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밖에 없는 사람 방 밖에 없는 사람 (이현호 에세이)

방밖에 없는 사람 방 밖에 없는 사람 (이현호 에세이)

$14.00
Description
집에 콕 박혀 있기 좋아하는 이들에게 바치는 헌사
이현호 시인의 첫 에세이, 『방밖에 없는 사람, 방 밖에 없는 사람』
2007년『현대시』로 시를 발표하기 시작하여,『라이터 좀 빌립시다』『아름다웠던 사람의 이름은 혼자』등의 시집을 펴낸 이현호 시인의 첫 에세이가 시간의흐름에서 출간되었다. 이현호 시인은 섬세하고 감각적인 언어를 통해 아릿하고 아름다운 시편들을 전하며 독자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아왔는데 시인만의 고유하고 찬란한 시선과 문장은 에세이에서도 빛을 발한다.

빛에서 어둠으로, 어둠에서 빛으로, 방이 나를 태우고 날아간다.

바이러스가 일상을 송두리째 바꿔놓았다며 다들 불만을 토로할 때, 유독 공감이 잘 안 돼서 멋쩍은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던 사람들이 있다. 오래전부터 자발적으로 격리 생활을 즐겨온, 흔히 우리가 집돌이, 집순이라고 부르는 이들. 이현호 시인은 문인들 사이에서 두문불출하기로 꽤나 유명한 인물이다. 시인은 방에 콕 박혀 나오지 않고 무얼 하면서 시간을 보내는 걸까? 비밀스러운 보물 같은 게 있다거나, 남에게 절대 들켜선 안 될 이중생활을 하는 건 아닐까?
그런데 정작 중요한 사실은 방 밖에 ‘없는’ 사람들에 대해서 궁금해하는 것은 방 밖에 ‘있는’ 사람의 몫이라는 점이다. 방 밖에 없는 사람의 관심사는 방 자체다. 시인의 말처럼, 어쩌면 우리가 방에서 살고 있는 것이 아니라, 방이 우리를 키우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시인의 상상력으로 써 내려간 방에 대한 이 글을 읽고 나면, 방 밖에 있는 우리는 시인이 방을 바라보는 또 하나의 관점을 획득하게 될 것이다. 나만의 성역이자 나의 법률이 지배하는 곳, 그리고 무엇보다 나의 마음을 보살피는 일이 이뤄지는 공간으로서의 내 방이 조금은 다르게 보일 것이다.
저자

이현호

시집『라이터좀빌립시다』와『아름다웠던사람의이름은혼자』를펴냈다.대부분의시간을방에서고양이두분과지낸다.누가누가더오래오래누워있나내기라도하는듯이.

목차

방문을열며
방안의인간

1부:방밖에없는사람
대흥동5-4/식물의꿈/나는/방의사물들/거미의방/여행하는마음/귀신의집/현관을열면/외로운습관/방의사물들:창문/방의주인/안에있는바깥/전문가/방의사물들:소파/욕망의자리/방의사물들:머리카락/야옹야옹/오늘의날씨흐림/방의사물들:식탁/사람의말/방의사물들:서랍/무인도에서/대청소를합시다/사물의기억/유령들

2부:방밖에없는사람
말놀이:빈집/방을위한변명/오래된자취/빈방에서의낚시/계시/잠옷과온도/봄비를듣는두가지마음/감기와사람/슬픈책/잠과꿈/재미와혼술/말놀이:내방/마음의얼굴/타인의방/말놀이:방문/삼천포로가는방/단골집유감/부루마블/이십대,방과방밖의경계에서/방을위한단상/죽비

방문을닫으며
봉쇄수도원

출판사 서평

방은마음의성채이자마음의들판.우리는그곳의왕이자유일한백성이다.방을갖는일은온전한자신만의세계를갖는것.나는나만의우주가아주마음에든다.(10쪽)

식물은이층창가에서한달을버티지못했다.점점잎사귀끝이마르고색이바래더니시들어죽고말았다.나는또그에게일어난이기묘한일을헤아릴수없었다.형광등빛만으로살아온질긴생명에게갑자기쏟아진햇볕은독이었을까.지금도이따금그식물생각이난다.오래외출하지않고있다보면,내가꼭한자리에붙박여한뼘볕과한줌물만으로사는식물같이느껴진다.(15쪽)

삶이란나와아무상관도없다는듯이살고싶다.무엇이든적당한거리를두어야편하다.삶도마찬가지.안달복달삶에매이기싫다.배곯지않고,따듯하게잠들수있으면족하다.혹이런게현실도피나패배주의는아닌지돌아보아도,내게는딱히이루고싶은것도생활에보태고싶은것도없다.지금내방에는내게필요한모든것이있다.방에서나는아무것도잃을것이없다.(23쪽)

내방의주인은어둠이다.그는방에서가장많은자리를차지하고있다.세간살이와내가있는공간을빼고남은전부가그의것이다.방에존재하는모든것들의속내까지그가깃들지않은데는없다.(36쪽)

사람간의접촉은적으면적을수록좋다고생각한다.우리의마음을괴롭히는대개의것들이타인과의만남에서온다.다툼,오해,불신,배신,갈등,시기,질투따위는사람과사람사이에깃든다.저부정적인감정들은오롯이혼자인사람에게파고들지못한다.(82쪽)

방이나의낚시터라면,낚싯대는시선이고눈빛은찌다.낚싯바늘에는기억이미끼로달려있다.나는힘차게낚싯대를던진다.그다음은그대로기다릴따름이다.한마리감정,한마리생각,한마리느낌,한마리고독이미끼를채갈때까지.(90쪽)

고양이의몸놀림은꼭붓놀림같다.고양이의움직임을눈으로좇다보면마치어떤거대한존재가방이라는도화지에그들을붓끝삼아무언가를그리는듯하다.고양이가살그머니움직일때그운필은몹시신중하고,우다다뛸때는일필휘지다.방한곳에움츠리고있는고양이는마침표따위의문장부호이거나화룡점정이다.(96쪽)

책을보다울컥할때우리는작가의슬픔을엿본것이아니다.주인공의슬픔에공감하는것도아니다.원래우리안에있던슬픔이깨어났을뿐.책은우리를슬프게할수없다.몸속을돌던피가작은상처에도배어나오듯책의한구절에찔려구멍난마음밖으로슬픔이흘러나오는것이다.이미슬펐던마음만이책을읽고슬퍼할수있다.책은슬픔을모른다.슬픈책은없다.슬픈것은우리다.(110쪽)
의식적이든무의식적이든스스로를초라하게느끼는사람만이타인에게서초라함을본다.나는초라한저개를견딜수없다.인간의,인간에의한,인간을향한저맹목.개의눈동자는틀림없이나와닮았다.나는방밖에개를남겨둔채방문을닫는다.그렇게나는방밖에없는사람이된다.(149쪽)

“네가뭘안다고그래!”라는외침은그래서정당하다.몇번을죽었다깨도나는너의,너는나의고통을이해하지못한다.경험의특수성을보편화하려는시도의끝은이해가아니라오해다.우리는오해를통해서만서로를이해한다.우리는오해의운동장에서만나어울려놀다가이해할수없다는표정을지은채각자의방으로돌아간다.나는아무도오해하고싶지않아서다시방밖으로나가지않는다.(153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