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ription
미국물리학회 첫 여성 회장, 살아 있을 때 자신의 이름을 딴 소행성을 갖게 된
첫 과학자, 울프 물리학상 첫 수상자, 원자의 비밀을 밝힌 물리학자
이처럼 뛰어난 업적에도 노벨상을 받지 못한 여성 과학자, 그러나
‘물리학의 여왕’, ‘물리학 연구의 퍼스트 레이디’라 불리는 과학자, 우젠슝 이야기!
첫 과학자, 울프 물리학상 첫 수상자, 원자의 비밀을 밝힌 물리학자
이처럼 뛰어난 업적에도 노벨상을 받지 못한 여성 과학자, 그러나
‘물리학의 여왕’, ‘물리학 연구의 퍼스트 레이디’라 불리는 과학자, 우젠슝 이야기!
우젠슝이 일군 놀라운 업적들!
우젠슝 또는 우 마담(학생들은 우젠슝을 이렇게 불렀다)이 쌓은 업적은 놀라웠다. 베타 붕괴가 일어나는 동안 전자가 중성자를 박차고 뛰쳐나오려면 전자의 속도가 더 빨라져야 한다고 주장한 물리학자 엔리코 페르미의 가설을 그 누구도 증명하지 못했는데, 이를 증명해 낸 사람이 바로 우젠슝이다. 또한 물리학자인 양전닝과 리정다오는 자연은 왼쪽과 오른쪽을 구분하지 않는다는 이른바 ‘패리티’라는 대칭 개념에 의문을 품었으나 이를 입증하는 데 실패하자 우젠슝에게 입증을 부탁했고, 우젠슝은 이를 입증해냈다. 또 다른 유명한 물리학자인 리처드 파인만과 머리 겔-만이 우젠슝에게 베타 붕괴의 특별한 발현에 관한 자신들의 가설을 살펴봐 달라고 부탁하자 우젠슝은 이번에도 평소처럼 철저하게 실험해서 그 가설이 맞는다는 걸 입증해 보였다.
이처럼 ‘베타 붕괴’를 입증해 보이거나 패리티 법칙에 이의를 제기한 실험 등을 해낸 것 말고도 우젠슝이 이룬 업적은 누구보다 대단했다. 따라서 미국물리학회 회장으로 선출된 최초의 여성(1975), 살아생전에 자신의 이름을 딴 소행성을 갖게 된 최초의 과학자, 울프 물리학상 첫 수상자(1978), 프린스턴 대학교 측이 전임 강사로 채용한 최초의 여성, 프린스턴 대학교에서 명예박사 학위를 받은 최초의 여성 등 여러 업적에서 최초의 여성이라는 타이틀이 그의 몫이 된 것은 단순히 우연히 이루어진 결과가 아니었다.
노벨상이 외면한 ‘물리학의 여왕’!
엔리코 페르미는 우젠슝이 증명한 베타 붕괴 이론을 바탕으로 연구를 이어가 1938년에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다. 양전닝과 리정다오는 유젠슝이 입증한 연구로 1957년에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다. 리처드 파인만도 1965년에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다. 많은 과학자가 중요한 성과들이 있을 때마다 이 공로를 우젠슝에게 돌렸다. 그러나 우젠슝은 한 번도 노벨상을 받지 못했다. 심지어 때로는 바라는 일자리를 얻지 못할 때도 있었다. 그저 여자라는, 아시아인이라는 이유 때문에.
남자 동료 과학자들이 노벨상을 받고 스포트라이트를 받을 때 자신은 외면당하더라도 우젠슝은 이에 굴하지 않고 자신이 해야 할 일을 묵묵히 해냈다. 그리고 마침내 이런 편견과 맞서 싸워 실력을 인정받았다. 이런 그를 가리켜 ≪뉴스위크≫는 ‘물리학의 여왕(queen of physics)’이라고 불렀고, ≪스미소니언≫은 ‘물리학 연구의 퍼스트레이디’라 불렀다.
우젠슝은 중국의 한 시골 마을 출신의 여자아이에 불과했다. 우젠슝이 태어나고 자랄 당시 중국은 여자는 남자보다 뛰어나지 못하니까 교육받을 필요가 없다고 하는 등 남녀차별이 극심한 때였다. 그러나 이 조그만 여자아이는 개화된 사상과 신념을 가진 부모님의 후원과 자신의 노력으로 세상의 편견을 하나둘씩 깨며 가시밭길을 헤쳐 나갔다. 남자아이들처럼 학교에 가고, 여자아이도 여느 남자아이들처럼 똑똑하다는 걸 스스로 입증해 보이고, 과학자가 되는 법을 배우고, 과학사에 길이 남을 위대한 업적을 쌓고, 사람들이 존경하는 ‘물리학의 여왕’이 된다. 『물리학의 여왕 우젠슝』은 험난하고 먼 길을 포기하지 않고 용감하게 걸어간 우젠슝의 감동적인 이야기를 들려준다.
세상의 편견을 깬 부모님의 교육, 세계 물리학계를 뒤흔들다!
우젠슝(吳健雄, 오건웅, 1912~97)은 1912년 5월 31일에 중국의 작은 마을 류허에서 태어났다. 우젠슝의 부모님은 당시의 세태에 순응한 다른 부모들과 달리 개화된 생각을 갖고 있었다. 여자아이도 남자아이와 동등하며, 남자아이와 똑같이 교육받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우젠슝의 부모님은 여자아이들만 가르치는 학교를 직접 세워 아이들을 가르쳤다. 딸에게는 여성을 바라보는 세상의 편견에 아랑곳하지 말고 인내심을 가지라며 용기를 불어넣어 주었다.
우젠슝은 이에 보답이라도 하듯 공부를 열심히 했고, 쑤저우 여자제2사범학교에서 드디어 물리학의 매력에 푹 빠지게 된다. 공부를 더 하고 싶었던 우젠슝은 의욕과 열정 하나만으로 미국 유학을 떠났고, 뉴욕의 컬럼비아 대학교에서 ‘베타 붕괴’를 파고들게 된다. 여자이며 아시아인이라는 한계와 편견 속에서 부모님의 장례식에도 참석하지 못할 만큼 열심히 노력한 끝에, 당대의 내로라하는 과학자들이 해결하지 못해 쩔쩔매는 난제들을 깔끔하게 풀어주는 위대한 과학자로 우뚝 서게 된다.
인내심은 그가 미국에서 소수자들을 대하는 편견과 부딪혔을 때 많은 도움을 주었다. 그의 부모님은 여자아이도 원한다면 그 무엇이든 될 수 있다고 믿었고, 자신들의 딸도 그렇게 믿도록 가르쳤다. 부모님의 가르침은 훗날 우젠슝이라는 물리학의 여왕이 탄생하는 밑거름이자 시작이 되었다. 세상의 편견을 깨는 개화적 사고와 자녀교육은 결국 세계 물리학계를 뒤흔드는 파란을 일으키게 된다. 여성도 얼마든지 훌륭한 과학자가 될 수 있다고 직접 보여주고 믿을 수 없을 만큼 놀라운 업적들을 쌓은 우젠슝은 1997년 2월 16일에 뉴욕에서 사망했다.
우젠슝 또는 우 마담(학생들은 우젠슝을 이렇게 불렀다)이 쌓은 업적은 놀라웠다. 베타 붕괴가 일어나는 동안 전자가 중성자를 박차고 뛰쳐나오려면 전자의 속도가 더 빨라져야 한다고 주장한 물리학자 엔리코 페르미의 가설을 그 누구도 증명하지 못했는데, 이를 증명해 낸 사람이 바로 우젠슝이다. 또한 물리학자인 양전닝과 리정다오는 자연은 왼쪽과 오른쪽을 구분하지 않는다는 이른바 ‘패리티’라는 대칭 개념에 의문을 품었으나 이를 입증하는 데 실패하자 우젠슝에게 입증을 부탁했고, 우젠슝은 이를 입증해냈다. 또 다른 유명한 물리학자인 리처드 파인만과 머리 겔-만이 우젠슝에게 베타 붕괴의 특별한 발현에 관한 자신들의 가설을 살펴봐 달라고 부탁하자 우젠슝은 이번에도 평소처럼 철저하게 실험해서 그 가설이 맞는다는 걸 입증해 보였다.
이처럼 ‘베타 붕괴’를 입증해 보이거나 패리티 법칙에 이의를 제기한 실험 등을 해낸 것 말고도 우젠슝이 이룬 업적은 누구보다 대단했다. 따라서 미국물리학회 회장으로 선출된 최초의 여성(1975), 살아생전에 자신의 이름을 딴 소행성을 갖게 된 최초의 과학자, 울프 물리학상 첫 수상자(1978), 프린스턴 대학교 측이 전임 강사로 채용한 최초의 여성, 프린스턴 대학교에서 명예박사 학위를 받은 최초의 여성 등 여러 업적에서 최초의 여성이라는 타이틀이 그의 몫이 된 것은 단순히 우연히 이루어진 결과가 아니었다.
노벨상이 외면한 ‘물리학의 여왕’!
엔리코 페르미는 우젠슝이 증명한 베타 붕괴 이론을 바탕으로 연구를 이어가 1938년에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다. 양전닝과 리정다오는 유젠슝이 입증한 연구로 1957년에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다. 리처드 파인만도 1965년에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다. 많은 과학자가 중요한 성과들이 있을 때마다 이 공로를 우젠슝에게 돌렸다. 그러나 우젠슝은 한 번도 노벨상을 받지 못했다. 심지어 때로는 바라는 일자리를 얻지 못할 때도 있었다. 그저 여자라는, 아시아인이라는 이유 때문에.
남자 동료 과학자들이 노벨상을 받고 스포트라이트를 받을 때 자신은 외면당하더라도 우젠슝은 이에 굴하지 않고 자신이 해야 할 일을 묵묵히 해냈다. 그리고 마침내 이런 편견과 맞서 싸워 실력을 인정받았다. 이런 그를 가리켜 ≪뉴스위크≫는 ‘물리학의 여왕(queen of physics)’이라고 불렀고, ≪스미소니언≫은 ‘물리학 연구의 퍼스트레이디’라 불렀다.
우젠슝은 중국의 한 시골 마을 출신의 여자아이에 불과했다. 우젠슝이 태어나고 자랄 당시 중국은 여자는 남자보다 뛰어나지 못하니까 교육받을 필요가 없다고 하는 등 남녀차별이 극심한 때였다. 그러나 이 조그만 여자아이는 개화된 사상과 신념을 가진 부모님의 후원과 자신의 노력으로 세상의 편견을 하나둘씩 깨며 가시밭길을 헤쳐 나갔다. 남자아이들처럼 학교에 가고, 여자아이도 여느 남자아이들처럼 똑똑하다는 걸 스스로 입증해 보이고, 과학자가 되는 법을 배우고, 과학사에 길이 남을 위대한 업적을 쌓고, 사람들이 존경하는 ‘물리학의 여왕’이 된다. 『물리학의 여왕 우젠슝』은 험난하고 먼 길을 포기하지 않고 용감하게 걸어간 우젠슝의 감동적인 이야기를 들려준다.
세상의 편견을 깬 부모님의 교육, 세계 물리학계를 뒤흔들다!
우젠슝(吳健雄, 오건웅, 1912~97)은 1912년 5월 31일에 중국의 작은 마을 류허에서 태어났다. 우젠슝의 부모님은 당시의 세태에 순응한 다른 부모들과 달리 개화된 생각을 갖고 있었다. 여자아이도 남자아이와 동등하며, 남자아이와 똑같이 교육받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우젠슝의 부모님은 여자아이들만 가르치는 학교를 직접 세워 아이들을 가르쳤다. 딸에게는 여성을 바라보는 세상의 편견에 아랑곳하지 말고 인내심을 가지라며 용기를 불어넣어 주었다.
우젠슝은 이에 보답이라도 하듯 공부를 열심히 했고, 쑤저우 여자제2사범학교에서 드디어 물리학의 매력에 푹 빠지게 된다. 공부를 더 하고 싶었던 우젠슝은 의욕과 열정 하나만으로 미국 유학을 떠났고, 뉴욕의 컬럼비아 대학교에서 ‘베타 붕괴’를 파고들게 된다. 여자이며 아시아인이라는 한계와 편견 속에서 부모님의 장례식에도 참석하지 못할 만큼 열심히 노력한 끝에, 당대의 내로라하는 과학자들이 해결하지 못해 쩔쩔매는 난제들을 깔끔하게 풀어주는 위대한 과학자로 우뚝 서게 된다.
인내심은 그가 미국에서 소수자들을 대하는 편견과 부딪혔을 때 많은 도움을 주었다. 그의 부모님은 여자아이도 원한다면 그 무엇이든 될 수 있다고 믿었고, 자신들의 딸도 그렇게 믿도록 가르쳤다. 부모님의 가르침은 훗날 우젠슝이라는 물리학의 여왕이 탄생하는 밑거름이자 시작이 되었다. 세상의 편견을 깨는 개화적 사고와 자녀교육은 결국 세계 물리학계를 뒤흔드는 파란을 일으키게 된다. 여성도 얼마든지 훌륭한 과학자가 될 수 있다고 직접 보여주고 믿을 수 없을 만큼 놀라운 업적들을 쌓은 우젠슝은 1997년 2월 16일에 뉴욕에서 사망했다.
물리학의 여왕 우젠슝 : 원자의 비밀을 풀다 (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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