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고픔이 고양이를 울고 갔다 - 문학들 시인선 20

배고픔이 고양이를 울고 갔다 - 문학들 시인선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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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나’를 유령처럼 살게 하는 사회
체험적 사유 돋보이는 송태웅 시집
『배고픔이 고양이를 울고 갔다』
바람 소리가 대숲을/쓸고 갔고/배고픔이 고양이를 울고 갔다/추위가 보일러를 건드리다 갔고/나는 한사코 당신을 울지 않았다//내가 당신을 울면/당신은 전깃줄에 매달려 감전당한/전기공처럼/위태로워질 것이기에
- 「배고픔이 고양이를 울고 갔다」 전문

대숲에 바람이 불고 고양이 울음이 들리다 만다. 한겨울 추위에 보일러가 그르렁거리다 만다. 어떤 이유에서인지 나는 한사코 울음을 참고 있다. 내가 울면 당신이 “전깃줄에 매달려 감전당한/전기공처럼” 위태로워질 것이기에.
표면의 상황은 이렇다. 하지만 그 사고현장에 시인도 있었을까 하는 상상에 이르면 이 짧은 시의 공명에 돌연 몸서리치게 된다. 어떤 장례도 흔한 장례는 없다. 화재 진압에 나선 소방관이 죽거나 다치고, 어느 날 멀쩡하던 육교가 내려앉아 행인이 사망한다. 이때의 파국은 동행자를, 독자를 그냥 통과하지 않는다. 죽은 자와 살아남은 자의 경계가 실존의 명분을 뒤흔들기 때문이다.
무릇 좋은 시는 그 시인의 삶에서 탄생한다. “나는 한사코 당신을 울지 않았다”라고 썼지만, 이것은 억지다짐, 시인의 역설일 것이다. 그 이유를 시인은 당신이 위태로워지기 때문이라고 썼다. 내가 울면 당신은 물론 나도, 또 우리가 살고 있는 그 어떤 당위도 끝장나고 말 것이다.
당신이 한순간 뜨거운 불에 감전사한 어느 날, 홀로 돌아와 맞는 한겨울밤 생의 위태로운 파장. 그 파장이 부조리한 들판의 칼바람이 되어 독자를 실존의 영역으로 급격히 몰아세운다. 이 시는 시인의 체험에서 나왔다고 한다. ‘나-당신-전기공’, 시인은 그 주체를 치환함으로써 서로 다른 ‘나’, 우리들의 경계를 아프게 되묻고 있다.

최근 나온 송태웅 시인의 네 번째 시집 『배고픔이 고양이를 울고 갔다』(문학들)를 읽으며 떠올린 생각이다. 한때 중등학교 국어 교사였던 시인은 지금 전라도 구례의 지리산 자락에서 홀로 살고 있다. 이번 시집에 화엄사, 천은사, 노고단은 물론이고 구례 문척을 소재로 한 연작시가 등장하는 배경이다. 시인은 얼마 전까지 완도 땅 보길도에서 기간제 교사로도 활동했다. 주말마다 구례와 보길도를 오가며 쓴 시편들도 이 시집의 다른 한 축을 이루고 있다.
보길도 바닷가 마을 폐가 안방에 걸린 가족사진을 보며, 이미 떠나고 없는 자들과 임시거주자인 자신의 삶을 파도에 씻기는 몽돌에 비유한 시 「몽돌해변에서」는 수묵화처럼 농담이 깊고 시적 성취감이 높다. (“바닷물에 몸 씻는 돌들은 바닷가 마을 빈집들의 안방에 걸린 가족사진 속의 얼굴들이었다 몽돌들도 한때는 가족사진 속의 얼굴들처럼 이목구비가 선연했을 텐데”).
이 시집에서 또 도드라지는 것은 ‘새’다. 피아골을 비추는 산불 감시용 시시티브이의 화면을 매개로 실상과 허상, 존재와 비존재의 문제를 노래한 「새와 나」가 대표적이다.(“정지된 화면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려는 듯이 새 두 마리가 쓱 지나갔다//새는 어디서 와서 어디로 나는가 새는 실체인가 그림자인가”)
「몽돌해변에서」와 「새와 나」 그리고 죽은 자와 살아남은 자의 경계를 노래한 표제작의 공통점은, 그의 시들이 존재하나 존재하지 못하는 현실의 부조리를 아프게 들여다보고 숙고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그것을 유령들의 노래라고 이름 붙일 수도 있겠다. 존재하나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비치는 시시티브이 속의 새와 나의 세계. 진짜와 가짜, 진실과 허구의 세계.
시인은 그 경계를 서성이며 질문하는 자다. 나와 당신을 유령처럼 살게 만드는 이 거대한 세상의 거울을 향해 말이다. 체험에서 비롯된 시적 사유가 돋보이는 이번 시집의 저자 송태웅은 1961년 전남 담양에서 태어나 전남대 국문과를 졸업했다. 계간 『함께 가는 문학』 신인상을 수상한 이후 시집 『바람이 그린 벽화』, 『파랑 또는 파란』, 『새로운 인생』 등을 펴냈다.
저자

송태웅

1961년전남담양에서태어나고전남대국문과를졸업했다.계간『함께가는문학』시부문신인상을수상하며등단했다.시집으로『바람이그린벽화』,『파랑또는파란』,『새로운인생』등이있다.현재는지리산의천은사와화엄사사이에있는마을에서노고단을올려다보며살고있다.

목차


5시인의말

제1부
13배고픔이고양이를울고갔다
14새들은고양이들은
15두메부추
16아침산책
18견두산맥을바라보며
20모래들에게묻는다
22에릭사티
24노고단오르는길
26전어
28숲속길
30입추
32석탑
34보칼리제
35저녁화엄사

제2부
39불켜지않은등대-땅끝1
41몽돌해변에서
42섬
43먼곳보다더먼-땅끝2
44평균율
46바다보다더먼마을-땅끝3
47강아지와강아지
48아침바다-땅끝4
50벚나무한그루
52심야에내리는비
54네숨소리로밀생하는은빛멸치떼-땅끝5
56이유기
58압해도

제3부
63귀명창-문척1
64야행-문척2
66참회-문척3
67불꽃놀이-문척4
68너없는빈집에서-문척5
70혼자잠든남자-문척6
72문척작은다리-문척7
74송광사일박
76각황전
78천은사가는길
80천은저수지
82보성강변을지나며
84자귀꽃1
86자귀꽃2
87단풍나무들

제4부
93새들은
94알렉산드로스라는이름의새
95새와나
96휘파람새
98토요일의명상
100봄날들
101백로白露
102와온바다
104사람의아들
1061989년5월어느날로부터온편지
107봉성산공원에서
108토란잎에뒹구는물방울하나
110심야의편의점
112꽃과쇠
113무당새날아오는오후

117해설섬에서다시‘섬’을노래하는21세기의노마드_김규성

출판사 서평

‘나’를유령처럼살게하는사회
체험적사유돋보이는송태웅시집
『배고픔이고양이를울고갔다』

바람소리가대숲을/쓸고갔고/배고픔이고양이를울고갔다/추위가보일러를건드리다갔고/나는한사코당신을울지않았다//내가당신을울면/당신은전깃줄에매달려감전당한/전기공처럼/위태로워질것이기에
-「배고픔이고양이를울고갔다」전문

대숲에바람이불고고양이울음이들리다만다.한겨울추위에보일러가그르렁거리다만다.어떤이유에서인지나는한사코울음을참고있다.내가울면당신이“전깃줄에매달려감전당한/전기공처럼”위태로워질것이기에.표면의상황은이렇다.하지만그사고현장에시인도있었을까하는상상에이르면이짧은시의공명에돌연몸서리치게된다.어떤장례도흔한장례는없다.화재진압에나선소방관이죽거나다치고,어느날멀쩡하던육교가내려앉아행인이사망한다.이때의파국은동행자를,독자를그냥통과하지않는다.죽은자와살아남은자의경계가실존의명분을뒤흔들기때문이다.

무릇좋은시는그시인의삶에서탄생한다.“나는한사코당신을울지않았다”라고썼지만,이것은억지다짐,시인의역설일것이다.그이유를시인은당신이위태로워지기때문이라고썼다.내가울면당신은물론나도,또우리가살고있는그어떤당위도끝장나고말것이다.당신이한순간뜨거운불에감전사한어느날,홀로돌아와맞는한겨울밤생의위태로운파장.그파장이부조리한들판의칼바람이되어독자를실존의영역으로급격히몰아세운다.이시는시인의체험에서나왔다고한다.‘나―당신―전기공’,시인은그주체를치환함으로써서로다른‘나’,우리들의경계를아프게되묻고있다.

최근나온송태웅시인의네번째시집『배고픔이고양이를울고갔다』(문학들)를읽으며떠올린생각이다.한때중등학교국어교사였던시인은지금전라도구례의지리산자락에서홀로살고있다.이번시집에화엄사,천은사,노고단은물론이고구례문척을소재로한연작시가등장하는배경이다.시인은얼마전까지완도땅보길도에서기간제교사로도활동했다.주말마다구례와보길도를오가며쓴시편들도이시집의다른한축을이루고있다.

보길도바닷가마을폐가안방에걸린가족사진을보며,이미떠나고없는자들과임시거주자인자신의삶을파도에씻기는몽돌에비유한시「몽돌해변에서」는수묵화처럼농담이깊고시적성취감이높다.(“바닷물에몸씻는돌들은바닷가마을빈집들의안방에걸린가족사진속의얼굴들이었다몽돌들도한때는가족사진속의얼굴들처럼이목구비가선연했을텐데”).

이시집에서또도드라지는것은‘새’다.피아골을비추는산불감시용시시티브이의화면을매개로실상과허상,존재와비존재의문제를노래한「새와나」가대표적이다.(“정지된화면이아니라는것을증명이라도하려는듯이새두마리가쓱지나갔다//새는어디서와서어디로나는가새는실체인가그림자인가”)「몽돌해변에서」와「새와나」그리고죽은자와살아남은자의경계를노래한표제작의공통점은,그의시들이존재하나존재하지못하는현실의부조리를아프게들여다보고숙고하게만든다는것이다.그것을유령들의노래라고이름붙일수도있겠다.존재하나존재하지않는것처럼비치는시시티브이속의새와나의세계.진짜와가짜,진실과허구의세계.

시인은그경계를서성이며질문하는자다.나와당신을유령처럼살게만드는이거대한세상의거울을향해말이다.체험에서비롯된시적사유가돋보이는이번시집의저자송태웅은1961년전남담양에서태어나전남대국문과를졸업했다.계간『함께가는문학』신인상을수상한이후시집『바람이그린벽화』,『파랑또는파란』,『새로운인생』등을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