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의본질과기록의의미에대한경이롭고도시적인탐구
‘나’는갈카고모의죽음을계기로자기가써야할이야기가멀리있지않고바로자신의가계임을깨닫고는흐릿한사진몇장,불완전한기록몇줄에의존해지난세기격동의현장을관통해살아남은조상들의삶을불멸의기록으로만들겠다고결심한다.
이상한생각이지만,어쩌면이보잘것없는사건들속에고모가불멸의존재로만들고싶었던,중요한증언은없지만뭔가이야기를가진텍스트,불속에던져져재로변하지않을텍스트속으로꼭데려오고싶었던어떤기쁨의실체가담겨있는건아닐까?만약그렇다면고모는성공했다.(21-22쪽)
그러나자신이조상들에대해제대로알고있는것이거의없다는것을발견한다.증조할머니인사라긴즈부르크처럼혼자프랑스파리에가서의대를졸업한후러시아로돌아와서는볼셰비키로혁명에참여했다가이후신분을세탁하고시골에숨어아픈사람들을치료하며살았던문제적인인물도없지않았다.그러나다른가족들은차르의폭정,러시아혁명,두차례의세계대전,홀로코스트,레닌그라드포위전,그리고스탈린시대로이어지는역사의격동기를거치면서과거에대해침묵하는법을배웠고,기록을남기지않거나적극적으로없애버렸다.그리하여가족에관한많은이야기가출처가불분명한설화처럼남는다.‘나’는작은단서들에의지해가족사의흔적을좇아유럽과러시아곳곳을찾아다닌다.그렇게찾아낸공문서,건물,사진,편지,일기들이간직한기억은무엇이며어떤의미를지니고있을까?
‘나’는가족의내밀한이야기를대중에게드러낼때모든작가가겪는어려움에도직면하는데“언젠가내가가족이야기를책으로쓰리라는사실을알고있었다.(…)이네들에대해말하고이들을대신해서말할필요가있다고느꼈지만,첫발을떼기가두려웠고(…)공개하지않은전체가족사에서어느부분에조명을비춰야하는지,또어느부분을어둠속에남겨두어야하는지,즉어둠속에두느냐,빛가운데로드러내느냐를결정하는자가되는게무서웠다”고고백한다.“할아버지와할머니가평생을보이지않는존재로살기위해갖은애를다썼다는사실”도잘알고있었다.그래서‘나’는“가족사를더흥미롭게만들려는모종의시도를한적이거의없었”던가족의전통을따라몇년에걸쳐집요하게취재한사실을드라마로꾸미지않는채로,아니,꾸미지않는정도가아니라아예한무더기의옛날사진과자료처럼독자에게제시한다.
(…)나에게무엇을쓰느냐고물었고나는설명을시작했다.그는“아,작가가자기뿌리를찾아전세계를여행하는책중하나로군요.지금은그런책이많이나오지요“라고말했고,나는“네,그런책이한권더나올겁니다”라고대답했다.(450쪽)
그러나『기억의기억들』은“그런책”중하나가되기를거부하며“그런책”에대한메타적고찰에가깝다.이소설은잊힌집단의일원이었던자신을찾아가는이야기일뿐아니라,때론서정적이고때론사변적으로,과거를이해한다는것이무엇인가,역사와개인의기억이어떻게교차하는가를집요하게성찰한작품이다.
페이스북과인스타그램의시대에쓰인가장전위적인문학적기억법
『기억의기억들』은자서전,픽션,여행기,비평등다양한형식을활용하면서지적탐험과개인의기억을절묘하게엮어낸다.이작품을읽는것은‘나’와함께러시아와유럽곳곳을여행하며그녀가찾아낸가족사진,옛날신문기사,공문서,그림과편지들을같이읽고보는것에가깝다고할수있다.그러나마리야스테파노바가고심끝에창안한이형식이야말로드라마틱하게조율된가짜이야기들,페이스북같은SNS가무한에가깝게생성하는‘타임라인’과맞서는문학적응전의방식임을느끼게된다.
여기서흥미로운점은친절한페이스북이나를대신해서그리고나를위해기억하는게(기억할것과잊어버릴것선택하기)아니라,유동성과불완전성이나에게의무로전가된다는사실이다.계속흘러가는그특성때문에한없이새로운사진으로채워야한다.내얼굴도계속업데이트해야한다.그러지않으면예전얼굴이어땠는지잊을지도모른다.(224쪽)
기억을복원하고그것을이야기로만드는것은문학이맡아온가장중요한역할이었다.하지만페이스북과인스타그램의시대,우리의기억은전송되고,게시되고,쉽게휘발된다.데이터센터에전자적신호로저장된우리의기억들은우리의육체가허용하지못할정도의양과속도로불어나고지나간다.이런시대에오래된사진과파편화된기록에만의존해역사의격동기를겪어낸가족사를오롯이복원하겠다는스테파노바의시도는그자체로문제적이다.그리하여『기억의기억들』을읽는것은‘기억을기억’하려는,동시에기억이란과연무엇이며어떻게기록되어야하는가를집요하게탐구하는,이전혀새로운문학적응전에동참하는잊지못할경험이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