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ription
KBS라디오 절찬 방송내용 책으로!
국제화 다문화 시대
아이들과 함께 읽는 교양인 필독서!
국제화 다문화 시대
아이들과 함께 읽는 교양인 필독서!
2023년 8월 경남 창원시 진해에 자리한 해군교육사령부. 해군 하사 170명 임관식이 열렸다. 11주간의 교육을 마치고 한국의 바다를 수호하는 바다지킴이로 첫발을 뗀 해군 부사관 가운데, 낯선 이목구비의 인물이 눈길을 끌었다. 파키스탄에서 한국으로 귀화한 아놀드 자웨이드 하사가 그 주인공. 올해 28살의 아놀드 하사는 25년전 1998년 3살 때 부모님과 함께 한국으로 왔다. 한국에서 자라며 초등학교와 중고등학교를 다녔다. 2014년 고등학교를 졸업하면서 귀화 신청을 했고, 2018년 한국 국적을 취득했다. 2019년 파키스탄 국적을 정리한 순수 한국인이다. 우크라이나 국립대로 진학해 대학을 다니던 중, 러시아 침공으로 귀국해 해군 부사관의 길을 선택했다. 교육과정의 여러 어려움을 딛고, 임관식에서 해군교육사령관상을 받는 영예를 안았다. 이만하면 대한민국의 바다를 지키는 든든한 호국의 간성으로 부족함이 없겠다. 교육기간 중 “충무공의 후예가 되기 위해 노력했다”는 아놀드 하사의 소감에 그의 열정과 애국심이 묻어나 미덥다. 외국계 한국인들은 더 이상 한국 사회에서 드문 화제거리가 아니다. 다문화 가족 구성원을 보는 일은 이제 익숙한 일상이다.
국경을 걸어 채웠던 조선 시대에도 아놀드 하사같은 귀화군인이 있었다. 충무공이 일본 침략에서 나라를 구하던 임진왜란 당시로 거슬러 올라가 보자. 일본 이름 사야가. 한국 이름 김충선. 1571년 일본에서 태어나 1642년 한국에서 숨졌다. 1592년 임진왜란이 터졌을 당시 가등청정 휘하 21살 장수로 침략군을 이끌고 들어왔다. 하지만, 침략의 뜻이 없다고 알리는 〈효유서曉諭書〉를 지역 조선사람들에게 돌렸다. 그리고는 경상좌병사 박진에게 투항했다. 1798년 정조 22년에 간행된 『모하당집慕夏堂集』(사야가의 호)에 “사람이 사나이로 태어난 것은 다행한 일이나 불행하게도 문화의 땅에 태어나지 못하고 오랑캐 나라에 태어나서 끝내 오랑캐로 죽게 된다면 어찌 영웅으로 한이 되는 일이 아니랴 하고, 때로는 눈물짓기도 하고 때로는 침식을 잊고 번민하기도 했습니다. 이 나라의 예의문물과 의관 풍속을 아름답게 여겨 예의의 나라에서 백성이 되고자 할 따름입니다.” 라는 기록을 남겼다. 한국의 학문과 문화를 깊이 흠모한 사야가는 임진왜란과 이후에도 많은 공을 세워 정2품 정헌대부에까지 올랐다.
도원수 권율, 어사 한준겸이 선조에개 주청해 사야가는 한국식 이름을 받았다. 사야가의 이름에서 ‘사’는 한자로 모래 ‘사沙다. 모래沙에서 금金이 나오는 데서 착안해 김씨, 본관은 김해를 하사받았다. 이름은 선조에게 충성한다는 의미로 ‘충선’이 된다. 이어 장춘점張春點의 딸과 결혼해 5남1녀를 낳았다. 현재 대구광역시 달성군 가창면 우록리友鹿里에 사슴을 벗하여 살았는데, 우록리라는 마을 이름도 직접 지었다. 우록리에는 김충선의 무덤이 남아 있고, 후손들이 집성촌을 이뤄 산다. 이렇게 역사를 되짚어 보면 타지역에서 들어온 사람들로 구성되는 다문화 사회多文化 社會(Multicultural Society)가 우리 역사를 일관되게 관통한다. 울산과학기술원 박종화 교수 연구팀의 2020년 고대 인골 DNA 비교분석 결과를 보면 한국인은 1차로 3-4만년전 동남아시아, 이어 2차로 4천여년 전 남중국에서 이주해온 집단의 혼혈 결과다. 이 외에도 기마문화를 갖고 북방에서 이주해온 집단도 한국 역사에 포용됐다.
현대 한국인의 밥상은 피자, 스파게티, 짜장면, 베트남 쌀국수, 빵, 케밥, 올리브 기름 등으로 풍요롭다. 물론 이전 밥상 쌀밥과 김치의 재료, 벼나 배추 역시 외부에서 유입된 식재료다. 배추 자체가 고려시대 전래 됐으며 붉은 고추는 임진왜란 이후 조선 후기 전래된 식재료다. 세종대왕이나 이순신 장군은 백김치만 드셨지, 붉은 김장김치는 구경하시지 못했다. 여름날의 갈증을 달래주는 맥주는 5천여년전 메소포타미아에서 처음 만들어져 19세기 말, 커피와 함께 한국사회로 유입됐다. 짜장면과 짬뽕 역시 중국에서 들어와 20세기 한국인의 기호식품으로 자리잡았다. 순수 단일민족, 한국만의 고유한 문화유산이라는 자부심을 내려놓는 서운함도 있지만, 인간이 구축한 어느 사회도 나만의 문화라는 순혈주의는 허상에 불과하다.
엄밀히 말하면 순혈주의는 롤랑 바르트의 1957년 저작 『신화론(Mythologies)』 속 표현대로 진실을 찬탈하는 신화일 뿐이다. 문화는 교류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캐나다의 언론사회학자 마샬 맥루한이 1960년대 만든 조어造語 “지구촌(Global Village)”은 시공을 초월한 정언명제다. 길고 넓게보면 인류는 이웃끼리 교류 속에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고, 그 과정에 자신의 것을 빚어내는 문화접변文化接變(Acculturation)의 삶을 이어왔다. 이 책은 그런 인식의 산물이다.
KBS 3라디오 매주 금요일 오후 3시 [공감 코리아, 우리는 한국인] 프로그램에 소개했던 내용을 재정리해 책으로 엮었다. 1권과 마찬가지로 사진은 유라시아 각지를 탐방하며 직접 촬영한 필자의 저작권 소유물이다. 책의 출판을 맡아준 권이지 대표에게 고마움을 표한다. 역사학이나 역사저술의 존재이유(Raison d’être)는 외교관 겸 역사학자 E.H. 카가 1961년 『역사란 무엇인가?(What Is History?)』에서 설파한 내용에 잘 담겼다. “역사가의 역할은 현재를 이해하는 열쇠로서 과거를 다루는 것”. 카이사르에 반대하다 옥타비아누스에게 암살당한 로마의 공화주의자 키케로가 B.C 55년 『연설에 관하여(De Oratore)』에서 언급한 말은 카의 주장에 힘을 실어준다. “역사는 삶의 스승(Historia est Magistra Vitae)”. 역사에서 찾아낸 국제화와 다문화라는 키워드가 디지털 기반의 MZ세대는 물론 미래의 주역인 청소년들에게 작은 나침반같은 선생님이 될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국경을 걸어 채웠던 조선 시대에도 아놀드 하사같은 귀화군인이 있었다. 충무공이 일본 침략에서 나라를 구하던 임진왜란 당시로 거슬러 올라가 보자. 일본 이름 사야가. 한국 이름 김충선. 1571년 일본에서 태어나 1642년 한국에서 숨졌다. 1592년 임진왜란이 터졌을 당시 가등청정 휘하 21살 장수로 침략군을 이끌고 들어왔다. 하지만, 침략의 뜻이 없다고 알리는 〈효유서曉諭書〉를 지역 조선사람들에게 돌렸다. 그리고는 경상좌병사 박진에게 투항했다. 1798년 정조 22년에 간행된 『모하당집慕夏堂集』(사야가의 호)에 “사람이 사나이로 태어난 것은 다행한 일이나 불행하게도 문화의 땅에 태어나지 못하고 오랑캐 나라에 태어나서 끝내 오랑캐로 죽게 된다면 어찌 영웅으로 한이 되는 일이 아니랴 하고, 때로는 눈물짓기도 하고 때로는 침식을 잊고 번민하기도 했습니다. 이 나라의 예의문물과 의관 풍속을 아름답게 여겨 예의의 나라에서 백성이 되고자 할 따름입니다.” 라는 기록을 남겼다. 한국의 학문과 문화를 깊이 흠모한 사야가는 임진왜란과 이후에도 많은 공을 세워 정2품 정헌대부에까지 올랐다.
도원수 권율, 어사 한준겸이 선조에개 주청해 사야가는 한국식 이름을 받았다. 사야가의 이름에서 ‘사’는 한자로 모래 ‘사沙다. 모래沙에서 금金이 나오는 데서 착안해 김씨, 본관은 김해를 하사받았다. 이름은 선조에게 충성한다는 의미로 ‘충선’이 된다. 이어 장춘점張春點의 딸과 결혼해 5남1녀를 낳았다. 현재 대구광역시 달성군 가창면 우록리友鹿里에 사슴을 벗하여 살았는데, 우록리라는 마을 이름도 직접 지었다. 우록리에는 김충선의 무덤이 남아 있고, 후손들이 집성촌을 이뤄 산다. 이렇게 역사를 되짚어 보면 타지역에서 들어온 사람들로 구성되는 다문화 사회多文化 社會(Multicultural Society)가 우리 역사를 일관되게 관통한다. 울산과학기술원 박종화 교수 연구팀의 2020년 고대 인골 DNA 비교분석 결과를 보면 한국인은 1차로 3-4만년전 동남아시아, 이어 2차로 4천여년 전 남중국에서 이주해온 집단의 혼혈 결과다. 이 외에도 기마문화를 갖고 북방에서 이주해온 집단도 한국 역사에 포용됐다.
현대 한국인의 밥상은 피자, 스파게티, 짜장면, 베트남 쌀국수, 빵, 케밥, 올리브 기름 등으로 풍요롭다. 물론 이전 밥상 쌀밥과 김치의 재료, 벼나 배추 역시 외부에서 유입된 식재료다. 배추 자체가 고려시대 전래 됐으며 붉은 고추는 임진왜란 이후 조선 후기 전래된 식재료다. 세종대왕이나 이순신 장군은 백김치만 드셨지, 붉은 김장김치는 구경하시지 못했다. 여름날의 갈증을 달래주는 맥주는 5천여년전 메소포타미아에서 처음 만들어져 19세기 말, 커피와 함께 한국사회로 유입됐다. 짜장면과 짬뽕 역시 중국에서 들어와 20세기 한국인의 기호식품으로 자리잡았다. 순수 단일민족, 한국만의 고유한 문화유산이라는 자부심을 내려놓는 서운함도 있지만, 인간이 구축한 어느 사회도 나만의 문화라는 순혈주의는 허상에 불과하다.
엄밀히 말하면 순혈주의는 롤랑 바르트의 1957년 저작 『신화론(Mythologies)』 속 표현대로 진실을 찬탈하는 신화일 뿐이다. 문화는 교류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캐나다의 언론사회학자 마샬 맥루한이 1960년대 만든 조어造語 “지구촌(Global Village)”은 시공을 초월한 정언명제다. 길고 넓게보면 인류는 이웃끼리 교류 속에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고, 그 과정에 자신의 것을 빚어내는 문화접변文化接變(Acculturation)의 삶을 이어왔다. 이 책은 그런 인식의 산물이다.
KBS 3라디오 매주 금요일 오후 3시 [공감 코리아, 우리는 한국인] 프로그램에 소개했던 내용을 재정리해 책으로 엮었다. 1권과 마찬가지로 사진은 유라시아 각지를 탐방하며 직접 촬영한 필자의 저작권 소유물이다. 책의 출판을 맡아준 권이지 대표에게 고마움을 표한다. 역사학이나 역사저술의 존재이유(Raison d’être)는 외교관 겸 역사학자 E.H. 카가 1961년 『역사란 무엇인가?(What Is History?)』에서 설파한 내용에 잘 담겼다. “역사가의 역할은 현재를 이해하는 열쇠로서 과거를 다루는 것”. 카이사르에 반대하다 옥타비아누스에게 암살당한 로마의 공화주의자 키케로가 B.C 55년 『연설에 관하여(De Oratore)』에서 언급한 말은 카의 주장에 힘을 실어준다. “역사는 삶의 스승(Historia est Magistra Vitae)”. 역사에서 찾아낸 국제화와 다문화라는 키워드가 디지털 기반의 MZ세대는 물론 미래의 주역인 청소년들에게 작은 나침반같은 선생님이 될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역사 속 다문화 이야기 2 : 아이들과 함께 읽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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