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비즈 어웨이

좀비즈 어웨이

$10.00
Description
《좀비즈 어웨이》는 안전가옥 쇼-트 시리즈의 열두 번째 책이다. 수록된 작품들에서는 좀비 아포칼립스 세계관을 배경으로 젊다는 것만으로는 극복할 수 없는 어려움, 젊기에 더 버거운 삶의 무게, 버텨 내고 발버둥 친 끝에 스스로 피워 낸 작은 희망의 가치가 선명하게 드러난다.

모든 수록작은 동일한 세계관을 공유한다. 좀비 바이러스가 막 퍼지기 시작한 시점에 한 여고에서 벌어지는 비극과 로맨틱한 서사가 동시에 펼쳐지는 〈피구왕 재인〉, 나라 전체에 좀비가 창궐한 시대에도 유쾌함을 잃지 않는 두 여자의 동행을 그린 〈좀비즈 어웨이〉, 실패만 거듭했던 인생에서 벗어나려 했던 건강식품 업체 사원의 이야기를 통해 좀비 대유행의 원인이 드러나는 〈참살이404〉 등 잔인하고도 따스한 세 편의 작품이 수록되어 있다.

줄거리
〈피구왕 재인〉
봉암여고 체육대회를 앞두고 피구 예선전을 치르던 나는 피구공 대신 날아온 사람 머리를 맞닥뜨린다. 그 직후 감염자들을 피해 도망치라는 교내 방송이 들려오고, 학생들은 비명을 지르며 학교 건물 밖으로 몰려나온다. 운동장에 있던 나는 교실에 있을 소중한 친구 혜나를 찾기 위해 홀로 건물 안으로 들어선다. 뜯겨 나간 팔다리며 내장, 곳곳에 흩뿌려진 핏자국을 본 나는 영화나 웹툰에서나 보던 일이 실제로 일어났음을 깨닫는다. 감염되지 않은 자를 노리는 붉은 눈의 감염자들을 피해, 나는 혜나를 만나 가슴속에 묻어 두었던 말을 꼭 전해야만 한다.

〈좀비즈 어웨이〉
연정은 정육점 알바생이다. 정육점에서는 좀비 고기와 좀비 머리를 취급한다. 고기를 파는 이유는 좀비를 먹으면 좀비 바이러스에 면역력이 생긴다는 뜬소문이 퍼져서이고, 머리를 파는 이유는 나라에 머리를 제출할 경우 대입 또는 취업 시 가산점이 주어지기 때문이다. 사장님의 명에 따라 좀비 머리를 찾아 동네를 뒤지던 연정은 좀비가 되지 않았지만 머리만 남은 채로 살아 있는 여자를 만나게 된다. 인간다운 생활을 돕는 인프라가 모두 무너져 버린 세상에서 인간다운 연민을 버리지 못한 연정은 여자의 뜬금없는 부탁에 돌연히 긴 여정에 뛰어든다.

〈참살이404〉
소영은 유서를 쓰던 날 이력서도 썼다. 유서에 쓸 만한 문장을 검색하다 회사 광고를 발견한 것이다. 건강식품 제조업체 JBU에 입사한 소영은 회사에서 개발 중인 음료 ‘참살이404’를 마신 뒤 평생 느껴 온 무력감과 피로감에서 처음으로 벗어난다. JBU 회장은 스스로를 패배자, 낙오자, 부적응자라 부르는 사람들을 위해 참살이404를 만들었다고 밝혔고 JBU의 입사자 또한 그러한 이들이었다. 신규 고객과 직원을 물색하던 소영은 대기업에 다니다 6년여 만에 그만두었다는 고교 동창 보영을 데려오는데, 그는 참살이404를 마시든 그렇지 않든 갖가지 방면에서 유능함을 뽐내며 만족스러웠던 소영의 회사 생활을 뒤흔든다.
저자

배예람

잔인하고끔찍한이야기를즐겨쓴다.밤마다침대에누워내일무엇을쓸지상상만하는게세상에서제일재미있는지독한게으름뱅이.게으름을이겨내고한줄이라도쓰는것이매일매일의목표.
2019년안전가옥앤솔로지『대스타』에수록된「스타이즈본」으로작품활동을시작했다.안온북스‘내러티브온’소설편『왜가리클럽』에수록된「인어의시간」을,안전가옥앤솔로지『호러』에수록된「엔조이시티전(傳)」을썼다.오래오래재미있는이야기를쓰고싶다.

목차

피구왕재인·6p
좀비즈어웨이·38p
참살이404·66p

작가의말·172p
프로듀서의말·174p

출판사 서평

살아남을것,남을잡아먹어서라도
〈좀비즈어웨이〉의주인공연정의생각에따르면살아있다는것은복잡하고귀찮은과정을거친결과다.일단제때끼니를챙겨야하고기본적인청결을유지해야한다.간단해보이지만꾸준히수행하자면만만치않은임무라는것을,특히혼자살아보면잘알게된다.그뿐만아니다.주변사람들과관계를이어가야하고성인이라면경제활동에종사해야한다.이른바사람구실을하라는요구다.사교에능한사람도좋은직장도소수인터라많은사람이고통을겪지만위로한마디듣기가어렵다.다들그렇게산다는것이다.

주변과스스로의요구를고루만족시킬수있는사람은드물다.요구에응하는시늉이라도하려면에너지가필요하다.출근하자마자커피를마시고야근할때는피로회복제를섞어마신다.그래도버티기어려워지거나〈참살이404〉의주인공소영처럼애초에적은에너지를타고났다면남은선택지는많지않다.소영은결국유서를쓰는데유서를잘써보려다가한회사의광고를발견해입사지원서를넣고야만다.잘살기란그토록어렵고,잘살고싶다는소망은처절하도록강력하다.

부족한자신을세상의기준에맞추려애써온《좀비즈어웨이》의주인공들에게세상은좀비아포칼립스로응수한다.그저살아남아야한다.타인을잡아먹어서라도.세주인공은모두좀비가아니지만,자신이든타인이든해쳐도된다는메시지를받은것이나다름없다.도달하지못할기준에맞추라는주문은곧희생을감수하라는강요다.

자기자신일것,남들이뭐라하더라도
수록작품들의공통배경이되는잔혹한세계관을처음알리는것은피구공대신날아온사람머리다.이머리가등장한이후로〈피구왕재인〉의무대인봉암여고는뿜어져나오는피,잘려나간팔다리,쏟아져흐르는내장이난무하는아비규환이된다.사람머리는다음작품인〈좀비즈어웨이〉에도등장하는데,이머리가나오는장면은사뭇다른분위기를띤다.전신이온전하지만말주변이없는여자와달변가이지만머리만남은여자의첫대면은작품집전체에서가장유머러스한장면중하나다.

이러한반전은모든수록작에걸쳐존재한다.작품집초반의좀비는무자비한가해자로보인다.그러나이야기가진행될수록그들이다른입장에처해있다는사실이드러난다.인물들사이의관계또한점차변한다.도움을주던사람은도움을받게되고,상대를밟고올라서려던사람은상대로부터구원의실마리를얻는다.저아래짓눌려있던이는어느새꼭대기에올라높으신분의목을노린다.

아이러니하게도이러한변화는달라지려는노력의산물이아니다.본래가지고있던능력과품고있던마음을밖으로드러낸결과다.자신아닌다른사람이되려안간힘을쓰는동안에는쓸모없는인간이라는평가를받았다.타인을닮아야한다는집착을버리고,나약하다무시했던마음에귀기울이고,곁에서도와주던사람에게서벗어나홀로선뒤에야비로소변화가생겼다.자기자신으로서살게된이들의시원한웃음을마주하고나면,고통스러운상상속을달리는이야기로위안을건네고싶었다는작가의말을깊이이해하게될것이다.

○책속으로

첫문장
넌발이빠르니까괜찮아.


책속으로
영화나웹툰속에서나일어날일이봉암여고에서벌어지고있었다.3반부반장의머리가날아왔고피바다가친구들을공격했고사방에피가고였다.교내방송에서는감염자들을피해도망치라고했다.감염자들은피바다같은사람들을말하는걸까?감염자에게물리면어떻게되는걸까?물리지않고혜나에게갈수있을까?살아남을수있을까?그래도가야했다.풀숲사이에쭈그려앉은채한참동안심호흡을했다.
p.18〈피구왕재인〉

내오른손을두드리고있는건손가락이었다.팔꿈치부근에서뜯겨나간팔에달려있는손가락.톡톡.손가락이다시노크하듯내손등을두드렸다.…
나는흠칫놀라뒤로물러났다.바닥에축늘어진손이천천히손바닥을들어보인다.낯선손이익숙한몸짓을한다.양옆으로휘적휘적.그러다가힘을잃고기울어진다.나는그비언어적행위에어떤의미가들어있는지안다.안녕.그래안녕.근데누구세요?
p.73〈좀비즈어웨이〉

“머리필요없어요.”
“…없어요?사실처음들어왔을때부터보고있었거든요.시체뒤지길래머리가필요한거라생각했는데…취업준비안해요?아,혹시입시인가?입시라면미안해요.성숙해보여서….”
“저는필요없어요.”
“…그럼팔이라도줄까요?”
p.80〈좀비즈어웨이〉

지금까지먹었던그어떤약도참살이404처럼효과적이진못했다.머릿속을불안과우울대신자신감으로채워주지않았다.축늘어진정신과육체를벌떡일어나게해주지않았다.참살이404덕분에소영은진정으로살아있을수있었고,사회의정상적인일원으로서사람구실을해낼수있었다.소영은그의상사처럼내용물이한방울도남지않은빈병을머리위로털었고,속으로중얼거렸다.아멘.
p.125〈참살이4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