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디오 연극 키네마 (식민지 지식인 최승일의 삶과 생각)

라디오 연극 키네마 (식민지 지식인 최승일의 삶과 생각)

$32.08
Description
일제 강점기에 문화예술계에서 다양하게 활동했던 식민지 지식인 최승일. 주로 최승희의 큰오빠, 그리고 작가로 알려져 있지만 그는 작가, 연극인, 방송인, 영화제작자로서 미디어 산업과 문화의 현장을 만들어 간 생산자였으며, 동생 최승희가 세계적인 무용가로 성장하는데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친 조력자이기도 했다. 최승일이 남긴 저작과 관련 문헌을 분석해 그의 삶과 생각을 입체적으로 조명한 이 책은 비단 최승일 한 개인뿐 아니라, 한국 근대 미디어 문화공간의 주요 무대였던 경성의 풍경과 일제 강점기라는 시대적 배경에서 식민지 지식인들이 경험한 시도와 좌절의 순간들을 헤아리도록 펼쳐낸다. 근대 미디어 문화에 관한 최승일의 텍스트 24편을 현대어로 옮겨 수록한 부록은 아직껏 체계적으로 정리된 적이 없는 가치 있는 자료다.
저자

이상길

연세대학교신문방송학과및같은과대학원을졸업한뒤파리5대학에서사회학박사학위를받았고,파리1대학에서철학과DEA과정을수료했다.현재연세대커뮤니케이션대학원교수로재직중이다.지은책으로『상징권력과문화』,『아틀라스의발』이있으며,함께쓴책으로『프랑스철학과정신분석』,『책장을번지다,예술을읽다』,『한국의미디어사회문화사』,『한국방송의사회문화사』등이,옮긴책으로『랭스로되돌아가다』,『성찰적사회학으로의초대』,『사회학자와역사학자』(공역),『비장소』(공역),『푸코,사유와인간』,『헤테로토피아』,『부르디외,커뮤니케이션을말하다』,『근대의사회적상상』,『역사를어떻게쓰는가』(공역)등이있다.

목차

들어가며:‘최승일’이라는이름
#1‘신경향파’청년문사
#2경성방송국직원
#3미디어공간속의고현학자
#4‘좌파’연극인에서…
#5…‘친일파’영화제작자로
나가며:식민지지식인과미디어공간
부록:최승일산문집

감사의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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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한류의시대,세계인은‘한국적인것’에호응하고있을까?
이물음은얼마나필요한것일까?

1997년5월,MBC는제목과가사가전부영어로된가요10곡에대한심의를보류해사실상방송을금지시켰다.음반가요사전심의가철폐되어음악을만들어발표할수는있지만,“지상파방송에서영어가상식선에서수용하기어려울정도로남발돼국내정서에부합되기어렵다고판단했다”는것이그이유였다.영어로발표한곡이먼저해외음원차트에서높은순위를기록한다음국내에서인기를끌고,해외진출을위해전략적으로가사를영어로만작성하는것이자연스럽게받아들여지는현재에비추어적지않은시대의변화를느끼게하는이사례는한국대중문화의세계진출이아직기대와바람에머물던시점에서‘한국적인것이란무엇인가’라는문제를제기한사례라는점에서시사하는바가크다.

한국의음악,드라마,영화등이세계적인호응을얻고있는한류의시대,한국문화의코드가하나의장르로받아들여지는흐름속에서한국적인것을얼마나발휘하고있느냐는질문은무의미할수있다.세계화의흐름속에서문화들이서로영향을주고받으면서‘한국적인것’역시변화했을것이기때문이기도하며,지금의성취는그두가지가서로맞물렸기에가능한결과일수있기때문이다.하지만그럼에도변하지않는고유한문화의정수는존재한다.그정수를발휘하는것이의무는아니겠으나한류의시대에‘한국적인것’이어떻게발휘되는지살피는것은더큰한류의시대를기약하는데도움이될것이다.

약100년전에도이와유사한질문이있었다.1930년대조선문화예술계의가장중요한화두는‘조선적인것’과‘조선예술의세계화’였다.그리고그첨병에는국제적으로활약하던조선무용수최승희가있었다.일본,미국,유럽등지에서그는‘조선춤’으로공연했다.여기에는‘조선적인것’이통할수있겠다는그자신의판단과‘조선적인것’의중요성을강조한오빠최승일의조언이주요하게작용했다.최승일은「연예왕래」등의글을신문과잡지에발표해당시‘순수/불순수’의잣대로최승희의다양한시도를순수하지못한것으로비판한의견들을반박하고유연한변용을순수라는기준으로평가할수없음을역설했다.

한국최초방송PD이자최승희를무용에입문시킨
입체적인물,최승일

최승일이‘조선적인것’을동생에게권유하고,동생에게제기된비판을공적인매체를통해반박한것은어떻게가능했을까?그것은최승일이언론,출판,방송,연극,영화등다양한문화예술계영역에서활동한식민지지식인이었기때문이다.주로작가또는최승희의오빠로알려진그의발자취를깊게살펴보면그는1920~30년대의중요한문화예술현장곳곳을누비며활동했던인물이었다.여러분야에서활동하는것은최승일을포함한식민지지식인들의공통적인특성이지만,최승일처럼방송국생활까지오래한경우는드물었다는점에서그의활동은능동적이었다.

더욱이최승일은최승희에게무용에입문할것을권유하고그녀의스승이시이바쿠와의만남을주선하기도했으며,‘주위의반대에도불구하고’최승희에게무용가로서의삶을권유하며동생의활동을다양하게뒷받침했다.한류의원조로꼽히는최승희의등장과성장에그가기여한바가적지않은것이다.최승일이이런판단과행동을한데에는새로운것에대한개방성과호기심을가진그의개인적성향외에도동경유학을통해그가경험한근대신문물에대한감각이영향을미쳤다.

작가로서최승일은나름의성취를이루었지만,후대가주목할만큼뚜렷하진않았다.오히려그를작가대신기획자나매개자로본다면그의다양한행적이더흥미롭게다가온다.그가출판을비롯해라디오,연극,영화등다양한미디어영역에서활동하면서관찰,경험,성찰한바를기록한텍스트는문학적성취가크지않지만당대의미디어현장에대해당사자가남긴기록이라는점에서의미가있다.사회학자인저자는이점에주목했다.최승일이남긴텍스트가일제강점기미디어문화공간과식민지지식인의경험을재구성하는자료가될수있다고생각했다.최승일의다양한정체성이내부자적관점에서일제강점기의미디어문화공간을좀더자세히,그리고입체적으로들여다보게해주는렌즈역할을해줄수있으리라판단한것이다.

최승일의삶과생각을재구성하는작업은그의저작을비롯한여러자료를씨줄로,기록에담기지않은까닭과맥락에대한저자의질문을날줄로삼아촘촘히엮는방식으로이루어졌다.최승일저작에담긴행적의맥락을파악하기위해당시의신문과잡지기사와국내외연구문헌들을자료로활용했다.이자료들을탐색하는근거는사회학적상상력을통해제기한까닭과맥락에대한질문이었다.

먹고사니즘과이상의실현그사이어디쯤을오가며
시절에맡기거나시대를마주했던
일제강점기미디어문화공간속으로

최승일이다양한분야에서활동할수있었던것은새로운것에대한그의호기심과더불어최승일을비롯한당시조선지식인들의기획과창작능력이인쇄미디어뿐아니라라디오,연극,영화등다른미디어에서도통용될수있는것이었기때문이다.하나의미디어가다른미디어를표상하는재매개라는미디어의기술적특성은지식인들의활동을뒷받침했다.이와더불어생계유지는최승일에게다양한활동의동기를제공한주요한동력이되었다.새로운미디어영역에서활동하면서그가경험하고발견하는가능성한켠에는더나은경제적형편에대한필요가있었을것이다.

1920~30년대경성을중심으로신문,잡지,책등전통적인인쇄미디어는물론,영화,유성기,라디오방송,전화를이용한통신등근대미디어가일상속에자리잡으면서조선인들의생활양식또한급격한변화를겪었다.이러한변화는지식인들에게새로운경험의기회뿐아니라가능성을발견하는계기를제공했다.최승일을비롯한당시의지식인들은미디어의영향력에주목했다.일제강점기라는현실과미디어라는새로운도구,그리고근대라는새로운시대를배경에서지식인들은미디어를활용해더나은사회로향하는가능성을품었다.

이러한배경에서최승일은카프창립의주역으로조선어라디오방송의초창기를개척했고프로연극을비롯한신극의발전을도모했으며,최승희의세계적성공을뒷받침했고다면적인영화「지원병」을제작했다.그는또근대미디어의생산자이자관찰자로서그것의수용양상과활용방향에관한글들을다수발표했다.그러나새로운문화예술을매개로‘근대’와‘세계’로향하고자했던그의갈망은방송,연극,영화어느쪽에서도괄목할만한미학적성취를이루거나인정받지못한채제국주의전쟁에대한지지로비극적인마침점을찍었다.이실패는애초에예견된것이었다.미디어가성장할수록일제의정치적통제와자본의논리가강력한제약으로작동하는가운데생계의걱정없이새로운문예를계발하고민중을위해말하는지식인으로굳건히서겠다는욕망자체가허상내지는자기기만일수밖에없는것이었기때문이다.

최승일의삶은1920~30년대조선의좌파지식인이거친일종의전형적궤적을보여준다.최승일의이력을통해당시지식인집단의사회학적특성을제시한저자는“사회주의자지식인이파시즘과전쟁에협조하게된전향을스스로의내면에서어떻게정당화했을까?”라는질문을건넨다.여러미디어분야에서동시에활동했던것은최승일을포함한식민지지식인의특징이었고,식민지체제에서근대미디어가발전할수록그종사자들에게는식민권력에대학확고한복무를요구했다.그에대한선택은과감한용기와결단을필요로하고,많은고뇌와번민을감당해야하는것이었다.그속에서최승일은,식민지지식인은어떤고뇌와번민을,결단과선택을했을까?최승일이라는렌즈를통해펼쳐진일제강점기경성의풍경에다시금눈길이갈것이다.부록으로수록한24편의텍스트는근대미디어문화에관한최승일의저작을현대어로옮긴것으로아직껏체계적으로정리된적이없는가치있는자료다.최승일에대한새로운이해와상상의출발점으로삼는다면또다른즐거움의계기가될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