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산방 한결 시인 자연과 인생을 노래하다 (허병찬 시집)

억산방 한결 시인 자연과 인생을 노래하다 (허병찬 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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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공직 생활을 한다는 것은 책임과 절제, 공동체를 향한 헌신의 시간이라 할 수 있다. 그런 삶을 지나 퇴직 이후에도 자연을 사랑하고 생명을 노래하는 시를 쓴다는 것은 취미를 넘어 삶의 깊이를 이어가는 또 하나의 사명처럼 느껴진다. 자연을 바라보는 따뜻한 시선, 작은 생명에도 귀 기울이는 마음은 세상을 맑고 깨끗하게 만든다. 시 한 편이 지친 하루의 위로가 되고, 무심히 지나치던 바람과 햇살을 다시 느끼게 한다면 그것은 아름다운 변화의 시작이다.

허병찬 시인이 쌓아온 경험은 시 속에서 또 다른 감동으로 피어날 것이다. 사람을 이해하고, 세상을 바라보는 넓은 시야는 자연과 생명을 노래할 때 더욱 빛난다. 그래서 허병찬 시인의 시는 감상이 아니라 삶을 통과해 나온 또 다른 언어가 될 것이다.
- 최주식(시인, 문학평론가) 해설 중에서
저자

허병찬

·1953년경남창녕군이방면출생
·이방초등41회,옥야중17회졸업
·1972년2월옥야상업고등학교(2회)졸업
·1984년방송통신대학행정학과졸업(행정학사)
·1975년2월농수산부창녕통계출장소
·1977년경남4급을류공채창녕군청,경남도청근무
·2012년6월말창녕부군수퇴임(지방부이사관)
·현,사회복지법인동진이사
·현,사단법인국선도연맹사범(밀양수련원)
·K-한류의뿌리를찾아서-우수논문상(국선도연맹)
·현,환경운동실천,우리나라상고사연구
·2025년12월14일(음10.25)씨알명“한결”받음
·2026년서정문학시부문등단

목차

시인의말

제1부봄

입춘

봄,봄,봄
2월을보내며
봄비야
음력2월바람
상흔
누가향기를훔치나
새봄이오는느낌
작은마음하나
꿀맛
봄이오는길
봄의정취
봄비소리
꼼지락봄
쑥도둑
외가가는길
봄날과인생
불꽃같은순간들
억산방연가
꽃이피었는가

제2부여름

그렇게봄은가고
여름길목에서
바람과비
바람과구름의노래
비오는날산촌의풍경
도원경桃源境
여름소회
빈단지하나
빗소리,물소리
견우직녀
절창,매미의노래
여름낭만가객,매미
운문산산행기
개똥참외처럼
8월어느날아침에
여름풀농사

제3부가을

와,가을이다
새벽빗소리
홍시
굼벵이유감
가을산행기
비오는가을
그래도가을이라
가을이혼자저만치가네
11월11일아침에
내마음에단풍을날리며
사과를따면서
11월끝자락에서서
사계와인생
마음에점하나

제4부겨울

회상回想
겨울나그네
김장회고回顧
거름농사
겨울무지개
새알을빚으며
겨울밤비
오늘도나는몸뚱이와그림자와함께
겨울밤이야기1
겨울밤이야기2
새신발을신고
나목처럼
겨울이익으면무엇이될까
겨울과봄사이
제5부자연과환경아침찬가
무지개꿈
새들은왜일찍일어나는가
시중時中
세상을보는눈
땅은말이없다
내고향솥터미
내고장이방면찬가
억산계곡
쓰레기를줍는것은
쓰레기는왜이리많은가
텃밭에서
내가꿈꾸는세상
일상이기적이다
우리는국선도인

제6부추억과인생

고행苦行이낙樂이다
내이름“한결”
이름값
시를쓴다는것은
맹탕인생
눈뜬봉사
삶의이유
내몸이내것이아닌것을
진실앞에서
고귀한만남
내마음의거울
나를깨우는힘
역할일뿐
전력질주하여보았는가
송불암
한길백공종사님
허깨비꽃동산
탈각
마음향기
달팽이삶
세상의벽
결혼45주년에부쳐
자화상
시를줍다
먼길떠난친구에게
새벽
아직인생
내삶의이정표

해설최주식|치열한침묵속에우려낸정직한시
후기글이양숙|마음이따스하고평화롭다

출판사 서평

1.불꽃의순간들로구축된공직자의문학적서사

허병찬시인은평생동안,산을옮기듯많은일을처리하며살아온공직자로매일같이쌓이는서류와책임의무게사이에서자신의인생를지켜냈다.그래서허병찬시인의시는상상이아니라생생하고사실적이어서단내와쓴내가함께배어있다.그의마음한편에는바람이불면일렁이고햇살이스며들면살짝몸을일으키는새싹처럼흙으로돌아가살고싶다는소망이있었다.

퇴직을맞이한후허병찬시인은그새싹을시골마을‘억산방’에심었다.아침이면빨리일어날이유가생겼고,저녁이면하루가보람찼다.삽을들어올리면땅의체온이온몸에와닿았고,씨앗을심으면오래된꿈을심는것같았다.흙먼지가묻은손을털며종종중얼거렸다.
“내가땅을가꾸는게아니라땅이나를가꾸고있구나.”
농사짓는일은고되지만평화가있었다.계절은매번다르면서도변함없이돌아왔고,허병찬시인은인생도결국자연의일부임을깨달았을것이다.

저녁바람이내려앉는시간이면시를썼다.밭고랑사이로흐르는바람과새벽울음을터뜨리는산새,해질녘붉어지는억산방풍경등이시가되었고삶그자체였다.공직생활은허병찬시인에게‘해야할삶’을가르쳤고,억산방은‘하고싶은삶’을알려주었다.그래서지금의삶은오롯이스스로의손과마음으로짓고,쓰고,살아내는시간이된다.

허병찬시인의삶은한편의긴시처럼흘러간다.봄에는희망을뿌리고,여름에는열정을키우며,가을에는감사로거두고,겨울에는다시자신을비워낸다.그는말한다.
“젊어서쌓은경력도좋지만늦게라도내가좋아하는삶을살수있다는건축복입니다.”
그의하루는단순하지만풍요롭다.자연을벗삼아흙을가꾸고,인생을노래하며,세월을아름답게익혀가는허병찬시인은지금,가장자신다운삶을살고있다.

돌아보니공직의길위에는
늘처음의일
미지의일들이나를기다리고있었다
(중략)
그리고퇴임날현관에서정문까지
직원들이목마를태워보내던
감격과환희의박수소리
(중략)
그빛은아직꺼지지않고
내마음의어둠을오래도록비추고있다
-「불꽃같은순간들」부분

‘불꽃같은순간들’은공직생활을문학적사유의장으로끌어올린작품으로직업적경험이허병찬시인의내면적성장과윤리적자아형성에어떻게기여하는지정교하게보여준다.이시는업무수행의기록적성격을유지하면서도사건의나열이아닌자기형성의서사로표현했다는점에서의미를갖는다.시의전개는허병찬시인이공직생활전반에걸쳐마주한“처음의일과미지의일”을중심으로배열한경험서사라할수있다.개별사건들은시적단위로분절되어있으나허병찬시인의시점에서는“불꽃의순간”이라는동일한의미망안에서통합된다.

이작품은각연마다처음의일,미지의일을향해나아간마음이흐르고,그과정에서느꼈던두려움,책임감,보람,감격이고스란히담겨있다.특히행정의최전선에서부딪쳤던자연보호,도시계획,환경사고대응,투자유치,복지정책,기업지원,지역정비등구체적이고사실적인묘사는한편의현대행정사를보고있는듯하다.이시는회상이아니라지난일들이오늘의나를밝히는‘꺼지지않는빛’이라는깨달음으로전하는데있다.삶을미화하거나과장하지않고겸허하게바라봄으로서시의품격을높여준다.

반복적으로등장하는불꽃의이미지는행정수행의순간성이갖는심리적무게를상징한다.불꽃은찰나적이지만강렬하고사라지지만잔광을남긴다.이작품에서불꽃은곧책임을수행한시간의잔향殘香이며,허병찬시인의윤리적선택들이삶전체를구성해왔다는존재론적통찰이다.따라서이시는개인의직업적경험을넘은사회적역할을통해어떻게자기동일성을마련하는가라는문제의식을문학적으로보여준다.

‘불꽃같은순간들’은기록문학의사실성과서정시의정서적밀도사이의경계를가로지르는텍스트이다.행정,정책,복지,투자등의비서정적현실경험을시의형식안에수용함으로써자기기록의서정화라는현대시적경향과자연스럽게이어진다.시의마지막연은불꽃처럼스쳐간순간들이지만찰나의빛은소멸되지않고‘내면의어둠을오래도록비추는잔광殘光’이되어스스로를지탱한다는시적성찰이다.결국이작품은허병찬시인이책임과보람,결단과감동을거쳐어떻게자기생을구축해왔는가를보여주는서정적기록문학이다.

2.자연을벗삼아인생을노래하며

햇살이두텁게내려앉는밀양시산내면
산수간밀양강을굽어보는언덕위
억산방을지은지스무해가흘렀구나
(중략)
어느새나는억산방장이되고
농부가되고청소부가되어살아왔고
그러다마침내한결시인의이름을얻어
자연과인생을노래한이야기들을
한권의시집에담아
세상에내놓을날을앞두고있다
-「억산방연가」부분

‘억산방연가’는삶의터전을일구는행위와시적자아의형성이맞물리며,한인간의시간이공간속에어떻게스며드는지를보여주는작품이다.이시는밀양시산내면이라는구체적장소에서출발함으로써실제로존재하는삶의자리위에서게된다.“햇살이두텁게내려앉는”이라는첫구절은공간의물성을감각적으로열어보이며시전체를포근하게감싸안는다.

억산방을짓는과정은건축의서사가아니라삶을새로이구성하는의식이며시인의정체성을완성해가는여정이다.“성토하고석축을다져올린세월”에서드러나듯물리적노동의구체성이시적진정성을견고하게받쳐준다.또한개토제와같은전통적의례를통해인간과자연,보이지않는존재들사이의관계를겸허히인식하는마음역시돋보인다.중반부에서드러나는목수와협업,도면을건네는장면은창작행위와건축행위를나란히놓아시쓰기자체를‘집짓기’에비유하는효과를낳는다.이는한권의시집을세상에내놓기까지의과정과도연결되며시의말미에서그의미가또렷해진다.

후반부에이르러“억산방장”,“농부”,“청소부”라는이름을거쳐“시인”이라는정체성에도달한다.이러한명명命名의과정은삶의역할들이결코분리된것이아니라서로를길러내는유기적관계임을보여준다.자연과함께살아온시간을시적언어로결실맺는구조는자전적기록을넘어하나의성숙한서정으로자리잡게한다.따라서‘억산방연가’는자연,노동,시간,그리고시적자아의형성이어우러져삶과시가분리되지않는다는사실을증명한다.

살림이넉넉지않아도
사람정이흐르고
도덕이숨쉬며
자연이살아숨결을내는
그런맑은세상을꿈꾼다
(중략)
따뜻한아랫목에둘러앉아
온기를나누는사이
아이들웃음꽃이환하게피어나는
그런세상을나는꿈꾼다
-「내가꿈꾸는세상」부분

이시는‘꿈’이라는추상적인주제를감각적인풍경으로풀어내어마음을따뜻하게데우는힘을지니고있다.무엇보다도결핍에서출발하지만결핍에머무르지않는시선이있다.“살림이넉넉지않아도”는현실을정직하게인정하면서도곧바로“사람정”“도덕”“자연”이라는가치로시선을확장시킨다.이는물질이아닌관계와생명의풍요를중심에둔세계관이라할수있다.

계곡의샘물,강물속물고기,물장구치는아이들,버들강아지,청보리와풀피리,들꽃과벌,나비그리고강둑의소와염소까지모든장면들이단절되지않고하나의생태적순환처럼흐른다.“웃음으로저녁을맞는세상”,“아이들웃음꽃이환하게피어나는”과같은표현은정서적여운을남긴다.마지막부문인“나는꿈꾼다”도모든풍경을묘사가아니라간절한소망임을드러내며시를안정감있게마무리한다.“내가꿈꾸는세상”은인간적온기,자연과의조화,공동체적삶의회복이라는가치를과장없이그려내어“이런세상이라면나도살고싶다”는공감을이끌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