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문:
정홍수(문학평론가)
지하실의어둠,혹은기계체조인형과함께남은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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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여름으로기억한다.근무하던출판사문학동네에서도서전참관을명목으로한미국여행기회가주어졌고,시카고와보스턴을거쳐마지막여정으로도착한곳이뉴욕이었다.여행길을같이했던소설가성석제형은아는후배가뉴욕에산다며북디자이너와나를어퍼맨해튼이란곳으로데려갔고,거기서만나우리의한나절뉴욕구경을책임져준이가고영범형이었다.그러니까끈질기게이어지고있는인연의고리는‘연세문학회’였던것같다.내첫직장민음사의편집장이영준형은(우리의미국여행때하버드대동아시아학과대학원에서공부중이었고,보스턴이우리여정의중간에들어있었던것도그때문이었다.지금은경희대휴머니타스칼리지교수로있다)‘연세문학회’의좌장격이었던것같고,이영준형의너른품을좇던나는성석제,원재길,김진해,배효룡,이성겸,성원근,기형도(뒤의두사람은이곳에없다)등‘연세문학회’의또다른맹장들을우러를행운을누렸다.이이들은그당시세상만모를뿐이미각자의시세계(대부분시를썼던것같다)및문학적(그리고아마도철학적)우주의도상적설계를거의마쳤다고믿는호기롭지만불우한문사들이었고,서로남의말따위는들을시간이없을정도로바삐자신들만의우주를향해달려가고있었다.한마디로이이들을둘러싸고있는것은자유의기운이었다.지식은체계가없는대로잡다한채독학자들의힘을갖고있었고,주로는음악이나바둑,술,허세와같은무용한놀이쪽으로가기위한부실한사다리구실을하고는금방담배연기와함께사라졌다.
뉴욕에서처음만난고영범형은나이로는문학회의막내쯤이었는데,벌써얼마간추레해진선배들과는달리여전히생생한자유의기운으로충만한,집안의총명하고귀티나는막내같았다.내가만난‘연세문학회’사람들의특징은하나같이말들을너무잘한다는것이었는데,고영범형은그재능들을한데모아욕심사납게한사람이가진것같았다(그는이특별한재능이말이많은것과는별로관계가없다는것도증명해주었다).짧은만남이었지만어떤주제든막힘이없었고,대개는오래자기만의생각과공부로얻은논리와말들로이야기를주도했다.그때야지금같은SNS의세상이오리라고는짐작도할수없었지만,근자에페이스북에서많은이들을애독자로만든고영범계정의현하지변을그렇게처음접했다.
그인연이띄엄띄엄20년이넘었다.돌아보면,나는처음그의명석함에매혹되었지만점차인간을더좋아하게된것같다.말이나글에서그의예각이두드러져보인다면,그의사람됨은둔각쪽으로따뜻하고속깊다.그의유다르고세련된지성은(나는그뿌리에‘신학’이있지않나짐작한다)늘인간적배려와관용에감싸여있다.그는언제나무언가를쓰고,만들고(고영범형은맥가이버수준의수공업장인이기도하다),작업하고있었지만그것들은그가늘생각하는‘더나은인간’‘더나은세상’과분리된것이아니었다.남들이표나게무언가를성취하고,이런저런방식으로이름을알리는동안에도그가상대적으로덜드러났다면,그것이그의방식이자삶의태도이기때문이었을테다.본인이야게을러서그랬겠지,라는한마디로퉁치고말겠지만.
처음부터‘작가’인사람이있다.고영범형이딱그랬는데,내가처음만났을무렵그의관심은영화쪽에있는것같았다.몇년뒤영화일들이구체화되면서아예가족들과함께한국으로들어오기도했다.그때몇몇국내대학의영화과에서강의를하는한편,시나리오를쓰고,각색을하고,편집을하면서감독데뷔를준비했다.영화계일이원래그렇다고하는데,여러차례‘엎어졌던’걸로안다.그는미국영화과대학원에서다큐멘터리를공부했고,직접만든영화로세계적권위의오버하우젠국제단편영화제에초청받기도했다.홍상수영화를컷단위로분석해가며이야기할때는혼이쏙빠지기도했는데,압바스키아로스타미의〈클로즈업〉을다룬글은(물론어디에도발표되지않았던것같다)내가그무렵읽은최고수준의영화평론중하나였다.희곡은그가대학때부터가장꾸준히해온작업이었고,시역시‘문학회’의전통을충실히이으며발표와는전혀무관하게쓰고있었다.한두편내게보여준기억도있다.번역은생계를위해틈틈이해왔고강출판사에도그의이름으로된두권의역서가있다.그중『레이먼드카버:어느작가의생』(캐롤스클레니카지음)은500페이지에육박하는분량에다인용시의번역을비롯해서난처가많은텍스트였는데고생만잔뜩시키고살림에도거의도움을못드려지금도미안한마음을갖고있다.다만그번역이계기가되어카버와카버문학에대한뛰어난안내서인『레이먼드카버:삶의세밀화로그린아메리칸체호프』(아르테,2019)를저서로갖게되었으니조금빚을던느낌도없지않다.이책은얼치기문학평론을하는처지에서는문장이며문학이해의깊이에서읽는내내질투심을억누르기힘들었다는걸고백해둔다.10여년전서울에있을때소설을써볼까한다는이야기를들은적이있다.적극권하면서막연히머리에떠올려본게최인훈,이승우같은지적이고관념적인소설계보였던것같다.역시돈은좀안될것같다는생각과함께말이다.그러다그는다시한국을떠났다.
그리고2021년가을,한편의멋진소설이도착했다.소설의모습과관련된내막연한짐작은보기좋게틀렸지만,책의판매와관련해서는무엇보다더많은독자들이이근사한소설을만남으로써그렇게되기를바란다.
2
『서교동에서죽다』는이진영이라는소년이국민학교6학년여름방학부터이듬해봄중학교입학무렵까지반년남짓한시간을통과한기록이다.소설은방학중새자전거가생긴진영이8월15일광복절날서교동집을나와홍대앞,상수동과마포를거쳐서울대교(현재의마포대교)를건너고,여의도를지나제2한강교(현재의양화대교)를통해합정동쪽으로다시돌아오는첫자전거질주를이야기하는가운데‘5.16광장’의‘빌브라이트목사초청엑스폴로74’플래카드를언급하는방식으로이여름에1974년과서교동을중심으로하는서울서남부라는특정한시간과장소의좌표를부여한다.작품을읽어나가다보면이좌표가통상적인‘소설의시대성’과는좀다른지점을겨냥하고있는것이드러난다.그것은훨씬좁고촘촘하고밀도높은시간의대역(帶域)을지시하면서,한소년이몸으로통과하는세상,그의의식에현상하는세계의물리적조각을향하고있다.이문제는진영을일인칭화자로하는소설의서술장치와도연계되는데,기본적으로회상의방식으로기술되는일인칭소설에서화자가(그자신이기도한)인물에대해갖는거리는삼인칭소설과는다른양상을띨수밖에없다.일인칭화자는회상하는서술자로서의우월적지위와인물의제한적인시야사이를오가며이야기의어조와흐름을구축하게되는데,『서교동에서죽다』는그균형의통제에서특별한소설의목소리를얻어내고있는것같다.
광복절에도나는아침부터자전거를끌고나갔다.날은무더웠고,골목엔아무도없었다.늘하던대로홍익대학교의정문앞공터-라고하기에는조금어색하지만,아무튼우리는그렇게불렀다-까지올라갔다.(19쪽)
여기서‘공터’가열세살진영의언어라면삽입된부연설명은화자의언어일텐데,대개는경계표지없이두개의언어층위는섞여있다.친구들을기다리다가혼자자전거를타게된진영이홍대정문에서극동방송국을지나상수동쪽으로언덕길을내려가는장면에서소설은아스팔트위왕모래의위험을피하는소년의질주를극사실주의적으로묘사함으로써언어를인물에게한껏양도한다(이양도는당연히화자의적극적협력을포함한다).그러나화자와인물의이러한밀착은고정되지않고,여의도에운집한‘엑스폴로74’의군중들이나그날자전거타기의마지막여정이된성미산언덕에서집으로돌아오다보게된전파상앞의사람들에대해서는소년의관심을더이상이끌고나가지않는방식으로인물과거리를둔다.그렇게해서,복음주의반공기독교와당시유신독재정권의유착을보여주는‘엑스폴로74’나바로그날장충동국립극장에서일어난육영수여사의피살사건과같은시대의큼직한풍경은이야기의배경으로멀찍이물러난다.이는열세살소년의실제의식에근접하기위한회상형소설의일반적인전략일수도있으나,『서교동에서죽다』가화자와인물사이의거리를의식하고조율하는소설적노력에는좀더특별한긴장이있는것같다.일단여기에는회상형소설에흔히등장하는화자의‘현재’가없다(『서교동에서죽다』를각색하여이성열이연출한연극에서는미국에서귀국한중년이된현재의‘나’가나온다).이경우회상의주체로서화자의현재는원리적으로‘글을쓰고있는익명의나’가된다.회상의장치로현재의‘나’가제한되면서열세살진영은좀더‘순수한’상태로1974년의시간속에던져진다.허구적이든텍스트외적참조의차원이든형성의도달점은가려진채한소년이통과하는반년남짓의짧은,특정한시간의구획이주어져있을뿐이다.
이시간의구획을소년의자리에서생성되는의식,생성되는‘세계그자체’로마주할방법이있을까.『서교동에서죽다』는이질문에서시작된소설처럼보인다.작가의자리에서화자에게양도된언어는‘그자신’이기도한열세살소년의언어를분절하고들어올리는데에만사용될뿐,그언어를포획하려하지않는다.작가-화자의개입은언제나건너갈수없는강앞에서안타깝게,아슬아슬하게멈추어있다.그렇게해서화자와인물사이에존재하는거리는이미통과해왔지만지금처음통과하는시간의현상학에바쳐진다(6장진영이개에게물리는삽화에서만유일하게소설은진영을‘너’라고호명하며화자의자리를전경화하는데,반드시이이야기만이인칭서술을취할필연성은없다는점에서도소설전체적으로부각되는것은화자와인물사이의안타까운거리다).
그렇게1974년8월중순에시작된소설의내적시간은1975년3월초까지이어지고,서교동을중심으로진행되던이야기는진영네집이이사가는화곡동을비롯,진영이아버지심부름으로다녀오게되는효자동을통해광화문과신촌일대까지로확장된다.특히진영의생활반경과동선에바탕한서울의지리지는기억의순금지대를이루는데,『서교동에서죽다』는소년의작은몸과좁은시야에와닿은1974년서울의공기와풍경을두텁게떠메고온듯한느낌을준다.
우리가버스의종점에서내려서향한곳은시장으로통하는길목에있는상가였다.상가라고는하지만제각각의모양으로납작하게엎드려서나란히늘어서있는건물들에허름한문방구와약국,철물점,이발소,전파상따위의업소들이계통없이들어서있었고,그끄트머리에약간의사과와귤따위과일을얹은좌대를앞에내놓은식품점이하나있고그뒤로는본격적으로시장골목이시작되었다.그리고그시장을지나면주택가가펼쳐졌다.그러니까크고작은차들이빠르게다니는도시의길과안온하게엎드려있는집들사이의완충지대로시장이있었고,그허름하고짧은상가는큰길을달리는금속성의차갑고사납고빠른것들과한자리에쪼그려앉아있는상인들,그들이다루는생선이며야채,과일같은부드러운질감의물건들,여기저기서흐르는물때문에항상질척한바닥,그리고그사이를돌아다니며장을보는사람들같은느리고부드러운존재들로채워진시장통사이의기압차를해소해주는역할을하는셈이었다.사람들은아침이면이짧은상가골목을지나세상으로나가고,저녁이면그보다조금느려진걸음으로집으로돌아올것이었다.그러니이상가에있는상점들은좋게말하면통행인이많은,소위‘목’이좋은자리에위치한셈이었지만,달리보자면주택가로부터시장을사이에두고격리돼있어서단골보다는지나는길에들르는뜨내기손님들을주로상대하게된다는문제가있었다.(168?164쪽)
그해여름에는새자전거라는선물만있었던것은아니었다.바로다음날아버지의갑작스런입원이있었고,아버지는이후입퇴원을반복하며기약없는자리보전을하게된다.엎친데덮친격으로아버지가운영하던버스가빗길에사고를내면서집안은급속도로기울고,서교동의집을내주고낯선화곡동가파른언덕바지로의이사가결정된다.인용한대목은학교를파한뒤형과누나의인도로동생과함께진영이서교동에서버스를타고화곡동에내려처음으로이사한집을찾아가는장면이다.저기시장통끄트머리에는어머니가아버지와함께떠나온평안북도고향의이름을따서붙인자그마한잡화가게‘정주상회’가기다리고있을터였다.이제는집안의유일한생계의원천이된.딱히서울변두리동네만은아닌,1970년대한국의웬만한도시의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