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ription
해학이 사라진 시대에
돋보이는 남도 서정시의 특장
최승권 시집
『눈은 어머니를 꿈꾸며 지상에 내려왔을까?』
돋보이는 남도 서정시의 특장
최승권 시집
『눈은 어머니를 꿈꾸며 지상에 내려왔을까?』
1986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시 「겨울수화」가 당선되어 등단한 최승권 시인이 두 번째 시집 『눈은 어머니를 꿈꾸며 지상에 내려왔을까?』를 ‘문학들 시인선’으로 펴냈다. 첫 시집 『정어리의 신탁』이 문명 비판과 비상식적인 현실에 대한 대응력을 위해 낯선 실험을 감행한 것이었다면 이번 시집은 그의 본령이라고 할 수 있는 남도 서정시의 특장을 보여준다.
쑥 톳 미역 우럭 장애 간재미 하네들이//몸뻬 다리를 꼬고 바다를 보며 한나절 나란히 앉아 머리를 푸르게 말고 있다.//여긔 오문 시상 엄니들 야그 다 돌돌 말려서 빠마된당께라우//고구마 한 솥 나눠 먹은 노을 속 검은 날개 새 떼들은//흐린 유리창 밖 구불구불한 파도를 이고 주름진 고샅길을 잘도 넘어간다.
- 「조도미장원」
‘하네’는 할머니를 가리키는 전라도 입말이다. 이 시는 전남 진도에 속한 섬, 조도의 미장원 풍경을 그린 것이다. 시인은 조도 아짐(아줌마)들의 한나절 삶을 바다와 바다 것들, 쑥이며 톳 미역 등과 한 몸으로 엮었다.
입말이 두드러지는 구절을 굳이 표준어로 바꾸어 보자면 ‘여기 오면 세상 어머니들 이야기 다 돌돌 말려서 파마된다니까’라는 뜻이 된다. 전라도 입말의 박자며 높낮이, 예컨대 “∼라우”라는 가락과 정감을 아는 독자라면 이 시가 왜 전라도 입말로밖에 표현될 수 없었는지 수긍이 갈 것이다.
‘노을 속 새 떼들도 고구마 한 솥을 나눠 먹고 구불구불한 파도를 이고 주름진 고샅길을 잘도 넘어가는’ 풍경에는 삶의 희로애락을 전라도 산등성과 논밭처럼 자연스레 넘어가려는 시인의 긍정의 시선이 배어 있다.
표준어의 시대일수록 토속어의 자리는 비좁아진다. 한 지역의 입말에는 그 지역의 삶이 배어 있다. 한 지역의 언어가 사라지면 그 지역의 삶도 사라진다. 사람이고 언어고 표준만 남게 되면 특별한 것은 이상한 것, 촌놈 취급을 받게 된다.
늘어지다 다그치고 맺다가 푸는 가락과, 청중을 웃고 울리는 능청과 해학은 지극히 전라도적인 것이다. 서편제 판소리와 들노래, 다시래기 등이 그렇다. 가깝게는 김영랑, 김지하, 송수권의 시들이 그렇다. 무등산 위로 아침이 오는 풍경을 마치 카메라의 롱테이크처럼 묘사한 시 「낳다와 열리다」는 한 편의 서사시 같은 광경을 선사한다.
산포 작은댁 맨드라미 꽃벼슬 암탉은/신새벽 높다란 대나무 횃대에 올라/세 번이나 목청을 칼칼하게 돋우어서/동녘 하늘을 불그레레 낳는다//아따, 아침이 왔부러당께에∼!//그 통에/장작불에 뜨뜻했던 솜이부자리가 열리고/정제의 부뚜막이 뭇쇠솥 수증기로 푸웃! 열리고/들녘의 어둠을 막아선 사립문짝이 열리고/골목 끝까지 작은 들창문들이 스르륵 열리고/싸리닭장문이 살금살금 열리고/작은 대소쿠리에 달걀이 졸랑졸랑 열리고/노오란 노른자를 쏘옥 넘기는/작은댁 큰형의 목구멍이 대문보다 더 크게 열렸다//아침마다 햇노랑 무등은/달걀 모양의 탱글탱글한 태양을 낳고/태양은 보드레레한 산포 작은댁을 낳고/산포 작은댁은 방학 때마다 어린 나를 다시 둥그렇게 낳았다
- 「낳다와 열리다」
해학은 대상과 현장에 매몰되어서는 나올 수 없는 장기다. 그의 시가 비장한 것은 어둠과 빛을 함께 바라보는 균형감 때문이다. 그는 어둠을 노래할 때도 그늘에 박혀 있지 않고 빛을 끌어와 씩씩하게 꿈꾸게 한다.
어떻게 하다 보니/수채통 옆집에 세 들어 살아도/고개는 바싹 들고 할 말은 하고 삽니다.//빛방울만 몇 떨어진다면/물곰팡이 피는 시간도 구부려서/작고 노란 태양으로 한껏 펼쳐낼 수 있습니다.
- 「민들레의 말씀」
최 시인은 광주 양림동에서 태어났다. 그곳을 기반으로 한 가족사가 시집의 2부와 3부를 구성한다. “좋은 시가 지닌 본질의 힘”(곽재구 시인)을 느끼게 해주는 이번 시집은 요즘 보기 드문 해학이 깃들어 있는 시편들이 다수 있어 독자의 눈길을 끈다.
쑥 톳 미역 우럭 장애 간재미 하네들이//몸뻬 다리를 꼬고 바다를 보며 한나절 나란히 앉아 머리를 푸르게 말고 있다.//여긔 오문 시상 엄니들 야그 다 돌돌 말려서 빠마된당께라우//고구마 한 솥 나눠 먹은 노을 속 검은 날개 새 떼들은//흐린 유리창 밖 구불구불한 파도를 이고 주름진 고샅길을 잘도 넘어간다.
- 「조도미장원」
‘하네’는 할머니를 가리키는 전라도 입말이다. 이 시는 전남 진도에 속한 섬, 조도의 미장원 풍경을 그린 것이다. 시인은 조도 아짐(아줌마)들의 한나절 삶을 바다와 바다 것들, 쑥이며 톳 미역 등과 한 몸으로 엮었다.
입말이 두드러지는 구절을 굳이 표준어로 바꾸어 보자면 ‘여기 오면 세상 어머니들 이야기 다 돌돌 말려서 파마된다니까’라는 뜻이 된다. 전라도 입말의 박자며 높낮이, 예컨대 “∼라우”라는 가락과 정감을 아는 독자라면 이 시가 왜 전라도 입말로밖에 표현될 수 없었는지 수긍이 갈 것이다.
‘노을 속 새 떼들도 고구마 한 솥을 나눠 먹고 구불구불한 파도를 이고 주름진 고샅길을 잘도 넘어가는’ 풍경에는 삶의 희로애락을 전라도 산등성과 논밭처럼 자연스레 넘어가려는 시인의 긍정의 시선이 배어 있다.
표준어의 시대일수록 토속어의 자리는 비좁아진다. 한 지역의 입말에는 그 지역의 삶이 배어 있다. 한 지역의 언어가 사라지면 그 지역의 삶도 사라진다. 사람이고 언어고 표준만 남게 되면 특별한 것은 이상한 것, 촌놈 취급을 받게 된다.
늘어지다 다그치고 맺다가 푸는 가락과, 청중을 웃고 울리는 능청과 해학은 지극히 전라도적인 것이다. 서편제 판소리와 들노래, 다시래기 등이 그렇다. 가깝게는 김영랑, 김지하, 송수권의 시들이 그렇다. 무등산 위로 아침이 오는 풍경을 마치 카메라의 롱테이크처럼 묘사한 시 「낳다와 열리다」는 한 편의 서사시 같은 광경을 선사한다.
산포 작은댁 맨드라미 꽃벼슬 암탉은/신새벽 높다란 대나무 횃대에 올라/세 번이나 목청을 칼칼하게 돋우어서/동녘 하늘을 불그레레 낳는다//아따, 아침이 왔부러당께에∼!//그 통에/장작불에 뜨뜻했던 솜이부자리가 열리고/정제의 부뚜막이 뭇쇠솥 수증기로 푸웃! 열리고/들녘의 어둠을 막아선 사립문짝이 열리고/골목 끝까지 작은 들창문들이 스르륵 열리고/싸리닭장문이 살금살금 열리고/작은 대소쿠리에 달걀이 졸랑졸랑 열리고/노오란 노른자를 쏘옥 넘기는/작은댁 큰형의 목구멍이 대문보다 더 크게 열렸다//아침마다 햇노랑 무등은/달걀 모양의 탱글탱글한 태양을 낳고/태양은 보드레레한 산포 작은댁을 낳고/산포 작은댁은 방학 때마다 어린 나를 다시 둥그렇게 낳았다
- 「낳다와 열리다」
해학은 대상과 현장에 매몰되어서는 나올 수 없는 장기다. 그의 시가 비장한 것은 어둠과 빛을 함께 바라보는 균형감 때문이다. 그는 어둠을 노래할 때도 그늘에 박혀 있지 않고 빛을 끌어와 씩씩하게 꿈꾸게 한다.
어떻게 하다 보니/수채통 옆집에 세 들어 살아도/고개는 바싹 들고 할 말은 하고 삽니다.//빛방울만 몇 떨어진다면/물곰팡이 피는 시간도 구부려서/작고 노란 태양으로 한껏 펼쳐낼 수 있습니다.
- 「민들레의 말씀」
최 시인은 광주 양림동에서 태어났다. 그곳을 기반으로 한 가족사가 시집의 2부와 3부를 구성한다. “좋은 시가 지닌 본질의 힘”(곽재구 시인)을 느끼게 해주는 이번 시집은 요즘 보기 드문 해학이 깃들어 있는 시편들이 다수 있어 독자의 눈길을 끈다.
눈은 어머니를 꿈꾸며 지상에 내려왔을까? - 문학들 시인선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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