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향에관한모든사상과실천적논의의출발점
죽은다음에꿈꾸는행복한나라,즉내세의이상향이아니라철저히현세의이상국가를본격적으로제시한인물은플라톤이었다.그는『국가』에서철학자가통치하는공화국을이상국가로소개하면서‘재산의공유’가공평하고정의로운사회의토대라고주장한다.
당대최고의지식인이자한나라의대법관이며르네상스인문주의자였던토머스모어는이책『유토피아』에서플라톤이제시한공화국을철학적인담론수준에서그치지않고,현실에서실제로이루어지는하나의모델로생생하게묘사해냈다.소설이라는형식을빌려당시영국과유럽사회가앓고있던온갖사회문제가해결된모습을그리면서,그런사회로나아가는길에필요한이상국가의기본틀을세웠다.
백년전쟁과장미전쟁을거치면서16세기영국에서살아가는백성의삶은고통의연속이었고,그결과거리에는거지와도적떼가넘쳐났다.또한봉건사회에서시민사회로이행하던과도기에나타난절대왕정아래에서는가혹한법률이제정되고엄격하게집행되었다.양모가격은폭등하여지주들이목초지를급격히늘리는바람에대규모로몰락한농민들은도시로내쫓긴다(“인클로저운동”).시대적으로는종교개혁과르네상스의소용돌이가휩쓸고지나가면서사람들은‘새로운세상’을꿈꾸기시작했다.
이책은당시까지의이상향에관한사상과철학적논의를한데모았을뿐만아니라,새로운사회를꿈꾸는사람들이반드시읽고사유해야하는책으로인정받아왔다.특히,자본주의체계의한계와극심한모순가운데포스트-자본주의사회를떠올리는사람들에게,지금읽더라도생생하게적용점을찾을수있는놀라운내용으로가득하다.저자가16세기에언급한기본소득,공공주택,6시간노동정책,경제적평등과같은여러급진적사상은21세기인지금그도입을활발히논의할정도로파격적이고혁신적이다.
이시대에논의되는복지국가의틀을500년전에제시하다
유토피아제1권은제2권에서본격적으로설명될최상의공화국인유토피아라는섬나라를소개하기위한도입부역할을한다.즉,여기에서유토피아라는이상국가를소개하는동기나목적을밝히는데,그직접적인동기는당시영국에만연되어있던불의,그러니까공공의이익에봉사하는대다수의평범한대중은먹고살기도힘들어물건을훔치다가사형을당하는데반해,공공의이익에전혀봉사하지않는귀족과지주는사치스럽게살아가는현실때문이었다.토머스모어는이모든사회악이결국근본적으로는사유재산제도에있다고단언하고,제2권에서사유재산제도가폐지된나라가어떤모습일지를유토피아에대한묘사를통해제시한다.
제2권은라파엘이유토피아라는나라의제도와관습을여러분야로나누어설명하는내용으로되어있다.유토피아는원래섬이아니었지만,그곳을정복해서나라를세운유토포스라는장군이양쪽모퉁이에15마일너비의수로를파내섬이되었다.
이곳시민은하루에오직6시간만일을하며,여가는재량껏사용한다.원하는직업으로오전3시간,오후3시간만일함으로써인간답게살아갈수있는,기본소득개념을최초로소개하였다.동트기전에공공강좌들이여럿개설되는데자기가원하는대로마음껏배울수있다.유토피아는국가의철저한주도로정원이딸린집을모든시민에게무상으로공급한다(공공주택).공공의필요가모두충족되면가능한한많은시간을정신의자유를추구하고계발하는일에사용할수있도록국가는최선을다해지원한다.병원을아주크고넉넉하게지어공공의료체계를완벽히갖추어놓았고,2년치물자를준비해두어가뭄등의자연재해에대비했다.집에서가까운관청에서는정성스러운음식으로무료식사를제공한다.이나라는‘경제적불평등’이란개념을이해하지못하며,‘참된쾌락’을추구하도록서로격려한다.유토피아에서는극소수의법만존재하고,따라서변호사가필요없다.
디스토피아에서살며유토피아를꿈꾸다
현대지성클래식33권으로소개하는『유토피아』는라틴어?원문을?텍스트로?삼아번역했으며,에라스무스가추가한난외주및184개에달하는역자의상세한각주와친절한해제를통해작품의배경과디테일한부분까지독자가입체적으로이해할수있도록했다.
토머스모어는당시온갖사회악의근본원인이사유재산에있으며,정의롭고평등한사회를위해서는사유재산제도를폐기하고공동생산과공동소유를통해정신의가치를극대화하며살아가야한다고강조하기위해이책을썼다.즉,사유재산제도가사라진곳에서는인류가어떤모습을향유하며살아갈지를그려낸것이다.
플라톤이『국가』에서묘사한이상국가는『유토피아』를거쳐이탈리아철학자캄파넬라의『태양의나라』(1602),그리고영국사상가프랜시스베이컨의『뉴아틀란티스』(1627)로이어지다가결국은근대에이르러마르크스의『자본론』(1867)으로이론적인토대를얻어한층더구체화한다.
사실,‘유토피아’(Utopia)는그리스어로“그어디에도존재하지않는곳”이라는뜻이다.토머스모어는유토피아를꿈꾸었으나그가실제로살아가야했던세상은디스토피아세상이었다.그리고이책에나오는유토피아의모습이지금이시대에그대로재현된다고해도사람들은그곳을이상향이라고여길지궁금하다.
하지만이책이지닌미덕은그렇게디스토피아같은세상에살면서도유토피아를꿈꾸게하는데에있지않을까?책을읽고저마다떠올리는유토피아는결국제각각이겠지만,“사람은어떤존재이며,어떻게살아야행복한가?”라는주제를당대최고수준의인문주의자의관점에서흥미로운소설로풀어낸이책은앞으로의이상향과복지국가를꿈꾸는독자의사유에깊이를더할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