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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석
한국국학진흥원수석연구위원영남대에서「퇴계심학연구」로박사학위를받았다.대표저서로?퇴계학의이해??안다는것에대한동양적성찰?등이있고,논문으로「성재일기에나타난16세기재지사족의교유양상」「성학십도기반인성교육모델을둘러싼쟁점연구」「20세기유학자남붕의구학,그전개와좌절」「한국과베트남의유학연구교류방안」등이있다.
책머리에1장20세기유학자남붕의『해주일록』,신념과좌절의역정ㆍ김종석남붕,구학그리고『해주일록』|일기에나타난남붕의생애|유교공동체회복을위한활동|남붕구학의철학적기반|20세기보수유림에대한평가2장해주남붕의일기를통해본일제강점기유교지식인의시대인식과현실대응ㆍ조정현머리말|『해주일록』에기록된일제강점기선비의일상|격변기재지사족의사회활동과이상추구|전근대적유교지식인의시대인식과현실대응|맺음말3장해주남붕의학문세계와지향점ㆍ문희순들어가며|생애와하루|학문의세계|궁극의지향점|맺으며4장20세기영덕지역유학자,남붕의강학활동과의미ㆍ안경식교육의관점에서보는남붕연구의의미|교육자로서남붕의일상|독서인으로서남붕의일상|경공부의수행인으로서남붕의일상|현대교육과남붕의강학활동의의미5장일제강점기한유학자의경제생활과재부관:남붕의『해주일록』을중심으로ㆍ이성임들어가며|영해원구리|토지소유규모|농사짓는방식|머슴의고용|일본의그늘아래서|전통의끝자락을붙들고|나오며6장일제시기향촌사회의질병과치료:『해주일록』을중심으로ㆍ손경희48년간일기를쓰다|가뭄이자주발생하다|남붕,실용적인자세로질병을치료하다|남붕,모든것을던져질병을치료하다|나오며
평생을독서하고아동과청년을가르치며위태로운시대에유학의빛을꺼트리지않으려애썼던해주남붕의치열한수행기록인일기를통해구한말영남지역보수유림의생활사를복원하다민간에소장된자료들가운데일기류는관찬사료에는보이지않는소중한기록들이수록되어있다.오랜시간민간소장일기류를발굴및번역해온한국국학진흥원연구사업팀이한해동안연구한결과를단행본으로묶어출간하는‘국학자료심층연구총서’제18권『해주일록』이출간되었다.『해주일록』은20세기초경북영해에살았던유학자남붕南鵬(1870~1933)이쓴일기이다.남붕은17세가되던해부터일기를쓰기시작하여세상을떠날때까지48년간일기를기록하였다고하나현재남아있는것은1922~1933년사이의일기뿐이다.많은양이유실되어아쉬움이크지만일제강점기유학자의치열한삶과일상이충실히담긴11년치의일기만으로도충분히값진자료이다.해주남붕은일기에하루일과,자신이공부한내용,집안을유지하기위한금전출납,농사일의대소사,자신과가족들의질병및치료뿐만아니라영해를중심으로당대유학계의동향을기술하고있다.우리는이일기에서당시유교개혁의흐름과상반되는입장에있었던보수유림의움직임과생각을읽어낼수있다.재조명되는일기문학의중요성개인일기에서시대읽기의초석으로남붕은1932년어느날의일기에서“어느호사가가내평생쓴일기를정리하여한질의책을만든다면,내가일생고심한것을알것이고내가이세상에서이룬것이없음을슬퍼할것”이라고썼다.또한일기를쓴이유로는“살피고증거로삼는데도움이된다”고밝히며,자신의일상을소상하게기록하였다.개인적이고도일상적인담론으로부터출발하는최근역사연구의경향성을예견하고준비하듯,남붕은자신의일기를대중에공개되는공식적인기록으로,또한당시의사실과자신의의견을피력할수있는‘공공의문서’로인식한것이다.이는일기를쓰기만한것이아니라후에다시보면서수정하였던모습에서드러난다.실제로남붕의일기는관찬사료에는드러나지않는역사상의빈곳을살펴볼수있는기회를제공하며,이번책에서는총여섯명의연구진이참여하여다각도로역사의모습을복원하고자하였다.김종석은『해주일록』을통해20세기초영남의보수유림들이어떤생각을지니고살아갔는지를고찰했고,조정현은격변기지방에살던유림이지식인으로서현실에어떻게대응하며어떤사회문화활동을했는지에주목했다.문희순은남붕의학문세계를탐구하되,퇴계이황을존모하고계승하려한노력과문학에대한인식론,인생의지향점등에초점을맞추었다.안경식은유학이위기를맞은20세기초유학자의교육이라는측면에서남붕의일상을들여다보며,교육자,독서인,수행자로서의측면을각각조명하였다.이성임은일본의침략이노골화되던시기남붕이자신의가정경제를어떻게이끌어갔는지,농사과정및재산관리등의내용을짚어보았다.손경희는『해주일록』을통해영덕군의자연재해및질병실태를확인하고,남붕과그주변인물들이앓았던질병과그치료내역을확인한다.수기치인과위기지학의유교지식인남붕수행적인삶의한계와정당한자리매김구한말과일제강점의격변기,해안지방의작은고을인경북영덕군영해지역에세거하였던해주남붕은7세에한문공부를시작하여64세의나이로죽기까지일관되게한길로만살았다.퇴계로부터이어지는영남학의적통을이어받았고그점을자부하였으며,유학경전과성리학공부를통하여자신의인격을도야하려애썼다.과거시험에낙방한뒤자의반타의반벼슬길에나아가지않았지만남붕은독서와중국어공부,중국및국내유림들과의교유,태극교활동,후진양성활동등을통해지역유교지식인으로서의삶을살았다.이를위해중국어를배우고우편제도를적극활용하고,일본식농경기술을수동적으로나마받아들이는등자신의사상적신념을지키면서도변화된환경에적응하려했다.하지만남붕은다양한방식의적극적인시도에도제대로성과를내지못하고전체적으로기존유림의방식에안주하는모습을유지했다는한계를보였다.새로운지역에가서자신의유교적이상을펼치고자했지만별다른성과없이귀향했고,향교에신식중학교를설립하는데반대했지만관철시키지못했다.향약을되살려제대로시행해보려했지만,지역주민들의참여는배제되고소수의유림들만참여하는방식으로잔존하게됨에따라세상과더욱괴리되고말았다.그의경제생활도이러한측면과맥을같이하는데,남붕은일본의경제시스템구조가성립된상황에서전통의끝자락을붙든채전통으로의회귀를꿈꾸었다.무너진종가를세우고흩어진조상의땅을되찾기위한노력을쉬지않았으나,과거제가폐지되어학문을통한관직진출이단절된상황에서학문과농사를병행하는것이쉬울리없었다.그는평생농사에진력하지못해재산을확대하지못했다.일제강점기의각종갈등과압박속에서자신이꿈꾸는세상이위축되고노쇠해질수록남붕은내적영역에더욱충실한삶을살며위기지학에전념하고,명멸되어가는유업(儒業)이후인들에게지속적으로이어지기를바라며일생동안강학을하며교육자로살았다.그는영남지역에서상당한명성을지닌교육자였으며,자신의집안뿐아니라근방및원거리의학동및청년들이그에게수학받고자찾아왔다.시대의변화와는무관할것만같은선비의삶은모순과혼란속에서도일정한방향성을보였다.그간개혁유림,즉유교개혁론의논의에만학계의초점이맞추어져왔으나실상대다수는남붕과같은보수유림이었고이들의삶을조명하고역사의알맞은곳에자리매김하는작업이필요한터였다.매일매일의강학과독서,집안일과농사,주변인과자신의질병을연구하고치료해간내용을소상히담은기록은보수유림이라는그자신의한계속에서도값진사료로서우리에게남게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