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랑에 핀 꽃 (노재연 시조집 | 양장본 Hardcover)

벼랑에 핀 꽃 (노재연 시조집 | 양장본 Hardcover)

$16.17
Description
인간과 삶의 근원을 찾는 쉼 없는 발걸음
이 시조집 『벼랑에 핀 꽃』에 나타난 노재연 시인의 시 세계는 무엇보다도 작은 것, 어린 것, 심지어 어리석은 것을 포함하는 모든 약자에 대한 자애와 사랑으로 가득 차 있다. 그것이 사람이든 동물이든 식물이든 상관이 없다. 예컨대 작은 조약돌 하나에서까지 그것의 소중한 존재 가치를 정확하게 포착해낸다. 그뿐만 아니라 그것을 기리고 응원하는 마음이 마냥 따뜻하다. 시인의 마음결에는, 독자로 하여금 저절로 감동이 일게 하는 진정이 서려 있다.
저자

노재연

월암(月巖) 노재연(魯載然)
(전북 고창 출생,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언어학과 졸업, (국립)군산수산대학 교수 역임, 수성고등학교 교장 퇴직, (사) 한국시조협회 아카데미 운영위원장, 수원문인협회, 경기시조시인협회, (사)한국시조시인협회, 한국문인협회, 국제펜한국본부 회원
수상: 한국시조협회-등용문상 금상, 시조문학상 본상, 시조문학상 대상, 수원문인협회-홍제문학상, 수원문학상 작품상, 경기교육대상, 국민포장, 황조근정 훈장

이메일: open2019@daum.net
시조집: 달빛 세레나데, 알타이어의 미학, 하루치 삶의 무게, 바람의 시, 비움의 미학, 이메일: jyro22@hanmail.net

목차

■ 시인의 말: 욕망이 지배하는 시작 활동

1부 신념의 소리
시조의 샘
시인의 눈
기다림의 미학
빗속을 거닐고 싶다
담쟁이의 신념
봄의 행진 2
임은 아직
민초의 희망
질경이
겨우살이
흑백 논리
대은공 시비 앞에서
억새의 무언극
갈대의 신념
겨울 내장산, 사숙私淑하다
파도가 부서지는 밤바다
제주 동백꽃의 슬픈 이야기
시대 여행
구도求道의 길
명량대첩 현장에서

제2부 침묵의 소리
어느 참회
낙엽의 신세
사회악
어느 숙명
벼랑에 핀 꽃
난을 치다
무심
정답 찾기
시냇물
도심 공원
어린이 놀이시설
너럭바위
몽돌
저기압
허물어진 고옥
김명국의 ‘달마상’*을 읽다
기억의 흔적
호수의 여명
코로나19, 그 후
핼러윈 데이 이태원 참사

제3부 소망의 소리
소확행
서재
엄마 아리랑
고목에 움트는 사랑
시심의 분출
설연화, 그 집념
목백일홍
밤이 되면
벽을 넘어
꽃들의 노래
이 가을, 나는
카페에서
어느 기다림
명태의 변신
시조의 얼굴
등대
추암 촛대바위
해질녘 해변에서
밤바다에서
풍랑 만난 조각배

제4부 삶의 소리
사과
파도의 사랑놀이
판자촌의 비애
민초들의 생존경쟁
나팔꽃 지듯
암울
바람의 서시
바람의 기행奇行
바람의 가면
강물은
단풍 유추
면회
포장마차 애환
오일장
인력시장
잡초의 생명 의지
영생을 꿈꾸는 장작불
냉장고 사망진단
어느 운명
민들레 씨앗의 역정歷程

제5부 계절의 소리
봄의 생명, 날 엿보다
녹엽을 기다리며
봄의 유혹
봄의 연서
복사꽃 추억
선비의 자태
풍란
봄바람
삼월 계곡수
향리 소식
가을의 유혹
운림산방
봄을 사다
봄비가 내린다
유채 바다
한여름의 정경
여름 하일 점묘
꽃무릇
강섶에서 엿듣다
가을이 오는 소리

■ 평설: 인간과 삶의 근원을 찾는 쉼 없는 발걸음__125

출판사 서평

노재연의 시 세계의 진면목은 인간 본성을 찾아 성실한 발걸음을 새겨가는 과정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는 사물과 삶의 모든 면을 관찰하고 통찰한다. 성찰하고 격물치지格物致知한다. 그리하여 조그만 일에서도 많은 것을 발견하고 깨달음을 얻는다. 이러한 과정을 통하여 진실을 또는 인간과 우주의 본성과 원리를 확인해 나아가고자 한다. 모든 것이 한계가 있지만, 결코 자만하거나 포기하지 않는다. 지켜야 할 것은 반드시 지키고 높여야 할 것은 반드시 높인다.
노재연 시인에게 어렵거나 힘들다는 것은 결코 변명의 대상이 아니다. 열심히 추구하며 무한히 기다린다. 그리고 집중한다. 대단한 겸손이요 경건이다. 거의 경외敬畏하는 마음으로 지성至誠을 다한다. 그의 이러한 삶의 태도는 종교보다도 진지하다. 〈평설〉 중에서

■평설

인간과 삶의 근원을 찾는 쉼 없는 발걸음
-노재연 시조의 시 세계

이석규
(시조시인, 가천대 명예교수)

1. 들어가기

노재연 시인은 2016년에 등단하셨으니 시조시인으로 활동이 이제 겨우 8년에 접어들었다. 그런데 이번에 내는 시조집 『벼랑에 핀 꽃』이 어느새 여섯 번째의 시조집이 된다. 그러니까 100편이 훌쩍 넘는 분량의 시조집을 매년 한 권씩 내는 셈이다. 더구나 이제껏 낸 5권의 시조집들이 모두 출토出土의 아픔을 견뎌낸 천년 유물처럼 저마다 소중한 깊이를 담고 있다. 또 시조집마다 시조 한 편 한 편들이 모두 격조가 있어서, 마치 알곡만 모아 놓은 곡간처럼 가멸차게 느껴진다. 물론 이번에 내는 『벼랑에 핀 꽃』도 예외가 아니다. 오히려 완숙의 경지에서 오는 넉넉한 무게감이 느껴진다.
보통의 경우 평설을 쓰기 위하여 좋은 작품을 고르는 것이 참 중요한 작업인데, 노재연 시인의 이번 시조집은 모든 작품이 다 뛰어나서 오히려 부족한 작품을 추려내기 위하여 고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시조집 『벼랑에 핀 꽃』에 나타난 노재연 시인의 시 세계는 무엇보다도 작은 것, 어린 것, 심지어 어리석은 것을 포함하는 모든 약자에 대한 자애와 사랑으로 가득 차 있다. 그것이 사람이든 동물이든 식물이든 상관이 없다. 예컨대 작은 조약돌 하나에서까지 그것의 소중한 존재 가치를 정확하게 포착해낸다. 그뿐만 아니라 그것을 기리고 응원하는 마음이 마냥 따뜻하다. 주어진 환경과 여건 속에서 그것을 인내하며 성실히 적응해나가는 생명체의 고통과 인내를 철저하게 공감하는 시인의 마음결에는, 독자로 하여금 저절로 감동이 일게 하는 진정이 서려 있다.
또 한 가지 대부분 작품에서는 깊은 관조와 명상을 통한 자기 수련, 특히 모든 것을 다 내려놓고, 무심에 이르기까지 마음을 비우고자 하는 이른바 사무사思無邪의 자기 다스림이 잘 그려져 있다. 나아가 그 비운 자리에 더욱 소중하고 아름다운 것으로 차곡차곡 채우고자 하는 쉬지 않는 천착穿鑿과 노력, 완숙을 향하여 집중하고 몰두하는 시인의 외롭고도 결곡한 모습에서 겸손과 성실의 전형을 보게 된다.
그 밖에도 언어를 다루는 예술가로서, 시조시인으로서의 기량이나 열정 등은 깊이와 무게와 자유로움에서 이미 수준을 넘어서고 있다. 더 자세한 것은 본문에서 이야기하기로 한다. 다만 그의 시조가 갖는 가치와 예술성을 찾아서 일일이 소개하기에는 지면과 능력에 한계가 있음을 먼저 말씀드리고자 한다.

2. 생명

(생명의 아름다움)

촉촉한
봄 햇살로
샤워한 나의 뜰에

이제 막
잠에서 깬
연초록 아가들이

세상이
하 신기한 듯
호기롭게 날 본다
「봄의 생명, 날 엿보다」

작고 어린 생명의 이야기다.
세상이 뭔지 모르는 아가들이, 하늘이 펼쳐준 세상, 그들의 낙원에서 첫눈을 뜬다. 아직 추운지도 모르고. 세속에 물들지도 않았다. 순수한 생명이, 생명력의 아름다움이 화자의 섬세한 감수성을 따라서 살아난다. 모든 것이 신기하고 호기롭기까지 하다.

초록 옷 갈아입고
춤추는 네 모습에

새들의 환호 소리
하늘을 찌르는구나

녹엽이
기다려짐은
어디 새들 뿐이랴.
「녹엽을 기다리며」

모든 의미는 생명을 가짐으로써 시작된다. 생명을 가진 자의 소망은 모두 함께 춤추며 돌아가는 즐거움의 충일한 발현이다. 거기에서만 진정한 기쁨과 환희의 극치를 살아낼 수 있기 때문이다. 풀과 나무와 새들이 함께, 모두 함께 말이다. 아마도 그것의 질료는 진정한 생명력 곧 사랑일 것이다. 화자의 기다림은 바로 그것들이 윤무輪舞로 하나가 되는 정점, 곧 녹엽의 계절이다.

수와 희가 타고 넘던
질풍노도 그 언덕길

선홍의 언어들이
송이져서 떠돌다가

실가지
마디마디에
하트처럼 앉아 있다
「복사꽃 추억」

어린 날, 젊은 날을 추억한다. 그곳은 푸르른 이미지들이 살아 숨 쉬고 있다. 젊음에서 우러나는 사랑의 언어들이 송이를 이루며, 가지마다 선홍의 복사꽃으로 내려앉는다.
그렇게 어린 날들이 채색옷을 입고 되살아나서 화사하게 웃고 있다. 얼굴 표정은 하트 모양이다. ‘질풍노도’, 그것은 바로 젊음의 속성이다. 그들의 생명력엔 거침이 없다. 비로소 화자는 인생의 참 아름다움을 기억하게 된다. 생명의 최선의 의미는 사랑이고 아름다움이라는 것이다.
심미적 감수성을 예술적 언어로 절제하는 기량이 뛰어나다.

성하盛夏 볕 탐하더니
용암이 솟구치듯

불덩일 토해내는
돌 틈새 맨드라미

시심에
불길이 번져
시어들을 뿜는다
「시심의 분출」

꿈만 크다면, 소망이 아름답다면 돌 틈새인들 문제가 되랴. 시인은 맨드라미의 사랑스러운 꽃잎 표면에서 아름다운 시어를 발견한다. 그것은 깊은 속으로부터 우러나오는 맨드라미꽃의 원질, 불덩이, 다시 말하면 생명의 DNA이다. 그것을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 그것이 바로 맨드라미의 그리고 화자의 심미적 시심詩心의 감동적 발현이기 때문이다.

(함께)

소리가 엎질러져 질펀하게 흘러가고
호반새 울음소린 강섶이 거두어가
가슴에
파도칠세라
흔적 없이 사라진다

바람을 등에 업고 수다 떨며 가는 여정
망향이 앞장서서 어서 오라 손짓하면
바위에
부딪는 소리
산산 찢겨 흩어진다

소리는 무료하면 강섶에 기어올라
잡초처럼 제멋대로 가을을 키워내고
파랗게
열린 허공에
함성처럼 맴돈다
「강섶에서 엿듣다」

강섶에서 질펀하게 흐르는 물소리를 듣는다. 물소리, 바람 소리는 흐르고 달려가며 계절의 가슴을 흐르다가 부딪치고 흩어진다. 물 밖으로 나가면 촘촘한 가을의 푸나무 숲, 모두가 지껄이며 수다 떤다. 손잡고 모두가 함께 흐른다. 가을은 끝없이 활짝 열린 허공을 창조한다. 그렇게 맴돌며 부서지다 사라지며 쉬지 않고 모두가 흘러간다.
특히 셋째 수 초장 중장 “소리는 무료하면 강섶에 기어올라”, “잡초처럼 무성하게 가을을 키워내고”
자연에 숨어 있는, 시인에게만 들려오는 생명이란 존재의 아우성이다. 하늘과 땅과 강물의, 강섶에서 들려오는 만상이 함께 부르는 그 소리는, 세상과 우주의 소리요, 자연 속에 얽혀 있는 카오스의 함성이다. 그것의 속성은 생명이다. 그 소곤거림과 울음과 웃음을, 세월과 시간과 인연의 의미를 창조하고 지우며 살아가는 우주의, 생명의 소리다. 모두 함께 익어가는 슬픈 가을의 형상화다.

핏줄처럼 얽혀 있는 내륙의 젖줄로서
토양을 살찌우고 생명을 부양하니
강물은 생명수이다, 어머니의 젖샘처럼

-중략-

온갖 사연 품어 안고 말없이 흘러가며
경사에 함께 웃고 애사에 함께 우니
강물은 공동체이다, 희로애락 함께하는
「강물은」 일부

강물은 공동체이다, 희로애락을 함께하는 강물의 인정이요 강물에 부여하는 의미의 실체다. 생명에서 생명으로 이어주는 매개 그것은 ‘함께함’이다.
이 시조는 각기 뚜렷한 자기만의 개성을 갖고 있는 모든 생명의 대화합, 서로 다른 개체가 일심동체로 하나가 되어 함께하는 생명의 비밀에 대한 천기누설天氣漏泄이다.

(큰 그릇)

골목길 보도 틈새 핼쑥한 잡초 하나
오가는 사람들의 눈치를 살피면서
오늘도 무사하기를 난선難船처럼 꿈꾼다

발길에 짓밟히면 달빛에 치유하고
오뚝이 일어서듯 허리를 곧추세워
언제나 불사조처럼 생명력을 잇는다
…
「잡초의 생명의지」 일부

노재연 시인이 소중하게 추구하는 인생의 덕목 중 하나가 어려움을 인내로 극복하는 끈질긴 생명력이다. 이 작품은 바로 그의 이러한 인생관을 구체적으로 잘 그려낸 작품 중 하나다. 때로 불가항력적일 때 눈치를 살피기도 하지만 어떤 경우에도 소망과 긍정의 끈을 놓지 않는다. 이를테면 “발길에 짓밟히면 달빛에 치유”한다. “오뚝이처럼”.
허리를 곧추세우고 불사조처럼 생명을 잇는 인간의 소망과 노력의 끝없는 추구와 긍정, 찬양…, 이것이, 큰 사람의 눈에만 보이는, 생명이란 존재가 창출하는 지상의 아름다움인 것이다.

싸늘히 식어버린 저 들녘의 백발노인
아릿한 애환을 삭여 하얗게 웃고 있다,
노을이 바싹 다가오는 이승의 현관에서
「억새의 무언극」 일부

이 작품은 모두 3수로 된 연시조 중 둘째 수이다. 이 부분만 그대로 단시조로 발표해도 전혀 부족하지 않을 것 같다.
가을도 저물고 초겨울쯤 되나 보다. 추수로 모든 것이 사라진 텅 빈 들녘에서 억새 홀로 아릿한 애환의 생애를 삭이며 백발노인처럼 웃고 있다.
하얗게 말라버린 억새와 온기가 사라져가는 노년의 화자 사이의 동질감을 잘 어울리게 표현하고 있다. 그러나 어찌 온기가 사라지는 것만으로 끝이랴.
셋째 수는 많은 슬픔을 견뎌낸 뒤, 이제 어린 날의 추억마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