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ription
150년 된 대갓집과 쓰러져가던 절벽 위 집이 호텔로 부활했다.
마을 길은 호텔 로비가 되고, 동네 사람들은 호텔 지배인과 가이드가 되었다.
주민이 생산한 먹거리는 호텔 식당의 최고급 요리로 변신하고,
만년 적자였던 마을 온천은 호텔 목욕탕으로, 물산관은 호텔 숍으로 거듭났다.
마을 길은 호텔 로비가 되고, 동네 사람들은 호텔 지배인과 가이드가 되었다.
주민이 생산한 먹거리는 호텔 식당의 최고급 요리로 변신하고,
만년 적자였던 마을 온천은 호텔 목욕탕으로, 물산관은 호텔 숍으로 거듭났다.
“고스게촌에 한번 가봐요. 거기 가면, 소멸해가는 마을을 살려낼 힌트를 얻을 수 있을 거예요.”
야마나시현 기타쓰루군 첩첩산중에 자리한 산촌. 편의점도 없고 공공교통망도 하루 서너 번 왕복하는 버스뿐인 작은 마을을 두고 일본 지자체 담당자와 지방 재생 전문가들 사이에서 종종 오가는 말이다. 그런데 주민이라고 해봐야 고작 700명, 게다가 50세 이상 인구가 절반을 넘는 작은 산간 마을에 어떤 변화가 몰려왔길래, 이곳에 가면 지역 재생의 힌트를 얻을 수 있을 거라고 이야기하는 걸까?
이 책 《700명 마을이 하나의 호텔로》는 바로 그 고스게촌이 일구어낸 기적 같은 마을 부활 스토리를 들려주는 리포트이다. 2014년 1월이었다. ‘고향의 꿈을 현실로’라는 슬로건 아래 동반 달리기형 컨설팅 회사 ‘사토유메’를 창업한 뒤 전국 각지의 재생사업을 돕던 시마다 슌페이 씨에게 한 사람이 찾아왔다. 고스게촌사무소 직원이라고 자기소개를 한 그가 “마을에 조금 곤란한 일이 있으니 도움을 달라”고 요청했다. 이후 저자와 고스게촌 주민들은 사라질 위기에 놓인 마을을 지켜내기 위해 10년 가까이 쉬지 않고 달려왔다. 첫 인연이 되었던 휴게소 운영부터 관광객을 끌어들이기 위해 고스게촌에서 모색한 크고 작은 사업들, 그리고 마을 전체를 하나의 호텔로 탈바꿈시킨 ‘NIPPONIA 고스게 발원지 마을 고민가 호텔’에 이르기까지….
이 책은 세상 변화에 밀려 퇴락해가던 작은 산촌이 어떤 자기 혁신을 거쳐 지금은 일본뿐만 아니라 유럽 여러 나라에서도 주목하는 미래형 마을로 탈바꿈했는지 흥미롭게 들려준다.
150년 된 대갓집과 쓰러져가던 절벽 위 집이 호텔로 부활했다.
마을 길은 호텔 로비가 되고, 동네 사람들은 호텔 지배인과 가이드가 되었다.
주민이 생산한 먹거리는 호텔 식당의 최고급 요리로 변신하고,
만년 적자였던 마을 온천은 호텔 목욕탕으로, 물산관은 호텔 숍으로 거듭났다.
“고스게촌에 한번 가봐요. 거기 가면, 소멸해가는 마을을 살려낼 힌트를 얻을 수 있을지 몰라요.”
야마나시현 기타쓰루군 첩첩산중에 자리잡은 산촌, 편의점도 없고 공공교통망도 하루 서너 번 왕복하는 버스뿐인 작은 마을을 두고 일본 지자체 담당자와 시민단체, 지방 재생 전문가들 사이에서 종종 오가는 말이다. 우리보다 20년쯤 먼저 경제성장의 정점을 찍은 일본이었다. 이후로 계속된 저성장의 그늘 속에서 젊은 세대를 살얼음판 위로 내모는 사회시스템과 저출산, 인구 고령화와 지역 공동체의 소멸 위기도 그만큼 일찍 찾아왔다. 아베 내각에서 ‘지방창생’이라는 구호를 외치며 갈수록 심각해지는 지역 불균형을 혁파하기 위해 노력지만 요란한 정책에 비해 효과는 미미했다.
그런데 주민이라고 해봐야 고작 700명, 게다가 50세 이상 인구가 절반을 넘는 작은 산간 마을에 어떤 변화가 몰려왔길래, 이곳에 가면 지역 재생의 힌트를 얻을 수 있을 거라고 이야기하는 걸까?
쇠락하는 마을을 다시 일으켜 지켜내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이 책 《700명 마을이 하나의 호텔로》는 바로 그 고스게촌이 일구어낸 기적 같은 마을 부활 스토리를 들려주는 리포트이다. 지역 재생 인큐베이팅 회사 ‘사토유메’의 대표이자 10년 가까이 주민들과 함께 ‘동반 달리기’를 하며 고스게촌 변화를 주도해온 저자는 도시화에 밀려 퇴락해가던 작은 산촌이 어떤 모색과 자기 혁신을 거쳐 지금은 일본인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주목하는 미래형 마을로 탈바꿈했는지를 상세하게 들려준다.
2014년 1월이었다. ‘고향의 꿈을 현실로’라는 슬로건 아래 동반 달리기형 컨설팅 회사 ‘사토유메’를 창업한 뒤 전국 각지의 재생사업을 돕던 시마다 슌페이 씨에게 한 사람이 찾아왔다. 고스게촌사무소 직원이라고 자기소개를 한 그가 “마을에 조금 곤란한 일이 있으니 도움을 달라”고 요청했다. 그게 모든 일의 시작이었다. 마침 폭설이 내리는 바람에 보름을 기다렸다 달려간 고스게촌은 소멸 위기에 놓인 궁벽한 산골의 전형이었다. 한때 2,200명이 넘던 마을 인구는 3분의 2 넘게 줄어 700명. 마을 활성화를 위해 역대 촌장들이 30년간 중앙정부에 진정을 넣어 터널을 뚫고 근처에 휴게소까지 지었지만, 그곳을 어떻게 운영해야 마을에 보탬이 될지 방법을 찾지 못해 시마다 씨에게 도움을 청한 거였다. 도로변에서 한참 떨어진 산 중턱에 덩그러니 서 있는 휴게소를 본 시마다 씨에게 절망감이 몰려왔다. 내세울 특징도 편리함도 없는 이 산골에 관광객을 불러들인다? 한마디로 미션 임파서블이었다. 그럼에도 그는 요청을 단칼에 외면할 수 없었다. 대학 시절 사랑하는 구모가하타 마을이 망가지는 모습을 무력하게 바라보기만 했던 기억이 너무 아파서였다. 밤새 뒤척대며 고민하던 그가 마침내 마음을 정했다. 불가능에 가까운 이 도전을 받아들이자고. 그렇게 고스게촌과 동반 달리기가 시작되었다.
원산지 이탈리안 피자를 먹으러 젊은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어떻게 해야 교통마저 불편한 이곳에 사람들이, 그것도 젊은 고객층이 찾아오도록 할까? 며칠을 고민하던 그에게 한 가지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다마가와 강 발원지인 이 마을에는 산천어와 곤들매기 같은 민물고기뿐 아니라 버섯과 고추냉이 등 농산물이 풍부했다. 마을의 신선한 먹거리를 이용해 ‘발원지 이탈리안 레스토랑’을 운영하면 승산이 있을 듯했다. 다만 일반적인 피자로는 승부를 걸 수가 없다고 판단한 그는 이탈리아에서 가마를 수입해 고스게촌의 장작으로 구운 본격 나폴리 피자를 판매하자고 제안했다. 또 물산관 출입구에 ‘고향납세 자판기’를 설치해 고스게 마을 주민들이 재배한 채소와 가공식품, 맥주 등 선물꾸러미를 살 수 있도록 하는 등 공간 기획부터 상품 전시, 체험프로그램 같은 모든 콘텐츠를 색다르게 꾸렸다. 예상은 적중했다. 개장 첫날부터 언론의 집중 조명을 받은 휴게소 식당에는 사람들이 몰려들고 연예인이 지방에 살면서 현지를 체험하는 무대로도 활용되는 등 훈풍이 불었다. 휴게소는 개장 1개월 만에 정상궤도에 올라서고 마을에서 자체 운영이 가능할 만큼 운영체계도 안정화됐다. 이로써 프로젝트를 마칠 시점이 된 것이다.
“시마다 씨, 우리 함께 손잡고 마을을 다시 만들어 줘요.”
그렇게 고스게촌과 인연도 끝났다고 믿었는데, 사흘 뒤 촌장에게서 전화가 왔다. 인구감소를 멈춰 세울 ‘마을 재생 종합전략’을 수립해 장기적으로 고스게촌 변화를 지원해달라는 간청이었다. ‘마을 재생’이란 2014년 제2차 아베 내각이 지방 인구감소에 제동을 걸어 국가 전체의 활력을 끌어올리겠다는 목표 아래 내건 핵심 정책이었다. 이에 따라 각 지자체는 ‘인구 비전’을 설정하고 그에 맞는 5개년 실천계획을 세워 제출하라는 중앙정부의 지침이 떨어진 상황이었다.
서둘러 인구 시뮬레이션을 진행했다. 그 결과, 앞으로 30년 안에 고스게촌은 사라져버린다는 계산이 나왔다. 마을을 지키려면 매년 40명 정도의 이주자, 그것도 20~30대 이주자를 확보하고 출생률도 1.4~1.6명으로 높여야만 했다. ‘분수촌민 제도’라든가 특산물 ‘산천어 엔초비’처럼 성공적인 정책들을 개발해냈지만, 마을이 경제적으로 자립하기 위해서는 뭔가 매혹적이고 근본적인 조치가 필요했다. 고민하던 그의 눈에 효고현 단바사사야마라는 곳에 들어선 고민가 호텔이 화제라는 이야기가 들려왔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달려간 그곳에서 마을을 살려낼 아이디어를 얻었다. “그래, 마을 전체를 하나의 호텔로 만들어 경제를 선순환시키자.” 촌장과 의기투합해 후보지를 물색했고, 지은 지 150년 된 빈집 하나를 첫 대상으로 낙점했다. 마을 어른들이 ‘대갓집’이라 부르며 친근하게 여기던 저택이었다. 나아가 가파른 절벽 위에 쓰러질 듯 서 있던 작은 집 두 채도 호텔 후보지로 낙점했다.
700명 마을이 하나의 호텔로…,
주민들은 호텔 지배인이자 온천 운영자, 식자재와 장식품을 생산하는 주체가 되었다
몇몇 장애물을 뛰어넘고 나니 일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고민가 호텔 개장을 6개월 앞두고 매니저를 구하는 광고를 내자 예상외로 젊은 인재들이 몰렸다. 화려한 이력을 지닌 그들이 개장도 안 한 촌구석 호텔에 관심을 보이는 이유가 뭘까? 놀랍게도 그들은 고스게 마을에서 ‘이상적인 삶’을 보았다고 말했다. 직업보다 먼저 미래지향적인 생존 방식을 고민하는 젊은이들이 의외로 많았던 거다.
그렇게 합류한 다니구치 슌야 매니저와 24절기에 맞춰 로컬 미식코스를 완성한 스즈키 히로야스 셰프, 그리고 고즈넉하면서도 트렌디한 감성으로 탈바꿈한 고민가 호텔까지…. 대대적인 공사를 거쳐 호소가와 저택이 호텔로 다시 태어나던 날, 집 안 곳곳을 둘러보던 마을 어르신들의 얼굴에 함박웃음이 번졌다. 당신들의 추억이 깃든 공간을 이렇게 되살려주어서 기쁘다며 연신 눈물 흘리던 노인들의 모습은 숱한 어려움 속에서도 시마다 씨가 마을 사업을 포기할 수 없는 이유이기도 했다.
아마도 ‘700명 마을이 하나의 호텔로’라는 콘셉트 아래 주민 전체가 호텔 지배인이자 치유의 숲 가이드로, 식자재 생산자이자 호텔 온천 및 숍 운영자로 참여한다는 이야기가 SNS에서 먼저 화제를 일으킨 덕이었을 게다. 2019년 8월 17일에 열린 ‘NIPPONIA 고스게 발원지 마을 고민가 호텔’ 오픈 행사에는 도쿄에서 온 방송사 카메라와 신문, 잡지 등 언론 관계자들로 북새통을 이루는 진풍경이 연출됐다. 1박 3만 엔이라는 싸지 않은 가격에도 불구하고, 예약 문의도 빗발쳐서 개장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이듬해 봄까지 예약이 찰 정도였다.
하지만 그해 말 코로나-19라는 글로벌 암초를 만났다. 그래서 어떻게 되었을까? 놀랍게도 재능 넘치는 젊은 직원들이 두 팔 걷어붙이고 나서서 위기를 돌파했다. 다니구치 매니저는 호텔이 한시적으로 휴업하는 기간을 이용해 머릿속으로만 구상해온 ‘가든 투 키친garden to kitchen’을 실현하겠다며 텃밭을 일구었다. 스즈키 셰프는 휴게소 및 온천 식당 등과 연계해 호텔의 특급 메뉴를 배달 판매하는 ‘고스게촌판 우버잇츠’를 시작했다. 대갓집에 이어 개장한 두 동짜리 ‘절벽의 집’은 코로나 시대 이후 유행한 ‘마이크로 투어리즘’ 트렌드에 맞도록 한 동 전체를 제공해 갓 수확한 재료로 직접 밥을 지어 먹고 창밖으로 펼쳐진 초록 대자연을 물리도록 감상할 수 있는 치유공간으로 방향을 틀었다. 마을 주민들도 너나 할 것 없이 나서서 숲과 마을을 정비하고 새로운 농가공품을 개발하는 등 난국을 함께 헤쳐나갔다. 그렇게 휴업과 개업을 반복하며 코로나 위기를 건너고 나니 ‘마을 전체가 호텔’로 거듭나 자력갱생하는 고스게촌은 일본의 지역 재생을 상징하는 성공모델이 되어있었다.
점은 선이 되고, 선은 면이 되고….
사람과 마을이 중심에 놓일 때 우리 현실은 지속가능한 미래가 된다
고스게촌 변화의 처음부터 젊은이들이 사랑하는 미래형 마을로 탈바꿈한 현재까지, 8년간의 긴 여정을 진두지휘해온 저자는 말한다. “지역 만들기 사업은 시간도 오래 걸리고 도시의 논리로는 설명할 수 없는 어려움도 적잖다”고, 그럼에도 “지역 사람들과 함께 사업을 만들어내고 힘을 모아 현실로 일궈내는 기쁨이란, 도시의 큰 조직에서 일할 때는 절대로 맛볼 수 없는 환희이자 삶의 궁극적인 보람”이라고, “일본의 작은 마을을 무대로 우리가 펼쳐온 사업과 그 결과물이 비슷한 문제에 맞닥뜨려 미래를 고민하는 한국의 많은 이들에게 어떤 식으로든 힌트가 되고 희망을 불러일으키길 바란다”고.
변화하는 세상 속에서 끝까지 지켜내야 할 것들을 알아보고, 소중한 것들을 다시는 잃지 않기 위해 애써온 저자와 고스게촌 사람들의 이야기는 그 자체로 묵직한 감동을 안긴다. 더불어 고스게촌 사업 이후 더욱 탄력 있게 진행되는 사토유메의 마을 재생 프로젝트들에 관한 이야기는 고령화와 젊은 인구 유출, 지방 경제력 약화라는 비슷한 현실 앞에서 고민하고 새로운 활로를 모색하기 위해 분투하는 많은 이들에게 매우 소중한 아이디어와 인사이트를 준다.
야마나시현 기타쓰루군 첩첩산중에 자리한 산촌. 편의점도 없고 공공교통망도 하루 서너 번 왕복하는 버스뿐인 작은 마을을 두고 일본 지자체 담당자와 지방 재생 전문가들 사이에서 종종 오가는 말이다. 그런데 주민이라고 해봐야 고작 700명, 게다가 50세 이상 인구가 절반을 넘는 작은 산간 마을에 어떤 변화가 몰려왔길래, 이곳에 가면 지역 재생의 힌트를 얻을 수 있을 거라고 이야기하는 걸까?
이 책 《700명 마을이 하나의 호텔로》는 바로 그 고스게촌이 일구어낸 기적 같은 마을 부활 스토리를 들려주는 리포트이다. 2014년 1월이었다. ‘고향의 꿈을 현실로’라는 슬로건 아래 동반 달리기형 컨설팅 회사 ‘사토유메’를 창업한 뒤 전국 각지의 재생사업을 돕던 시마다 슌페이 씨에게 한 사람이 찾아왔다. 고스게촌사무소 직원이라고 자기소개를 한 그가 “마을에 조금 곤란한 일이 있으니 도움을 달라”고 요청했다. 이후 저자와 고스게촌 주민들은 사라질 위기에 놓인 마을을 지켜내기 위해 10년 가까이 쉬지 않고 달려왔다. 첫 인연이 되었던 휴게소 운영부터 관광객을 끌어들이기 위해 고스게촌에서 모색한 크고 작은 사업들, 그리고 마을 전체를 하나의 호텔로 탈바꿈시킨 ‘NIPPONIA 고스게 발원지 마을 고민가 호텔’에 이르기까지….
이 책은 세상 변화에 밀려 퇴락해가던 작은 산촌이 어떤 자기 혁신을 거쳐 지금은 일본뿐만 아니라 유럽 여러 나라에서도 주목하는 미래형 마을로 탈바꿈했는지 흥미롭게 들려준다.
150년 된 대갓집과 쓰러져가던 절벽 위 집이 호텔로 부활했다.
마을 길은 호텔 로비가 되고, 동네 사람들은 호텔 지배인과 가이드가 되었다.
주민이 생산한 먹거리는 호텔 식당의 최고급 요리로 변신하고,
만년 적자였던 마을 온천은 호텔 목욕탕으로, 물산관은 호텔 숍으로 거듭났다.
“고스게촌에 한번 가봐요. 거기 가면, 소멸해가는 마을을 살려낼 힌트를 얻을 수 있을지 몰라요.”
야마나시현 기타쓰루군 첩첩산중에 자리잡은 산촌, 편의점도 없고 공공교통망도 하루 서너 번 왕복하는 버스뿐인 작은 마을을 두고 일본 지자체 담당자와 시민단체, 지방 재생 전문가들 사이에서 종종 오가는 말이다. 우리보다 20년쯤 먼저 경제성장의 정점을 찍은 일본이었다. 이후로 계속된 저성장의 그늘 속에서 젊은 세대를 살얼음판 위로 내모는 사회시스템과 저출산, 인구 고령화와 지역 공동체의 소멸 위기도 그만큼 일찍 찾아왔다. 아베 내각에서 ‘지방창생’이라는 구호를 외치며 갈수록 심각해지는 지역 불균형을 혁파하기 위해 노력지만 요란한 정책에 비해 효과는 미미했다.
그런데 주민이라고 해봐야 고작 700명, 게다가 50세 이상 인구가 절반을 넘는 작은 산간 마을에 어떤 변화가 몰려왔길래, 이곳에 가면 지역 재생의 힌트를 얻을 수 있을 거라고 이야기하는 걸까?
쇠락하는 마을을 다시 일으켜 지켜내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이 책 《700명 마을이 하나의 호텔로》는 바로 그 고스게촌이 일구어낸 기적 같은 마을 부활 스토리를 들려주는 리포트이다. 지역 재생 인큐베이팅 회사 ‘사토유메’의 대표이자 10년 가까이 주민들과 함께 ‘동반 달리기’를 하며 고스게촌 변화를 주도해온 저자는 도시화에 밀려 퇴락해가던 작은 산촌이 어떤 모색과 자기 혁신을 거쳐 지금은 일본인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주목하는 미래형 마을로 탈바꿈했는지를 상세하게 들려준다.
2014년 1월이었다. ‘고향의 꿈을 현실로’라는 슬로건 아래 동반 달리기형 컨설팅 회사 ‘사토유메’를 창업한 뒤 전국 각지의 재생사업을 돕던 시마다 슌페이 씨에게 한 사람이 찾아왔다. 고스게촌사무소 직원이라고 자기소개를 한 그가 “마을에 조금 곤란한 일이 있으니 도움을 달라”고 요청했다. 그게 모든 일의 시작이었다. 마침 폭설이 내리는 바람에 보름을 기다렸다 달려간 고스게촌은 소멸 위기에 놓인 궁벽한 산골의 전형이었다. 한때 2,200명이 넘던 마을 인구는 3분의 2 넘게 줄어 700명. 마을 활성화를 위해 역대 촌장들이 30년간 중앙정부에 진정을 넣어 터널을 뚫고 근처에 휴게소까지 지었지만, 그곳을 어떻게 운영해야 마을에 보탬이 될지 방법을 찾지 못해 시마다 씨에게 도움을 청한 거였다. 도로변에서 한참 떨어진 산 중턱에 덩그러니 서 있는 휴게소를 본 시마다 씨에게 절망감이 몰려왔다. 내세울 특징도 편리함도 없는 이 산골에 관광객을 불러들인다? 한마디로 미션 임파서블이었다. 그럼에도 그는 요청을 단칼에 외면할 수 없었다. 대학 시절 사랑하는 구모가하타 마을이 망가지는 모습을 무력하게 바라보기만 했던 기억이 너무 아파서였다. 밤새 뒤척대며 고민하던 그가 마침내 마음을 정했다. 불가능에 가까운 이 도전을 받아들이자고. 그렇게 고스게촌과 동반 달리기가 시작되었다.
원산지 이탈리안 피자를 먹으러 젊은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어떻게 해야 교통마저 불편한 이곳에 사람들이, 그것도 젊은 고객층이 찾아오도록 할까? 며칠을 고민하던 그에게 한 가지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다마가와 강 발원지인 이 마을에는 산천어와 곤들매기 같은 민물고기뿐 아니라 버섯과 고추냉이 등 농산물이 풍부했다. 마을의 신선한 먹거리를 이용해 ‘발원지 이탈리안 레스토랑’을 운영하면 승산이 있을 듯했다. 다만 일반적인 피자로는 승부를 걸 수가 없다고 판단한 그는 이탈리아에서 가마를 수입해 고스게촌의 장작으로 구운 본격 나폴리 피자를 판매하자고 제안했다. 또 물산관 출입구에 ‘고향납세 자판기’를 설치해 고스게 마을 주민들이 재배한 채소와 가공식품, 맥주 등 선물꾸러미를 살 수 있도록 하는 등 공간 기획부터 상품 전시, 체험프로그램 같은 모든 콘텐츠를 색다르게 꾸렸다. 예상은 적중했다. 개장 첫날부터 언론의 집중 조명을 받은 휴게소 식당에는 사람들이 몰려들고 연예인이 지방에 살면서 현지를 체험하는 무대로도 활용되는 등 훈풍이 불었다. 휴게소는 개장 1개월 만에 정상궤도에 올라서고 마을에서 자체 운영이 가능할 만큼 운영체계도 안정화됐다. 이로써 프로젝트를 마칠 시점이 된 것이다.
“시마다 씨, 우리 함께 손잡고 마을을 다시 만들어 줘요.”
그렇게 고스게촌과 인연도 끝났다고 믿었는데, 사흘 뒤 촌장에게서 전화가 왔다. 인구감소를 멈춰 세울 ‘마을 재생 종합전략’을 수립해 장기적으로 고스게촌 변화를 지원해달라는 간청이었다. ‘마을 재생’이란 2014년 제2차 아베 내각이 지방 인구감소에 제동을 걸어 국가 전체의 활력을 끌어올리겠다는 목표 아래 내건 핵심 정책이었다. 이에 따라 각 지자체는 ‘인구 비전’을 설정하고 그에 맞는 5개년 실천계획을 세워 제출하라는 중앙정부의 지침이 떨어진 상황이었다.
서둘러 인구 시뮬레이션을 진행했다. 그 결과, 앞으로 30년 안에 고스게촌은 사라져버린다는 계산이 나왔다. 마을을 지키려면 매년 40명 정도의 이주자, 그것도 20~30대 이주자를 확보하고 출생률도 1.4~1.6명으로 높여야만 했다. ‘분수촌민 제도’라든가 특산물 ‘산천어 엔초비’처럼 성공적인 정책들을 개발해냈지만, 마을이 경제적으로 자립하기 위해서는 뭔가 매혹적이고 근본적인 조치가 필요했다. 고민하던 그의 눈에 효고현 단바사사야마라는 곳에 들어선 고민가 호텔이 화제라는 이야기가 들려왔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달려간 그곳에서 마을을 살려낼 아이디어를 얻었다. “그래, 마을 전체를 하나의 호텔로 만들어 경제를 선순환시키자.” 촌장과 의기투합해 후보지를 물색했고, 지은 지 150년 된 빈집 하나를 첫 대상으로 낙점했다. 마을 어른들이 ‘대갓집’이라 부르며 친근하게 여기던 저택이었다. 나아가 가파른 절벽 위에 쓰러질 듯 서 있던 작은 집 두 채도 호텔 후보지로 낙점했다.
700명 마을이 하나의 호텔로…,
주민들은 호텔 지배인이자 온천 운영자, 식자재와 장식품을 생산하는 주체가 되었다
몇몇 장애물을 뛰어넘고 나니 일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고민가 호텔 개장을 6개월 앞두고 매니저를 구하는 광고를 내자 예상외로 젊은 인재들이 몰렸다. 화려한 이력을 지닌 그들이 개장도 안 한 촌구석 호텔에 관심을 보이는 이유가 뭘까? 놀랍게도 그들은 고스게 마을에서 ‘이상적인 삶’을 보았다고 말했다. 직업보다 먼저 미래지향적인 생존 방식을 고민하는 젊은이들이 의외로 많았던 거다.
그렇게 합류한 다니구치 슌야 매니저와 24절기에 맞춰 로컬 미식코스를 완성한 스즈키 히로야스 셰프, 그리고 고즈넉하면서도 트렌디한 감성으로 탈바꿈한 고민가 호텔까지…. 대대적인 공사를 거쳐 호소가와 저택이 호텔로 다시 태어나던 날, 집 안 곳곳을 둘러보던 마을 어르신들의 얼굴에 함박웃음이 번졌다. 당신들의 추억이 깃든 공간을 이렇게 되살려주어서 기쁘다며 연신 눈물 흘리던 노인들의 모습은 숱한 어려움 속에서도 시마다 씨가 마을 사업을 포기할 수 없는 이유이기도 했다.
아마도 ‘700명 마을이 하나의 호텔로’라는 콘셉트 아래 주민 전체가 호텔 지배인이자 치유의 숲 가이드로, 식자재 생산자이자 호텔 온천 및 숍 운영자로 참여한다는 이야기가 SNS에서 먼저 화제를 일으킨 덕이었을 게다. 2019년 8월 17일에 열린 ‘NIPPONIA 고스게 발원지 마을 고민가 호텔’ 오픈 행사에는 도쿄에서 온 방송사 카메라와 신문, 잡지 등 언론 관계자들로 북새통을 이루는 진풍경이 연출됐다. 1박 3만 엔이라는 싸지 않은 가격에도 불구하고, 예약 문의도 빗발쳐서 개장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이듬해 봄까지 예약이 찰 정도였다.
하지만 그해 말 코로나-19라는 글로벌 암초를 만났다. 그래서 어떻게 되었을까? 놀랍게도 재능 넘치는 젊은 직원들이 두 팔 걷어붙이고 나서서 위기를 돌파했다. 다니구치 매니저는 호텔이 한시적으로 휴업하는 기간을 이용해 머릿속으로만 구상해온 ‘가든 투 키친garden to kitchen’을 실현하겠다며 텃밭을 일구었다. 스즈키 셰프는 휴게소 및 온천 식당 등과 연계해 호텔의 특급 메뉴를 배달 판매하는 ‘고스게촌판 우버잇츠’를 시작했다. 대갓집에 이어 개장한 두 동짜리 ‘절벽의 집’은 코로나 시대 이후 유행한 ‘마이크로 투어리즘’ 트렌드에 맞도록 한 동 전체를 제공해 갓 수확한 재료로 직접 밥을 지어 먹고 창밖으로 펼쳐진 초록 대자연을 물리도록 감상할 수 있는 치유공간으로 방향을 틀었다. 마을 주민들도 너나 할 것 없이 나서서 숲과 마을을 정비하고 새로운 농가공품을 개발하는 등 난국을 함께 헤쳐나갔다. 그렇게 휴업과 개업을 반복하며 코로나 위기를 건너고 나니 ‘마을 전체가 호텔’로 거듭나 자력갱생하는 고스게촌은 일본의 지역 재생을 상징하는 성공모델이 되어있었다.
점은 선이 되고, 선은 면이 되고….
사람과 마을이 중심에 놓일 때 우리 현실은 지속가능한 미래가 된다
고스게촌 변화의 처음부터 젊은이들이 사랑하는 미래형 마을로 탈바꿈한 현재까지, 8년간의 긴 여정을 진두지휘해온 저자는 말한다. “지역 만들기 사업은 시간도 오래 걸리고 도시의 논리로는 설명할 수 없는 어려움도 적잖다”고, 그럼에도 “지역 사람들과 함께 사업을 만들어내고 힘을 모아 현실로 일궈내는 기쁨이란, 도시의 큰 조직에서 일할 때는 절대로 맛볼 수 없는 환희이자 삶의 궁극적인 보람”이라고, “일본의 작은 마을을 무대로 우리가 펼쳐온 사업과 그 결과물이 비슷한 문제에 맞닥뜨려 미래를 고민하는 한국의 많은 이들에게 어떤 식으로든 힌트가 되고 희망을 불러일으키길 바란다”고.
변화하는 세상 속에서 끝까지 지켜내야 할 것들을 알아보고, 소중한 것들을 다시는 잃지 않기 위해 애써온 저자와 고스게촌 사람들의 이야기는 그 자체로 묵직한 감동을 안긴다. 더불어 고스게촌 사업 이후 더욱 탄력 있게 진행되는 사토유메의 마을 재생 프로젝트들에 관한 이야기는 고령화와 젊은 인구 유출, 지방 경제력 약화라는 비슷한 현실 앞에서 고민하고 새로운 활로를 모색하기 위해 분투하는 많은 이들에게 매우 소중한 아이디어와 인사이트를 준다.
700명 마을이 하나의 호텔로 : 산골 마을 고스게는 어떻게 지방 재생의 아이콘이 되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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