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광

백광

$14.50
Description
“저 아이를 죽여 주세요”
눈부시게 아찔하고 숨 막히게 매혹적인 치정 미스터리
독자와 평단은 물론 동료 작가들로부터 명실공히 천재 작가로 평가받는 렌조 미키히코. 그는 발표하는 작품마다 치밀한 서술 트릭과 허를 찌르는 반전으로 장르적 재미를 충족시키면서도, 남녀 간의 그릇된 애정을 중심으로 한 인간 드라마를 서정미 가득한 문체로 담아내 격조 높은 문학성까지 두루 갖춘 독창적 작품 세계를 선보여 왔다. 렌조 미키히코의 작품 세계를 대표하는 소설로, 거듭하는 반전을 다룬 솜씨가 백미로 꼽히는 『백광』이 모모에서 출간되었다.
세상이 전부 녹아내릴 듯 뜨겁던 여름날. 어느 가정집 안마당에서 네 살 난 여자아이의 시체가 발견된다. 사망 추정 시간에 호텔에서 불륜을 즐긴 아이의 엄마, 아내의 불륜 사실을 폭로하려던 아이의 아빠, 치과에 예약 진료를 받으러 간 이모, 아이를 데리고 집을 지키던 할아버지, 잠깐 집에 들렀던 이모부, 황급히 집을 뛰쳐나갔던 낯선 남자까지…. 여아의 시체를 둘러싸고 평범한 일가족이 각자 감추어오던 충격적인 진실을 고백하며 서로를 살인범으로 지목한다. 한 명, 한 명이 고백할 때마다 범인이 바뀌고 사건이 뒤집히는 믿기 어려운 반전 속에서, 과연 누가 진실을 말하고 누가 거짓을 말하는 걸까? 또 여자아이를 죽인 진짜 범인은 누구일까?

저자

렌조미키히코

‘장르적재미’와‘문학적예술성’으로독자들로부터는탄성을자아내고,동시대작가들에게는경외에찬질시를받은천재작가.1948년아이치현에서태어나와세다대학정치경제학부를졸업했다.대학교재학중에『변조2인극』으로겐에이죠신인상을수상했으며,1981년『두번의동반자살』로일본추리작가협회상을,1984년『달맞이꽃야정』으로요시카와에이지문학신인상을수상했다.같은해에『러브레터(戀文)』로나오키상을수상했다.1996년『음울한코미디』,『나라는이름의변주곡』,『장식불』,『지는해의문』,『미의신들의반란』등을발표했다.2013년타계했다.

렌조미키히코의열렬한팬으로알려진이사카고타로는『백광』을두고“충격이연속으로이어지는더할나위없는렌조미키히코표미스터리의걸작”이라는극찬을보내면서다음과같이말한다.“각장마다화자가바뀌며고백하는형태로이야기가진행됩니다.그때마다사건을다른각도에서바라보게되는데,고백이끝날때마다독자들로부터‘뭐,정말그랬던거야?’라는비명이절로터져나오게만드는충격적일정도로놀라운반전이준비되어있습니다.”그렇다,『백광』은『은하영웅전설』의작가다나카요시키가“이런작가가있는데어떻게미스터리를쓸수있겠는가!”라며경탄을금치못했던그렌조미키히코의마스터피스다.

목차

1-11
옮긴이의말

출판사 서평

평범한일가족의내면을잠식한
끔찍한욕망에대한이야기

치매증세가있는노인게이조는아들류스케와며느리사토코,그리고손녀딸가요와한지붕아래에서편안한노후를보낸다.하지만며느리사토코여동생의딸나오코가시체로발견되자평범한일상은단번에산산조각이난다.그러자사토코의입에서이렇게진실이새어나온다.“이집이평범하고평온했던일은한번도없었던것이다.모두가그런척했을뿐이다.”(p.193)
거리낌없이불륜을저지르고전리품삼아아이를낳는여자,아내의불륜사실은묵인한채자살을시도하는남자,효부며지혜로운아내며다정한엄마역할이지긋지긋한여자,수십년전남태평양에서저지른살인의추억에빠져사는남자까지,보통사람들로보이는일가족은내면에욕망,질투,배신감,복수심,심지어살의가들끓는남녀일뿐이다.『백광』은‘평범’과‘평온’,‘보통’과‘상식’이얼마나쉽게깨지기쉬운연약한가면인지를샅샅이들추어낸다.
렌조미키히코는이러한문제의식을뛰어난문학성과특유의매혹적인작풍으로유감없이펼쳐보인다.“존재하는것만으로도남자를충동질하는몸,제몸이명령하는대로살아가는뜨겁고유연한액체유리”(p.225)로묘사되는인물유키코는도덕혹은윤리에비해욕망이얼마나강력한지를상기시킨다.또한살갗을휘감는한여름의무더위,남태평양섬의원색적화려함,어둡고끈적거리는듯한집안분위기를뒤엉키듯교차시키면서보통사람들이평온해보이는일상아래에숨겨두고간신히참아내고있는위태롭고어두운욕망과그로인해일그러진내면을감각적인은유로전달한다.


이런미스터리를읽고싶었다!
치밀하게설계된트릭과연쇄적반전이주는충격적쾌감

소설의모든요소에트릭이설계돼있다면믿을수있겠는가?『백광』은인물의캐릭터설정,인물의발화,상황에대한묘사,사건의전개방식까지‘모든것이트릭’이다.
“착하고관대한남자”(p.172)로소개된인물이“따분하고아무매력도없는사람”(p.59)으로일컬어진다든가,“나는지금너(남성)을껴안고싶어”(p.115)라고말하며유혹했던다케히코가“나는여자에게만관심이있는남자야.”“네가내아내의몸에서맛본쾌락은내게서훔쳐간것이니까짐승에게폭행을당하는혐오스러운방식으로그대가를치러줬으면하는데,어때?”(p.115)라고말하며겁박한다든가,시스루옷에대해“가린다기보다오히려검은망사너머로살빛을강조해서보는사람을자극하려는것같았다”(p.95)라는식으로독자가예상할수있는상상력의범주를가뿐히뛰어넘는다.
무엇보다도혼을쏙빼놓는것은‘고백’이라는서술기법을통한일곱번의연쇄적반전이다.진실을토로하겠다며고백하는각각의등장인물들.하지만그다음인물의고백을들어보면앞에서들은고백은단지그사람만의진실,혹은그사람을위한진실이었고,오히려거짓된범인을유추하게하는트릭이었음을깨닫게된다.이렇듯일곱명의고백에잇따르는일곱번의반전이주는의외성이독자를충격으로몰아넣는다.독자의예측을유도하고그예측을매번뒤엎는치밀하게계산된문장의힘에독자들은그저놀랄수밖에없다.


“죽이려고도했지만,살리려고도했어요.”
진실은이분법너머에있다

『백광』은반의어의충돌로가득하다.선과악,죄와벌,사랑과증오,믿음과배신,고백과거짓말,사람과인형(사람인척하는사물),치매와치매인척하기.세상만사가이분법으로분명히나뉜다면혼돈은없을것이다.하지만이소설은모두가별다른의도가없었음에도죄를짓게됨을현실적으로보여주며독자를섬뜩하게만들고혼돈에빠뜨린다.상반되는개념을자유자재로넘나드는작가의기교는트릭이나반전의재미로만쓰이는것이아니라주제의식으로까지한걸음더나아간다.
또한이소설은좋은사람,나쁜사람이라는선입견을여러번뒤엎으며좋음과나쁨의경계를허물고나서분명한선악의기준을생각해보게끔만든다.누군가에게는선이다른이에게는악이라면,무엇이선이고또무엇이악인가.“여름한낮의하얀빛에녹아들어내가무슨짓을했는지도지금껏분명하게생각나지않”(p.168)는것처럼진실은“탁한유리창몇겹너머에놓고바라보는듯희미”(p.9)한어떤것일지도모른다.


<책속에서>
만세소리와아내의미소로배웅을받으며죽음의길을떠났던전쟁통의그날밤,그리고천신만고의항해끝에도착한남태평양의섬,허연불꽃처럼작열하는태양빛이내리쬐는,새파란바다에둥실떠오른듯한원색의섬.그두가지는몇번을떠올려도처음과똑같이선명하게내머리와몸을온통점령한다.(p.14~15)

“여자애를찾는거라면아까젊은남자가저기종려나무밑에파묻고갔어….”
돌덩이같은등이내뱉은그말은환청처럼실감이나지않고침묵보다더허허로웠습니다.
“종려나무같은건없어요.저건능소화잖아요.”
정원한쪽에서있는나무에지그시시선을던지는시아버지의옆얼굴을사토코씨는섬뜩한듯이바라보며그렇게말했습니다.(p.43)

여태껏이집에똬리를틀고있던뭔가가시어머니돌아가신뒤에조금씩조금씩겉으로스며나온끝에결국한소녀의죽음이라는형태로터져나온것이다.아니,이번사건으로모두다토해낸게아니다.이집이검은비닐봉투에폭싸서감춰둔쓰레기는그사건으로도미처다토해내지못한채그로부터일주일이지난지금,여름늦더위에썩어문드러져마침내불쾌한냄새를풍기고있다….(p.81)

나오코의머리카락이틀림없다.유키코자신의머리카락을꼭닮았기때문이다.역시히라타는그날나오코와어떤식으로든만났었다….하지만그래도히라타는범인이아니다.진짜범인은바로나다.나는그날호텔방에서한발짝도밖에나가지는않았다.하지만나는그시간에그집정원에서일어난일들을모조리보고있었다.능소화나무뒤편에서이그림책의늑대와똑같은표정으로.(p.139~p.140)

자꾸꽃넝쿨로목을매려다가나동그라져죽지못하고웃음소리를올리는노인을보고있으려니어쩐지나오코의죽음까지그리슬픈사건이아닌것처럼생각되는것이었다.지난이년동안노인의괴상한말과행동을혼자감당하면서사토코는신경이갈기갈기찢기는듯한,도무지어떻게도할수없는피로감을느껴왔지만왠지이순간,사토코는처음으로이노인네는미친게아니라고느껴졌다.오히려이노인네만정상이고,미친건우리쪽이다.나를포함해죽음을잔혹하고슬픈것으로만받아들이는사람들이오히려미친것이다….(p.186)

성인이되면서유키코는언니에게이길수있는것을딱한가지갖게되었다.그저존재하는것만으로도남자를충동질하는몸….그녀를유리라고한다면아직녹아있는상태의뜨겁고유연한액체유리였다.남자를갖고놀듯이마음껏꿈틀거리며형태를바꾸는몸.그몸을무기로유키코는언니가가진것을빼앗으려고했다.(p.225)

“죽여도좋아”라고여자는말한다.“괜찮아,당신역시고통에서벗어날수있고,이아이역시고통에서해방될테니까.이아이는천사처럼행복한얼굴을하고있지만사실은당신과또다른사람들의미움을그작은몸으로미처다받아내지못해울먹거리고있어.그러니까이아이도편해지는거야….모두를위해서야.그러니까괜찮아.”(p.28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