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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이야기에서시작해,
그곳에똬리튼수많은‘민낯’을드러내는시도
매년5월과선거철에만소환되는지역이있다.호남이다.5·18민주화운동의뜨거운정신으로기억되고,민주당의정치적기반으로자리하는호남.어딘지모르게고맙고,또어딘지모르게미안한지역.우리가호남을기억하는긍정적인방식은여기까지다.이어지는키워드들.낙후,소외,침체그리고차별.
《세습중산층사회》를통해불평등사회에날카롭고묵직한화두를던졌던저자가‘지역문제’로돌아왔다.전작에서90년대생이겪는불평등에천착했다면,이번에는보편의문제와특수한사정이옭아매는한국내유일한지역“호남”에주목한다.앞서서술한호남의비애는어제오늘일이아니다.오래된이야기다.그런데책은2021년,왜‘낡은’호남문제를들추는가.저자는두가지대답을들려준다.먼저한국사회가쌓아올린모순이이지역,호남에집약돼있기때문이다.서울이‘머리’가되고지방이‘손발’이되는경제적역할분리,개별지역의불균등발전,이촌향도라고불리는대규모인구이동과이주민의도시하층민으로의편입,지역기반정당간의경쟁구도,개별지역내부에서패권적지위를갖는정당의출현등을양적·질적으로가장강도높게겪었던곳이바로호남이라는것이다.두번째로는호남이라는지역이가진특수성을이해하려는시도가여전히중요하기때문이다.호남은불균등발전의희생양이었다.산업화라는로켓에탑승하는걸거부당하고,차별과모멸을받고,거대한국가폭력에서집단학살의대상이되는과정은기실한사회의‘어둠’을한지역에몰아넣는것이나다름없었다(16~17쪽).
여기,우리사회가만들어낸각양각색의모순이두텁고도끈끈히덧얽힌호남을집요하게파헤치고정교히뜯어보는책이출간되었다.책은광주를중심으로호남이안고있는문제를다양한각도와층위에서살펴본다.지역차별,저발전,불평등,산업및경제구조,부패와무능,취약한지역정치구조와거버넌스등오늘날호남이안고있는중층적모순을들여다본다.지역과계급이라는이중차별,누구나알지만아무도모르는호남의이야기를그려낸《전라디언의굴레》다.
“반도의흑인또는아일랜드인”
우리가호남을타자화하는방식
전라도출신을향한노골적인차별행위는,여전히한국사회도처에남아꿈틀거린다.인터넷에서건,생활세계에서건자리를가리지않고살그머니고개를들고는한다.지난2018년경기도부천의한편의점에서내건아르바이트생채용공고가상당한화제를모은일이있었다.“주민등록번호중8번째,9번째숫자가48~66사이에해당하시는분은채용어렵습니다(가족구성원도해당할경우채용어렵습니다)”라는문구때문이었다.주민등록번호8,9번째숫자는출신지역으로부여되는데,전북·전남·광주에해당한다.요컨대‘본인이나부모가전라도출신이면채용하지않겠다’는의미였다.
저자는지역감정이나지역차별이노동시장에까지영향을줄정도로심각하게나타나는사례는‘호남차별’밖에없다고말한다.‘경상도사람들은이렇고,충청도사람들은저렇다’는다분히주관섞인시각도존재하지만,그러한편견이나악감정은경제행위에아무런영향을미치지않는다는것이다.더심각하게는호남차별의기저에일종의“준인종적정체성의문제”가있다고지적한다.사실상의인종차별이라는것이다.극우성향을가진온라인커뮤니티‘일베’의단골콘텐츠중하나는“호남출신은열등한품성을가지고있으며,다른지역출신과비교하면더욱그러하다”는내용이다.심지어외모마저구분된다는게그들의주장이다.1990년대중후반까지만해도텔레비전드라마나영화에서깡패,사기꾼,양아치를맡은배역이서남방언을즐겨사용해서문제가됐던것에서한발더나아간셈이다.‘전라도’에특정한속성을부여하고통상적인‘한국인’의범주에서벗어난이질적인존재인것처럼규정하며,끊임없이타자화하는방식은그들에게일종의인종성을부여하는것에가깝다(38쪽).
이렇듯호남차별의본질이인종문제라고주장하는것은호남인이인종적으로나문화적으로‘다른지역’과다르다고이야기하는것이아니라고저자는밝힌다.그보다는근대화와그에따른대규모인구이동속에서다른인간집단,정확히는좀더열등한이등시민으로간주되고스스로도구별된정체성을갖게되었다는것이다.요컨대“전라도인은반도의‘흑인’과‘아일랜드인’사이어느중간에있는존재”라고꼬집는다.흑인처럼피부와언어가다르고아프리카에서끌려온이들은아니면서도,아일랜드인처럼나중에온이민자들덕에‘백인성’의범주에포함되기에는여전히상당한차별과모멸을받고있는까닭이다.제목에속한단어이자,인터넷에서멸칭으로쓰이는‘전라디언’이라는단어는사실상사태의본질을정확히드러내고있다.
‘전라디언’이탄생한두가지경로:
엘리트사회내배제와도시하층노동자대군의등장
전라디언이라는이등시민은한국이경험한급격한산업화과정에서탄생했다.해방이후기업과자본이성장하면서,이른바‘엘리트’자리를두고뜨거운경쟁이벌어졌다.그과정에서가장큰영향력을행사한것은자본에대한배분권을쥔정치권력이었고,기준은‘지연과학연’이었다.학교동창,특히고교동창이네트워크(연줄망)의핵심에자리했다.지역소재명문중·명문고를거쳐촘촘히얽힌각지역출신의재경엘리트네트워크를구성한것이다.1961년5·16쿠데타로집권한박정희세력의핵심은TK(대구·경북)였다.정확히는TK출신의육사졸업장교와경북고(와그전신인대구고보)네트워크였다.이들은국가를경영하면서,자신들의기반인영남을중심으로산업을발전시켰다.PK(부산·경남)는TK의하위파트너역할을맡았다.그들과끈끈한네트워크를맺은영남출신기업인들에게자본을우선적으로공급하고,영남을중심으로각종사회간접자본을건설했다.1950년대부터두드러지기시작한이러한경향은정부주도산업화과정에서강화되고,결국거대한물적토대의차이를만들어냈다고저자는지적한다.
한국의고성장이만들어낸각종기회에철저하게소외된것은호남명문고출신들이었다.이들은1950년대에는한국민주당(한민당)과민주당을중심으로뭉쳐이승만정권당시야당역할을했다.특히호남은1971년대선에서영남이성장의과실을독식하는상황에신민당지지로결집하면서명실상부한반박정희지역이되었다.지역명문고출신들이‘중앙’에진입해경쟁하는구도에서태생적‘야당’인전라도출신들은거의완전히배제됐다.그들은다양한조직에서임용,승진,경력형성등의기회를제대로얻지못했다.저자는이들의사례가특별한것이아니었다고말한다.1990년대까지어느정도교육받고번듯한일자리를잡았던,또는엘리트사회에서경쟁해야했던전라도사람들과그들을부모로둔이들이일상적으로경험해야했던일로보는게더타당하리라는것이다.이들이겪었던차별과배제의경험은오히려‘호남사람’이라는지울수없는정체성을더욱공고히갖도록이끌었을것이라서술한다.
그러나엘리트사회,좀더넓게보아산업·금융등기업,관계,법조계등에서전라도출신에대한배제가있었다고해서지역전체에대한차별로발전하지는않는다.전라도출신이바람직하지않고부도덕하기까지한속성을가졌다는낙인을찍고,실질적인대규모차별이시작된데에는1960년대이후진행된호남출신의대규모이주가있었다고저자는강조한다.학력이낮고,기술도없으며,별다른네트워크도가지지않았던이들은일거리를찾아이주한도시에서자연스레하층노동자또는빈민집단을형성했다.대표적인곳이용산구한남동한남현대시장일대다.관악구봉천동과신림동도있으며,현재성남원도심을만든광주대단지사건의당사자도호남출신의비중이높았다.이들가운데일부는자영업등을통해성공하기도했지만,다수는실패했다.전국으로흩어져하층노동자또는도시빈민의역할을맡게되면서,전라도사람들은토착민또는그지역농촌에서도시로오게된이들과경쟁관계에놓였다.‘전라도출신’이라는낙인찍기의대상이되었다.
한편전라도를둘러싼역사가산업화와이주민그리고엘리트사회에서의배제만있었다면,‘무난한’수준의지역저발전내지는지역차별에머물렀을것이다.하지만1980년5·18은광주를중심으로한전라도거주민들그리고전라도에서타지역으로이주한사람들에게격렬하고각별한경험과그로인한정체성의각인을이끌어냈다.가뜩이나경제발전에소외되고,갖가지차별을겪어야했던호남사람들에게5·18은자신들이‘비국민’이라는것을확실히깨닫게해준계기였다.이경험은1987년제6공화국출범이후김대중과민주당을지지하는정치적정체성의핵심이된다.나아가민주당이일종의지역패권정당으로서,지자체라는행정권력을점유하며호남시민사회에깊숙이침투하는흐름으로이어진다.
“진짜호남인은이중차별을받는다”
지역과계급이라는이중의차별에관하여
저자는2000년대들어흔들리기시작한‘이등시민’내부의급격한변화에주목한다.그안에서도경제적이해관계나출신계층등이상이해진까닭이다.1998년김대중정부출범은호남출신엘리트도정치권력의수혜를받을수있다는사실을깨닫게해주었다.이들은그동안경북고를중심으로영남엘리트가만들어놓은‘게임의규칙’에서벗어날이유가없었다.이른바재경또는출향엘리트들은소수의지역소재명문고를졸업했으며,출신지역을제외하면상당히비슷한배경을가졌기때문이다.몇번의정권교체를거치는가운데,명문고를기반으로한학연과지연의혼합체야말로가장영향력있고믿을만한네트워크였다고책은말한다.
2021년5월문재인정부의장·차관과청와대비서관급이상정무직의출신지역을분석한결과전체401명중서울이104명(25.9%)으로가장많았고그다음이호남으로96명(23.9%)이었다.이들다수는1950년대후반~1960년대생으로대개고등학교를졸업하고바로서울명문대로진학한이들이다.지금은강남3구일대를비롯한요지의아파트에거주하며,상위중간계급의일원에걸맞게행동한다.필요에따라정치권력과동맹관계를맺을뿐,이념이나정책지향측면에서는큰차이가없다.이들이엘리트사회에서지분을늘린다해도정작호남의일반적인사람들이받는혜택은그리달라지지않는다는것이다.호남출신이주민들의분화도눈여겨보아야할지점이다.‘로켓’에올라타는게힘들었을뿐,말석에라도앉은이들이점차등장하면서이들사이의동질성을상실했다는것이저자의분석이다.
반면이주민중에서여전히중하층에머무른사람들그리고호남에남은이중대다수는지역차별에다가열등한사회경제적지위에따른차별까지이중으로받고있다.이들은경제적지위상승의기회를좀처럼찾지못한다.어엿한서울거주중상위층으로살아가는이른바‘호남인재’들이나,호남에서기득권을점유하면서중앙의정치권력과연계를맺고있는‘지역엘리트’들과다른삶인것이다.이런의미에서‘진짜호남인’은지역과계급이라는이중의차별을받는존재라고저자는힘주어말한다.2010년이후호남지역이민주당의적잖은골칫거리가되고,2016년안철수가이끄는국민의당이이곳을석권하는등투표장에서의‘반란’이때때로터져나오는이유다.오늘날‘호남문제’의핵심은호남내부의분화와이해관계의대립일것이다(64쪽).
‘전라디언의굴레’를끊어내기위해서는
익숙함과의결별이필요하다
책은호남의정치와경제구조를다룬다.특히해방당시부터거슬러올라가는저발전의구조와그로인한지역내사회구성체와정치적의사결정과정의문제를함께살핀다.일종의‘지방지향의정치경제학’을목표로한다.호남문제에는오랫동안이어진저발전과그로인한불평등,지역차별로형성된강렬한정체성,중앙정치와긴밀하게연결된지역거버넌스등이복합적으로꼬여있다.책은뒤엉켜배꼬인실타래를풀기위한,찬찬하고도집요한노력을게을리하지않는다.
총6장으로구성된책은호남문제의본질을말하는1장을시작으로,2장에서는경제구조의특질을분석한다.급격한산업화과정에서주변부적인역할에머물며경제구조가비틀린,요컨대“산업화라는열차의꼬리칸에몸을실었다보니,지금도그칸에남아있을수밖에없는”구조가제법단단하게만들어진양상을살펴본다.특히산업화가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