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대한민국 파수꾼입니다 : 조국 독립에 평생을 바친 16인의 대한민국 임시정부 요인들

나는 대한민국 파수꾼입니다 : 조국 독립에 평생을 바친 16인의 대한민국 임시정부 요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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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은동진

서강대학교에서역사교육박사과정을밟고있으며‘어떻게하면역사의진정한의미와가치를사람들에게전해줄수있을까?’라는고민을늘가지고있다.일반적으로알려져있는정설을재미있게풀어서전달해주는역사강사로,경직되고딱딱한학문을누구라도쉽게접근할수있도록말랑말랑하게만들어주고자노력하고있다.

EBS,이투스,에듀윌에서한국사대표강사로활동하고있으며스마일티비〈은동진의알알잼〉,SBS광복절특집다큐멘터리〈연해주의별〉,KBS2〈그녀들의여유만만〉,TV조선〈어촌캠프〉,Wee티비〈슈쾅타임머신〉,CJ헬로〈우리역사의별〉,EBSFM라디오〈쇼미더시티〉메인MC등다양한매체를통해우리역사를쉽고재미있게알려주고있다.근로복지공단,국가보훈처,기업은행,SK홀딩스,BC카드등에서강연했고,하나투어에서〈전문가동반역사여행〉을이끌며많은사람이역사에흥미를느낄수있도록힘쓰고있다.

목차

들어가며

1부임시정부의기반을마련하다
김가진버림받은애국자
신규식애꾸눈의민족지사
이종욱독립운동가인가?친일승려인가?
이동녕대한민국임시정부의수호자

2부임시정부,독립운동을전개하다
노백린대한민국하늘을열다
조동호칼대신펜을든사회주의독립운동가
엄항섭대한민국임시정부의숨은살림꾼
김철대한민국임시정부의법적소유자

3부한인애국단,임시정부에활력을불어넣다
박찬익대한민국임시정부항일외교의수장
김홍일한중진영을넘나들며일본과싸우다
정정화대한민국임시정부의보이지않는버팀목
백정기미완에그친의열투쟁의주인공

4부한국광복군,조국독립의마지막을불태우다
지청천한국광복군총사령관
한성수학병탈출1호한국광복군
오광심한국광복군의맏언니
이복원학구열에불탄미국영감군사전문가

출판사 서평

지금의대한민국을있게한일등공신
이름없이사라진애국지사들의삶을현장답사와각종사료로부활시키다

첫책《여기는대한민국임시정부입니다》를출간한후사람들에게우리역사의진정한의미와가치를좀더쉽고재미있게전달해주기위해활동분야를넓혀가며대중적인역사강의활동을펼치고있는저자은동진은이번책을통해김구,윤봉길,이봉창등우리에게잘알려진임시정부요인이외의16인의인물을발굴하여소개한다.그는대한민국임시정부소속으로누구보다조국독립을위해힘썼던이들의활약상과숨겨진이야기를생생하게전달하기위해현장답사는물론서적,논문,사진,지도,연표사료등을면밀히조사하고이를꾸밈없이보여주기위해노력했다.이책에서소개하고있는16인의임시정부요인은다음과같다.

-70대고령의나이에대한제국대신으로는유일하게상하이로망명한임시정부의원로김가진
-조국독립을위해외교활동에주력한황금인맥의소유자신규식
-임시정부연통제특파원으로활동vs불교부흥을위해친일행위.독립운동가와친일파라는상반된평가를받는이종욱
-독립운동세력의통합을염원하며임시정부요직에평생을바친임시정부의정신적지주이동녕
-‘하늘을지배하는자가승리한다.’일제의상공을노리고최초의한인비행학교를설립한노백린(feat.김종림)
-펜하나로일제의간담을서늘하게만든언론인민족투사였지만사회주의운동이력때문에업적이가려진조동호
-임시정부원로들을살뜰히살피며뛰어난언어구사능력과날카로운통찰력으로임시정부대내외업무를도맡은임시정부의그림자엄항섭
-가문대대로내려온혜택과전재산을독립운동에바친임시정부의실질적인소유자김철
-강직한성격과남다른포용력으로중국고위관리의마음을사로잡은외교협상의달인박찬일
-중국어한마디못했던군관학교학생에서한중진영을오가며항일무장투쟁을이끈김홍일
-임시정부의유일한여성특파원이자임시정부원로들의뒷바라지와안살림을책임진정정화
-이봉창·윤봉길의거에버금가는세차례의의거를시도했지만모두실패로돌아간불운의의사백정기
-한말무관학교학생부터한국광복군총사령관까지.항일무장투쟁의시작과끝을함께했으며대한민국국군의기반을마련해준지청천
-강제징용된한인학병탈출의물꼬를튼학병탈출1호출신한국광복군한성수
-실전경력과자상한성품,포용력있는대인관계와지도력으로한국광복군대원들의존경을받은오광심(feat.김학규)
-미국으로건너가선진군사기술을배워임시정부군사전문가로활동했지만어디서도조명된적없는이복원

1945년8월15일대한민국의광복은우리에게잘알려진몇몇독립운동가에의해이루어진것이아니다.이름없는수많은민중,저명한독립운동가옆에서그들을묵묵히조력하며이름없이희생된수많은사람에의해해방되었다는것을알아야한다.
누구나자유와평등을누리며사는자주독립민주국가인대한민국을있게한애국선열들의이야기를통해앞으로의대한민국을이끌어나갈미래의주역들이역사에대해좀더많은관심과흥미를갖고어떤사명을가지고어떻게살아야할지깊이생각해볼수있는기회가되었으면좋겠다.


<추천사>

독립운동가의일생과업적을정리하기란쉬운일이아니다.인물에따라자료가너무많거나너무적고,사료에따라인물을바라보는관점에차이가나기때문이다.이책은독립운동사와관련한여러서적과논문을섭렵해독립운동가의활약상을시기별·주제별로구성해놓았다.또한사진,지도,연표,사료등다양한자료를통해독립운동가의생애를시각적으로보여주고있다.한국근현대사를어렵게느끼는독자에게좋은길잡이가될것으로보인다.
-천안동성중학교교사이준연

역사심화동아리를운영하면서독립운동가의발자취를찾던중이책을접하게되었고,그동안봉인되었던위대한독립운동가의혼이되살아나는감명을받았다.이책에소개된독립운동가의삶을통해현재를살아가는우리는어떤사명으로살아가야하는지를생각해볼수있을것이다.저자가쏘아올린신호탄에발맞춰앞으로더많은독립운동가의연구가진행되기를바란다.
-동두천고등학교교사임경환

13년동안우리역사를가르치면서늘미흡하다고생각했던부분이바로독립투사에대한이야기이다.부와명예를버리고독립을위해전진하던그들의모습을오늘날대한민국청소년들이꼭알아주기를바랐는데,독립운동가의생애를일목요연하게보여주는이책이그갈증을채워주었다.교육일선에서역사를가르치는교사라면꼭읽어야하는필독서이다.
-연천중학교교사김기현

일제식민지시기독립운동가의활동과사상은‘인생을어떻게살아야하는가?’라는청소년기의삶의화두에대한방향을제시해줄수있다.이책은다양한관점에서독립운동가를조명해놓아청소년들이한국독립운동사를좀더쉽게이해하고역사에대해관심과흥미를가질수있도록도와주고있다.
-세화고등학교교사이종진


<책속에서>

1919년10월10일김가진일행은임시정부의교통국이륭양행을경영하던조지쇼의도움을받아만주안동(단둥)에서배를타고상하이임시정부에무사히도착했습니다.
1919년10월29일조선민족대동단총재김가진이임시정부에도착하자김구를비롯한임시정부의모든요인이큰절로예를표하며맞이했다고합니다.그는대한제국의대신으로는유일하게상하이로망명해임시정부의일원으로독립운동에나선것입니다.(…)임시정부에합류한김가진은대담한항일프로젝트를준비했습니다.임시정부에큰힘을실어줄또다른인사의망명을추진한것입니다.바로고종의다섯째아들이자순종의아우인의친왕이강의망명이었습니다.김가진은황위계승서열에서순종다음인이강이임시정부에서활동한다면일본은큰충격을받을것이고,임시정부의정통성확보에도크게기여할수있다고판단했습니다.또한그는의친왕이강과김가진등의이름으로제2차독립선언서를발표하면국내외관심을고조할수있다고보았습니다.
-김가진,버림받은애국자(p24~25)

그는친일행위를하면서도독립운동을멈추지않았다는증언이나오고있습니다.그래서독립운동가와친일파사이에서엇갈린평가와논란이나오고있는것입니다.(…)이종욱은친일행각에동분서주하다가1945년일본이패망하자8월17일기존에맡고있던모든직책에서사퇴했습니다.이후9월22일에소집된전국승려대회에서부일협력자제1호로지목되어승권정지3년이라는징계를당했습니다.그런데광복직후“이종욱의자금조달이없었다면임시정부가유지될수없었다.”라고말한김구의증언이나와이종욱의친일행위가‘자발적이냐,위장이냐’라는논쟁이벌어지는데영향을준것입니다.(…)이종욱은일제강점기동안독립운동한것을인정받아1977년건국훈장(3등급)이추서되었습니다.그러나1930년대친일행적이확인되어2011년서훈이취소되었습니다.후손들은‘친일행적은독립운동을위한위장’이라며이의를제기했지만보훈처는받아들이지않았고행정소송에서도패소했습니다.
한국현대사에서가장미스터리한인물인이종욱을어떻게생각하나요?그는독립운동가인가요?아니면친일파인가요?
-이종욱,독립운동가인가?친일승려인가?(p63~65)

중국신문기자출신으로글이라는매체의묘한매력을알고있던그는임시정부에서글을쓰는곳이라면어디든참가했습니다.
그중임시정부가한국독립운동사를정리하기위해임시사료편찬위원회를설치해한국독립의이론적근거를만들고일본의침략사실과한국역사의우수성을외국파견특사에게설명하기위해《한일관계사료집》을편찬했는데이작업에조동호도동참했습니다.
조동호가능력을마음껏발휘했던분야는따로있었습니다.임시정부가발행한〈독립신문〉은창간당시한글활자가없었는데조동호가성경의한글자모를하나하나떼어내직접활자를주조한것입니다.(…)만약조동호가없었더라면〈독립신문〉을창간하고배포할수없었을것입니다.활자문제를해결하자또다른문제가발생했습니다.신문에글을쓸인재가마땅치않았던겁니다.이번에도조동호가나섰습니다.그는철혈,냉열,철묵,묵망,첨구자등여러필명으로〈독립신문〉에민족정신을일깨우는항일논설을실었습니다.
-조동호,칼대신펜을든사회주의독립운동가(p111~113)

김철은고향에서는무의미하게세월을보낼수밖에없다는사실을깨닫고형제들에게조국독립을위해목숨을바치겠다는결심을밝혔습니다.
“지금우리나라처지는내일의일조차가늠할수없게되었습니다.아버지유산인농토를팔아독립자금으로쓰겠습니다.”
이번에도형제들은그의제안을반대하지않았습니다.상의끝에집안토지를팔아독립운동자금을마련하기로결정했습니다.김철뿐아니라그의형제들도대단하다는생각이듭니다.
식민통치에협력하라는조선총독부의끊임없는회유와협박으로국내에서생활이어려워지자김철은고향으로돌아온지2년만인1917년에상하이로망명을떠났습니다.상하이에도착한김철은김규식,여운형,장덕수,선우혁,서병호등을만나면서조국독립에대한열망을키워나갔습니다.
-김철,대한민국임시정부의법적소유자(p144)

초기임시정부를운영하는데핵심적인역할과실무를담당했던김철은임시정부청사의법적소유자이기도합니다.1919년4월17일임시정부청사를이전할때대부분의경비를김철과그의형제들그리고전라도지방유지들에게서모금한자금으로해결한터라상하이마랑로보경리4호에있는임시정부청사를김철의명의로임대한것입니다.또한김철은재정을다루는데능하고상하이에오래거주하면서중국사정을잘알고있었습니다.이것이바로김철의생가터에상하이임시정부청사역사관이세워진이유입니다.
-김철,대한민국임시정부의법적소유자(p149)

‘파란만장’이라는단어에가장잘어울리는것이김홍일의일생이아닐까요?중국어를알아들을수없어애먹던중국군관학교학생을시작으로만주에서독립군을이끌고러시아내전에참여했고,중국군소속으로북벌과중일전쟁을치르면서장군의자리에까지올랐습니다.또한임시정부의한인애국단과한국광복군을지원했고,해방이후에는다시중국군에돌아가한인들의순조로운귀국을위해노력했습니다.어렵게귀국한후에도대한민국국군을건설하는등조국을위해기구하고도사연많은평생을살았습니다.
김홍일장군의분투를귀감으로삼으면서수많은항일독립운동가의노력과희생이오늘의대한민국을만들었다는사실을다시한번깨닫는시간이되었으면좋겠습니다.
-김홍일,한중진영을넘나들며일본과싸우다(p201~202)

백정기는살아생전세번의의거를시도했습니다.
첫번째시도는1923년히로히토천황암살이었는데관동대지진이발생하는바람에급히돌아올수밖에없었습니다.이미완의의거는그로부터9년뒤이봉창이다시시도했습니다.두번째시도가훙커우공원의거였습니다.이쯤되면백정기와한인애국단은떼려야뗄수없는깊은인연인것같습니다.
마지막세번째시도는육삼정의거였습니다.1933년3월17일상하이의고급식당육삼정에서당시상하이주중일본공사아리요시의암살을시도한것입니다.(…)몇차례예행연습을마친후거사당일저녁류자명의장이마련한송별회에열한명의동지가모였습니다.
“동지들,저승에서만납시다.”
간단한작별인사를남긴백정기와이강훈은계획대로연회가열리기전육삼정에도착했습니다.그러나곧바로일본경찰에게체포되었습니다.의거를위해준비했던무기또한죄다압수당했습니다.남화한인청년연맹에일본경찰이심어둔밀정,즉스파이가있었기때문입니다.
육삼정의거실패로체포된백정기는재판에서무기징역을선고받았습니다.그는상고를포기하고복역하다가폐병이악화되어복역한지1년도채안된1934년6월5일서른여덟살의나이로생을마감했습니다.
-백정기,미완에그친의열투쟁의주인공(p218~221)

한인학병탈출1호한성수의합류는한국광복군내에큰반향을불러일으켰습니다.일본최고교육을받은엘리트가일본군의앞잡이가아닌강제동원되자마자탈출해한국광복군을찾아온것이기때문입니다.게다가한성수의합류이후학병출신들이연달아찾아오고있었습니다.여기에고무된한국광복군제3지대장김학규는학병들에게군사교육을시키고자한국광복군군사훈련반을설치했습니다.
꿈에그리던한국광복군에입대한한성수는한국광복군군사훈련반1기생으로입교해교육과훈련을받았습니다.5개월동안군사·훈련·정신·학교교육을받은48명의교육생은졸업후한국광복군의초급장교로거듭났습니다.당시동료들의증언에따르면한성수는뛰어난신체조건과음악적재능,열정적이면서도후덕한인품,카리스마있는지도력등을지닌누가봐도멋진청년이었습니다.
-한성수,학병탈출1호한국광복군(p265~266)

‘배움에는나이가없다’는말이있습니다.임시정부요인중에서가장뜨거운학구열을가진인물을꼽는다면저는주저없이이복원을선택할것입니다.1914년6월13일샌프란시스코에도착한이후의이복원행적은잘찾을수없습니다.‘윌리엄?이라는이름으로1916년6월클레몬트근처업랜드관립소학교를졸업했고,독립운동단체인대한인국민회와각종동포행사에적지않은기부금을냈다는기록을통해캘리포니아주남부지역에서노동과학업을병행했을거라고추정할뿐입니다.
이복원이미국에서소학교(오늘날의초등학교)를졸업했을때의나이는무려30대중반이었습니다.심지어온타리오중학교로진학해1920년6월졸업할때의나이는마흔살이되기직전이었습니다.그만큼그는새로운것을배우고자하는의지로가득차있었습니다.(…)이복원의학구열은끝이없었습니다.그는중학과정을마친후1920년9월7일미국동부버지니아주렉싱턴으로떠났습니다.그곳에는1839년설립된미국에서가장역사가긴주립군사대학버지니아군사학교(VMI)가있었습니다.이복원은더높은교육을받고자새로운곳으로이주했던것입니다.
-이복원,학구열에불탄미국영감군사전문가(p292~293)

30년만에고국으로돌아온예순여섯살의이복원은분단으로북쪽고향땅을밟지못했습니다.해방이후이미고령이었기때문에특별한활동은하지않았지만그에게는한가지꿈이있었다고합니다.
“저기(중국)에서생각할때귀국하면국군에가담하여이한몸을나라에바칠각오를하고왔는데시기가좀빠른모양인가….”
해방된조국에서군인이되고싶었지만그꿈은실현되지못했습니다.대신귀국한한국광복군동지들이직장을구하는데노력을기울였다고합니다.
군인처럼보이지않는온유한인상의소유자였을이복원은조국독립에도움이될선진학문을끊임없이탐구하다가마흔살이넘은나이에중국으로가서독립운동에뛰어들어12년간군사전문가로활동했습니다.가족도없이독신으로살다가6.25전쟁중실종된이복원.평생을한국의군인으로살기위해그누구보다뜨겁고열정적인삶을살았던그를다시한번조명해봐야되지않을까요?
-이복원,학구열에불탄미국영감군사전문가(p3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