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 개의 봄 (임선규 시조집)

천 개의 봄 (임선규 시조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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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임선규 시인의 첫 시조집 《천 개의 봄》은 우리 삶의 소소한 순간을 시조라는 전통 형식 안에 정갈하게 담아낸 작품집이다. 자연과 계절, 고향과 가족, 노년과 죽음을 주제로 한 120여 편의 시조는 시인이 살아온 인생 여정의 풍경이자, 이 시대를 살아가는 이들의 공통된 정서와 맞닿아 있다. 이 시집은 흔히 말하는 ‘생활 시조’의 정수를 보여준다. 원용우 시조시인은 이 작품집을 두고 “생활 시조라 해도 좋고, 시조 생활이라 불러도 좋다”고 평하며, “서정성에 미의식까지 강하고, 상상력과 비유법, 참신성이 조화를 이룬 문학성높은 시조집”이라고 말한다.

임선규 시인의 시조는 부드럽고 정제된 언어 속에 공감을 이끌어내는 힘을 지녔다. ‘오이지’, ‘말 수 줄이기’, ‘보청기’, ‘코로나 자가격리’ 등 현실적 소재와 ‘서호’, ‘장한가’처럼 고전적 주제를 아우르며 시조의 형식미와 현대적 감각을 유연하게 엮어낸다. 《천 개의 봄》은 거창한 언어 대신 다정한 시선을 택하고, 시조의 형식을 따르되 일상의 온기를 담는다. “부드럽지 않으면 잘 넘어가지 않는다”는 원용우 시인의 말처럼, 이 시집은 단단하면서도 부드러운, 오래도록 음미할 수 있는 시조의 본보기를 보여준다.
저자

임선규

충남 당진 출생, 중앙대학교 사범대학 가정교육학과 졸업, 호서중학교 교사
《문학秀》 수필 등단 (2020), 《계간시조》 시조 등단 (2022)
사) 한국문인협회, 사) 한국시조협회 회원
사임당수필백일장 장원, 운곡시조백일장 수상, 《시조문학》 작가상
청명시조문학상 수상

목차

ㆍ시인의 말

1부 서호에 뜬 달
가을날에
개망초
꽃봉오리
나뭇가지
담양 죽녹원
등나무
벚나무 아래에서
보호수保護樹
봄 언저리
봄날의 신열
봄 머리에
서호*에 뜬 달
석양
시골길
쌍계사에서
아침 산책길
파도
폭염
폭서暴暑에
호박꽃


2부 오래된 집
고향
구례에서
두물머리 산책
무교동에서
메주
미술관에서
백자
성묘
소풍
송현동 광장에서
오래된 집
오래된 엽서 한 장
오이지
올림픽공원에서
운곡을 찾아서
장독대
장롱
풍납 토성에서
한탄강의 비경
화산의 짐꾼


3부 사진첩을 보며
거울
경로석
고목古木의 뿌리
내 마음의 서랍
내 몸
당신
때로는
뜨개질
만추
말 수 줄이기
바느질
반짇고리
베란다에서
병상에서
부음을 듣고
사진첩을 보며
산소에서
엄마의 꽃밭
우리 부부
피붙이
4부 뜬소문
11월의 외출
고등어
그날
까치집
낙지의 변辯
뒷북 코로나
뜬소문
마스크
만보기
뮤지컬 공연을 보며
보청기
불면증
불통
비밀
연예인
비익조比翼鳥 사랑
종착역
짐
코로나 자가격리
폐지 모으는 영감님


5부 천 개의 봄
넝쿨장미 ㆍ 1
넝쿨장미 ㆍ 2
노송 앞에서
명자 언니
빨래
빨래를 개며
사이
선풍기
일기예보
작약
책장
천 개의 봄
초파일에
틈
어부의 노래
월담하는 꽃
월하의 향기
석별
북으로 가는 길

평설:
따스한 마음으로 보는 시선視線__원용우

출판사 서평

《천 개의 봄》 - 시조로 피워낸 삶의 온기와 품격

문학이란 무엇인가. 아마도 ‘살아가는 마음’을 담는 그릇일 것이다. 그리고 임선규 시인의 첫 시조집 《천 개의 봄》은 그 마음을 오래 달여 만든 따뜻한 찻잔 같다.
이 시집에는 총 120여 편의 시조가 수록되어 있으며, 자연과 고향, 가족, 세월, 상실, 그리고 팬데믹이라는 동시대적 경험까지 폭넓은 주제를 담아낸다. 다섯 부로 구성된 시들은 각각의 장면 속에 서정성과 통찰, 그리고 삶의 진실을 고요히 머금고 있다.
임선규 시조의 가장 큰 매력은 ‘부드러움’이다. 원용우 시조시인은 해설에서 “시조는 부드러워야 한다. 음식도 거칠면 맛이 없듯 시도 그렇다”고 했고, 이 시집은 그 말을 그대로 증명한다. 절제된 표현, 정갈한 어휘, 사려 깊은 시선이 전통적인 시조의 형식미를 해치지 않으면서도 현대적 감각을 부드럽게 녹여낸다.
‘봄 언저리’, ‘서호에 뜬 달’ 같은 자연 시에서는 계절의 숨결을 정교하게 붙잡고, ‘사진첩을 보며’, ‘부음을 듣고’ 같은 시에서는 상실의 감정을 품위 있게 어루만진다. 또한 ‘보청기’, ‘만보기’, ‘코로나 자가격리’ 등의 작품에서는 현대인의 일상과 노년의 생을 섬세하게 그려내며 독자의 공감을 자아낸다.
그의 시는 시끄럽지 않지만 결코 가볍지 않다. 시인은 과장 없이 삶을 바라보며, 익숙한 풍경 속에서 시의 가능성을 길어 올린다. 그 덕분에 이 시집은, 시조를 멀게 느꼈던 독자에게도 한 걸음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친절한 문학의 문턱이 된다.
《천 개의 봄》은 첫 시집이지만, 오래된 내공이 느껴지는 단단한 시조집이다. 그 안에는 지난 계절을 거쳐온 이의 목소리, 또 앞으로 맞이할 ‘봄’에 대한 기대가 잔잔히 배어 있다.
시조가 낯설지 않기를 바라는 독자, 일상에서 시의 순간을 찾고 싶은 독자에게 이 책은, 조용하지만 분명한 위로가 되어줄 것이다.


따스한 마음으로 보는 시선視線



원용우(시조시인, 문학박사)

임선규 시인이 첫 시조집을 내신다고 한다. 그의 실력으로 보면 이미 작품집을 발간했어야 하는데 원래 겸손한 분이라 이제야 세상에 드러낸다고 한다. 나한테 보낸 작품이 100편가량 되는데, 현재 우리들의 생활과 밀접한 소재들이다. 시조 생활이라 해도 좋고 생활 시조라 불러도 좋다. 내용을 살펴봐도 부정적인 면은 안 보이고 긍정적인 면만 그렸다. 귀에 거슬리는 언어는 찾아볼 수 없었던 것이다. 원래 시나 시조는 서정성이 강한데 이번의 작품집은 그 서정성에 미의식까지 강하다고 느껴진다. 시나 시조는 강하거나 거친 느낌이 들기보다는 부드러워야 한다. 음식도 너무 거칠거나 뻑뻑하면 맛없듯이 부드러워야 잘 넘어간다. 그리고 시조는 상상력, 비유법, 참신성이 있어야 문학성을 인정받는데, 이번의 시조집이 좋은 예라고 생각된다.


I. 인생 여정

철없던 젊은 날에 연리지 연을 맺어
나날이 쌓이는 정 복인 양 메고 왔네
왔던 길 되짚어 보니 매 순간이 꿈이다.

미움도 서러움도 정으로 삭여내고
곁가지 쳐내면서 묵묵히 걸어온 길
서녘에 해가 기우니 가쁜 숨을 고른다.
-「우리 부부」 전문

이 작품의 제목은 「우리 부부」이다. 이 세상 만물은 음과 양으로 나누어진다. 그런데 음과 양은 합쳐서 조화를 이루면서 살아가게 되어있다. 하늘은 양 땅은 음, 해는 양 달은 음, 남자는 양 여자는 음, 그런데 음양이 만나서 조화를 이루어야지, 음과 음, 양과 양이 만나면 상충이 되어 짝을 이루지 못한다. 연리지는 두 나무의 가지가 뻗으면서 합쳐진 것인데, 이 두 나무도 하나는 음, 또 한 나무는 양일 것이다. 두 나무도 암컷과 수컷이 만나서 하나의 나뭇가지가 되었을 것이다. 이 연리지처럼 하나가 되어 부부의 연을 맺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나날이 정이 쌓이고 그것을 복인 양 메고 왔다는 것이다. 지난날을 되돌아보니 꿈처럼 흘러가서 아득하다는 것이다.
살다 보니 미운 정 고운 정 다 들게 되었고, 필요없는 가지는 쳐내면서 살아왔는데 어느덧 노년기가 되어 가쁜 숨을 몰아쉬면서 종착역을 향해 달려가는 막차가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니 인간의 삶을 마라톤 선수에 비유한 것이다. 달리기를 안 하고 그냥 걸어서 가는 나그네 비유되기도 한다. “곁가지 쳐내면서 묵묵히 걸어온 길”은 상상력을 동원한 것이고 인생 여정을 나그네가 먼 길 가는 것으로 본 것은 적절한 비유다. 무대 위에 서 있는 배우라고 볼 수도 있다. 이처럼 비유법을 잘 썼으니 문학성이 뛰어난 작품이라 생각한다.

황망히 떠난 사람 소식 듣고 가는 길에
들꽃은 손 흔들고 구름은 한가롭다
변한 것 하나도 없네, 한 우주가 떠났는데

불꽃처럼 활활 타다 꺼져버린 생명의 불
빈 의자 남겨두고 어디 먼 길 가시는지
초행길 홀로 가시네 등짐 벗고 가시네.
- 「부음을 듣고」 전문

이 작품의 제목은 「부음을 듣고」이다. 누구인지는 모르지만 어떤 사람이 세상을 떠났다는 것이고, 자아는 그 장례식에 가면서 느낀 감정을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이 세상 우주 만물은 죽지 않고 영원히 사는 것은 불가능하다. 한 생애를 살았으면 이 세상에서는 생을 마감하고 저 세상에 태어나서 새로운 생을 맞이해야 한다. 그래서 우주 만물은 모두 다 자연순환의 원리를 따르게 되어있다. 그 작고한 분을 자아는 “황망히 떠난 사람”이라 표현했다. 그렇다면 그 분위기는 비통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도 자아는 평정심을 잃지 않고 있다. “들꽃은 손 흔들고 구름은 한가롭다”라고 노래하였다. 그 상황을 “변한 것 하나도 없네”라는 감정을 토로하였다. 그러면서도 한 사람이 떠나간 것을 “한 우주가 떠났는데”라고 하였다. 한 사람을 한 우주라 본 것은 성리학적 견해이다.
어떻게 한 개체를 우주라 볼 수 있는가? “사람의 형체는 천지(天地)와 상응하고 있다. 원형의 머리는 위에 있어서 하늘을, 방형의 발은 아래에 있어서 땅을 상징한다. 북극은 하늘 중앙의 북쪽에 있으므로 사람의 백회혈(百會穴)은 정수리 뒤편에 있고, 일월의 왕래는 하늘의 남쪽에 있으므로 사람의 두 눈은 모두 앞에 있으며, 바닷물은 맛이 짜고 모든 강물이 흘러 들어가는 곳으로, 남쪽 아래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사람의 성기 또한 앞쪽의 아래편에 있는데, 바른 기운을 얻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한 인생을 한 우주로 보는 것은 맞는 말이요 정당한 논리이다. 상기 작품은 기승전결의 구조를 지녔다. “불꽃처럼 활활 타다”는 인생의 전성기를 의미한다. 인생으로 말하면 40대나 50대에 해당한다. “꺼져버린 생명의 불”은 사람의 생명이 바닥까지 떨어졌음을 상징해 준다. 그래서 인생 여정이란 말이 가능한 것이다. 갓 태어난 생명은 언젠가는 죽음을 맞이하게 되는데 이것은 만물의 생장 소멸설을 밑받침해 준다. 작품에서 “빈 의자”라고 했는데 이 역시 사람이 죽었다는 것을 은유해 준다. “초행길 홀로 가시네, 등짐 벗고 가시네”는 인생의 죽음을 은유한 것이다. 이처럼 은유나 상징법을 활용해야 시적 성공을 거둘 수 있다.


II. 그리움의 정서

여기가 거기인가
친구들 어디 갔나

두레박 드리우고
옛 기억 퍼 올려도

낯익은
이 거리에서
섬이 되어 서 있네.
- 「무교동에서」 전문

이 작품의 제목은 「무교동에서」이다. 형식은 단시조이다. 원래 단시조의 효시 작품은 역동 우탁의 「탄로가」이다. 그 당시 시조의 출발은 정형시라 생각되는데, 그것은 일정한 규칙에 의하여 성립된 시이고, 그 나름의 틀과 격식이 있었다. 오래전부터 전해 오는 형식으로 이미 그 유형이 정해져 있었다. 일정한 구조를 지니고 있고, 일정한 리듬을 지니고 있다. 전통시라 하고 고유시라고도 부른다. 한자로는 ‘短時調’라 쓰는 이도 있고, ‘單時調’라 쓰는 이도 있다.
위의 시조는 3장 6구 12소절로 된 기준형에 가깝다. 기승전결 구조를 띄었는데 초장은 시상을 일으키는 기구起句에 해당한다. 무교동은 자아가 자주 방문하던 낯익은 곳이었다. 그런데 너무 안 가서 몰라보게 달라졌다는 것이다. 여기가 거기인가 친구들 어디 갔나라고 해서 낯선 곳이 되었다는 것이다.
중장은 승구承句에 해당하는데 시상의 비약이 심하다. 두레박을 드리우고 옛 기억을 퍼 올린다는 것이다. 물을 퍼 올리는 것이 아니라 기억을 퍼 올린다고 한 데에 묘미가 있다. 이처럼 시에서는 말재주를 부려야 한다. 남들이 흉내 낼 수 없는 말 부리기를 해야 한다. 마찬가지로 종장은 전결轉結에 해당하는데, 멋진 표현으로 종장의 묘미를 장식하였다. 초장에서 “친구들 어디 갔나”라고 했던 것이 종장에 와서는 “섬이 되어 서 있다”라고 하였다. 외롭다고 하지 않고 섬이 되었다고 하였다. 이런 표현이 이 작품의 가치성을 높여 준다고 생각한다.

고향집 뒤란에는 옹기들 모여산다
해와 달 오고 가고 장들이 익어가고
정화수 사발 속에는 새벽달이 뜨는 곳

동치미 설핏 어는 동짓달 추운 밤에
문풍지 재워 놓고 사뿐히 눈 내리면
눈 덮힌 항아리들은 수채화를 그린다.
- 「장독대」 전문

장독대는 고향집의 그리움이 묻어나는 곳이다. 그 위치가 집 뒤로 돌아가야만 눈에 띄는 항아리들이다. 그 항아리에는 된장, 고추장, 간장들이 가득 채워졌다. 이 장들을 매일 함께 먹고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한 가족이요 같은 식구들이다. 그 모습을 “옹기들 모여 산다”라고 하였다. 정다운 식구들이 모여 살 듯이 그 항아리들도 함께 모여 산다는 뜻이다. 그 장들은 오랜 기간 숙성시켜야 하는데 그 모습을 “해와 달 오고 가고 장들이 익어가고”라 표현하였다. 그런데 그 장독대는 우리의 어머니가 깨끗한 정화수 떠다 놓고 자식들의 성공을 비는 기도처이다. 그런데 그 정화수 있는 곳을 새벽 달이 떠 있는 곳이라 하였는데, 그것은 기도하는 시간이 새벽 무렵이란 것을 암시해 준다. 지금 세계는 현대과학 문명이 눈부시게 발전하고 있는데, 그 반대로 옛것을 숭상하면서 고전미를 맛