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장부의 꿈 (임란 때 충(忠)과 효(孝)를 다한 최대성 모의장군 이야기 | 정찬주 장편소설)

대장부의 꿈 (임란 때 충(忠)과 효(孝)를 다한 최대성 모의장군 이야기 | 정찬주 장편소설)

$20.00
Description
이순신 휘하 대솔군관으로 참전,
고향 보성에서 의병장으로 순절한 장수
《대장부의 꿈》은 임진왜란 명장 시리즈 6번째 장편소설이다. 최대성은 무과 급제를 하고 한양의 훈련원 참군을 지냈으나 왜구들의 노략질이 빈발하자 고향 보성을 지키고자 귀향하는 결단을 내린다.
임진왜란의 전운이 돌자 최대성은 이순신 장군 휘하로 들어가 전라좌수군의 한후장과 최측근 대솔군관으로 전공을 세운다. 조선 수군이 첫 승리를 거둔 옥포해전을 필두로 다섯 차례의 해전에 출전해 이순신의 승리에 기여한 최대성은 다시 고향에 돌아와 의병장으로 항전하다가 순절한 보성 의병사에 빛나는 장수다.

효(孝)와 충(忠)을 다한 의병장 최대성
모의장군 최대성의 행적을 되살리는 일은 효(孝)에서 충(忠)을 일으켜 나라를 구하고 고향을 지킨 한국인의 정체성을 구체화하는 작업이다. 그리하여 그의 일대기를 영웅주의적 관점이 아니라 가능한 한 ‘인간 최대성’으로 그려내려 했다고 작가는 말한다.
부모에 대한 지극한 효심, 스승에 대한 순수한 존경심, 병사한 아내를 향한 절절한 슬픔, 전투에서 겪는 인간적인 고뇌와 전우애, 그리고 반상의 경계를 뛰어넘어 집안의 가노와 형제처럼 지내는 인간미 등을 그려내고 있다.

이순신 휘하에서 옥포해전을 필두로 다섯 차례 전투서 승리
최대성(崔大晟)은 보성 사곡마을의 경주 최씨 최한손(崔漢孫)과 광주(廣州) 이씨 슬하의 외아들이다. 죽천 박광전 문하에서 수학한 뒤 보성으로 귀향한 선거이가 손응호 등과 신의계(信義契)를 만들자 이에 참여했다. 서른두 살에 전주감영에서 치른 무과 초시에 합격, 이듬해 한양 훈련원 복시에 나가 활쏘기와 검술에서 우수한 성적을 올려 무과에 급제했다. 훈련원의 정7품 참군으로 있던 최대성은 선조 18년 2월 왜구들의 침탈이 극심하자 고향을 지키고자 입신양명의 길을 뒤로한 채 귀향을 결심한다.
이순신이 전라좌수사로 부임하자 열선루 회동에 참여하고, 뒤이어 선조 25년(1592) 3월 초 전라좌수영에 들어가 전쟁이 발발하자 첫 전투인 옥포해전에 참전하는 등 다섯 차례의 해전에 나가 승리를 거둔다.

이순신의 명을 받아 귀향해 보성향보의병군 궐기
최대성은 고향 일대에 출몰하는 흉적을 물리치고 종사를 보전하겠다는 뜻으로 임금에게 사직을 청한다. 하지만 선조는 정3품 훈련원정에 제수하며 그 공을 치하한다.
그러나 선조 30년(1597) 2월, 이순신이 참소당해 한양으로 압송되자 최대성은 고향으로 돌아와 보성향보의병군을 조직하고 왜적에 대항한다. 이순신이 28일 만에 의금부에서 풀려나 백의종군하게 되자 최대성은 이순신의 명을 받아 전라좌수군의 배후인 고향을 지키는 임무를 받는다.
1597년 보성향보의병군을 일으킨 최대성은 순천만 거차포전투와 안치전투 등 20여 회의 크고 작은 전투에서 왜적들을 물리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안치전투에서 적탄에 장렬하게 순절한다. 그의 나이 46세였다.

보성향보 의병장으로 순절한 뒤 154년 만에 통정대부 추증 받다
7년 전쟁이 끝난 뒤 최대성의 장남 언립과 삼남 후립은 선무원종 2등 공신에 책록되었으나 정작 최대성은 아무런 예우를 받지 못했다. 최대성의 전공 회복운동은 안방준 이후 최대성의 5대손 최정기가 영조 27년(1751) 예조에 올린 소지(所志, 진정서)에 이르기까지 1백여 년 동안 계속되었다. 결국 영조는 최대성의 향리에 충신 정려(旌閭)를 세우라는 명과 함께 증(贈) 통정대부 형조참의 증직교지를 내렸다. 통정대부란 정3품 상계(上階)로서 당상관의 품계였다. 안치전투에서 순절한 지 154년 만에 내린 왕명이었다.
이후 영조 44년(1768) 유림의 발의로 정유재란시 안골포, 가덕도해전에서 전사한 보성군수 안흥국의 정충사에 배향되었다가, 현재는 모의장군의 전적지 죽전들판과 안치들이 가까운 충절사에 위패가 봉안되어 있는바, 오가는 사람들의 마음에 대장부 최대성 장군의 혼이 불현듯 충절과 효심을 불러일으켜 주고 있다.
저자

정찬주

저자:정찬주
자기만의꽃을피워낸역사적인물과수행자들의정신세계를탐구해온작가정찬주는1983년《한국문학》신인상으로작가가된이래,자신의고유한작품세계를변함없이천착하고있다.호는벽록檗綠.
1953년전남보성에서태어나동국대학교국문과를졸업했고,국어교사로잠시교단에섰다가십수년간샘터사편집자로법정스님책들을만들면서스님의각별한재가제자가되었다.법정스님에게서‘세속에있되물들지말라’는무염無染이란법명을받았다.전남화순계당산산자락에산방이불재耳佛齋를지어2002년부터텃밭을일구며집필에만전념중이다.대표작으로대하소설인간이순신을그린《이순신의7년》(전7권)법정스님일대기장편소설《소설무소유》성철스님일대기장편소설《산은산물은물》(전2권),4백여곳의암자를직접답사하며쓴산문집《암자로가는길》(전3권)을발간했다.
장편소설로《광주아리랑》(전2권)《다산의사랑》《천강에비친달》《칼과술》《못다부른명량의노래》《천년후돌아가리-茶佛》《가야산정진불》(전2권)《나는조선의선비다》(전3권)등이있고,산문집으로《행복한무소유》《법정스님인생응원가》《법정스님의뒷모습》《불국기행》《그대만의꽃을피워라》《자기를속이지말라》《선방가는길》《정찬주의茶人기행》등이있다.동화《마음을담는그릇》《바보동자》를발간했다.행원문학상,동국문학상,화쟁문화대상,류주현문학상수상.

목차

작가의말_효(효)에서충(충)을꽃피운모의장군최대성

초암산정기/돌잔치/을묘왜변/서당공부/대장부의산/우계정입실
충효당/아내진원박씨의죽음/활쏘기대회/무과급제/훈련원사직
열선루회동/전라좌수영지원/유비무환1/유비무환2/본영거북선
거북선화포시범사격/왜군침략/이순신의장계/전선(戰船)점고
출전제문/경상도출전/폭풍전야/옥포해전/부모생각/2차출전
특별휴가/사곡마을가는길/부모봉양/3차출전/연전연승/효(孝)와충(忠)
5차출전/싸움을피하는왜적/모의장군/어명이오!
보성,흥양의병군합동전투/거차포전투/안치혈투

에필로그

출판사 서평

책속에서

“1차전에서판옥선만으로도승리했은께2차전에서는대장나으리말씸대로애껴둔거북선으로적덜사기를완전히꺾어부러야겄지라.하하하.”
1차출전의승전으로자신감을얻은장수들이정운의큰소리에모두따라서크게웃었다.화기애애한장수회의였다.웃지않은장수는옥포해전중거제도산으로도망치는왜적을추격하다가조총의탄환에부상당한최대성뿐이었다.이순신이눈치를채고장수회의가끝난뒤최대성만동헌방에남게했다.
“한후장은근심거리가있는겨?”
“대장나으리,지가고로코름보이신게라우?”
“우덜이웃고있는디한후장만입을다물고만있드라니께.거제에서적을쫓다가부상당해서그려?적을가볍게여기구용맹이넘치는것두위태로울수있는겨.내가볼때는한후장은참모가맞아.다음출전때는참모를맡길겨.”
“사실은노환중인부모님을걱정허고있습니다요.”
“고충이있으믄털어놔야허는겨.나두아산에겨시는어머님소식이궁금혀.낼이라두나장을보낼겨.”
“지는전시라움직일수읎고,성밖양민에게부탁해보겠습니다요.”
“그려.얼릉찾아봐.”
동헌을나온최대성은도롱이를걸치고서문밖으로나갔다.이순신도자신과마찬가지로부모를생각하고있다니망설일이유가없었다.
〈부모생각〉(258~259쪽)

조선수군이퍼붓는한나절이상의화포공격이었다.왜선들은한꺼번에불타면서불바다속으로가라앉았다.조선수군들은왜선을버리고바다로뛰어드는왜수군을보는족족활과갈고리로사살했다.한산도바다는왜수군들의핏물로번졌다.
“쩌어기적선밑에숨어있다.죽여라!”
“층각에왜놈수괴가있다!”
특히중위장순천부사권준은제몸을잊고돌진하여왜의층각대선1척을쳐부수어왜장을비롯하여왜수군열명의머리를베고우리나라남자1명을산채로구했다.중부장광양현감어영담도돌진하여왜의층각대선1척을쳐부수고부상당한왜장을대장선으로데리고갔는데말이통하지않고화살을맞은것이중상이므로즉시목을베었으며12명의왜수군머리를베고우리나라남자1명을구했다.
뿐만아니라우부장사도첨사김완은왜대선1척을쳐부수어4명의왜수군머리를베었고,또두척을쫓아가서깨뜨리고불태웠다.전부장방답첨사이순신역시왜대선1척을쳐부수어4명의왜수군머리를베었다.또,좌귀선돌격장이기남은왜대선1척을쳐부수어7명의왜수군머리를베었고,좌별도장윤사공과가안책은층각선2척을바다가운데서사로잡아6명의왜수군머리를베었다.
좌부장낙안군수신호는왜대선1척을사로잡아7명의왜수군머리를베었고,좌척후장녹도만호정운은층각대선2척을화포로당파하여3명의왜수군머리를베고우리나라사람2명을산채로구출했다.
우척후장여도권관김인영은왜대선1척을쳐부수어3명의왜수군머리를베었고,유군장발포만호황정록은층각선1척을쳐부수어2명의왜수군머리를베었다.
우별도장송응민은2명의왜수군머리를베었고.흥양통장최천보는3명의왜수군머리를베었고,참퇴장이응화는1명의왜수군머리를베었다.우귀선돌격장박이량도1명의왜수군머리를베었고,장수손윤문은왜소선2척에화포를쏘고산위까지왜수군을추격했으며,장수최도전은우리나라소년3명을구했다.
나머지왜대선20척,중선17척,소선5척은좌우도의여러장수들이합심하여불살라수장시켰는데,화살을맞고물에빠져죽은왜수군의숫자는헤아릴수없었다.그리고왜선을버리고도망친왜수군은4백여명이나되었다.
이로써한산해전은조선수군연합군의완벽한승리였다.다만이전의전술과달리한산도바다가운데로유인하여접전한전투였으므로조선수군의사상자도다수발생했다.사상자없는이전의싸움과는확실히달랐다.
〈연전연승〉(319~321쪽)

최대성은본영에서아버지최한손의부음을듣자마자이순신에게보고했다.그런뒤군마를타고사곡마을에달려왔을때는벌써집안머슴들이선산에서산역(山役)을하고있었다.유택자리는최한손이생전에풍수를불러정해둔자리였고,최대성도두리동형제와함께가본곳이었다.
나라가사변중이므로장례는삼일장이었다.내일이면상여가집에서나가는날이었다.최대성집은본채,안채,별채,충효당등등할것없이친인척조문객들로북적거렸다.
가을하늘은보성만처럼푸르렀고,오후의햇살은대숲깊숙이스며들었다.최대성은사랑방으로들어가갑옷을벗고갑술이가지고온상복으로갈아입었다.조문객들이부담스러워할까봐빨리갑옷을벗었다.노환을오랫동안앓다가숨을거둔때문인지두리동형제는생각보다담담했다.
“동상,너무상심마소.날씨가도와준덕분에산역이순탄허네.”
“아버님께서는사계중에가실을젤로좋아허셨는디하늘이도운거같그만.”
인명재천인데다이미예고된별세였으므로최대성도두리동형제못지않게평정심을잃지않았다.다만임종을보지못한것이한스러울뿐이었다.그럼에도불구하고뼛속깊이비통해지는회한은없었다.
“아버님은본채에겨시제?”
“본채큰방에겨시그만.”
최대성은본채큰방으로갔다.10폭병풍뒤에최한손은깊은잠에빠진듯반듯하게누워있었다.두리동이와서병풍을한쪽으로밀쳤다.최대성은엎드려큰절을두번했다.그런뒤아버지최한손에게가까이가서무릎을꿇었다.최대성이아버지최한손의손을잡았다.손은가벼웠고얼음처럼차가웠다.전해오는차가운기운이최대성의감정을북받치게했다.최대성은목구멍을넘어오는감정을꾹눌렀다.
잠시후최대성이혼잣말을했다.
‘아버님,대성이가왔어라우.’
‘가실때뵙지못해서죄송해라우.’
최대성은최한손의얼굴을쳐다보면서말했다.
〈효(孝)와충(忠)〉(328~329쪽)

선조27년2월.
소상을치른최대성은다섯달만에다시본영으로복귀했다.그런뒤이순신통제사가삼도수군을거느리고있는한산진으로갔다.이순신은여전히상복을입고있는최대성을대솔군관겸정탐군관으로임명했다.각부서의장수들도마찬가지였다.왜적이싸움을회피하기만했으므로거제도주변의섬들을정탐하면서일과를보냈다.최대성은주로진해앞바다로나가정탐했다.
3월이돼서야왜선6척이당항포에들어와있는것을발견하고조선수군의함대가달려가분멸했다.저도(楮島)에서도왜선1척을화포사격으로불살랐다.그러자저도의왜수군들은두려워서밤중에왜선17척을버리고도망쳤다.이에조선수군함대는17척을남김없이깨트리고불살랐다.6월에최대성은상작(賞爵)을받아종5품의훈련원판관이되었다.
8월에는이순신통제사함대장수들과춘원포에출몰한왜선을추포하여분멸시켰고,사천에이르러권율원수를만났다.권율은일찍이선거이와정걸에게최대성의무재(武才)이야기들었음인지반갑게맞아주었다.9월에최대성은이순신통제사의허락을받고는집으로돌아왔다.대상(大祥)을지내기위해서였다.대상을치르고나서도최대성은상복을벗지않았다.상복을입은채10월에장문포에서충청수사이계훈,병사선거이및곽재우,김덕령과작전하여수륙의왜적을포획했고흉도(胸島)를정탐한뒤한산진으로돌아왔다.그때이순신은최대성을특별히격려했다.
“상복입은최군관을보믄말여,부모봉양을잘혀야겄다는생각이들어.”
“통제사나으리맨치자당님을잘모시는장수가으디있겄습니까요?본영이가차운곰천에겨시는자당님께서는복이많은분이시지라우.”
“작년5월말에정대수군관이아산으로가서모시구왔네.가차이겨시니께안부를자주살필수있어월마나안심이되는지모르겄네.”
“통제사나으리효심을모든장수덜이본받아야헙니다요.”
“허허허.대상을치렀으니께인저집으루돌아가상복을벗게.상복이적덜의표적이될수있는겨.”
“아이고메,지땜시옆에있는군사가다칠수도있겄습니다요.”
11월에본영에서탐후선이들어오자최대성은이순신에게보고하고한산진을떠났다.최대성의효심과전공은조정에널리알려져병조에서는승진을상신했다.그러자선조는을미년(1595)2월에정3품의훈련원정을제수했다.그때최대성은일선현장에서‘흉적을물리쳐없애고종사(宗社)를보전해야한다’고사직을청했지만오히려선조는가상히여겨금(金)을주고검(劒)과홀(笏)을하사했다.
〈모의장군〉(358~359쪽)

잠시후골바람에누린내가풍겨왔다.왜군들이죽은동료들의시체를모아놓고태우는냄새였다.의병군에게시신의머리를내어주지않으려고자신의동료를태워버리는잔인한짓이었다.그때최대성은왜군들이의병군에게밀리면서안치들을내어주고퇴로를찾고있다고판단했다.
“나는시방안치들에모의장군깃발을꽂을것이니라.”
“대장님,아직은위험허요.적덜은음흉해서매복해있을지모르요.”
“우리가이긴것이나다름읎은께그렇다고허드라도적덜은독안에든쥐새끼일뿐이다.”
더구나황원복이지휘부로와서손에묻은피를닦으면서의기양양하게말했다.
“모의장,적덜은도망칠줄만알지싸울줄은모른거같소.조총을갖고도죽창을든우리덜에게지는것을보믄말이요,”
“황대장,말씸이맞소.”
안치들백병전에서는조준하면서쏴야하는왜군의조총보다의병군의칼과죽창이더위력적이었을터였다.최대성은오도재를내려가기위해말을탔다.두리동형제와지휘부의병들이최대성을뒤따랐다.그런데오도재고갯길이끝나는산길에서였다.낙오병인지,매복병인지는알수없으나갑자기왜군들이조총을쏘아대며나타났다.최대성은바로칼을휘둘러눈앞에보이는왜군들의목을베었다.
“무도헌왜왕의업보다!”
투구를쓴왜장은오도재아래로도망쳤다.최대성은말을타고왜장을뒤쫓았다.그러나그때조총소리가요란했다.두리동형제가피를토하듯외쳤다.
“대장님!”
최대성이적탄을맞고말에서떨어졌다.그러자주인잃은말을탈취하려고왜군십여명이숲속에서튀어나왔다.이번에는두리동형제가고함치며돌진해칼을휘둘렀다.순식간에왜군서너명이산길에붉은피를뿌리며나뒹굴었다.그러나그뿐이었다.두리동형제도적탄을맞고최대성옆에쓰러졌다.
그제야조총소리를듣고의병1백여명이함성을지르며달려왔다.의병군의기세에질린왜군들이두손을번쩍들면서항복했다.그러나대장최대성을잃은지휘부의병들은적개심이솟구친나머지번개처럼달려들어왜군들의목을다베어버렸다.그런뒤에야대장부최대성의시신앞에서모두가통곡했다.
〈안치혈투〉(408~409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