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으로부터 일만 광년

집으로부터 일만 광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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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당신 인생의 이야기』 『숨』의 테드 창과 『매끄러운 세계와 그 적들』의 한나 렌에 이어, 엘리에서 세 번째 SF 작가로 제임스 팁트리 주니어와 그의 첫 책인 『집으로부터 일만 광년』을 선보인다. 『집으로부터 일만 광년』은 ‘제임스 팁트리 주니어’라는 남성적인 필명을 만들어 51세의 나이에 본격적으로 SF 소설을 쓰기 시작한 저자(본명 앨리스 브래들리 셸던)의 첫 단편집이다. 지구와 우주와 소행성대를 넘나들고 인간, 외계인, 동물을 비롯해 이형異形의 존재들이 등장하는 이 무궁한 상상력의 SF 소설집에는 추격전, 첩보물, 종교전쟁, 외계인과의 첫 조우 등 탄탄하고 속도감 있는 서사뿐 아니라, 제 손으로 고향 행성을 멸망시킨 지구인의 후손, 황폐화된 에티오피아의 산맥을 달리고 또 달리며 서로를 돕고 구하는 여자애와 늑대, 실패를 반복하면서도 계속해서 인간으로 변신해 타인과 소통하고 관계 맺기를 시도하는 고독한 외계 존재가 등장해 애틋하면서도 알연한 이야기들이 펼쳐진다. 제각각의 방식으로 기묘하게 아름다운 열세 편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다.
저자

제임스팁트리주니어

JamesTiptreeJr.

본명은앨리스브래들리셸던.부모님과함께아프리카와인도를여행하며유년시절을보냈다.화가,예술비평가,군정보원,CIA정보원등다양한직업에종사했고전역후에는조지워싱턴대학교에서실험심리학으로박사학위를받았다.논문을끝마치던1967년,51세의나이에SF소설을쓰기시작했고그때‘제임스팁트리주니어’라는필명을만들었다(‘팁트리’는식료품점에서흔히보이는과일잼의브랜드명이다).군대나CIA에서여성이라는이유로원치않은주목을받았던그는‘여성SF작가’로서받게될관심에서벗어나고자남성처럼보이는필명을사용했다.
팁트리는그후10년동안편집자와동료작가들에게얼굴을보이는일없이작품과편지로만교류했다.간혹팁트리가여성이라는추측이있었지만동시대소설가이자편집자인로버트실버버그는“팁트리의글에는지울수없이남성적인지점들이있다.남성이제인오스틴의소설을썼을거라고,여성이어니스트헤밍웨이의소설을썼을거라고생각할수없”듯팁트리는남성이라고일축했다.
그리고1977년,제임스팁트리주니어가61세의여성작가임이밝혀지며SF소설계에일대파문이일었다.그가‘라쿠나셸던’이라는필명으로도글을썼다는사실또한밝혀지며,거센후폭풍속에‘팁트리쇼크’라는말까지생겨났다.젊은남성의게임판이었던SF계에서팁트리는더이상‘작가’가아닌‘나이든여성작가’가되었다.
팁트리는이사건을전후로어머니의죽음,남편의알츠하이머병발병,의붓딸의자살을연이어겪게된다.글쓰기를포기하고남아있던원고를태우려고도했다.몇년후‘제임스팁트리주니어’로작품활동을재개했지만예전처럼활발히활동하지는못했다.
말년에다다라,그간남편을보살펴온팁트리는남편의죽음이가까워진1987년5월19일에남편을총으로쏘고,자신도삶을마감했다.1991년에그의공로를기리는‘제임스팁트리주니어상’이제정되어해마다젠더에대한이해를넓힌SF및판타지문학을대상으로수여되고있다.이상은2019년,‘아더와이즈상’으로명칭이변경되었다.
제임스팁트리주니어는총한편의시집과두편의장편소설,일흔편의단편소설을발표했다(다른필명으로발표한작품포함).휴고상,네뷸러상,로커스상,월드판타지상,주피터상등다수의주요SF문학상을석권했다.『집으로부터일만광년』은1973년에출간된그의첫책이다.

목차

눈은녹고,눈은사라지고7
비비언의평화35
엄마가왔다67
구원113
고통에밝은157
테라여,그대를따르리라,우리의방식으로201
문이인사하는남자257
허드슨베이담요로가는영원273
수영장이비면나는당신을기다리고있을테요311
난너무크지만노는게좋아337
세일즈맨의탄생373
다이아몬드가득한하늘에계신어머니403
빔어스홈459

추천의글490

출판사 서평

“그는우리를속였다.정말제대로속였다.”
삶자체가SF였던제임스팁트리주니어

1970년대미국에서“가장남성적인SF를쓰는남자”,작품에“지울수없이남성적인지점들이”포진한작가.모두제임스팁트리주니어를따라다니던수식어였다.‘제임스’나‘주니어’라는이름은물론,작품의문체와소재,여성등장인물을향한성적욕망,저자의이력으로읽히는소설속군대와CIA이야기가팁트리는남성이라는점을명백히증명하는듯했다.하지만,어슐러K.르귄이썼듯,“그는우리를속였다.정말제대로속였다.”
‘제임스팁트리주니어’는앨리스브래들리셸던이51세의나이에본격적으로SF소설을쓰기시작하며고안한필명이었다.군대와CIA에서정보원으로일하며여성이라는이유로원치않은주목을받았던저자는글에서만큼은‘여성SF작가’로서받게될관심에서벗어나고자남성처럼보이는필명을사용했다.그후10년동안얼굴을보이는일없이작품과편지로만소통해오다1977년,팁트리가61세의여성작가임이밝혀진다.SF소설계에일대파문이일었고,‘팁트리쇼크’라는말까지생겨났다.후대는이사건을“별이폭발했다”라고기록한다.
그래서폭발한건어느별이었나.르귄은모두를속인팁트리에게“우리는고마워할수밖에없다”라고적는다.‘팁트리쇼크’는곧‘남성적글쓰기’와‘여성적글쓰기’에대한우리의개념을무너뜨린교란사건이었고,여태어떠한전통과편견속에서SF를,문학을읽어왔는지검토할주요계기가되었다.
그럼에도무너지지않고여전히우뚝선것이있으니,거짓이아닌저자의이력,실로‘진짜’인그의이야기들이다.군대,정보국,오지의정글,아프리카대륙등앨리스가살아온시간은곧팁트리의삶이기도했다.앨리스로서,그리고팁트리로서저자의과거와소망들이『집으로부터일만광년』의다채로운소설들속에그대로담겨있다.
소설집의문을여는「눈은녹고,눈은사라지고」의배경은먼미래,벌레한마리찾아볼수없는황폐화된에티오피아다.두팔이없는여자애와뇌병변장애를지닌늑대가건장한Y염색체-남성을납치하려강을건너고산맥을타는이아련한활극에는,부모님과아프리카를여행하며보낸팁트리의유년시절이녹아있다.미국의유명SF텔레비전드라마시리즈〈스타트렉〉을보며자란「빔어스홈」의공군조종사‘호비’는성인이되고나서도드라마속인물들이자신을데리러오리라믿으며,주둔지를습격당한와중에그들을만나러비행기를타고우주로솟구친다.호비는군정보원으로활동한저자의이력뿐아니라,여성으로서조종사가되기를꿈꾸었던과거팁트리의소망이담긴인물이다.

“우리가딱그렇게생각하지않았어?그들이착륙하기전까지는.”
우주적상상력을통해바라본지구사회,유쾌한유비와전복

팁트리는언제나경험에근거해이야기를직조해나갔다.그러나그의이야기는단지땅위에서만이루어지지않는다.수평의땅을딛고,우주를향해수직으로솟은저자의상상력은그야말로무궁무진하다.
지구식성간계몽운동을설파하러낙후된행성으로홀로여행해각종농경·산업기술을전하는지구인소년캐멀링의자아도취문물전파이야기(「수영장이비면나는당신을기다리고있을테요」).처음이자마지막사랑인연인의죽음을막으러끊임없이과거로돌아가기를반복하는룰리의가슴아픈시간도약(「허드슨베이담요로가는영원」).내장을불태우는공기,눈알을꼬챙이로찌르는듯한하늘빛,손을난도질하는듯한자갈,그럼에도끝내돌아온고향행성지구에남기로한무통無痛의존재(「고통에밝은」).행성계를넘나들고과거와미래를자유로이오가는팁트리의상상력은때로는세계사를참조해식민주의와계몽주의를유비하기도하고,때로는개인의사랑과존재의근원을탐구하며보다내밀하고철학적인주제로나아가기도한다.
하지만어느단편보다도팁트리의통쾌한상상력을엿볼수있는소설은「엄마가왔다」이다.인류의첫외계인조우사건을그린이소설은지구인남성보다키가반절씩은큰카펠라인여성들이달에착륙하며벌어지는이야기로,지구의남성지배구조를전복한유쾌한수작이다.강인한육체의여성거인앞에서지구인남성은반격도못하고그저장난감으로놀리다버려질뿐이다.하지만이소설이특별한이유는단순히성별에근거한권력구조를위아래로뒤집었다는데있지않다.카페라인들을지구에서몰아내기위해주인공들이내놓은방안은곧남성지배구조에서지구인여성틸리가겪은과거의‘상처’를재상연하는과정이기도하며,이는‘상처’란영원히상처로만남지않고(무척이나고통스럽지만)어떻든다른방식으로활용가능하다는점을보여준다.틸리가자신과똑같은상처를겪은FBI동료이자지구인남성맥스에게“다상대적인거야,그렇지않아?”라고묻는건,그렇기에삶을지속해보겠다는옅은다짐과애착으로읽힌다.

“아픔을계속간직하며살든가,아니면아픔을잊고
얼마후에더는존재하지않게되든가,둘중하나였다.”
평범하나특별하고,외로우나담대한존재들

『집으로부터일만광년』의다채로운열세편의단편을읽어나가며유독눈에띄는것은,등장인물들이하나같이어디에도온전히속하지못한채근원적인외로움에휩싸여있다는점이다.언제나‘집으로부터일만광년’떨어진이존재들은우주에집이라부를만한곳이있을지부러의심하기도하지만,그건그만큼집이라는고향과뿌리를소망하기때문이기도하다.
「테라여,그대를따르리라,우리의방식으로」에는제손으로고향행성을망가트린지구인의후손솔테라인들이등장한다(‘솔’은태양,‘테라’는지구를뜻한다).온갖행성출신의동물과인간들이모여한바탕경주를뛰는‘레이스월드’를세우고,모든경기와베팅시스템을공정하고청렴하게운영하는것이솔테라인들의자랑이자존재이유다.먼과거스스로고향을불태운조상들이후대를위해남긴,그리고그를받들어계속해서미래로잇는,‘고아’가된지구인후손들의가늘지만단단한꿈이다.고향은아니지만분명돌아갈집인레이스월드는솔테라인을비롯해고아가된모든종족의꿈이기도하다.
더불어,실패할뿐이지만계속해서인간으로변신해타인과관계를맺고‘구조’를공유하기를시도하는고독한외계존재(「난너무크지만노는게좋아」),음악취향,외모,추구하는가치등모든것이먼과거에머물러있으며홀로여전히첫우주탐사의영웅들을기억하는‘우주안전감독관골렘’(「다이아몬드가득한하늘에계신어머니」)의이야기는우리모두가겪고,또겪어나갈외로움이라는보통의정서를속도감있는SF서사속에짙은농도로녹여두었다.
그럼에도팁트리의우주속존재들은제각기다른방식으로각자의시간과삶을지속한다.그것이반세기를지나여전히우리에게유효하고,우리의마음에닿는지점이기도하다.앨리스브래들리셸던이라는51세의여성이글을쓰기에앞서‘제임스팁트리주니어’라는남성적필명을둘러쓴것또한,어떠한결연함이나묵직한다짐보다도자신만의독창적SF상상력을발휘해이야기와서사를직조해내고(외부로부터의불필요한방해없이)글쓰기를계속하겠다는,가볍지만진실된마음이아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