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국주의와 전염병 : 제국주의, 노예제, 전쟁은 의학을 어떻게 바꾸었을까?

제국주의와 전염병 : 제국주의, 노예제, 전쟁은 의학을 어떻게 바꾸었을까?

$23.00
저자

짐다운스

미국의역사학자.펜실베이니아대학교를졸업한뒤컬럼비아대학교에서역사학석·박사학위를받았으며하버드대학교에서인류학을공부했다.현재게티스버그칼리지역사학교수로,미국의노예제및남북전쟁사를강의한다.우리가학교에서배우지못한역사의뒷면,권력의그림자에가려잊혔던사람들의이야기를집중적으로발굴하고재해석해들려주는그의강의는학생들뿐만아니라학계에서도매우높은가치를인정받고있다.미국역사가협회는지난2014년과2017년에이어2020년짐다운스를‘저명연구자DistinguishedLecturer’로선정했다.저서로《남북전쟁과재건시대아프리카계미국인들의질병과고통》《게이해방의잊힌역사》《자유를넘어:해방의역사를전복하다》등이있다.

목차

들어가는말·5

1혼잡한공간들:노예선,감옥그리고신선한공기·17
2누락된사람들:전염이론의몰락과역학의부상·57
3역학의목소리:카보베르데의열병추적·83
4기록관리:대영제국의역학·113
5플로렌스나이팅게일:크림전쟁과인도에서전염병과싸운숨겨진역학자·141
6자선에서편견으로:미국위생위원회의모순적인임무·183
7‘묻히지못한자들의노래’:노예제,남부연합,역학연구·219
8이야기지도:흑인부대,무슬림순례자,1865~1866년콜레라대유행·263

결론:역학의뿌리·303
주석·315
찾아보기·375

출판사 서평

코로나19로인한의료위기를몸으로겪은우리가반드시읽어야할명저!

#노예무역이한창이던18세기말,아프리카서부해안에서강제로노예선에실린한남자가죽기로작정했다.‘살기위해먹어야하는모든것을거부’한채기구한운명에맞서던남자는어쩌다손에넣은칼로자기목을수차례그었다.배에실린지열흘만에세상을뜬남자의이름은알려지지않았다.그의삶에관한내용도마찬가지다.그로부터수십년이지난1839년,영국내과의사로버트톰슨이이이야기를의학잡지〈랜싯〉에실었다.톰슨은이사람을직접보지못했다.그배에탔던의사트로터가1790년대영국의회청문회에나가증언한내용중일부를인용했을뿐이다.톰슨은이남자의죽음을인간이먹지않고얼마나버틸수있는지보여주는사례중하나로썼다.톰슨은이노예선을덮쳤던질병이나노예무역의잔인함에대해잘알았지만,그건그에게중요치않았다.‘단곡斷穀상태’에서인간이얼마나생존하는지연구하던톰슨에게는오로지노예로팔려가던한남자가먹지않고열흘이나버텼다는증거만이중요했다.

#엄마손을잡고흙먼지날리는큰길로접어든흑인아이는왈칵닥쳐온두려움에눈물을훔쳤다.앞쪽히코리나무아래백인남자두명이기다리고있었다.노예인두모자母子의소유주와의사였다.소년이도착하기무섭게의사는가느다란아이의팔뚝을날카로운칼로찔러상처를내고는준비해온천연두‘딱지’를피가나는살갗안으로밀어넣었다.천연두로부터아이를보호하려는게아니었다.오염안된아이의몸을이용해다량의‘깨끗한백신’을얻어내기위해서였다.남북전쟁은발발했고전장에서는예상치못한적이출현한상태였다.천연두였다.에드워드제너가백신접종법을개발한후였지만무섭게퍼지는질병을감당할물량은턱없이부족했다.위기상황에서남군의의사들은퇴행적인대안을떠올렸다.인두법이었다.백신채취에사람을이용하는것이위험하다는사실을잘알고있었지만,다행히그들에게는제약없이사용해도좋은깨끗한몸이있었다.어린흑인노예들이었다.심지어의사들은엄마품에안긴영유아에게까지손을뻗쳤다.그작은몸이바이러스와싸우느라고열로신음할때,의사들은백신이안정적으로만들어지고있다며미소를지었다.진통을겪으며고름을만들어낸아이의온몸에는평생갈흉터와파인자국이남았지만,그들이알바가아니었다.기록이나장부에도실리지않은탓에남북전쟁을연구하는후대의역사학자들조차노예의아이로태어난수많은생명이세상에나와처음수행한노동의실체를제대로알아챌수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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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우리의건강은이름없는조상들의피와고통에너무나많은것을빚지고있다.”

의학은18~19세기에광폭으로발전했다.번성하는제국주의의관료체계덕에전세계로파견된의사들은시시각각닥치는의학적위기에대처하는과정에서연구자로변모했다.넘치는열정으로유행병을관찰하고,감염자와사망자수를세고,주변환경과질병의상관관계를분석했던그들은동료들과열띤토론을벌이며새로운이론을만들어냈다.사례연구와통계분석에근거해질병을파악하고예고하는역학疫學역시이시기에탄생했다.지금우리가누리는공중보건의시대가첫발을뗀것이다.
한가지의문이남는다.그시기의사들이대규모임상을진행하고,예후를관찰한대상은누구였을까?당대의학혁명을이끈학자나이론이의학사의중요페이지를차지하는것과달리,사례연구현장에관한이야기는말끔히사라졌다.이책《제국주의와전염병(원제:MaladiesofEmpire》은바로그현당,의학발전에결정적으로기여했지만기록이나기억에서삭제되어버린이들의목소리를어렵사리발굴해낸역작이다.당대기준과권력의그늘에서억압받았던사람들의삶을재조명해기존역사기록의빈자리를채워넣고있는짐다운스는이책에서18~19세기제국주의시대흑인과혼혈인,노예와식민지피지배인,죄수와군인들이전염병연구및역할발전에서어떤역할을했는지를현미경을들이대듯상세하게이야기한다.예속된사람들의강요된희생과가슴아픈삶이근현대사의거대한물줄기와어떻게맞물리는지찬찬히파고드는이책은팬데믹시대를건너는우리가미처깨닫지못했던현실의속살,잘포장된외피아래우리삶이놓인진짜자리를새로운눈길로들여다보게한다.

고의로누락시키고,모호한용어로얼버무린역학의목소리들

책은1756년영국군인들이수용인원초과상태인인도의감옥에서무더기로죽어간이야기로시작된다.극도의갈증과호흡곤란을겪던수감자146명중살아서석방된사람은23명에불과했다.훗날‘캘거타의블랙홀’이라는이름으로알려진이사건을통해의사들은사람들로가득찬공간의위험성을섬뜩하게인식했다.‘신선한공기’의필요성을증명하기위해의사들이주목한사례가저유명한노예선브룩스호에서토머스트로터박사가작성한보고서였다.당시해군군의관으로서노예선에배치된트로터는배밑바닥에짐짝처럼부려진노예들의실상을보고충격을받았다.숨이턱턱막히는공간에서쇠사슬에묶여신음하다죽어가는노예들을관찰하던트로터는그들의목숨을앗아간원인이두가지라고판단했다.‘더러운공기’와‘영양결핍’.노예들을갑판으로끌어내신선한공기를쐬게하고,인근섬에서과일을구해먹이자건강이눈에띄게좋아졌다.노예들의건강을보호해‘하자없는상품’으로운송하라는임무를완수해낸트로터는이경험을살려괴혈병전문가로발돋움했다.하지만정작트로터는논문과저서에서‘아프리카노예선’대신‘수많은사례’나‘선박’이라는용어로뭉뚱그려제국주의와노예무역의폭력성을지워버렸다.이렇듯의사들이자신의연구에도움을준대상을의도적으로누락시키는관행은크림전쟁과남북전쟁,식민지에산재한일터에서숱하게일어났다.

물론예외는있었다.1845년말서아프리카해안의작은나라카보베르데의섬중하나인보아비스타에서유행병이발생했다.창궐하는병을두고섬의노예와자유민,섬을통치한포르투갈인,아프리카에서이클레어호를타고본국으로돌아가는길에이섬에정박했던영국인들중어떤집단에서질병이처음발생했는지논란이일었다.질병의책임이영국에없음을증명하기위해대영제국은해군군의관제임스맥윌리엄을현지에파견했다.젊고유능했던맥윌리엄은질병의정체를알아내기위해대부분유색인종인섬주민100명이상을인터뷰했다.세탁부인리모아,마리안,레오노,요새보초병바르보사와마노엘….그들은병이언제시작되고누구를거쳐어디로퍼졌는지훤히꿰고있었다.치밀한조사를거쳐맥윌리엄은이감염병이황열병이며,최초질병전파자는이클레어호에승선했던영국군인이라고결론지었다.맥윌리엄의보고서에비중있게등장했던보아비스타주민들은대영제국의저널이나,신문,책에서는핵심정보제공자로서의위치를잃었다.어차피본토의권력자들에게식민지피지배인의아픔이나목소리는스쳐지나는잡음에불과했다.
책은크림전쟁을누비며현대역학의기초를다진플로렌스나이팅게일,노예해방이라는이름으로치러진남북전쟁에서오히려인종차별적분류체계를강화해오늘날까지질병을인종단위로파악하는악습을만든북부의사들의모순적인활동,19세기중반전세계로퍼진콜레라대유행등에이르기까지,의학이사회·역사적변화에어떤식으로영향을주고받는지를흥미롭게탐색한다.

우리의의료시스템에깊이각인된제국주의와노예제의짙은그림자

의사들이사례연구에의존한다는사실은우리가잘안다.하지만역학과공중보건이첫발을떼는단계에서의료계가노예와식민지인,죄수와전장의포로들처럼예속된사람들의고통에얼마나많이빚졌는지를체계적으로밝혀낸연구는지금까지없었다.저자는말한다.제국주의와노예제도는현대자본주의뿐만아니라지금우리사회를지탱하는의료시스템의DNA에도깊이각인돼있다고.그렇다면코로나-19팬데믹의목격자이자역학적증거로살아가는우리의목소리는훗날어떻게기억될까?냉정한시선으로이곳의이야기를들여다보고싶다면이책《제국주의와전염병》을읽어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