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새 발자국 (구연백 시조집)

물새 발자국 (구연백 시조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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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구연백 시인의 첫 시조집 『물새 발자국』(열린출판)이 출간되었다. 이 시조집은 시조의 정형미를 기반으로 하여 현대적 감각과 깊이 있는 사유를 응축한 시편들을 담고 있다.
구연백 시인의 시조는 옛것으로 회귀하는 통로가 아니라, 존재를 묻는 사유의 그릇으로 새롭게 조명된다. 『물새 발자국』은 바로 그러한 시적 가능성을 보여주는 시조집이다.

구연백 시인은 “시조라는 문학 양식이 갖는 제약을 자율로 바꾸어낸다”고 평가되며, 고전적 형식을 따르되 그 안에서 언어의 숨결을 덧입히는 시적 실험을 시도한다. 이로써 『물새 발자국』은 시조 장르에 대한 깊이 있는 응답이자, 동시대적 문학적 회신이라 할 수 있다.

‘발자국’은 지나간 자리이며, 동시에 현재를 증명하는 표식이다. 구연백 시인의 첫 시조집 『물새 발자국』은 그런 점에서 단순한 시적 고백이 아니라, 존재의 흔적을 더듬고, 사유의 흔적을 기록한 한 권의 문학적 여정이라 할 수 있다. 이 시조집은 형식미와 서정성을 함께 갖춘 3장 6구의 단시조와 연시조를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시조라는 장르가 갖는 고유한 제약을 창조적 자율로 승화시킨 점이 인상 깊다.
『물새 발자국』은 시인이 오랜 시간 다듬어온 언어적 사유의 결정체다. 수록된 시편들은 조용하고 단정한 외양을 하고 있지만, 그 내면에는 감각의 진동과 절제된 정념이 겹겹이 배어 있다. 이는 침묵의 형식 속에서 피어나는 내면의 언어이며, 존재의 고통과 아름다움에 대한 깊은 통찰을 담고 있다. 해설에서 언급된 바와 같이, 이 시조집은 “언어로 붙잡을 수 없는 것에 대한 끊임없는 사유”를 형식 안에 견고히 녹여낸다. 단순한 회상의 시가 아니라, 존재론적 질문에 대한 문학적 응답인 것이다.
시조는 오랜 전통을 가진 한국 고유의 정형시다. 구연백 시인은 이 정형을 단지 답습하는 데 그치지 않고, 오히려 그 틀 안에서 언어의 숨결을 불어넣는다. 전통을 계승하면서도, 고전과 현대의 감각 사이를 유연하게 넘나드는 그의 시는 ‘형식’과 ‘내용’의 진정한 융합을 보여준다. 특히 그의 작품은 전통적인 리듬감과 현대적 정서의 충돌과 조화를 통해 시조 문학의 현재적 가능성을 탐색한다. 낡은 형식으로 오해되기 쉬운 시조가 그의 언어 안에서는 감각적이고 철학적인 장르로 새롭게 태어난다.
이 시조집에서 눈에 띄는 또 하나의 특징은 자연과 인간, 존재와 부재, 기억과 사라짐에 대한 주제들이 반복되며 다양한 방식으로 변주된다는 점이다. ‘물새의 발자국’이라는 제목이 시사하듯, 모든 존재는 언젠가 사라질 것을 전제로 하며, 그 사라짐 속에서도 흔적을 남기려는 시인의 내면이 각 시편에 녹아 있다. 이 흔적들은 독자에게 단순한 감상의 차원을 넘어, 존재의 의미에 대해 묻게 만든다. 그의 시는 그래서 정적이지만 결코 정체되어 있지 않다. 오히려 형식의 고요 속에서 사유는 끊임없이 흐르고, 그 흐름은 독자의 의식 속에서 새롭게 깨어난다.
구연백 시인은 충남 당진 출생으로, 한문교육과 청소년 인성교육에도 오랜 시간 헌신해 온 인물이다. 2022년 한국시조협회 신인상 수상작 「설총」을 통해 시단에 정식으로 등단했으며, 이후 강원시조시인협회 문학상, 문예춘추문학 대상 등 다양한 수상 경력을 통해 시조시인으로서의 입지를 확고히 다졌다. 그의 이력은 전통과 교육, 언어에 대한 깊은 이해를 보여주는 지점이며, 시조라는 장르를 선택한 작가적 선택이 단순한 형식적 실험이 아니라 본질적인 가치 탐구에서 비롯되었음을 말해준다.
『물새 발자국』은 단순한 데뷔 시집 그 이상이다. 그것은 오랜 침묵 끝에 꺼낸 한 시인의 내면의 언어이며, 시조라는 형식 안에서 새롭게 살아나는 존재의 흔적들이다. 시인이 시를 통해 걸어간 자리는 물새의 발자국처럼 연약하고 희미할 수 있지만, 그 속에는 단단한 시적 사유와 철학이 자리하고 있다. 시조라는 장르가 낡고 고루하다는 편견을 가진 이들에게, 이 시집은 새로운 시각을 제시할 수 있는 충분한 문학적 설득력을 지닌다.
“형식 안에서 자유를 구현하고, 언어를 통해 침묵을 말하는” 구연백 시인의 시조집 『물새 발자국』은 독자에게 묵직한 감동과 긴 여운을 남긴다. 시조의 가능성을 다시금 확인하게 해주는 이 책은, 시조문학이 여전히 현재진행형임을 증명하는 아름답고 의미 있는 증거다.
저자

구연백

아호:素石(소석)
구연백시인은충남당진출생으로,2022년한국시조협회신인상수상작「설총」을통해등단했다.한문교육과청소년인성문화증진에기여해온그는강원시조시인협회최우수문학상(2023),문예춘추문학대상(정완영문학상,2024)등다수의문학상을수상하며,시조문학의영역을확장하고있다.

목차

■시인의말:제1시조집『물새발자국』을내면서
■축시:지성의뜰에서감성으로피운시조의꽃


제1부쪽잠속으로
쪽잠속으로
기다림
대원군,음양괴석도
완도전복
부용화芙蓉花
눈속임
인仁
고우古友
간장항아리
가을꽃/코스모스
섬蟾[두꺼비]
눈雪
찔레꽃연정

수아樹芽
봄처녀
고향냄새
상명하복
비움
파랑새
별빛마을



제2부그림동화
그림동화
수繡틀
연꽃피는아픈소리
갈무리
세월
독백
홍엽紅葉
심술
동무생각
그리움ㆍ2
망명亡命
목련
등잔燈盞
해탈解脫
시인의감성
매화
산山벚꽃
홀씨
회상回想ㆍ1
이모작
작은붕어
그리움ㆍ2
망객산소나무
회상回想ㆍ2


제3부다향같은미소
다향茶香같은미소
향수鄕愁
바늘귀
나그네
별빛마을
습작習作
자유에서해방
향우鄕友
월광
봄ㆍ1
가을전령
가는세월
처서
그리움ㆍ2
불평
기다림ㆍ2
갈대
세공細工
대원군
점자点字손
봄ㆍ2
구월강물
첫눈
색소폰
초승달


제4부물새발자국
물새발자국
사모곡ㆍ1
사모곡ㆍ2
노고지리
구룡사龜龍寺경내다실茶室에서
천하가다내것이다
운곡耘谷원천석선생시비詩碑앞에서
겨울수덕사
오월의꽃편지
장사꾼
월현별곡
회상回想
요양원치매할머니
한국춤무희舞姬
봄ㆍ3
몰운대
설총
옴팡집
야곡지휘자
송강정


제5부그리움(자유시)
그리움
방황
유월저녁
유택
환영幻影
새벽
버킷리스트

■해설:정형의시간속을걷는마음

출판사 서평

[해설]

정형의시간속을걷는마음
-구연백시조에나타난회상의미학과감각적리듬의실험-



1,들어가며:존재와언어의경계에서만난시조

『물새발자국』을펼치는순간,우리는한편의정제된고백록이자,오래도록다듬어진사유의결정체를마주하게된다.이시조집의시조들은언뜻보면조용하고단정하다.그러나그조용함은침묵이라기보다절제된절규이고,단정함은엄격한형태미가담고있는예민한감각의형상화이다.이시조집을관통하는주제는결국언어로붙잡을수없는것에대한끊임없는사유이며,그사유를가능케하는방식으로시조라는정형을선택했다는점에서이시조집은단순한시적실험이아닌존재론적물음의기록이라고말할수있다.
시조는본래부터형식이매우엄격한장르이다.삼장구조를기본으로하는3장6구의단시조는물론,그것이연속되어구성된연시조역시각수마다일정한리듬과분절을유지해야한다.구연백은이고전적틀을충실히계승하면서도,현대적감각을가볍게덧칠하는데그치지않고,오히려그안에서언어의숨결을덧입히며‘형식’자체를사유의도구로전환시킨다.다시말해,시조라는문학양식이갖는제약을자율로바꾸어내는데성공하고있다는점에서이시조집은그자체로시조라는장르에대한하나의응답이며,문학사적회신이다.
『물새발자국』의시조들은정형미속에자신만의‘사유의방식’을구축하고있다.흔히시조는서정적정서를고백적으로표출하는데에초점을맞춘장르로오인되곤하지만,이시조집은그러한오해를조용히걷어낸다.여기서시인은감정을쏟아내는데에집착하지않는다.오히려감정을감추며,그감정이피어나는순간의‘사물과사건’에집중한다.이것은일종의현상학적주의로볼수있다.시인은자신이바라보는대상을감정의투사대상으로삼는대신,그것이있는그대로놓이는장면을섬세하게포착하고,그자체가발산하는의미에천착한다.그러한방식으로탄생한시조들은‘대상’과‘시선’이서로를지우지않으면서공존하는시공간을형성한다.
이러한시적태도는존재론적질문으로자연스럽게이어진다.특히구연백의시조들에서는시간의흐름과그속에서인간이경험하는상실,기억,덧없음이반복해서등장한다.이때의시간은단순한과거-현재-미래의직선이아니라,특정사건을기점으로회귀하거나무너지는원형적구조를가진다.예를들어,특정시조에서는“지난봄의길가에서보았던그꽃”을회상하며현재의슬픔을이야기하지만,이때그꽃은단순한자연물이아니라시간의흔적이자존재의잔영이다.이러한방식으로시인은시조를통해‘나’의정체성,타자와의관계,자연과세계와의위치를묻는다.
『물새발자국』은동시에,시조라는장르가어떻게현대성과호흡할수있는지를증명하는텍스트이기도하다.많은현대시인들이자유시를통해다양한실험을감행하고있는오늘날,시조는오히려정형의틀속에서더큰실험을감행하는공간으로기능할수있음을이시조집은조용히말하고있다.여기서중요한것은,구연백이보여주는시조는과거의시조와는그결이다르다는점이다.고시조가윤리적교훈이나자연친화적정서를강조했다면,이시조집은존재와언어의간극에서발생하는미묘한울림을탐색한다.그런점에서이시조집은‘감정의언어’보다는‘사유의형식’으로시조를재구성하고있다.
한편으로이시조집을읽다보면,‘기억의구조’에깊이천착하고있다는점도발견할수있다.많은작품에서화자는과거의한장면을끄집어내현재의정서를구성한다.그런데그장면은단순한회상이아니라,마치‘다시돌아가서야만이해되는현재’라는느낌을준다.이는구조적으로순환적이며,시조의종장에이르러화자의내면이갑작스럽게뒤집히는반전구조와도자연스럽게맞닿는다.시조의구성논리가곧화자의존재논리가되는지점에서우리는이시조집이얼마나정교하게작동하고있는지를깨닫게된다.
결국『물새발자국』은단지개인적인감정의배출이나일상기록의집합이아니다.그것은정형이라는문학적질서속에서언어와감정,존재와형식이교차하는장을마련한작업이며,독자에게는감각의세공과사유의겹침이라는미학적체험을제공하는깊이있는문학적사건이라할수있다.시조가여전히살아있고,동시에새롭게살아날수있다는가능성은바로이런작업들에서비롯된다.
이시조집의첫장을열며우리가만나는것은‘시조’라는장르가아니다.그것은오히려‘사유의기술’이며,‘언어의고고학’이다.구연백은자신의시조를통해사라지는것들을붙잡고,무너지는것들속에서언어의균형을다시세운다.이정교한형식적고집과철학적세공사이에서우리는오늘의시조,그리고오늘의시인이건넨질문과만날수있다.그질문은아마도이런것일것이다.“우리는무엇을말하고,어떻게말할수있는가?”


2.정형안의변주

시조는정형의미학을지니되,그틀안에서얼마나섬세한감각과사유를구사할수있는가가시인의역량을드러낸다.구연백의시조는그고유의규범성을충실히따르면서도,안팎에서그것을흔들며질문을던진다.시조라는형식이단순한규칙의집합이아니라,언어의호흡과감정의결을따라섬세하게구성된구조물임을그의시편들은말없이증명한다.그리하여우리는그의작품을통해,정형이라는오래된틀속에서새롭게피어나는감각의결을만난다.

하늘을날아가던
어여쁜고추짱아

피곤해잠시잠간
쪽잠이들었는데

가을이
오는소리가
자박자박들려요
-「쪽잠속으로」전문

「쪽잠속으로」는그대표적인예다.고추잠자리를‘고추짱아’라부르는순간부터이시조는전통의말씨와어린아이의시선을한데품는다.“하늘을날아가던/어여쁜고추짱아/피곤해잠시잠간/쪽잠이들었는데”라는초중장에서우리는단순한자연관찰의시선을넘어,작은생명에게부여된인격과그속에깃든연민을본다.쪽잠은생명의회복을의미하는찰나의정지이며,그것이가을의도래와교차될때,시는한순간을우주적시간의흐름과겹쳐낸다.“가을이/오는소리가/자박자박들려요”라는종장은그흐름을정지시킨채청각적이미지로변환하여,계절의감각을독자의몸에새긴다.
이작품에서주목할점은단순한자연묘사나감상에머무르지않고,고추잠자리라는상징을통해자연과인간,생명과계절,휴식과존재의관계를엮어낸다는점이다.고추짱아는아이의말씨로도읽히지만,동시에‘하늘을날아가던’존재로서자유와희망의상징이기도하다.그존재가잠시쪽잠에들었을때,우리에게열리는것은계절의문턱이며,그문턱을감지하는감각은시인의것이면서도독자의내면감각과맞닿는다.
같은방식으로,「찔레꽃연정」또한상징과은유의밀도를세심하게끌어올리는작품이다.

비알진냇둑자락
찔레꽃하얀웃음

나비가살몃앉아
밀어를속삭인다

내일또
오셔야해요
곱디고운속삭임
-「찔레꽃연정」전문

초장부터,시인은시공간의배경과정서를정교하게짜놓는다.‘비알진냇둑’은물기머금은땅이며,생명의정화가일어나는경계이고,‘하얀웃음’이라는찔레꽃의표현은자연물이지닌생기와순수,기쁨의은유다.찔레꽃은전통적으로순정과기다림,혹은이별의감정을품은상징으로자주등장해왔으나,여기서구연백은그익숙한상징에생기를불어넣는다.찔레꽃은웃는다.그것도하얗게.그웃음이진짜기쁨인지,혹은쓸쓸한미소인지판단은독자에게맡겨진다.
중장에서나비가등장하는대목은상징의겹을더한다.“나비가살몃앉아/밀어를속삭인다”는장면은인간과자연,혹은생명간의비밀스러운교감의은유다.나비는고요히앉아,꽃과무언가를나눈다.그것은인간언어의영역바깥에서이뤄지는,그러나충분히감각되고해석될수있는‘속삭임’이다.이때속삭임은언어가아니라정서의파장이며,그것을지각하는독자는감정의울림을통해시와공명한다.종장의“내일또/오셔야해요/곱디고운속삭임”은이시조가품은연정의정체를드러낸다.찔레꽃의말인지,나비의말인지모를그말은결국누군가를향한애틋한기다림이며,그것은인간의연애감정과도,자연이품은순환의감정과도닿아있다.

이두시조는공통적으로‘자연물의상징화’와‘정서의은유적환기’를통해독자의감각을자극한다.단지예쁜장면을묘사한것이아니라,그장면이내포하는상징적질서를시어로직조한것이다.특히시인은그상징의층위를명시하거나강요하지않는다.‘쪽잠’이단순한휴식인지,존재론적침잠인지는독자의해석에맡겨지고,‘찔레꽃의웃음’이기쁨인지눈물인지도열린채로놓여있다.이처럼시의해석가능성을열린구조로제시하는것이야말로현대시조가지닌미학적성취중하나일것이다.
또한두시조모두전통적인시조형식을따른다는점에서주목할만하다.각각단수로구성된단시조로서,삼장구조와운율의기본을준수하고있다.그러나그안에서펼쳐지는시어의선택과이미지의배열은전통적감각에머물지않는다.‘고추짱아’라는표현하나로시적시선을유년의세계로확장시키고,‘밀어’와‘속삭임’을통해정서의긴장을조율하며,‘자박자박’이라는청각적감각어로계절의도래를공감각적으로전이시킨다.이것은단순한묘사이상의,언어자체의숨결을살려내는작업이며,시조의정형미를해체하지않으면서도현대적감수성을온전히담아낸전략이다.
무엇보다주목해야할점은,구연백의시조가독자에게친숙하게다가가되,결코가볍지않다는점이다.시어는쉽고간결하지만,그속에스며있는의미의층위는깊다.시조의형식이갖는한계안에서그가능성을끝까지밀어붙이는그의태도는,한편으론고전형식에대한존중이자,또다른한편으론형식바깥으로뻗어가고자하는감성의실험이라할수있다.시조의전통을지키는것과현대적정서를담는것,이두가지를어떻게조화시킬것인가에대한고민은그의시조안에서응답된다.그것은정형안에서일어나는유연한변주이자,형식의제약속에서일구어낸언어의자유다.
그리하여우리는그의시조에서,사물과감정이,계절과시간이,말과침묵이조용히어깨를맞대고있는풍경을본다.그풍경은어쩌면우리가오래도록잊고지낸감각의풍경이었는지도모른다.구연백의시조는그감각의이름을조용히불러주는언어이며,그것이우리에게새삼‘시조’라는이름의문학을다시들여다보게한다.그것은더이상박제된고전이아니라,지금여기에서살아숨쉬는한호흡의문장이자,한장의마음이기때문이다.


3.사소함의미학과정서의내면화

일상의풍경은너무도가까이에있어서자칫시적시선에서멀어지기쉽다.반복되는장면들,익숙한사물들,늘있는사람과소리들속에서시인의눈이감응을잃는다면,시는존재할수없다.그러나구연백의시조는이일상의풍경속에서정서의결을길어올린다.익숙해서지나쳤던것들,작고사소해서눈길조차주지않던장면들이그의시속에서는생생한감정의매개체로떠오른다.그리하여『물새발자국』은단지시인의개인적회고나자연찬미에머물지않고,‘일상의서정화’라는보다근원적인시적과제를수행하는집요한실천의기록이라할수있다.
「가을꽃/코스모스」는그대표적인예다.

가녀린코스모스
이슬로세수하고

해님이부끄러워
살며시숙인고개

갈바람
건들거리며
슬금슬금희롱한다
-「가을꽃/코스모스」전문

이시조는사물과감정,자연과정서가하나의유기적리듬안에서교차하는감각적풍경화다.초장에서묘사되는‘가녀린코스모스’는외형의섬세함을강조하며,시인의시선이얼마나조밀하게대상에집중하고있는지를보여준다.이슬로세수하는장면은단순한자연현상이아니라,생명의기척을감각으로번역한시적장면이다.특히이슬은아침이라는시간을가리키는동시에,코스모스가세상과처음대면하는정결한감정상태를암시한다.
중장의‘해님이부끄러워/살며시숙인고개’는의인화기법을통해사물에정서를입히는구연백특유의시적전략이다.햇빛은단순한자연의요소가아니라,존재를드러내게하는시선이며,그앞에서고개를숙이는코스모스는부끄러움이라는인간의내면감정을대신표현하는매개로기능한다.이는곧인간의삶에서타인의시선혹은사회의요구앞에서움츠러드는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