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당 서법

완당 서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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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조선시대 추사 김정희의 서법첩
阮堂書法(완당서법)음각목판 절첩본
조선말 간행추정되는 추사김정희의 고탁본첩-阮堂書法(완당서법)

김정희는 예술에서도 뛰어난 업적을 남겼다. 그의 예술은 시·서·화 일치 사상에 입각한 고답적인 이념미(理念美)의 구현으로 고도의 발전을 보인 청나라 고증학을 바탕에 깔고 있었다. 그래서 종래 성리학을 바탕으로 독자적인 발전을 보여 온 조선 고유의 국서(國書)와 국화풍(國畵風)에 대하여는 철저하게 비판적인 태도를 보였다. 이는 바로 전통적인 조선 성리학에 대한 그의 학문적인 태도와 일치하는 것이었다.

그는 어릴 때부터 천재적인 예술성(특히 서도)을 인정받아 20세 전후에 이미 국내외에 이름을 떨쳤다. 그러나 그의 예술이 본 궤도에 오른 것은 역시 연경(燕京)에 가서 명유들과 교유하여 배우고 많은 진적(眞蹟: 친필)을 감상함으로써 안목을 일신한 다음부터였다. 옹방강과 완원으로부터 금석문의 감식법과 서도사 및 서법에 대한 전반적인 가르침을 받고서 서도에 대한 인식을 근본적으로 달리했다.
저자

김정희

秋史金正喜1786년(정조10년)~1856년(철종7년)
조선후기조선금석학파를성립하고,추사체를완성한문신.실학자·서화가.
예산출신.본관은경주.자는원춘(元春),호는추사(秋史)·완당(阮堂)·예당(禮堂)·시암(詩庵)·과노(果老)·농장인(農丈人)·천축고선생(天竺古先生)등이다.
조선조의훈척가문(勳戚家門)의하나인경주김문(慶州金門)에서병조판서김노경(金魯敬)과기계유씨(杞溪兪氏)사이에서맏아들로태어나큰아버지김노영(金魯永)앞으로출계(出系:양자로들어가서그집의대를이음)하였다.그의가문은안팎이종척(宗戚:왕의종친과외척을아울러이르던말)으로그가문과에급제하자조정에서축하를할정도로권세가있었다.

1819년(순조19년)문과에급제하여암행어사·예조참의·설서·검교·대교·시강원보덕을지냈다.1830년생부김노경이윤상도(尹商度)의옥사에배후조종혐의로고금도(古今島)에유배되었다.그러나순조의특별배려로귀양에서풀려나판의금부사(判義禁府事)로복직되고,그도1836년에병조참판·성균관대사성등을역임하였다.

그뒤1834년순조의뒤를이어헌종이즉위하고,순원왕후김씨가수렴청정을하였다.이때그는다시10년전윤상도의옥사에연루되어1840년부터1848년까지9년간제주도로유배되었고헌종말년에귀양이풀려돌아왔다.그러나1851년친구인영의정권돈인(權敦仁)의일에연루되어또다시함경도북청으로유배되었다가2년만에풀려돌아왔다.이시기는안동김씨가득세하던때라서정계에는복귀하지못하였다.그는아버지의묘소가있는과천에은거하면서학예(學藝)와선리(禪理)에몰두하다가생을마쳤다.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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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옹방강의서체를따라배우면서그연원을거슬러올라조맹부(趙孟?)·소동파(蘇東坡)·안진경(顔眞卿)등의여러서체를익혔다.다시더소급하여한(漢)·위(魏)시대의여러예서체(隷書體)에서도의근본이있음을간파하고본받기에심혈을기울였다.이들모든서체의장점을밑바탕으로해서보다나은독창적인길을창출(創出)한것이바로졸박청고(拙樸淸高:필체가서투른듯하면서도맑고고아하다)한추사체(秋史體)이다.

추사체는말년에그가제주도에유배되었을때완성되었다.타고난천품에다가무한한단련을거쳐이룩한고도의이념미의표출로서,거기에는일정한법식에구애되지않는법식이있었다.

그는시도(詩道)에대해서도당시의고증학에서그러했듯이철저한정도(正道)의수련을강조했다.스승인옹방강으로부터소식(蘇軾)·두보(杜甫)에까지도달하는것을시도의정통과이상으로삼았다.그의시상이다분히실사구시(實事求是)에입각한것은당연한일로서그의저술인『시선제가총론(詩選諸家總論)』에서시론의일면을엿볼수있다.

화풍(畵風)은대체로소식으로부터이어지는철저한시·서·화일치의문인취미를계승하는것이었다.그림에서도서권기(書卷氣)와문자향(文字香)을주장하여기법보다는심의(心意)를중시하는문인화풍(文人?風)을매우존중하였다.마치예서를쓰듯이필묵의아름다움을주장하여고담(枯淡:글이나그림따위의표현이꾸밈이없고담담함)하고간결한필선(筆線)으로심의(心意)를노출하는문기(文氣)있는그림을많이그렸다.

특히그는난(蘭)을잘쳤다.난치는법을예서를쓰는법에비겨서말하였다.‘문자향’이나‘서권기’가있는연후에야할수있으며화법(畵法)을따라배워서는안된다고강조하고있다.그의서화관은가슴속에청고고아(淸高古雅:맑고고결하며예스럽고아담하다)한뜻이있어야하며,그것이‘문자향’과‘서권기’에무르녹아손끝에피어나야한다는지고한이념미의구현에근본을두고있다.

이러한그의예술은조희룡(趙熙龍)·허유(許維)·이하응(李昰應)·전기(田琦)·권돈인등에게많은영향을미쳤다.당시서화가로서그의영향을받지않은사람이거의없을정도로조선후기예원(藝苑:예술가들의사회를아름답게이르는말)을풍미하였다.현전하고있는그의작품중국보제180호인「세한도(歲寒圖)」와「모질도(??圖)」·「부작란도(不作蘭圖)」등이특히유명하다.

시·서·화이외에그의예술에서빠뜨릴수없는것이전각(篆刻)이다.전각이단순한인신(印信)의의미를넘어서예술의한분야로등장한것은명나라중기였다.청나라의비파서도(碑派書道)가낳은등석여(鄧石如)에이르러서크게면목을새롭게하였다.김정희는등석여의전각에친밀히접할수가있었고,그밖에여러학자들로부터자신의인각(印刻)을새겨받음으로써청나라의전각풍에두루통달하였다.

고인(古印)의인보(印譜:여러가지인발을모아둔책)를얻어서직접진(秦)·한(漢)의것까지본받았다.그의전각수준은청나라와어깨를겨누었다.그의별호가많은만큼이나전각을많이하여서서화의낙관(落款)에쓰고있었다.추사체가확립되어감에따라독특한자각풍(自刻風)인추사각풍(秋史刻風)을이룩하여,졸박청수(拙樸淸瘦:필체가서투른듯하면서도맑고깨끗하며가늘다)한특징을드러내었다.
김정희의문학에서시아닌산문으로서한묵(翰墨:문한과필묵이라는뜻으로,글을짓거나쓰는것을이르는말)을무시할수없다.단순한편지가아니라편지형식을빌린문학으로서수필과평론의기능을가지는것이다.그의문집은대부분이이와같은편지글이라고할만큼평생동안편지를많이썼다.그리고편지를통해서내면생활을묘사하였던것이다.
그중에도한글편지까지도많이썼다는것은실학적인어문의식(語文意識)의면에서높이평가할일이다.현재까지발굴된그의친필언간(諺簡:언문편지라는뜻으로,한글로된편지)이40여통에이르는데제주도귀양살이중에부인과며느리에게쓴것이다.국문학적가치로볼때한문서간보다월등한것이다.또한글서예면에서민족예술의뿌리가되는고무적인자료이다.한문과국문을막론하고그의서간은한묵적가치면에서새로운주목을받고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