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에서 만난 눈송이처럼 - 문학들 시인선 27

길에서 만난 눈송이처럼 - 문학들 시인선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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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시 쓰기의 치열한 고투는
사랑하기와 한몸
박노식 시집 『길에서 만난 눈송이처럼』
박노식 시인이 네 번째 시집 『길에서 만난 눈송이처럼』(문학들 시인선)을 펴냈다. 사랑에 대한 시 64편을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절로 나누어 담았다. 그에게 사랑은 시 쓰기의 치열한 고투와 한몸으로 읽힌다.
“벼락 맞은 나무처럼 누워서/빗소리를 듣는” 것은 “아직도 기다려야 할 사람이 있고/시를 오래 써야 하”기 때문이다. 그것을 얻기까지 “세상은 쓸쓸하고 사랑은 멀고/꺾인 꽃은 또 꺾이고/나의 노동은 감옥”(「이른 아침, 멍하니 까마귀 울음소리를 듣다」이다.
시인에게는 이처럼 사랑을 기다리는 일과 시를 쓰는 행위가 한가지다. 이것은 시집 뒤표지에 실린 곽재구, 고재종 시인의 ‘표사’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그는 시인이다. 아침에 눈 뜨면 시를 쓴다, 꽃이 피면 시를 쓰고 바람이 불면 시를 쓴다. 길에서 만난 눈송이에게, 새털구름에게, 물 위에 뜬 산그늘에게 인간의 시를 들려주는 그의 모습은 따뜻하고 평화롭다. 우리의 서정시가 피워 낸 한 송이 들꽃의 모습이라 할 것이다.”(곽재구 시인)

“박노식에겐 시가 사랑이고 사랑이 곧 시다. 박노식의 한 편 한 편의 시는 사랑의 대상에 대한 울렁거리고, 서럽고, 맹렬하고, 지독히 아픈 사랑의 고백이다. 그 한 편 한 편 사랑의 고백은 다시 시일 수밖에 없다. 바로 그 대상을 향한 마음에서 모든 시가 흘러나오기 때문이다.”(고재종 시인)

하지만 사랑은 멀고, 시 또한 멀리 있으니 시인은 불화할 수밖에. 시인은 그 연원을 유년의 ‘그늘’에서 찾는다. “내 시의 처음은 그늘에서 왔다/이른 자의식은 끔찍한 독백을 낳는다”
본래 독백 혹은 내밀한 자기 고백은 자조적일 수밖에 없다. 자신의 삶을 돌아보는 일에서 시작되기 때문이다. “달빛이 부서지는/대숲 속에서 웅크렸으므로 환희가 없고” “말로 살지 못해서/나에겐 시가 없다”(「꿈속의 옹달샘처럼」)
그런 그가 중년이 된 어느 날 고물상에서 주워 온 둥근 시계를 벽에 걸어두고, 그것의 실존만큼이나 늦어버린 자신의 시 쓰기를 걱정하고 다짐한다.

어느 날 고물상에서 주워 온 둥근 시계를 흰 벽에 걸어두고
금 간 유리를 서너 번 다독여 주었더니 바늘이 움직였다
저것이 나를 끌어당기거나 놓아주지 않으려는 것을 알았지만
너무 늦어버렸으니, 내 시의 씨앗이
저 시간 속에서 얼마나 버틸까 걱정할 때가 있었다
그러나 꿈에서 만난 옹달샘을 나는 믿는다
쉼 없이 토해내는 아픈 물방울들은 아름답다
진지하니까 늘 새로운 것처럼
새로우니까 내가 살아가는 것처럼
- 「꿈속의 옹달샘처럼」 부분

그러니까 그의 시 쓰기는 오래전 잃어버린 ‘환희’와 ‘말’을 되찾는 일이다. 독백에 섬세한 체험이 들어설 때, 어떤 본연의 깨침이 들어설 때 사랑의 감옥, 시의 감옥에서 사계절을 끙끙 앓는 시인의 시에 돌연 생기가 돈다.

“시는 오지 않고/기다림마저 떠나버릴 때/어느 고적한 곳으로 나를 데려가는/새들의 노랫소리가 들렸지/눈을 뜨니까 그가 몰래 와서/내 곁에 누워 있었던 거야”(「시가 찾아오는 순간」)

“작은 꽃씨 하나도/견딜 수 없을 땐 터진다/통곡은 이처럼 자기를 깨부순다/빛나는 연애는 여기에 있다”(「빛나는 연애」)

시도 아닌 것을 붙들고 애걸복걸할 때는 들은 척도 하지 않는 시가 기다림마저 떠나버릴 때에야 새들의 노랫소리처럼 곁에 와 있다는 깨달음, 작은 꽃씨 하나도 견딜 수 없을 때 터지듯이 자기를 깨부술 때에야 빛나는 연애가 있다는 깨달음, 이것이 그의 시가, 사랑이 세상과 화해하는 비밀이다.
박노식 시인은 광주에서 태어나 2015년 『유심』 신인상을 받았다. 시집 『고개 숙인 모든 것』 『시인은 외톨이처럼』 『마음 밖의 풍경』을 펴냈으며, 지금은 화순군 한천면 오지에서 시 창작에 몰두하고 있다. 2018년 아르코문학창작기금을 수혜했다.
저자

박노식

저자:박노식

1962년광주에서출생하여광주공고와조선대국어국문학과를졸업하고전남대대학원국어국문학과를수료하였다.2015년『유심』에「화순장을다녀와서」외4편으로신인상을받으며작품활동을시작했다.시집『고개숙인모든것』『시인은외톨이처럼』『마음밖의풍경』을펴냈으며,지금은화순군한천면오지에서시창작에몰두하고있다.2018년아르코문학창작기금을수혜했다.

목차


5시인의말

제1부봄
13이른아침,멍하니까마귀울음소리를듣다
14너와앉았던그강가의앵두나무
15봄이오면아프다는너를
16내가나를지우고싶어질때
17치자꽃
18한장의엽서
20시로돼지나잡아라
22시가찾아오는순간
24꿈속의옹달샘처럼
26그사람을만나고오던길에
27초록애인
28목련앞에서
29꽃속에서
30흰꽃은소식이없네
32봄나무에게건네는말
33장미
34노을

제2부여름
37여름하늘
38섬진강가에홀로앉아
39인연이오는순간
40여름밤
41사랑스런두발걸음
42그느티나무아래작은돌
43그날,그길을다시갔을때
44그여름의끝은향기로웠다
468월
47더는아플일없이
48그날,그첫마음
49무람없는일
50새털구름
51석양
52괜찮아,지금은
54나의뮤즈
55별이내게준선물

제3부가을
59입추
60가을은어떻게오는가
61길가의칸나꽃
62혀
63별의씨앗
64나는한때,조연배우였다
66궁금했지만지금은아닌
67그수녀의눈빛처럼
68가을이라는무서운병
69빛나는연애
70진정한사람
71오름
72애월에서
73갈대
74포옹

제4부겨울
77젊은애인과백석과아름다운석인상
78새발자국
79‘너’라는이름은쓸쓸해
80가혹한기다림
81너와나사이에흘러가는아픔
82암암리에
83다정
84곁
86네잎클로버
88오지않는소식
89통영에와서
90아픔이오는순간
91문장의무게
92외면당한짐승
93빈집의살구나무

94해설시와사랑에대한‘이견딜수없는울렁거림’_고재종

출판사 서평

추천사

그는시인이다.
아침에눈뜨면시를쓴다,꽃이피면시를쓰고바람이불면시를쓴다.초승달이산마을을찾아올때시를쓴다.장맛비에거미줄을비운거미를생각하며시를쓰고며칠간거미가굶을것을생각하며시를쓴다.그의시에세상을향한선언이나양심을위한인간의고백같은고상한몸짓은없다.오직시와자신만의대면이있을뿐이다.시인은종일시의얼굴을매만져주고시는시인의주름살을쓰다듬는모습이펼쳐진다.영원하지않으므로우리가여기있다고얘기하는그의시는품격있는위로를준다.이위로야말로시가지상의생명에게전하는신성이라할것이다.길에서만난눈송이에게,새털구름에게,물위에뜬산그늘에게인간의시를들려주는그의모습은따뜻하고평화롭다.우리의서정시가피워낸한송이들꽃의모습이라할것이다.
-곽재구시인

박노식에겐시가사랑이고사랑이곧시다.박노식의한편한편의시는사랑의대상에대한울렁거리고,서럽고,맹렬하고,지독히아픈사랑의고백이다.그한편한편사랑의고백은다시시일수밖에없다.바로그대상을향한마음에서모든시가흘러나오기때문이다.그사랑이실제인물이거나아니거나,시는이미상상력의가공을거치기에,다다르거나가닿을수없는사랑의환상이기도하리라.나이육십세를넘어서까지사랑의환상을지속시킬수있다는것은축복이다.하지만박노식의사랑의우울과서러움은이게또한지옥이되기도하는걸어떡하랴.
-고재종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