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 : 김영하 소설 (개정판)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 : 김영하 소설 (개정판)

$11.50
Description
충격적 신예의 탄생, 가장 강렬한 자기 출현의 예고!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 개정판
김영하 등단 25주년을 맞이해 시작된 ‘복복서가×김영하 소설’ 시리즈 2차분 3종이 출간되었다. 김영하라는 이름을 문단과 대중에 뚜렷이 각인시킨 첫 장편소설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 분단 이후 한국 문학사에 새로운 이정표를 세운 『빛의 제국』, 그리고 비교적 최근작인 소설집 『오직 두 사람』이다.
‘자살안내인’이라는 기괴한 직업을 가진 화자를 등장시켜 그가 만난 ‘고객’들의 일탈적 삶과 죽음을 이야기하는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는 한국문학의 감수성을 김영하 출현 이전과 이후로 갈라놓은 문제작이다. 복복서가판은1996년 초판의 모습을 보존한다는 취지에 충실했던 지난 개정판들과 달리, 원숙기에 접어든 작가가 세밀하게 다듬은 마지막 결정판이 될 것으로 보인다.
저자

김영하

1968년강원도화천에서태어나군인인아버지를따라여러지역을옮겨다니며성장했다.잠실의신천중학교와잠실고등학교를졸업하고연세대학교경영학학사와석사를취득했다.한번도자신이작가가될것이라고생각하지않았지만,대학원에재학중이던1990년대초에PC통신하이텔에올린짤막한콩트들이뜨거운반응을얻는것을보고자신의작가적재능을처음으로깨달았다.서울에서아내와함께살며여행,...

목차

1.마라의죽음_7
2.유디트_16
3.에비앙_49
4.미미_80
5.사르다나팔의죽음_116

해설자살의윤리학(류보선,문학평론가)_121
개정판작가의말_166

출판사 서평

세기말의『나는나를파괴할권리가있다』

김영하에게는세부류의독자가있다.첫째는‘한때김영하를좋아했던’문학독자다.이들은근대한국문학의정서적토대였던낭만주의와센티멘털리즘을단한권의소설로격파한김영하를보면서짜릿한대리만족을경험했다.소재,주제,인물,문체의모든면에서『나는나를파괴할권리가있다』는과격했다.스피드,섹스,수어사이드로압축되는서사는전쟁과이데올로기투쟁으로점철되었던20세기에종말을고하는신드롬이었다.
이소설속나르시시즘과에로티시즘은‘소비자본주의와후기정보화사회’의급류속에서파편화된고독한개인이기댈수있는위안의빈곤을드러낸다.작품속인물들은성별,직업,국적은다르지만하나같이정신적‘고아’들이다.혈연이폭력을합리화하고친밀한유대가착취를정당화하는조건에놓인사람들에게는무연고자가되는편이차라리안전하다.그렇지만동시에‘나’의연속성을입증해줄관계들이부재할때사람은누구든지쉽게자기삶에대한충실성을포기할수있다.세기말의『나는나를파괴할권리가있다』는가공할공허의무게에짓눌린부피없는존재들에관한소설,현대인의냉소와우울을감각적으로묘사한소설이었다.

21세기의『나는나를파괴할권리가있다』

세간의이목을끌며등장해한동안사랑을받던많은작가와작품이그사이잊혀갔다.현대한국소설은십수년의시간도견디지못할만큼수명이짧고,또어쩌면시대를초월하는작품에대한추구도별로없는듯하다.하지만김영하는여전히건재하고,덕분에그에게두번째독자군이생겼다.
다양한경로를거쳐비교적최근작인『살인자의기억법』이나여행에세이를먼저접한독자들이다.이독자그룹에게는『나는나를파괴할권리가있다』가‘파격’과‘도발’의대명사였다는사실이잘믿기지않는다.장르와매체를막론하고온갖자극적인서사가차고넘치는시대에‘이정도면클래식’인것이다.동시대적공감대를떠나온퇴폐와허무의정서는언뜻연극적제스처로보일가능성도있다.
독자는늘새로운작가의등장에열광하지만,작가에게는얼마나오랫동안계속쓸수있는가가무엇보다중요하다.작가의신작은언제나자신의전작들에맞서는분투다.그리하여김영하의작품목록이성공적으로업데이트될수록『나는나를파괴할권리가있다』는점점더과거로밀려난다.하지만『나는나를파괴할권리가있다』는다른어떤소설들보다도철저히1990년대적이었고,따라서이작품은시간이흐를수록유의미한‘시대소설’의지위를획득하게된다.

공공재로서의『나는나를파괴할권리가있다』

많은비평이이소설의이야기요소들을즉자적으로받아들여진지하게분석하지만,이작품의가장독창적인측면은‘파괴’를유희의한양식으로다뤘다는점이다.소설속에서표류하고질주하고무너져가는인물들과달리,일관되게깔끔한톤과매너로자신의일을착착진행시켜나가는인물,즉자살안내인이하고있는일은다름아닌‘글쓰기’다.자살안내인의다른직업은예술가고,그는잉여로서의삶이부과하는권태를견디는수단으로소설을택한인물이다.어쩌면『나는나를파괴할권리가있다』는김영하라는신인소설가가장차무수한독자들을유인해자신이구축한픽션세계로이리저리이끌고다니리라는,미혹의피리부는사나이를예고한소설이었는지모른다.
이번개정판‘작가의말’에서김영하는이런얘기를한다.“이소설은한시대의산물이고,세상에나가독자를만난지도오래되었기때문에이제는어느정도공공재처럼느껴진다.”김영하의세번째독자는이공공재의일부분으로기능한다.작가와독자는소설을매개로이뤄지는‘파괴의역할놀이’에서각자맡은임무를수행하는공범자다.작가의궁극적목표는,어쩔수없다고여기는삶의진부함에의문을품게만드는것이다.그리고그의고객인독자는이노련한조력자의도움을받아일상에박제된‘가짜나’를멋지게부숴버리는꿈을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