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우리가걷는풍경을닮을뿐이다.”
달빛과파도,솔숲의아름다움에보폭을맞추며
일상의문법을다시배우는시인의시간
대도시를벗어나강릉바다와숲을걸으며삶의속도를다시익힌한산책자의회복일기이자,달빛과파도솔숲의아름다움에보폭을맞추며일상의문법을다시배우는시의시간.2017년독립문예지『베개』에시를발표하며아름답고서정적인문장으로독자들의마음을닦아주는정고요시인이강릉에살며산책하며떠오른단상들을산문과시와짧은소설로풀어쓴책『산책자의마음:도망친곳에서발견한기쁨』이출간된다.저자는이책에서강릉의여러해변,밤바다,조약돌,모래알들,식물들,호주머니,고양이,피아노등다양한자연과사물을사색의대상으로삼아조곤조곤써내려가며,독자들에게산책과사유의기쁨을함께누릴수있도록이끈다.
걷고,멈추고,다시걸으며오롯한하루를살아내는연습
도망치는건종종도움이된다.실은그리부끄럽지도않은일이다.정고요시인은약십일년전강원도로이주했다.시작은분명묵직한삶의무게를피해달아난‘불시착’이었지만도망친곳에서그는산책을통해자신만의호흡을다시찾아낸다.『산책자의마음』은걷고걸으며발견한일상의틈을시인의눈으로오래바라본기록이다.강원도로이주한뒤정고요는자신의나이를‘강원도력’으로말하기시작했다.이는단순한말장난이아니라삶의기준점자체를바꾸는시도에가깝다.그시도의감각은곧이책의호흡과닿아있다.시인은큰야심을품는대신스스로를‘일상인간’이라고부르며매일의질서를조금씩세워간다.대도시를떠나고서야웃음을되찾고마음의긴장을내려놓았다는고백은,『산책자의마음』이항상애써야하는단거리달리기같은삶으로의회복이아닌자신에게꼭맞는보폭의산책같은삶을지향하고있음을보여준다.
멈춘곳에서다시시작하다
“뒤에두고온것을돌아보지마,
앞으로닥쳐올것도미리보지마,
너는지금여기에있어.”
―「흐르기와산책하기」중에서
뒤를돌아보지도앞서달리지도않겠다.정고요시인이강원도에살기시작하면서스스로에게일러준태도다.그는푸른바다와숲앞에서호흡을고르고걷기부터다시배웠다.산책은해야할일들로촘촘히구획된하루의마디들사이에자신이원하는음표하나를조심스럽게끼워넣는‘쉼연습’이었다.시인은음표들을,매일의마음을글로섬세하게엮어낸다.이책에는산책이문장을만들고문장이다시하루를만드는과정이온전하게담겨있다.그러므로부제에서말하는‘도망’은대책없는도피가아니라더잘맞는삶으로의도약을위한능동적인선택이다.‘도약처’강릉에서타인의속도를강요받지않은몸과마음은본연의리듬을천천히찾아간다.시인은그곳에서잘웃는법을되찾고마음의긴장을자연스럽게내려놓는다.삶에느림과비움을끌어들이며일상을새로꾸리기시작한다.
풍경의문법을배우다
산책은어떻게문장이될까.정고요시인은풍경을소비하지않는다.그에게산책은그저걷는일이아니라사랑하는장소를매만지는행위이기도하다.쉼연습을거듭한산책자의나날에는,주머니에넣어둔조개껍데기를다시꺼내보고신발에들어간모래알까지귀히느낄만큼충분히사유할여유가생긴다.그날의산책에서돌아오면그는달빛과물소리,솔숲의바람이선사한감각을적는다.하루는그렇게일기가,시가,소설이된다.
“없는것에대한믿음을가지는것과
있는것에대한기분을가지는것에대해
생각하는오후가있다”
―시「믿음과기분」중에서
정고요의산책은비우기위해시작한다.그래서그의기록은늘눈앞의사소한것에서출발한다.숲의녹색이오늘은짙은지투명한지,파도는어디까지들고나는지,마주친동물과사람과사물들이어떤표정을짓는지.그는서둘러이름붙이지않고오래바라본다.경탄하고의아해하며감각을몸에남긴다.그렇게수집된작은발견들은『산책자의마음』안에서여러그릇을얻는다.일기의단정한문장,밤바다와여름꽃과소중한것들의목록,산문사이사이놓인몇편의시,그리고단편소설까지……스며든감각은다양하게번역되며글이되어서로의결을살린다.그흐름을따라가다보면독자역시해야할일들의마디사이에자기만의음표를어디에둘지,어떤호흡으로걸을지가만가만생각하고싶어질것이다.결국이책이건네는의미는명료하다.야심은놓아두고텃밭심으로생활하기.그렇게쌓인소박한질서가어느날우리의보폭을바꾸고,“우리는우리가걷는풍경을닮”아갈테다.걷는걸좋아하지만산책의참된기쁨은잘모르던당신에게이책은꽤믿음직한산책가이드가되어줄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