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우리의 안부를 묻지 않아도

누가 우리의 안부를 묻지 않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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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우리의 음악, 우리의 생활, 우리의 시
-“지상의 마지막 악기”가 되기를 자처하는 시인 윤석정
걷는사람 시인선의 39번째 작품으로 윤석정 시인의 『누가 우리의 안부를 묻지 않아도』가 출간되었다. 2005년 《경향신문》 신춘문예에 당선되어 작품 활동을 시작한 윤석정 시인의 두 번째 시집이다. 첫 시집 『오페라 미용실』(민음사, 2009) 출간 이후 “젊음의 아프고도 생생한 순간, 그 찰나를 포착하여 ‘이야기’로 만드는 솜씨를 가진 시인”이라는 평을 받은 윤석정 시인이 십여 년 만에 선보이는 야심작이다. 윤석정 시인 특유의 서정적 서사력은 “마흔 번 휘어진 마음”(「마흔」)을 지닌 마흔 살의 중년이 되어 더 능숙한 힘을 갖는다.
이 시집은 “뭐든 아주 간절했던 스물”(「스물」)부터 “휘어진 마음을 뚫고 달려오는 전철이 보이기 시작”(「마흔」)하는 마흔까지의 이야기다. 시인은 이십여 년의 세월 동안 가족을 이루고, 가족을 잃고, 사람을 얻고, 사람을 잃으며 현실의 삶을 살아간다. “죽기 살기로 매달린 시詩/쓰고 찢고 불태운 시작 노트”(「당연한 일」)는 생활의 무게로 인해 “아무렇게나 팽개쳐 놓은 시집들”(「시적인 실업」)이 되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인은 늘 가슴 한편에 “생을 마감하는 날에 쓴 시, 더는 퇴고할 수 없는 시”(「꽃의 시말서」)를 생각한다.
시집 속에서 시인은 “안부를 묻지 않는 수신함을 열었다 닫”(「커서의 하루」)는 커서였다가, “바삐 더 바삐”(「어깨들」) 전진하는 구부정한 어깨였다가, “다 읽지 못한 시집”(「절필」) 혹은 “쓰다 만 시”가 되었다가, “그럼에도 살아야겠다고”(「살자, 돼지」) 앵앵거리는 취한 생이다. 시인은 자신이 짊어진 생활의 무게 속에서 끊임없이 스스로의 존재를 해명하려고 시도한다. 하지만 그러한 시도들은 이내 “절박한 말들이 절망할 테니 쉽게 말 못 할 말”(「말 못 할 말-백수광부」)이 되어 “문장의 모서리를 몇 번 접어 주머니에 넣”고 만다. “말 못 할 말”들을 내면의 울림통에 가득 채우며 분투하는 이 시대의 가련한 존재들 중 하나인 시인은 ‘허한 어른들의 세계’를 현실감 있게 드러내며 같은 운명을 가진 이들의 아픔을 연민하고, 그들 앞에 닥친 감각에 다가가려 손을 내민다.
“그는 시라는 것이 네모난 지면의 한계 속에서 좁아지고 납작해지는 경향을 누구보다 아쉬워하는 시인이었다. 시를 방화벽 안에 가두지 않고, 다른 인접 예술들과 상호 자극을 나누는 장르로 만들고 싶어 했다.”는 노지영 평론가의 말처럼, 윤석정 시인은 시를 노래로 만드는 트루베르Trouvere라는 팀을 이끌며 시를 입체적으로 감각하는 데 앞장선다. 이러한 시도는 시집 곳곳에도 기저하는데, “가만, 나를 떠난 노래는 내게 당도하지 않았어/강어귀 어디쯤에 표류할 저 꽃등처럼/노래의 결말은 아무도 모를 거야/어쩌면 나는 출발한 적이 없어서 도착할 수 없는/나지막한 당신의 노래를 잊지 못했는지 몰라”(「항하사」), “바다가 부르는 노래는 풍랑이므로 높으면 높은 대로, 낮으면 낮은 대로 이 풍진 세상을 곡조에 얹었을 뿐이죠”(「노래 아닌 노래」), “일제히 맨몸으로 떠나왔을 음표들이 흩날렸다 건반처럼 강의 이마를 흑백으로 수놓았다 그의 거뭇한 얼굴에 매달린 음표들이 눈물을 내밀었다”(「말 못 할 말 2-유람선」) 같은 구절들이 특히 그렇다.
삶을 압박하는 호흡 속에서 “세상이 어두워지자 리듬을 잃어버린 우리는 울부짖는다 우리의 리듬은 야생음표 (중략) 누가 우리의 안부를 묻지 않아도, 누가 시키지 않아도 야생음표는 피고 견디다 진다”(「우리의 음악」)는 마음으로, 시인은 삶의 선율을 노래한다. 윤석정 시인의 멜로디는 오늘도 어딘가에서 버거운 생을 살아가고 있을 이들에게로 끊임없이 흘러간다.
저자

윤석정

2005년《경향신문》신춘문예에시가당선되어작품활동을시작했다.시집『오페라미용실』을냈으며2016년내일의한국작가상을수상했다.

목차

1부어둠이어둔살을다게워내도록
스물
마흔
커서의하루
미지의나날
어깨들
살자,돼지
잃어버린도장
오늘의정류장
거미집
코끼리들
지금의근원
절필
물고기가헤엄친다
엉덩이

2부시간을뭉치면서자라는
시적인실업

아스라한국경
얼굴의노래
봄편지
곡우
고백의형식
최초의말
봄봄
박꽃
뭉치는시간

3부비의심장을두드리는새
말못할말
밤의병원
빨래
누가낙타를죽였을까
자라는돌
우리의음악
비의발성법
우거진봄
아픈말
강의간섭
복어는복어다
종이인형
로봇0호
달스위치

4부아무도모르게찬연하다가
앉은잠
꽃의시말서
불쌍한인간
말못할말2
21그램
노래아닌노래
불춤
당연한일
집나간옆집개
항하사
당신은누구인가
제가지금그렇습니다
우는냉장고
아빠생각

해설
야생의음표
-노지영(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