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자동 사람들 : 왜 돌봄은 계속 실패하는가

동자동 사람들 : 왜 돌봄은 계속 실패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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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쪽방촌 주민들의 ‘지금, 여기의 모습’을 담아낸 문화기술지
동자동 쪽방촌은 서울역 맞은편에 위치한 대표적인 빈민 밀집 거주 지역이다. 1970년대 말 전설의 베스트셀러 『인간시장』(김홍신)의 주요 무대이기도 하다. 한국전쟁 이후부터 쪽방촌으로 명맥을 이어오던 동자동에 주민을 돕기 위한 각종 시도가 폭발적으로 늘어난 것은 1997년 IMF 외환위기 이후이다. 기초생활보장제도와 무연고 공영 장례가 제도화되었고 서울시는 저렴쪽방 사업을 시작했다. 수많은 단체가 각종 생필품을 제공하기 시작했다. 소매를 걷어붙인 자원봉사자들이 매년 동자동 쪽방촌을 찾는다. 그러나 이러한 ‘돌봄’에도 불구하고 주민들은 여전히 ‘사회적 버려짐’을 경험한다. 범죄와 질병으로 일상이 파괴되며, 도움의 손길에도 인격과 자존감 박탈을 경험한다. 사람으로서의 필요와 욕망, 세계 안에서의 위치와 존재 방식은 부정당한다. 왜 돌봄은 계속 실패하는 것일까?

주민들의 삶을 개선하기 위한 여러 시도는 경제적 측면을 넘어 주민들의 ‘사회적 삶’에 대한 개입이기도 하다. 개입은 개인과 개인의 관계, 산 자와 죽은 자의 관계, ‘우리’에 대한 감각, 정치적 연대에 이르기까지 주민들의 사회적 관계를 변화시킨다. 이 책은 쪽방촌을 위한 여러 개입에도 불구하고 주민들이 겪는 가난과 고통의 풍경을 ‘사회적 관계’ 속에서 그려내고자 하는 시도다.
저자

정택진

저자:정택진
연세대학교에서문화인류학과철학을전공했다.같은대학원문화인류학과에서「쪽방촌의사회적삶:서울시동자동쪽방촌을중심으로」(2020)로석사학위를받았다.이논문으로‘연세대학교우수논문상’을받았다.

목차

들어가며·가난을쓴다는것

1.쪽방촌의어제와오늘
동자동의과거
불안정성의공간
노동할수없는사람들의공간
쪽방촌이라는‘환경’
기초생활보장제도와무연고공영장례
무료물품지원과저렴쪽방사업

2.돌봄의역설
정영희이야기
돌봄의공백
상실
돌봄의불가능성
자활의불가능성
폭력
성적욕망
관계
두려움
명의도용
졸피뎀
수급비관리

3.죽은자를기억하는법
불만
애도와기억의시간
정체성의유지
연고있는무연고자
망각의윤리
만남
치료
책임과돌봄
떠나보내기
차가워진몸
연고자임을증명하기
한강이내려다보이는곳
기억한다는것

4.우리는거지가아니다
마비와길들여짐
낙인화된의존
긍정적상호의존
통제와대상화
선별과배제
빈곤의전시
공짜짜장면
천원의밥값
비난과헐뜯기
배제와축출
분리된두세계

5.방치된시간의무게
2015년,9-20강제퇴거사태
2019년,같은문제
승리의기억
거짓말
주거권의딜레마
낡아버린공간의역사
삶의공간
‘공동의것’의위기

나가며·쪽방촌의사회적삶

출판사 서평

왜돌봄은계속실패하는가?
동자동쪽방촌은서울역맞은편에위치한대표적인빈민밀집거주지역이다.1970년대말~1980년대초전설의베스트셀러『인간시장』(김홍신)의주요무대이기도하다.한국전쟁뒤판자촌-사창가-쪽방촌으로변신해온동자동에주민을돕기위한각종시도가폭발적으로늘어난것은1997년IMF외환위기이후이다.기초생활보장제도와무연고공영장례가제도화되었고서울시는저렴쪽방사업을시작했다.수많은단체가각종생필품을제공하기시작했다.소매를걷어붙인자원봉사자들이매년동자동쪽방촌을찾는다.
그러나이러한‘돌봄’에도불구하고주민들은여전히‘사회적버려짐’을경험한다.범죄와질병으로일상이파괴되며,도움의손길에도인격과자존감박탈을경험한다.사람으로서의필요와욕망,세계안에서의위치와존재방식은부정당한다.왜돌봄은계속실패하는것일까?

쪽방촌주민들의‘지금,여기의모습’을담아낸문화기술지
서른살젊은연구자정택진이글을썼다.정택진은연세대학교에서문화인류학과철학을전공했다.같은대학대학원문화인류학과에서「쪽방촌의사회적삶:서울시동자동쪽방촌을중심으로」(2020)로석사학위를받았고,이논문으로‘연세대학교우수논문상’을수상했다.『동자동사람들』은이논문을바탕에두고있다.그는책의서두에서우리시대의‘가난을쓴다는것’에관해이렇게속내를드러낸다.
“타인의고통과가난을쓰는일은괴로웠다.타자의고통을지적유희의재료로소비하는것은아닌지,이론적기여,학문적참여,지적개입등그럴싸한수사를앞세워스스로를정당화하는것은아닌지계속해서내자신에게물어야했다.무엇을쓰는지,왜쓰는지,어떻게쓰는지끊임없이의심하고증명해야했다.벽장을마주하고난오멜라스의시민으로서무엇을할것인지,또어떻게살것인지고민해야했다.그러면서점차정신적으로피폐해졌다.그러나이러한질문을정면으로마주하지않고회피하는것이야말로연구자이자저자로서책임을방기하는일이라생각했다.이제그답을찾는일이오롯이내몫으로남았다.”
학술논문이뿌리지만,책안에서사가풍부하고흥미롭다.9개월넘게현장에서주민들과생활하며연구했기때문일것이다.이를두고연세대학교문화인류학과조문영교수는“『동자동사람들』은서사화의위험을위태롭게감당하면서쪽방촌주민들의‘지금,여기의모습’을담아낸문화기술지이다”라고평가한다.

정영희이야기:돌봄의역설
동자동쪽방촌에거주하는정영희(45세)는늘머리를짧게밀고다닌다.그녀는정신지체장애인이자기초생활수급자이며아들하나를둔이혼녀이다.그녀의큰언니정민희가오래전부터주기적으로만나정영희의일상적삶을돌보아왔다.정영희는2019년7월주거취약계층주거지원사업에당첨되어서울시강북구에있는공공임대주택으로보금자리를옮겨동자동쪽방촌을‘벗어났다.’그러나동자동으로다시돌아와동거남홍인택의쪽방에서대부분생활한다.
국가는정영희에게기초생활수급이라는형태의돌봄을제공한다.그러나이돌봄은경제적인차원에서멈춘다.일상적돌봄은제공하지못한다.게다가51만2,000원의생계급여로는생활이어려워많은쪽방촌주민이명의도용범죄나졸피뎀같은약물의불법거래유혹에빠진다.“일하면되지않느냐?”라고반문할수있다.쪽방촌에는고령에다아픈사람들이많다.정영희도비슷하다.
따라서기초생활보장제도가제공하지못하는돌봄의공백을메꾸는큰언니정민희를비롯한가족의일상적돌봄이꼭필요해보인다.가족은정영희가선천적인정신지체장애를갖고있어서가난하며‘비정상적’삶을산다고여긴다.그래서힘들지만돌봄을꾸준히실천한다.가족의목표는정영희기“사람답게”사는것이다.가족과정영희를계속연결하려애쓰며,그녀가쪽방촌으로부터‘벗어나기’를바란다.치료를목적으로한병원이나시설생활을권하기도한다.
한편,매달20일수급이들어오면동거남홍인택은관리비명목으로정영희의수급비중30~40만원이상을가져간다.정영희는이돈이어떻게쓰이는지전혀알지못한다.그녀를휴대폰명의도용범죄에연루시킨사람이바로동거남이다.정영희는자기도모르는자신명의의휴대폰3대의미납금660만원을책임져야하는처지다.
이러한삶의난관에도불구하고정영희는가족에게돌아가지않는다.동자동을벗어나거나시설에들어가지않는다.각종범죄에연루되면서도동거남과헤어지지않는다.가족은정영희의이런납득할수없는태도가정신지체장애때문이라고생각한다.하지만그녀의생각은다르다.장애가아니라,‘폭력의경험과기억’이원인이다.
그녀의이혼사유는전남편의폭행이다.그런데도아이에대한양육권은전남편에게주어졌다.그녀는수급비를받는부양무능력자이기때문이다.이때기초생활수급권은‘부양능력없음’을입증하는도구로기능했다.또한정영희는자신이여성이라는점을주위사람들이알게되면성희롱과성추행이빈번하게일어난다고말한다.성희롱과성추행을미연에방지하기위해그녀는머리를짧게민다.그리고불평등한관계와범죄연루의위험에도불구하고동거남과헤어지지않는다.오히려분리불안에가까운증상을보인다.동거남이이런폭력의경험과기억,현재진행형폭력으로부터자신을보호해준다고여기기때문이다.아이러니하게도현재정영희가가장의지하는돌봄의주체는국가나가족이아닌동거남이다.
정영희가진짜필요로하는돌봄과국가와가족이라는‘정상적’주체에의해이루어지는돌봄사이에간극이존재하는것이다.그야말로‘돌봄의역설’이다.

박현욱이야기:사회적버려짐
동자동안에위치한G교회는‘사랑의짜장면나눔행사’를통해한달에한번씩주민에게특식을제공한다.짜장면을먹기위해반드시G교회에찾아갈필요는없다.젊은신도들과자원봉사자들이동자동전체에짜장면을배달하기때문이다.봉사자와마주친주민이라면누구나짜장면을먹을수있다.
어느날봉사자와마주친주민박현욱(60세)은짜장면을단호히거절한다.거듭된제안에도끝내짜장면을받지않는다.그리고주민자조조직에서운영하는‘사랑방식도락’에가서밥을사먹는다.여기는밥값이1,000원이다.짜장면을든봉사자들이사라지자박현욱이한말은“우리가거지도아니고…”였다.
증여가상호인정의한형태라고할때응답을요구하지않는‘줌’에서주민은인정의기회를박탈당한다.주는자와받는자,주는자와받을수밖에없는자사이의구분에서주고받음의과정에참여할수없는주민은결코돌려줌에참여할수없다.증여의관계에참여하지못할때주민은체면과인격을부여받지못하는존재가되고,이러한경험은“거지”라는모욕과자존감박탈의언어로이어진다.
얼굴을찌푸리며짜장면을거부하는박현욱의행위는인정의기회와응답을박탈당하는일반적관계를거부하는몸짓이다.지원활동이라는이름으로제공되는물건을받거나식사를대접하는일은쪽방촌주민의삶을유지하는데도움이될지모른다.그러나마치“거지”취급을받는듯한인격손상과자존감박탈의경험속에서주민은이를거부할수밖에없다.
반면‘사랑방식도락’의천원의밥값은식사에대한정당한대가이자자신이받은것을그에상응하는것으로되돌려주는행위다.천원은비록쪽방촌주민들이극심한경제적궁핍상태에있다하더라고큰부담없이낼수있는금액이다.받은것을천원의형태로되돌려줄수있는식도락에서이들은“거지”가아니다.천원을지불함으로써주고받음의과정에참여하고,이를통해상대방의행위에응답한다.이과정에서주민은식사에참여하는모든이들과공동의사회를구성하고동등한구성원으로서의위상을부여받는다.
이처럼공짜짜장면은봉사자의선한의도에도불구하고봉사자와주민사의의연결을만들어지못한다.오히려두존재의세계는더욱더분리된다.IMF이후폭증한무료물품지원도마찬가지다.주민들은상호인정의의례에참여하지못한채자존감과인격의박탈을경험한다.무료물품지원사업에서쪽방촌주민들은켤코‘우리’의구성원이될수없는완전한타자일뿐이다.계속되는지원에도불구하고주민들은‘사회적버려짐’을경험한다.

쪽방촌의사회적삶
어슐러K.르귄의단편소설「오멜라스를떠나는사람들」에는아무런출구가없다.시민들의행복이벽장에갇힌아이의불행속에있는한시민들의행복을해치지않은채아이의고통을줄이는방법은존재하지않는다.출구없는세계에서과연어떤윤리적응답이가능할지,그응답의형태는무엇일지쉽게결론내리기어렵다.이를두고인류학자엘리자베스포비넬리또한명확한해답을제시하지않는다.다만하나의실마리를제공한다.그는“삶은어떤구원적미래를설정하는것이아니라‘이것이지금여기의모습이다(thisiswhatis)’라는사실을이해함으로써만가능하다”라고말한다.
저자가동자동의‘지금,여기의모습’을이해하기위해이책에서동원하는서사는네가지다.이것은동자동주민들이공유하는서사이기도하다.①기초생활수급,②죽음과장례,③무료물품지원활동,④쪽방촌을상징하는9-20번지건물.앞에서말한정영희이야기는기초생활수급과,박현욱이야기는무료물품지원활동과연관되어있다.책에는이밖에도죽음과장례,9-20번지건물과관련한서사가들어있다.이서사들이동자동쪽방촌을‘새롭게’이해하는키워드로작동한다.
동자동쪽방촌은낡고해진건물이나열악한위생상태등공간의물리적특성만을뜻하지않는다.오히려기초생활수급,무연고사망과장례,물품지원활동,저렴쪽방사업과같이주민의삶에개입하고자하는다양한시도들이동자동쪽방촌을정의한다.1997년IMF외환위기이후20여년간형성된다양한모습의제도적·비제도적개입은주민의삶에가장큰영향을미치는‘환경’이되었다.따라서이제우리가주목해야할것은‘물리적공간’보다쪽방촌의‘사회적삶’이다.
쪽방촌주민들의삶을개선하기위한여러시도는경제적측면을넘어주민들의‘사회적삶’에대한개입이기도하다.개입은개인과개인의관계,산자와죽은자의관계,‘우리’에대한감각,정치적연대에이르기까지주민들의사회적관계를변화시킨다.이책은쪽방촌을위한여러개입에도불구하고주민들이겪는가난과고통의풍경을‘사회적관계’속에서그려내고자하는시도다.이를두고『여공1970』을쓴김원교수는“가난/돌봄에개입하는다양한형태의실천과정에서동자동쪽방촌사람들이맺는연결을‘사회적버려짐’이라는키워드로풀어낸역작”이라며칭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