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ription
탄생 100주년을 맞은 프란츠 파농과 우리 이야기
2025년은 프란츠 파농의 탄생 100년이 되는 해이다. 이 책은 불꽃처럼 강렬했던 그의 짧은 삶과 철학, 반식민 투쟁과 알제리 전쟁, 그리고 정신과 의사로서의 개혁적인 시도에 대해 말한다. 1961년 8월, 그는 자신의 책 『대지의 저주받은 사람들』의 서문을 써주기로 한 사르트르를 만나러 로마로 향한다. 서구 제국의 식민지 수탈로 피폐해진 아프리카 국가들의 독립을 위해 투쟁하고, 프랑스의 식민 지배에 신음하던 알제리와 운명을 함께하던 그는 젊은 나이에 암에 걸려 죽음이 임박한 상태였다.
그가 로마에서 사르트르와 함께 보낸 사흘은 역사적인 만남이었고, 예외적인 시간이었다. 두 사람은 제국주의, 식민지의 현실, 알제리 반식민 투쟁 그리고 정신의학에 관해 때로 대립하고 때로 공감하며 이야기를 나눴다. 탄압과 저항으로 점철된 마르티니크 섬 출신 흑인 지식인 파농의 생각과 전 세계 지성인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던 유럽인 철학자 사르트르의 생각에서 과연 어떤 공통점을 찾을 수 있을까?
이 책은 반식민 저항운동의 아이콘이자 정신병 치료에 새로운 지평을 열었던 프란츠 파농의 지적·정치적 전기이자, 그의 업적에 대한 독창적인 해석이다. 특히 반식민 투쟁의 상징이었던 알제리 전쟁의 배경과 과정 그리고 주요 조직과 인물들이 소개되고, 책 맨 뒤쪽에 여러 장에 걸쳐 게재된 매우 충실한 주석이 독자들에게 상세한 정보를 제공한다. 특히 알제리 독립 투쟁의 방식을 두고 독립운동가들이 강경파와 온건파로 분열되고 서로 대립하거나 해방 후 독립 정부의 주도권을 두고 서로 대립하던 양상은 일제강점기와 이후 해방정국에서 벌어졌던 우리 정황과 유사한 점이 많다.
2차 대전이 끝나고 대부분 식민지 국가들이 독립했지만, 세계가 강대국 미국과 소련 영향권 두 블록으로 양분된 동서 냉전이 시작되면서 약소국가들은 또다시 이념 선택을 강요받고 경제적·군사적 종속 상태에 놓였다. 기나긴 제국주의 일본 지배를 받다가 해방되자마자 곧바로 미소 이념 대립의 격전장이 되었고, 아직도 미국의 경제적·군사적 영향력에서 벗어나지 못한 우리나라 현실에서 비극적이면서도 위대했던 혁명가 프란츠 파농의 삶과 철학을 그래픽 노블의 형태로 돌아보는 일은 흔치 않은 기회가 될 것이다.
검은 예수 또는 폭력의 사도
프랑스령 마르티니크에서 태어난 파농은 정신과 의사이자 사상가로 알제리 독립투쟁에 참여한 ‘흰 가운의 전사’였다. 1960년대 미국의 흑인민권운동은 물론 독일의 베트남 전쟁 반대 운동, 일본의 좌익 학생운동, 라틴 아메리카의 반제국주의 운동, 80년대 한국 학생운등 등 억압과 차별에 대항하는 활동가들에게 큰 영감을 준 파농이 소설가 프레데릭 시리에와 일러스트레이터 로맹 라미의 손에서 되살아났다. 그래픽 노블 『프란츠 파농』은 시몬 드 보부아르가 평가한 ‘날카로운 지성과 생명력 넘치는 열정과 냉소적인 유머 감각을 갖춘’ 파농을 독자들 앞에 소환한다.
아프리카 민족주의자들과 미국 흑인민권운동가들은 그를 ‘검은 예수’로, 서구 학계 보수 지식인들은 ‘폭력의 사도’로 평가하는 파농은 프랑스에서 언급하기 ‘거북한’ 사상가였다. 식민지 시기 피지배자들이 겪는 소외와 신경증은 물론이고 지배자인 백인의 심리상태까지 분석한 충격적인 저서 『검은 피부, 하얀 가면』에 대한 당시의 프랑스 출판시장과 학계의 반응은 냉담했고, 식민지 지배자들의 억압과 식민지 피지배자들의 저항을 ‘폭력’이라는 유일한 기준으로 평가하는 이들에게 파농은 위험하고 과격한 사상가일 뿐이었다. 또한 알제리 국민해방전선(FLN)의 일원으로 알제리독립투쟁에 깊숙이 간여한 파농을 언급하는 일은 폭력적인 식민 지배자로서의 프랑스의 민낯과 마주하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탈식민지화를 위한 파농의 정신적, 육체적 투쟁의 일지
이 책은 탈식민지화를 위한 정신의학자로서의 투쟁과 알제리 독립운동가로서의 투쟁의 궤적을 그린다. 그는 아랍인과 원주민의 정신을 ‘원시적 구조’로 특징짓고 ‘하위인간’으로 정의하며 인종차별을 합리화했던 정신의학자들에게 반기를 들었다. 파농은 『대지의 저주받은 사람들』을 통해 식민지 상황에서 아랍인이나 흑인이 겪는 정신적 질환이 인종적 특성이 아니라 오히려 식민주의 산물임을 증명했다. 파농은 정신 질환을 앓는 원주민을 분석하면서, 식민지화의 희생자들이 겪는 자기 부정과 자기 분열을 해결하고자 이론 투쟁을 전개했다.
그는 특히 정신과 치료에 새로운 바람을 일으킨 프랑수아 토스켈의 가르침을 받아 정신 질환 환자들의 사회성 회복과 사회 복귀를 목표로 삼는 ‘사회요법’을 통해 환자의 수용소 감금을 거부하고 병원 관계자, 의료진, 환자 사이의 상하관계도 철폐했다. 그렇게 환자를 소외시키거나 고립시키지 않고 공동체 일원이라는 인식을 심어주며 새로운 사회화의 길로 인도했다. 환자에게 ‘최대한 자유로운 인격, 새롭게 사회화되고, 스스로 선택하고, 주장하고 거부하는 인격’을 갖춘 존재가 될 가능성을 열어준 것이다.
새로운 인간의 출현에 도달하는 수단으로서의 폭력
파농의 이론에서 탈식민화를 위한 저항의 중심에는 ‘폭력’이 있다. 그는 사회요법으로 환자를 ‘병든 인격’에서 해방하고 자주성을 회복하도록 치료했듯이 식민 상황에서 파괴된 식민지 피지배자들의 자아의식과 정체성 회복을 위한 치료법으로 폭력을 제안했다. 그가『대지의 저주받은 사람들』에서 강조한 것은 폭력 자체가 아니라 식민 체제에서 벗어나려는 식민지 피지배자의 자기표현이었으며 지배자들의 폭력에 맞서는 대응 능력의 확인이자 억압받는 운명에서 벗어날 힘을 확인하는, 이를테면 자기 긍정과 자기 존중을 위한 도구로서의 폭력이었다. 폭력은 자아 회복의 가능성이었으며, 탈식민화의 단계이자 궁극적 목표인 ‘노예제와 식민지주의에서 해방된, 회복된 자의식으로 충만한 새로운 인간의 출현’에 도달하는 수단이었다.
타인의 고통에 연대하는 새로운 인간의 탄생
파농이 갈망했던 새로운 인간은 필연적으로 차이를 인정하고 상호 인정의 능력을 갖춘 존재이다. 해방을 위한 폭력은 결국 차이의 인정으로 이어지므로, 타인의 차이를 인정하는 인간으로 거듭나기 때문이다. 파농이 네그리튀드 운동에 내재한 인종의식, 민족주의와 종족 중심주의의 위험을 지적하고 경계하면서 꿈꾼 인간형은 타자와의 상호 인정을 넘어 타자의 고통과 연대하는 존재였다.
2025년은 프란츠 파농의 탄생 100년이 되는 해이다. 이 책은 불꽃처럼 강렬했던 그의 짧은 삶과 철학, 반식민 투쟁과 알제리 전쟁, 그리고 정신과 의사로서의 개혁적인 시도에 대해 말한다. 1961년 8월, 그는 자신의 책 『대지의 저주받은 사람들』의 서문을 써주기로 한 사르트르를 만나러 로마로 향한다. 서구 제국의 식민지 수탈로 피폐해진 아프리카 국가들의 독립을 위해 투쟁하고, 프랑스의 식민 지배에 신음하던 알제리와 운명을 함께하던 그는 젊은 나이에 암에 걸려 죽음이 임박한 상태였다.
그가 로마에서 사르트르와 함께 보낸 사흘은 역사적인 만남이었고, 예외적인 시간이었다. 두 사람은 제국주의, 식민지의 현실, 알제리 반식민 투쟁 그리고 정신의학에 관해 때로 대립하고 때로 공감하며 이야기를 나눴다. 탄압과 저항으로 점철된 마르티니크 섬 출신 흑인 지식인 파농의 생각과 전 세계 지성인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던 유럽인 철학자 사르트르의 생각에서 과연 어떤 공통점을 찾을 수 있을까?
이 책은 반식민 저항운동의 아이콘이자 정신병 치료에 새로운 지평을 열었던 프란츠 파농의 지적·정치적 전기이자, 그의 업적에 대한 독창적인 해석이다. 특히 반식민 투쟁의 상징이었던 알제리 전쟁의 배경과 과정 그리고 주요 조직과 인물들이 소개되고, 책 맨 뒤쪽에 여러 장에 걸쳐 게재된 매우 충실한 주석이 독자들에게 상세한 정보를 제공한다. 특히 알제리 독립 투쟁의 방식을 두고 독립운동가들이 강경파와 온건파로 분열되고 서로 대립하거나 해방 후 독립 정부의 주도권을 두고 서로 대립하던 양상은 일제강점기와 이후 해방정국에서 벌어졌던 우리 정황과 유사한 점이 많다.
2차 대전이 끝나고 대부분 식민지 국가들이 독립했지만, 세계가 강대국 미국과 소련 영향권 두 블록으로 양분된 동서 냉전이 시작되면서 약소국가들은 또다시 이념 선택을 강요받고 경제적·군사적 종속 상태에 놓였다. 기나긴 제국주의 일본 지배를 받다가 해방되자마자 곧바로 미소 이념 대립의 격전장이 되었고, 아직도 미국의 경제적·군사적 영향력에서 벗어나지 못한 우리나라 현실에서 비극적이면서도 위대했던 혁명가 프란츠 파농의 삶과 철학을 그래픽 노블의 형태로 돌아보는 일은 흔치 않은 기회가 될 것이다.
검은 예수 또는 폭력의 사도
프랑스령 마르티니크에서 태어난 파농은 정신과 의사이자 사상가로 알제리 독립투쟁에 참여한 ‘흰 가운의 전사’였다. 1960년대 미국의 흑인민권운동은 물론 독일의 베트남 전쟁 반대 운동, 일본의 좌익 학생운동, 라틴 아메리카의 반제국주의 운동, 80년대 한국 학생운등 등 억압과 차별에 대항하는 활동가들에게 큰 영감을 준 파농이 소설가 프레데릭 시리에와 일러스트레이터 로맹 라미의 손에서 되살아났다. 그래픽 노블 『프란츠 파농』은 시몬 드 보부아르가 평가한 ‘날카로운 지성과 생명력 넘치는 열정과 냉소적인 유머 감각을 갖춘’ 파농을 독자들 앞에 소환한다.
아프리카 민족주의자들과 미국 흑인민권운동가들은 그를 ‘검은 예수’로, 서구 학계 보수 지식인들은 ‘폭력의 사도’로 평가하는 파농은 프랑스에서 언급하기 ‘거북한’ 사상가였다. 식민지 시기 피지배자들이 겪는 소외와 신경증은 물론이고 지배자인 백인의 심리상태까지 분석한 충격적인 저서 『검은 피부, 하얀 가면』에 대한 당시의 프랑스 출판시장과 학계의 반응은 냉담했고, 식민지 지배자들의 억압과 식민지 피지배자들의 저항을 ‘폭력’이라는 유일한 기준으로 평가하는 이들에게 파농은 위험하고 과격한 사상가일 뿐이었다. 또한 알제리 국민해방전선(FLN)의 일원으로 알제리독립투쟁에 깊숙이 간여한 파농을 언급하는 일은 폭력적인 식민 지배자로서의 프랑스의 민낯과 마주하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탈식민지화를 위한 파농의 정신적, 육체적 투쟁의 일지
이 책은 탈식민지화를 위한 정신의학자로서의 투쟁과 알제리 독립운동가로서의 투쟁의 궤적을 그린다. 그는 아랍인과 원주민의 정신을 ‘원시적 구조’로 특징짓고 ‘하위인간’으로 정의하며 인종차별을 합리화했던 정신의학자들에게 반기를 들었다. 파농은 『대지의 저주받은 사람들』을 통해 식민지 상황에서 아랍인이나 흑인이 겪는 정신적 질환이 인종적 특성이 아니라 오히려 식민주의 산물임을 증명했다. 파농은 정신 질환을 앓는 원주민을 분석하면서, 식민지화의 희생자들이 겪는 자기 부정과 자기 분열을 해결하고자 이론 투쟁을 전개했다.
그는 특히 정신과 치료에 새로운 바람을 일으킨 프랑수아 토스켈의 가르침을 받아 정신 질환 환자들의 사회성 회복과 사회 복귀를 목표로 삼는 ‘사회요법’을 통해 환자의 수용소 감금을 거부하고 병원 관계자, 의료진, 환자 사이의 상하관계도 철폐했다. 그렇게 환자를 소외시키거나 고립시키지 않고 공동체 일원이라는 인식을 심어주며 새로운 사회화의 길로 인도했다. 환자에게 ‘최대한 자유로운 인격, 새롭게 사회화되고, 스스로 선택하고, 주장하고 거부하는 인격’을 갖춘 존재가 될 가능성을 열어준 것이다.
새로운 인간의 출현에 도달하는 수단으로서의 폭력
파농의 이론에서 탈식민화를 위한 저항의 중심에는 ‘폭력’이 있다. 그는 사회요법으로 환자를 ‘병든 인격’에서 해방하고 자주성을 회복하도록 치료했듯이 식민 상황에서 파괴된 식민지 피지배자들의 자아의식과 정체성 회복을 위한 치료법으로 폭력을 제안했다. 그가『대지의 저주받은 사람들』에서 강조한 것은 폭력 자체가 아니라 식민 체제에서 벗어나려는 식민지 피지배자의 자기표현이었으며 지배자들의 폭력에 맞서는 대응 능력의 확인이자 억압받는 운명에서 벗어날 힘을 확인하는, 이를테면 자기 긍정과 자기 존중을 위한 도구로서의 폭력이었다. 폭력은 자아 회복의 가능성이었으며, 탈식민화의 단계이자 궁극적 목표인 ‘노예제와 식민지주의에서 해방된, 회복된 자의식으로 충만한 새로운 인간의 출현’에 도달하는 수단이었다.
타인의 고통에 연대하는 새로운 인간의 탄생
파농이 갈망했던 새로운 인간은 필연적으로 차이를 인정하고 상호 인정의 능력을 갖춘 존재이다. 해방을 위한 폭력은 결국 차이의 인정으로 이어지므로, 타인의 차이를 인정하는 인간으로 거듭나기 때문이다. 파농이 네그리튀드 운동에 내재한 인종의식, 민족주의와 종족 중심주의의 위험을 지적하고 경계하면서 꿈꾼 인간형은 타자와의 상호 인정을 넘어 타자의 고통과 연대하는 존재였다.
프란츠 파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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