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모두변덕스럽고복잡하고예측하기어려운날씨같은마음을견디며산다.”
글은왜쓰는것일까.어떤사람이어떤계기로자신의마음을들여다보고글을쓰기시작하는걸까.고수리작가에게글을쓴다는행위는,천장에야광별을애써붙이는일과도같았다.
반드시해야할일은아니지만,종이와연필이있으면몇번이고나에게서떠났다가나에게로돌아왔다.나는쓸수록내가되었다.내가선명해지자사는일이캄캄해도무섭지않았다.괜찮다고.괜찮을거라고.곁을돌아보고돌볼수있었다.(7면)
떠밀려흘러가는하루속에서,날마다예민해지고피곤한나를발견했을때,내가아주별로인사람이되었다고깨달았을때,고수리작가는그날부터글을쓰기시작했다.
다짐했다.나의불안은내가껴안기로.어차피잠들지못할바에야잠들지않기로.캄캄한밤침대맡에앉아노트북모니터불빛아래글을썼다.하나둘나의이야기를꺼내기시작했다.글쓸때만큼은누구에게도기대지않고누구에게도말걸지않아도괜찮았다.양팔을들어동그라미를그린만큼이어도충분했다.양팔을둘러스스로를껴안아주기만해도충만했다.나는완벽한혼자가되었다.그제야오랫동안나를괴롭혔던멀미가그쳤다.(108면)
첫책이나온뒤아이둘을낳았다.그뒤로육아에전념하다“아이들과복작거리며쉬지않고바쁘게움직이는데도내가해낸일들은쌓이지않고녹아서투명하게사라졌(33면)”을때,“말할수없는이야기와설명할수없는마음들을스스로어찌할수없을때(114면)”면,더디더라도꾸준히읽고쓰는일만이자신을붙들어주었다.이전과는완벽하게다른새로운세계에진입하면서하루에도수십번요동치는감정을다독이며글을더욱절실히붙들고쓰기시작했다.그리고자신과같은처지의엄마들에게손을뻗어함께글을쓰자고이야기했다.내가사라질수록내가간절해지는마음을잘알고있으니까.
엄마들에게하고픈이야기가있다.집과부엌과커피와책과창문과돌봐야할존재들이머문당신의작은세계.그작은세계에서조차가장작은존재는아이들이아니라당신일것이다.그곳에톡.잘보이지않는곳에놓아둔작은점같아보이지만,그러나알고보면가장깊은곳에심어둔작은씨앗같은존재.(중략)죽어가도록그냥두지말고,물같은사유를,바람같은음악을,햇빛같은마음을틈틈이주면서.그렇게나를키워가며알아냈으면좋겠다.나는어떤사람인지,어떻게피어날사람인지,얼마나아름다울지.내내궁금해하고읽고쓰고생각하면서나라는사람을알아내면좋겠다.(114-115면)
고수리작가에게글쓰기란나의지나온자리를자국으로남겨하나의별자리를완성하는일,내가사랑하는사람의순간을대신기록해주는일,나만아는나의소중한사람의표정을기억해주는일,어둡고힘든시절의나를지금의내가안아주고위로해주는일이다.투명해지는나를붙잡고매일의기록으로나를스스로증명해내는일,그렇게지금이순간에도흘러가는생을당연하게여기지않고끝내잘살아보고싶어지게만드는일이다.
“매일의기록은시시했지만그것들을모으니한권의책이되었다.
인생의기록이되었다.나는고유한사람이되었다.”
『마음쓰는밤』은글쓰기와관련한고유한에세이면서동시에,글을쓰고싶은사람들을위해고수리작가가그간쌓아온노하우를곳곳에숨겨둔글쓰기수업서이기도하다.나의글에는왜깊이가없을까하는고민에빠진사람에게는자신의글이앞으로계속해서잘자라게끔나를다독이라말한다.더불어깊이에연연하는대신나다움,자신만의목소리를먼저찾을것을당부하면서.
내가나인채로사는게답답한사람들에게는글을쓰며무언가로변신해보기를권한다.굳은표정으로속마음은외투속에감춘채하루를보낸학우는자신의마음을다보여도아무에게도비난받지않는안전한글쓰기수업시간에서야비로소,밤마다부는바람에이리저리자유로이몸을흔드는나무가되어본다.아무것도아닌,가만히있는나무가되어자유로운시간을만끽한다.
이곳에서만큼은우리가받아들여진다는신뢰가쌓이면글쓰기수업의학인들은살면서꽁꽁감춰두고꾹꾹눌러놓은이야기를글로써낸다.글을쓰고직접낭독하는글쓰기수업동안흘릴눈물을대비해두루마리휴지를준비하는건고수리작가만이아니다.
그때가장중요한건,침묵을잘지키는일.가만히기다리면서침묵한다.가만히지켜보면서침묵한다.침묵으로말한다.우리가당신의이야기를잘듣고있노라고.눈빛과몸짓과숨결로다정한침묵을지키려고노력한다.끝내낭독이중단되더라도대신읽어주지않는것이무언의약속.울더라도끝까지나의이야기를나의목소리로읽어보기.몹시힘들지만모두해내고만다.그런때에는어디선가뻥,깨끗하고홀가분한소리가나는것같다.
“딸기잼병라벨에서이런문구를읽은적있어요.뚜껑을처음열때‘뻥소리’가나야정상제품입니다.사람도마찬가지라고생각해요.여러분이진짜내이야기를꺼낼때울음이터지는건정상입니다.부끄러운일이아니에요.다행인일이에요.이제활짝마음을열어마음껏써볼수있어요.깨끗하고홀가분하게진짜내이야기를써보세요.”(209면)
세수라도한듯이한결말갛고홀가분해진얼굴들을마주한다.처음글을써보는글쓰기수업에서,다니는내내뭘쓸까생각하다시도때도없이마음이뜨거워지고왈칵눈물이나기도하는행복한시간을보냈노라고고백하는20년지기친구의엄마와학우가되고,지겨울정도로오래아픈몸으로살아온학우의이야기에함께감응하고,“요즘마음이어때요?”서로에게물으면오히려가까운사람들에게털어놓지못할마음들이쏟아지는마법같은순간들이글쓰기수업이라는불빛아래에옹기종기모여든다.
자신의글에응답하는독자들의마음이,여전히믿어지지않을만큼신기하고기적같다고고수리작가는밝힌다.책에도귀소본능이있어,꼭맞는독자들의손에쥐어질거란믿음으로고수리작가는오늘도책상앞에앉아글을쓴다.마음을쓴다.그마음을받아줄당신을기다리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