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을 건너온 그림들 : 우리가 지금껏 제대로 알지 못했던 한국 근현대 미술가 6인의 삶과 작품에 대하여
저자

김예진

국립현대미술관학예연구사.고려대학교에서미술교육을전공하고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한국미술사로석사학위와박사학위를받았다.기획한전시로《박수근:봄을기다리는나목》(2021),《탄생100주년기념:박래현,삼중통역자》(2020),《근대미술가의재발견1:절필시대》(2019),《해방의대서사,이쾌대》(2015)등이있다.
미술이시대를뛰어넘어사람들과교감하는힘을믿는다.전시기획과글쓰기를통해,작가와작품,시대상을새롭게선보이는이야기를세상에더하고싶다.

목차

시작하며…견디다,건너다,되살아나다

1부시대의한계를딛고
때를기다린그림들―박래현
예술이라는거처―이성자

2부어둡고긴터널을지나
사라질뻔한이름―이쾌대
아버지를기다리는딸―정종여

3부온전히,자신으로서
20세기의산책자―한묵
세상을향한기도―나희균

마치며…공명하는예술


참고자료

출판사 서평

“한국미술계에그들이있었다!”

국립현대미술관학예연구사김예진이전하는,
이시대에환대받아마땅한우리의작가와작품이야기

가려져있던시간을끌어안으며,
그들의열정과집념,예술을만나다!

오랜세월이지나고난뒤에야제대로호명되는이름들이있다.『시간을건너온그림들』은우리가지금껏제대로알지못했던한국의근현대미술가6인의삶과작품을담은책이다.박래현,이성자,이쾌대,정종여,한묵,나희균.이들은우리에게아주친숙한작가는아니지만20세기한국미술의중심부,혹은선두에서활동하며한국미술의발전에뚜렷한자취를남긴중요하고의미있는작가들이다.

2010년대접어들어국공립미술관들의기능이활발해지면서지역작가들의작품을발굴하고회고전을여는작업이잇따랐고,그러는동안신문,잡지,전시브로슈어,작가노트,편지원로작가구술등미술관련아카이브구축사업의성과가쌓이면서그자료가방대해졌다.이책은국립현대미술관학예연구사로서근현대미술전시를담당하는저자가최근10년간회고전을통해대중과만난여섯명의작가와함께한여정을담았다.

저자는‘발굴해야한다’는대의가아니라오늘날의사람이옛날사람에게자연스레느끼는‘알고싶다’는마음을,낯섦과친숙함사이의설레는마음을품고작가한명한명의생애에다가간다.분석하기보다는한편의이야기를들려주듯그림을읽어주며독자가그림뒤편에숨어있는작가의마음을상상하게만든다.그래서미술에특별한조예가없는사람이라도이책을읽고나면여섯작가가남긴그림한점씩은마음에또렷이새기게되고,그들이고된일과를마친뒤앉아있었을작업실의공기와분위기를오래도록상상하게된다.어두워길이있는지도몰랐던곳에길이나있었고,오늘날의현실과아주다르지만은않았던그길을앞서걸어간사람들이있었음을깨닫게된다.이책은그렇게선명하고다감한등불로서의역할을충실히해낸다.

‘근대’라는울렁거리는캔버스를붙잡고분투한작가들

시대의한계를딛고,어둡고긴터널을지나,
온전히자신으로서우리곁에당도하다!

한국은폭발적인속도로근대화가이루어진나라다.근대를살아간사람들은태어나서말년을맞을때까지식민지배,해방,전쟁,민주화운동,현대화를한몸으로경험해야했다.이책에소개된작가들의삶을따라가는동안가장먼저생각하게되는것은‘근대’라는캔버스의울렁거리는성질이다.오직재능으로만평가받을수있는안정된무대같은것은존재하지않았고,굴곡과혼란으로가득한채폭력적으로요동치는시대와역사자체가그들의화폭이자소재였다.개인의생존자체가위협받는일도많았으며,어렵게배움에뜻을품고들어간미술학교가문을닫는일이벌어지기도했다.남북이분단되면서작가들의사상이검증되고낙인이찍혔으며,혼란스러운국내를피해외국으로유학을떠나더라도낯선환경이주는고독감,두고온가족과조국에대한죄책감에시달려야했다.어디에작품을발표하고어떤작가들과교류할지가때로중요한기회가되기도했지만작가이자한인간으로서의행보와안전을크게제한하기도하는중대하고정치적인문제였다.

책은여섯명의작가를크게3부로나눠조명한다.작가각자가맞서야했던한계를다루되,그들이‘한계에맞서야했던작가’라는또다른한계에갇히지않도록그들의개별적인작품세계를충분히구체적으로소개한다.
박래현과이성자는‘여류화가’라는시대적차별에갇혀작가의위상과작품의가치가정당하게조명되지못했다.박래현은오랫동안청각장애를지닌화가김기창의아내로만알려져왔고,김기창의작품과함께가아니면전시회기회를얻지못했던작가였다.작업에투자하는시간과육아및가사노동에할애해야하는시간사이에서고투해야했던것은물론이다.이성자는파리에서데뷔하고그곳에서경력을쌓으며크게성공했지만그까닭에국내에는거의알려지지못했다.한번도동양적인것을그리려고애쓴적이없음에도여성작가가외국에서거둔성공을이해하지못한국내비평가들에의해‘동양미를추구한작가’로규정되기도했다.하지만두작가는누구보다독창적이고개성적인화풍으로당시의한국미술계에신선한충격을선사했으며,끊임없이새로운기법을연구해선보이는데성공했다.

이쾌대와정종여는월북작가로서오랫동안전시와연구는물론이고이름을거론하는것조차자유롭게허용되지않았던작가들이다.이들에대한연구는1988년해금된이후비로소이루어지기시작했고,고통스러운세월동안작품을보존해온가족들의협조와노력으로전시가열릴수있었다.월북했기때문에미술작업의가치또한전면부정하거나,미술작업의가치를말하기위해월북했다는사실을지우거나.저자는이둘중하나를택하는대신그들의작업은작업대로,정치적행보는정치적행보대로또렷하게조명해내며그동안알려지지않았던두작가이자인간의복잡다단한이야기를펼쳐보인다.시대정신이반영되어있는이쾌대의그림과그가아내에게써보낸편지가나란히등장해서로에게말을걸고,누구보다민족의현실을생생하게담아내려했던정종여의작가정신과그가전쟁에동조하는그림을출품했던이력이동시에다뤄진다.

한묵과나희균은각각‘이중섭의친구’와‘나혜석의조카’로대중에게알려져왔던작가들이다.이들의곤경은이들이누군가의그늘에가려져있었다는이야기를할때조차그누군가의이름을언급하지않을수없다는것이다.이들이생전의유명인들과깊은우정과돌봄,가족애를나누던관계였던것은사실이지만,그때문에온전한자신만의평가를받지못한다는것은당사자에게는쉽지만은않은일이었을것이다.이책의3부에는그들자신만의이야기가가득하다.야생적인에너지로가득한엉겅퀴를그리던한묵의화풍이파리로건너간후어떻게현대문명을상징하는추상화로180도전환을맞았는지,나희균이을지로와청계천거리에서발견한철판과구리선을이용해어떻게누구도흉내낼수없을만큼독특한작품을만들어냈는지오롯이확인해볼수있다.

전시회라는무대뒤에서만나는
생생한현장감과아름다운작품들

근대라는불안한화폭을제각기붙잡고고투했던작가들의생애,그들의작업과정에서의열정과고뇌를풍성한이야기와함께돌아볼수있다는점에더해,『시간을건너온그림들』은큐레이터로서전시를기획하고준비하는과정에서전하는생생한현장감과고민이담겨있다는점에서도흥미롭다.저자는작가의생애에남아있는빈곳을메우기위해때로는작가가고등학교시절교지에남겼던글을찾아나서기도하고,작가를알던사람들의구술을듣기위해쉬지않고발품을팔며움직이기도한다.큐레이터로서작가의유가족을만나고협조를구하는과정에서품게되는조심스러움과동지의식,한작가의전시회를가능해지게하고불가능해지게하는수많은조건과난관들,대중에게작품을소개하는방식에있어서의고민들을엿볼수있다는점도흥미롭다.이책은작가와작품을일방향으로전시하기보다는그전시회의무대뒤로독자들을초대하고,미술관의내밀한속살을보여주며,한작가의전시회를함께만들어가는느낌을주는독특한경험으로다가갈것이다.

그리고이책이지닌또하나의가치는무엇보다근현대화가들의아름답고다채로운그림들을감상할기회그자체다.처음부터눈부신자리에서사랑받았던작품들이아니라오랜침묵을견뎌내고몰이해의바다를몇번이나건넌뒤에야되살아난작품들에서느껴지는시간의깊이와질감은남다를수밖에없다.이책에실린작품들은근대와는또다르게건조하고삭막한시대를건너는독자들의마음과몸에잠시나마선명한해갈의기쁨을선사해줄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