내번역됐다.이책의‘영화적복제’라고도할만한‘매트릭스’(1999년)보다그나마빨리번역된것이다행이라고할판인데,참고로이책의일본어번역은1984년에나왔다.(심지어한국에도진출한일본생활잡화점‘무인양품(無印良品)’의이름(‘브랜드/상표/표지’가없어도좋은제품이란의미)은장보드리야르의『소비의사회』에서착상한것이다.일본공산당출신의기업가가제안한‘브랜드명’이다.)
이상길이펼친12권의책들은1980~1990년대한국사회의지적풍경을‘읽은’책들이기도하다.서투르게(오역이많았다는의미)번역됐어도그시대에충격을던져준‘외부’(서양)의사유.그러나돌아보면,지적지체나정체를떠나,우리가딱그시기였기에받아들인그책들은그시대에우리가부족했던/갈망했던그무엇인가를‘읽은’책들이다.
그래서“책을매개로우리는다른시대,다른나라의사람들과도진정한우정을나누는친구가될수있다”(247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