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인간이란이런식으로밖에살아갈수없는지도모른다.
티없이말끔하게행복한삶도,아주작은기쁨도없이
내내불안하기만한삶도불가능하다.
행불행(幸不幸)의가차없는교차만이우리의삶일거라고,
그럴수밖에없을거라고김정태의시는말한다.”_박다솜(문학평론가)
“바다를보며시인을꿈꾸던한인간의거침없는자맥질”
시인,하면떠오르는이미지가있다.사실그런이미지가있다는것도우스운일이다.어쨌든배우김정태는그간의배역만보더라도시인의이미지와는거리가멀다.《친구》의도루코,《우리형》의쫄바지,《해바라기》의양기,《똥개》의진묵….그가출연한영화를한번이상접했다면그의거친이미지와시의간극에조금은어리둥절할지도모르겠다.그런그는누구보다여린문학소년이었다.어쩌면아픔과가난으로점철된,희망이라고는찾아볼수도없는풍경속에서유년시절을보낸덕이기도하다.‘예술은고통의산물’이라는말처럼김정태는연기뿐만아니라시로도그고통을해석하기에이른다.
“가족,그처절하고끊임없는이름”
이시집에는여러인물이등장하지만,그가운데서도특히‘가족’의존재가두드러진다.형과여동생,엄마,두아들,그리고아내….외딴세상을가족의사랑으로말미암아살아가는일종의‘생존방식’을제시하는것이다.무엇보다어린시절의회상은회상에그치는것이아니라어른혹은사회구성원으로성장해나가는한개인의전반적인서사를아름답게꾸며낸다.가령그때의화자가없었다면지금의화자가있을수없다는듯시집전체에‘생채기’의진행과정을관통시키는것이다.해설을쓴박다솜평론가의해설제목처럼,지금도여전히그의“삶은시가되”어가고있다.보이지않는소망,오직그것을쥐고.
책속에서
[…]
아버지께서읽어주시는이광수의『무정』을듣다가
우리가이지경이된이유를듣다가
책의감동도집안을다시일으킬해법도
무엇하나제대로듣지못하고돌아오면
주인집에서키우던누렁소와참많이도울었다
그누렁소불법도축으로죽고
그때그누렁소하루아침에사라졌지만
나는너무가난해서해줄수있는게없고
길게휜소나무숲을동생과내려가며
부잣집얘기를했지
부잣집아들얘기를했지
[…]
---「중학교1학년」중에서
[…]
나와주민번호뒷자리가
한자리다른너를병실에눕혔다
네속에서타들어간
외로움덩어리를
의학적으로확인하고
이런식으로확인안해도
우리는괴롭게도형제인데
살래
살고싶제
살자
이래돌고돌아와도
품어줄이없는새해지만
살자
그래울어서미치더라도
살자
[…]
---「형에게」중에서
[…]
가난이나를멍하게하던그때,나는언제나오묘해져서아침과밤을삼교대로번갈아살면서삶은조무래기손장난같은거라고외쳤는데,줄그어진주차장이유일한질서였던한낮.혼자거길걷기엔어쩐지기분이야릇하기도했다.한평아니면반평,공평한죽음이부러웠고볕뜨거워지면죽음도잠시사라지는정남향에서서쪽으로살짝튼공동묘지.
[…]
눈부신오륙도앞.저멀리회색함선두척이나가진바다는듬직하기도하겠다.바람이불지않아서바람이부는것같다.
---「신선대산복도로」중에서
[…]
바다와물빛
밤과불빛
낮과햇빛
궐련같은추억뻑뻑
함께마시던금단의포도주
입가에아직묻어나
시퍼렇게질린겨울의입술
[…]
곱창김씹으며
높은곳에서낮은곳으로
모두다
이제모두다떠밀려오너라
그리움의온전한정체,
정체여
---「여수」중에서
비바람불던날
빨랫줄에앉은빗방울을세던우리
미셸페트루치아니몇곡에
점심밥도잊었지
쓸쓸한가을이면
이동네만큼묵은된장이며
막버무린냉동가오리무침
그리고붕장어굽는냄새와어깨동무하고
우룡산공원을크게한바퀴돌았다
[…]
---「신혼4」중에서
[…]
작은경차로퇴근하는길과
침묵으로휴식하는건물모퉁이마다
하이쿠처럼짧은외마디비명들리는듯
구석구석눈이가고
내마음도그냥닿게내버려두네
이친절한도시를묘하게닮은저달
환락가나카스의핑크색간판처럼
깜빡깜빡불이켜졌다꺼지고
사람도사랑도지난봄벗꽃처럼
우수수피고지는데
이밤은조총련귀국선처럼어둡고
이제더어두워지려고하네
[…]
---「후쿠오카2」중에서
내육신잠들때
너를향한그리움도
나를향한위로도
아주수고스럽게해왔음을알게된다
손톱만한싹
몇방울빗줄기에몸을세우던오후
말없이저녁을보내온내모든염려가
내옆에가만히눕는다
이렇게누워
나와상관없는밤하늘바라볼때
어쩌면이하루를
손에쥐어볼수도있는거겠지
---「수묵水墨」전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