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회에뿌리내린
멘탈리티의기원을찾아
제20대대선이성큼다가왔다.문재인정권의국정운영은마무리단계에접어들었고,이제지난5년을돌아보는시간이다.‘촛불정부’,‘검찰개혁’,‘코로나19’,‘일자리’,‘부동산’등그간의정책과성과를살펴볼키워드가우리앞에놓여있다.미국시카고대학교에서인류학을전공하고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전임연구원으로재직하며오랜시간한국사회와문화를연구해온문화인류학자김은희는이모든것을아우르는분석을위해,‘양반’이라는키워드를우리에게제시한다.
여기,‘유교’라는해묵은듯해묵지않은키워드를통해오늘날한국사회를낱낱이해부하는책이출간되었다.저자김은희는정치와도덕이분리되지않았던조선시대양반사회를떠받친성리학적인식체계가여전히살아숨쉬고,재현되고,재생산되는작금의현실에주목하고이를‘신양반사회’라명명한다.책은최근한국사회가직면한갈등의중심에‘누가도덕적으로우월한가’라는물음이있었음을건져낸다.그리고이물음을‘현대한국사회의양반은누구인가’로치환한다.제도로서의양반체제는역사의뒤안길로사라진지오래다.그러나사회의지도층,요컨대민주화투쟁을주도하고지금은현실정치의견인세력인586세대를관통하는지배정서로강건하게살아남았다.한국사회에뿌리내린독특한멘탈리티의기원을찾아,문화인류학적고찰을담아낸《신양반사회》다.
도덕성을무기로한,
새로운양반계층이등장했다
저자김은희는문재인정부후반기에한국사회를들썩인‘조국사태’와‘윤미향사태’에서,조국전법무부장관과당시윤미향더불어민주당당선자를옹호하는사람들의논리에주목한다.양반,군자,소인등의용어를쓰지않을뿐이지,조선시대양반사회와다를바가없다는것이다.양반사회는군자와소인,존귀한자와천한자를구분했다.조국과윤미향의지지자들역시한국사회의구성원을크게두가지부류로나눈다고저자는지적한다.한쪽에는‘양반’,즉‘사회정의’를위해자신의이익을희생하며살아온사회운동가들이있고다른한쪽에는‘소인’,즉자신의이익을좇는사람들이있다.전자에는민주화운동에헌신하고이후사회운동에뛰어든사람들이속하며,후자에는‘기득권’과‘적폐세력’이포함된다.그리고운동가들과그들의지지자들이추구하는‘정의’는법위에존재하는윤리규범인‘의’에가깝다고저자는설명한다.
양반사회가지향했던덕치는군자가교화를통해소인을지배하는것을말하며,이러한유교적정의론에기반해사고하고행동하는이들에게‘정의’는법위에존재하는‘도덕적심성의문제’일것이라고분석한다.따라서법의원칙과절차,혹은과학적·합리적으로도출된사고를가까이하는대신살아온내력과평판을내세우는등‘도덕적우월성’을강조하는태도를보인다는것이다.저자는모든시민이도덕적으로평등한근대시민사회로나아가는것이아니라,사상의자유와사유의공존을허용하지않는양반사회로회귀하는한국사회를대상으로심도있고날카로운분석을시도한다.
“결론적으로말하면운동가들이그렇게도실현시키고자하는‘정의로운’사회는도덕적으로우월한사람들에의한통치,즉덕치를지향하는양반사회이지법치에기반한근대적자유주의사회는아니다.그들이양보할수없고타협할수없는최후의보루는자신들의도덕적우월성이다.”
-13쪽,들어가며‘신양반사회의도래’중에서
“양반은누구인가?”
문화적개념으로서‘양반’다시보기
책은먼저1장에서조선시대‘양반’계층이어떤사람들을가리켰는지,그근원을추적한다.가장크게는“조선후기양반제가붕괴했다”고말하는주류역사담론을비판적으로고찰하는작업부터시작한다.많은교과서와한국사연구자들은“조선후기에들어와상품화폐경제가발달하고심지어상업도시가성장하였으며,이로인해양반을지배계층으로한신분질서가와해되었다”고서술한다.그러나조선시대가족과친족문화에관한인류학적연구들은정반대의사실을드러낸다고저자는밝힌다.양반제가붕괴되었다는서술의기본전제가되는한국경제사의주류이론인‘자본주의맹아론’이나‘내재적발전론’은동북아시아에서가장후진적이었던조선후기의상공업수준을왜곡·과장하고있다는것이다.저자김은희는도로와교량같은물적증거의부재,직조와염색기술의쇠퇴등다양한근거를토대로실제로는조선후기들어상공업이침체했다고강조한다.
이어서“조선후기에양반이격증했다”는주장에도정면으로맞선다.저자에따르면‘양반’은객관적기준으로규정되는법적개념이아니라,공동체에서사회관습을통해정착된문화적개념이다.조상과가문으로부터독립된자유로운개인은존재하지않았다는것이다.지역사회에서‘양반’이어떻게규정되는지소개하는대목은“상공인이나부유한상민이돈을주고족보를위조하여양반으로계층상승했다”고서술되던기존역사담론과다시한번부딪친다.저자는양반은문화적규범에따라정당성을부여받은신분계층이었기에,‘양반의식’은쉽게변하지않는다고힘주어말한다.이어지는대목에서그는현대사회로계승된양반의식,요컨대소위‘국민정서’라고불리는의식과이념에관해분석한다.출신성분에따른도덕적우월성을강조하고,사적영역의자율성을인정하지않는것등이그것이다.
“사람들은요즘의언어로묻는다.‘친일파’후손인가?혹은‘기득권적폐세력’인가?아니면독립운동가후손혹은민주화운동가인가?그러나이질문들의핵심적인내용은별반다르지않다.그들의조상은누구인가?대의를위해살았는가?아니면자신의이익을위해불의와타협하며살았는가?”
-40쪽,1장‘양반은누구인가?’중에서
“우리에게조상은무엇인가”
‘아무개자손’이라는정체성에관하여
그렇다면우리에게‘조상’은무엇인가?김은희는2장에서또하나의질문을던진다.조선후기에들어서면서,조상과후손을동일시하는‘아무개자손’이라는혈연의식이양반계층에강화된다.조상의제사를공동으로지내는친족집단을구분하고통합하는제도인중국고대의‘종법제’가널리퍼진까닭인데,조선초기에는엘리트사대부가에서도잘시행되지않았다.그러나17세기에들어유학자들의성리학이론이심화되고유림이서원과향약등을발판으로향촌사회의지배세력이되면서,종법사상이양반계층에뿌리내리게되었다고저자는밝힌다.이과정에서정작종법제의본산지인중국보다도조선사회가더엄격하게심화된형태로받아들였음을알수있다.조선의유학자와관직자들에게정통성을따지는것은사회기강을지키는기본원칙이었으며천륜의하나였기때문이다.한예로,중국의부계친족집단이‘공동재산’을중심으로조직되었다면조선사회에서는사회적평판과명성이중심이되었다.이런상황에서조선후기로갈수록유명한조상의자손이아니면본인의학문과덕망이뛰어나도지역사회에서양반으로대우받지못했다고책은말한다.
종법제는‘집家’을적장자가제사를물려받아끊임없이대를이어가는영속체로만들었다.조상대대로그리고자손대대로이어지는제사는조상과자손을동일시하는‘우리’라는혈연의식과집단의식을강화시켰다.개인은독립된생명이아니라부모와조상의생명이연장된존재로인식되었고,영속적으로존재하는집과친족집단은개인자신의일부가되었다.동시에제사집단으로서의‘집안’은정치사회에종속된공적인영역으로변환되었다.제사는‘중앙’의정치사회에서의지위를재확인하는공적인행사였다.저자는이렇듯양반사회의정치와친족간관계가오늘날한국사회를이해하는데아직유효하다고주장한다.
“우리집,우리학교,우리회사,우리나라,우리민족등으로.사적인개인은‘우리’의일부가되어강력한집단주의적사고에종종매몰되어버린다.조상과후손이동일시되니몇백년전,몇천년전단군시대의역사까지바로나자신의일이된다.적서의분을따지듯이역사적사건에서누가더도덕적으로우월한가정통성을따지고시시비비를가리고자한다.”
-165쪽,2장‘우리에게조상은무엇인가?’중에서
그들이말하는‘정의로운’사회,
‘공정한’나라,‘진정한’민주국가는무엇인가
책은문재인정권의여론정치를두고,조선후기양반사회의공론정치로부터물려받은문화적유산이라고지적한다.시민단체가정부정책에대거참여하는것은조선후기양반사회에서중앙정부의관료조직밖에있는지방유림이거의준관직자로서중앙의정치에참여했던실태와유사하다는것이다.유교적도덕정치에서국왕의자의적인권력행사는민주공화국처럼삼권분립에의해견제되었던것이아니라유학자관원들,그중에서도국왕의잘못을간할수있는삼사(사헌부,사간원,홍문관)의젊은관료들의감시를통해제어당했다.그러나도학정치를실현하겠다는훌륭한의도로제도화된삼사의간쟁활동은조선의왕권을상당히약화시켰으며,조선중기부터붕당의형성과이로인한행정의비효율성과난맥이라는문제점들을초래했다고저자는분석한다.그리고당시조정의대신들이지적했던신진사류의문제점은현대한국사회의‘민주화세력’혹은‘운동권’의모습과많이흡사하다는것이다.요즘표현으로‘패거리정치’,‘내로남불’,‘불투명한’정책결정과정등과하나도다를게없다고저자는힘주어말한다.
부제인“586,그들이말하는정의란무엇인가”에서알수있듯이,《신양반사회》의칼끝은586세대를향한다.‘군자’와‘소인’을구분하고,‘군자’가‘소인’을지배하는양반사회의논리를그대로이어받은정치권의특권의식을향한비판이매섭다.그러나이책은유교적이데올로기에서자유하지않은우리사회전체가기꺼이읽어내야하는텍스트다.‘K’가난무하는세상에서보다두터운시각으로한국사회의근원을파헤치고싶은독자들에게특별한시사점을제공한다.‘유교적’역사관,‘유교적’경제관,‘유교적’정치관,‘유교적’문화관등을아우르는문화인류학자의날카롭고섬세한통찰과분석이‘정의로운사회’란무엇이고‘공정한나라’와‘진정한민주국가’는무엇인지새로운시각과접근앞으로독자를이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