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원교 (말 없는 붓, 외로운 먹 | 정강철 장편소설)

소설 원교 (말 없는 붓, 외로운 먹 | 정강철 장편소설)

$14.15
Description
동국진체(東國眞體)를 완성한 서예가
원교 이광사의 삶과 예술혼을 추적한
정강철 장편소설 『소설 원교』
조선 고유의 서체인 동국진체(東國眞體)를 완성한 것으로 평가받는 서예가 원교(圓嶠) 이광사(李匡師, 1705 ~1777)의 예술혼과 일대기를 다룬 장편소설 『소설 원교』(문학들)가 출간되었다. 올해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우수출판콘텐츠 선정작이기도 하다.
원교는 1775년(영조 31년), 나주 벽서 사건에 연좌되어 친국 끝에 종신유배형을 받아 간신히 목숨을 부지했다. 함경도 부령으로 유배되었다가 호남 신지도로 이배되어 그곳에서 죽었다. 죽음을 앞두고 이광사는 되뇌었다.
“서도(書道)는 큰 도인가 작은 도인가.”
붓을 들고 글씨를 쓰는 일이 삶이었기에 목숨이 다하는 순간까지 생각나고 걱정되는 건 오로지 글씨였다.
소설은 외로움과 진한 먹향이 가득했던 그의 신산한 생애를 추적하면서 자신만의 고유한 서체를 완성하기 위해 절치부심했던 한 외로운 예술가의 혼을 섬세한 문체로 그려낸다.
저자

정강철

전남영광에서태어났다.1987년‘오월문학상’에소설「타히티의신앙」,1989년〈광주일보〉신춘문예에「암행」,1993년〈문학사상〉신인상에「거인의반쪽귀」가당선되어문단에나왔다.중국천진의조선족삶의현장을배경으로한장편소설『신·열하일기』를발표했고,〈전남일보〉에저예산독립영화인의애환을담아낸『외등은작고외롭다』를연재했다.한국문화예술위원회3천만원공모에당선된장편소설『블라인드스쿨』을통해다양한교육주체의서로다른시선에따른우리사회의교육현실문제를생생하게그려냈다.「바다가우는시간」으로‘목포문학상’을수상했고,소설집『수양산그늘』은문화체육관광부‘문학나눔우수도서’로선정됐다.

목차

붓꽃7|원포園逋12|서결書訣27|백하白下34
묵창墨瘡49|물53|심획心劃61|임서臨書67
언필偃筆산봉散鋒80|속필俗筆85|순녕사달順寧舍達90
법첩法帖101|강화江華113|진경眞景124|옥동玉洞130
둥그재153|상고당尙古堂169|내도재來道齋191|홍매문紅梅文199
애꾸206|을해지옥乙亥地獄228|도망悼亡244|두남斗南256
남녘하늘266|부작위不作爲275|적소謫所284|이배移配295
신지도薪智島301|수북壽北312|농필弄筆322
독필禿筆,닳아홀린붓330

해설유배지에핀붓꽃김영삼338
작가의말356
참고자료359

출판사 서평

‘세상을등지고달아나다’
원교의가문은폐족임을자처했다.집안의정자에는‘원포(遠逋)’라는글자의목조편액이걸려있었다.‘세상을등지고동산으로달아나다’라는의미다.그의가문은조선제2대임금정종의서얼왕자였던덕천군이후생의후손으로왕가의피가흘렀고,이광사의고조부이경직은호조판서를,그의부친이진검은예조판서를지냈다.그럼에도일족은권력과거리를두고부귀를삼가며,서도(書道)를추구하면서양명학의정신을가다듬었다.

“무엇에써먹기위해글을읽는것이냐?그렇지않다는걸깨달을때까지,서책을읽는데게을리하지마라.”
“욕심을버리면누구나태평한세상을누릴수있다.우리집안은본디왕족이었고,명필가문이니라.서도를지킬것이며우리법도대로살아가면된다.”

그러나당쟁의파장은집안의‘법도’를단숨에휩쓸었다.백부이진유와아버지이진검이묵숨을잃었다.원교에게는유배령이내렸다.함경도부령에서7년을,다시신지도에서15년을살았던그는끝내뭍을밟지못했다.

스승백하윤순
원교이광사가어린시절부터글씨에천착할수밖에없었던건가문의운명이자,그의숙명이었다.글씨에재능을보이면서이광사는백하윤순의가르침을받게된다.소설의중반부까지스승백하윤순과의관계는예술적긴장감을형성한다.스승의인정을받기위해서뿐만아니라,한명의예술가로서세계관이완성되어가는순간이다.스승의가르침은잘벼려진칼날처럼언제나날카롭고,차갑고,송곳처럼허술한부분을찌르고들어온다.

-아무짝에도쓸모없는글씨를남발하다가,파지를주워모아저잣거리에퍼질러앉아놋그릇이나닦고자빠져있을놈.
백하의언성이차츰가라앉았으나노기를거둬들인건아니었다.
아직도여차하면지필묵을뒤엎고벼루를던질태세였다.광사가무릎을굽히고스승의말을새겼다.

스승의글씨를청하는이들이찾아왔다.그러나스승은마침자리에없었고,그들은스스로를백하의제자라말한사람의글씨를보고싶어한다.마지못해이광사는몇자를적었고,그에대한어쭙잖은평을나누던참에외출했던스승이들어왔다.
“이놈이필경미친게로구나.천한놈.점획도모르고결구도터득하지못한주제에…….먹물인지구정물인지도가려내지못한놈이,속기에빠져남앞에서글씨자랑질을해?제글씨에스스로목을치는망나니가되었구나.개꼬리묵혀둔다고황모가된다더냐?어디,서도가눈앞에어른거리던?”
스승백하는겉멋과허세와욕심을나무란것이었다.제자의글씨가부와권력의수단이되는걸경계했다.그의집안이어떻게몰락했는지를잘알기때문이었다.

동국진체,조선의글씨
원교는엄한스승의밑에서부지런히자신의글씨를갈고닦는다.‘임진부작위(任眞不作爲)’,본래제모습에충실할뿐꾸미지아니한다는정신을자신의글씨와삶의원칙으로삼았다.스승이죽을때까지그는단한번도스승으로부터인정받지못했다.

-글씨의바탕을왕희지에게배우되,왕희지를뛰어넘어,우리조선을글씨를모색해야지.한가지서체에집착하다보면우물안에갇히는편협에빠질수도있을터,넓게보고멀리가야한다.죽는날까지걸어야할길이라면.

왕희지를넘기위해서는왕희지를써야한다.임서를거쳐야배임이가능하며,뜻이따라와야만자유로움이가능해진다.그것이스승의가르침이었다.인고의시간을버티면서왕희지의글씨를따라쓰고,또쓰고,다시쓰는시간.그사이에그의몸에는먹향이,정신에는외로움이깃든다.그리고스승이죽고나서야그의글씨는다음과같이평가받는다.

-장차,조선을대표할글씨라하셨습니다.두고두고지켜보아도물리지않는글씨,가르치지않았어도순연히내뿜는분방함이야말로타고났다하셨습니다.왕희지를익히라했더니마침내왕희지를뛰어넘는글씨를써낸제자라하셨습니다.
-무,무슨,말씀을…….
-조선최고의명필,아버님께서원교이광사의글씨를두고하신말씀입니다.허무맹랑한필흥인줄알고광사를나무랐는데어찌된일인지놔두고볼수록영묘한감흥이일렁이게하는걸작이라하셨습니다.참으로오묘한일이라며,보면볼수록진가가묻어나는글씨,누구도흉내낼수없는조화를부린거라며,저에게당부하셨습니다.이글씨를진본으로지키고가보로전하라하셨습니다.

필흥이너무솟구친다며엄하게단속했던글씨였다.“봉두난발로머리를풀어헤치고날아다닌것”(117쪽)같다며노여워하던글씨였다.“새를그린것처럼머리와꼬리가날렵하지만,급한마음을감추지못하고멋대로활개를쳐서엇되고되바라져”(117쪽)있다던글씨였다.아직까지버릇을고치지못했느냐며질책하던글씨였다.그글씨가스승의필함에간직되어있었다.“청어람할수있는유일한제자는오직한사람,원교이광사”(127쪽)라는스승의전언에제자는엎드려울음을토했다.
중국의서체에서벗어난서체,진경의시대라불릴정도로문화의비약적발전이이루어진18세기에비로소피어난조선의글씨,동국진체는이렇게윤순백하의서법을계승한이광사의손에서완성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