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렌트,아도르노,브레히트,버틀러,이글턴,지젝,손택,쿳시,버거…
수많은현대의지성들이추앙한모더니티의증인이자
“섬광처럼”스쳐지나가는기억들을붙들고자했던
그무엇으로도분류될수없는문인발터벤야민
그의이름아래출간된유일한문학작품집국내초역
벤야민이사랑한모더니즘화가파울클레의그림50여점수록
주디스버틀러,존쿳시강력추천
발터벤야민의소설,꿈기록,설화등을처음으로한데모은문학작품집『고독의이야기들』이한국어로번역출간되었다.언어철학,매체이론,문예비평등으로인해상대적으로덜알려졌지만,벤야민은사는내내소설,꿈,설화,우화,비유담,수수께끼같은문학작품들을썼다.그벤야민사상에대해누구보다조예가깊은미국철학자주디스버틀러는이책을두고“벤야민읽기를놀라운방식으로재조정할굉장한선물”이라고말하기도했다.
이책에실린마흔두편의이야기는이성의영역과환상의영역사이의문턱을넘나드는꿈의세계,대도시생활에감도는성애적긴장감,이동과여행중에발휘되는상상력,어린이만이보여줄수있는인간언어의가능성,유희공간및유희활동의중요성,도박과점술,소망의독특한관계등을아우르며벤야민이사는내내천착했던주제들을탐구한다.한편이책은각단편이시작되는책장마다벤야민이사랑한모더니즘예술가파울클레의회화작품들을수록해이야기에생동감을더했다.
위대한문인-사상가는어떤문학을꿈꾸었을까?
벤야민이론의공명판이된그의문학작품들
벤야민은문학적글쓰기와비평적글쓰기사이를가르는경계선에는별관심이없었다.지금껏알려진그의많은문장에서도문학적섬광이엿보이고,나아가그의글자체가시문학없이생겨날수없는종류의것이기도하다.따라서벤야민의글을접해본독자들이라면한번쯤문학작품을쓰는벤야민의모습을상상해보았을것이다.‘벤야민이픽션을쓴다면어떤작품들을창조해냈을까?’‘벤야민이라면자신이상상한이야기를어떤종류의문학으로빚어내고싶어했을까?’노벨레,꿈기록,철학적우화,비유담,설화,수수께끼문제등을묶은이문학작품집은그오랜궁금증을매력적으로해소해준다.이책은벤야민생전에는대부분발표되지않았던,오랫동안주목받지못한텍스트들이기에출간이더욱특별하다.
이책이지닌또한가지특별한면모는여기실린작품들이벤야민의아이디어,사유의움직임을앞서공연하고있다는점이다.예컨대「네가지이야기」에등장하는차르의말단관리슈발킨과유대교경건파걸인은프란츠카프카에관한에세이에다시등장한다.「두번째자아」에등장하는‘카이저파노라마’는『일방통행로』속글을되비추는한편으로「기술복제시대의예술작품」을,그리고『1900년경베를린의유년시절』에배치된자서전적콩트들을떠오르게한다.이렇듯이책은밴야민이자신의이론적관심사들을어떤형식으로연출하고연기하고선보였는가를예시한다.
이야기들려주기에대한벤야민의이론과실천-실험
경험의전달이불가능한‘지금’시대에이야기의가능성을잇다
벤야민이문학적글쓰기를계속해나간배경에는자신만의이야기이론이있다.그는‘이야기들려주기(구술,스토리텔링)’에대한이론을여러텍스트에서다루었는데,「이야기꾼」은그중에서도대표적이다.여기서그는제1차세계대전이일어나기전만해도경험은민담과동화의형태로대대로전해졌다고주장한다.그러나세대를대대로이어주었던“경험이라는붉은실”은전쟁과함께끊어졌다.생존자들의“연약한육체”는“사방을초토화시키는유출과폭발의역장”에휘말렸던경험을이야기하지못하고입을다물었다는것.경험의전달가능성이사라지고있었다.그는사라지고있는경험의전달가능성을다시새롭게상상한다.
벤야민이찾은방법은,경험을휘발시키는‘저널리즘’언어대신구술전통을모방해이야기를들려주어경험을전달하는것이다.그는자신의문학적텍스트들에서구술전통을모방해목소리를겹겹이쌓는다.이를테면한선장이한승객에게썰을풀고,한친구가다른친구에게자기가겪은신기한일을들려주고,한사람이다른사람에게자기지인이야기를전하면,이야기를전해들은사람이전해들은이야기를우리에게전해주는식이다.이런이야기는인용,수수께끼같은말,시점들이쌓인세계를창조한다.이렇게해서이야기의채록과재구술이라는긴전통을연장한다.그리고바로여기서경험은새로운지반을찾는다.말하자면,벤야민이시도했던것은변화된조건들아래에서스토리텔링의구술성을재활성화하는작업이다.그렇다면참호에서필요한것은어떤종류의이야기일까?그가자신의문학실험을통해거듭탐구한테마는꿈과공상,여행과소외,놀이와교육론등이다.
기상천외하게밀어붙이다가아이처럼허물어뜨리는이야기의세계
책의구성:(1)꿈과몽상,(2)여행과이동,(3)놀이와교육론
이책은벤야민의문학적작업물을꿈과몽상,여행과이동,놀이와교육론등세부로나누었다.여기실린글들에서벤야민은내용에초점을맞추면서형식을놀라운방향으로,형식이스스로허물어질수도있을지점까지밀어붙인다.먼저1부의글들은꿈과몽상을중심으로모여있다.그가밤에꾼꿈이지금이세계의고통을반영하고과장한다면,그가쓴공상작품들은‘고통없는세계’의비전을그려보인다.꿈결같은풍경속에서펼쳐지는으스스한배회라는단골테마가그런고통의반영과과장을보여주고,「어느크고오래된도시에서」나「저녁의목신」에서묘사되는색채는‘고통없는세계’의비전을배경으로생동감을얻는다.
여행을다루는2부는지상과해상의풍경을지나는이야기들과크고작은도시를지나는이야기들,그리고거기서자극받은성애적동경으로구성되어있다.여행한다는것은친숙한것들을뒤로하고떠난다는뜻이다.여행은새로운규칙과새로운생활을열어낸다.이를테면「마스코테호의항해」에서선상은바다위의마법도시다.광란이규범이고선장은아무권위도없다.또여행은문턱을가시화한다.기차역과항구는다른세계로들어가는문턱이다.「북유럽바다」같은여행담에서는합리적이성의세계와망상의세계를나누는문턱이낮아진다.무엇보다여행-이동은어딘가로인도한다.「숨기고있던이야기」처럼가서는안되는곳으로유인하기도한다.여기서사건은일어나기도하고일어나지않기도한다.하지만그곳에가게된사람은가지않았더라면알수없었을많은것을목격하게된다.
3부는벤야민의사유에서서로얽혀있는두측면으로놀이와교육론을제시한다.여러편의글이말장난과놀이를탐색하고있다.벤야민의사유에비추어보면,어른들은말장난과놀이의즐거움을아이에게서배워야한다.그연장선에도박과점술도있다.「행운의손」의주제는도박의탈을쓴놀이다.놀이하듯배우는것은과학기술을활용하는데서도마찬가지여서,「1분도넘치거나모자라지않게」에서는라디오매체와상호작용하는법을배우려면어떻게해야하는가하는문제를‘놀이하듯’다룬다.
이책에실린마흔두편의글은대개짧다.벤야민은이야기형식을실험하며이야기가품은에너지를짧은분량으로압축했는데,덕분에에너지는최대한강력한상태로집약된다.이미존재하는현실들과언젠가존재할수있을지도모를현실들의농축물을만들어삼투시킨다.그런글들은만질수있고알아볼수있는세계의무언가를현실감있게보여주는한편으로,우리가마주하고우리앞에서모습을드러내는것들이때로마법처럼판타지처럼압도적이고신비한경험이되도록부려놓는다.
이책에실린작품들은벤야민이끊임없이장소를옮겨다니는불안정한생활속에서조각조각써내려간까닭에생전에는거의발표하지못했던글들이라,제대로편집이가해지기전까지는의미없이흩어져있는파편처럼보일수도있었다.그러나벤야민연구자들의충실한편집과분류,벤야민의사유와예술론을관통하는해설,마지막으로벤야민이사랑했던모더니즘화가파울클레의그림을글한편한편과엮은노력덕분에이모음집은벤야민이라는신비로운별자리를완성해낸다.
『고독의이야기들』이지닌가치는‘벤야민이위태로운정치적현실과실존속에서문학적글쓰기를시도했었고,그것을묶어낸책이처음으로나왔다’라는것에그치지않는다.이책은벤야민평생의관심사였던전승된경험으로서의이야기,꿈과환상,여행,자본주의현대사회에서두드러지는소외의문제등을그의사상에서어떻게배치해서읽어내야하는지,지금까지드러나지않았던맥락을가시화하는책이다.주디스버틀러의찬사처럼이책은벤야민읽기의메커니즘을바꿔놓을,벤야민자신이의도했던사유의단초가집약된책으로자리매김할것이다.
『고독의이야기들』은샘돌베어,에스터레슬리,서배스천트루스콜라스키가편역한WalterBenjamin,TheStoryteller:TalesoutofLoneliness(LondonandNewYork:Verso,2023)를완역한것으로,한국어판에서는WalterBenjamin,GesammelteSchriftenIII,IV,VI,VII(FrankfurtamMain:Suhrkamp,1991)을공동저본으로삼았다.표지제목은벤야민이사용한독일어로표기했으며,이책과관련이깊다고판단하여『1900년경베를린의유년시절』에실린「달」을추가로번역해실었다.모두원서편집자들의동의를얻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