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사로 살다 (관계와 실체를 오가는 삶)

동사로 살다 (관계와 실체를 오가는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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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대학 강단을 떠나 독립연구자로 사는 박동섭의 첫 철학에세이. 일상 언어와 학술 언어의 경계를 쉴 새 없이 넘나들며, 우리가 흔히 상식이라고 말하는 것들의 뒤집기를 시도한다. 한마디로 ‘허위상식 뒤집기’다. 김영민, 우치다 타츠루, 레프 비고츠키, 에마뉘엘 레비나스, 해럴드 가핑클 등의 사상을 지나며 저자가 발견한 우리 시대의 가장 큰 허위상식은 ‘명사적 사고’다. 명사적 사고란 ‘객관적 사실이 실체(명사)로서 존재한다’는 사고다. 이러한 명사적 사고는 생각보다 우리 일상을 깊고 넓게 지배하고 있다. 예를 들어, 사람들은 ‘자립’, ‘자립’ 쉽게 말한다. 정해진 수입이 있어서 자신이 집세를 내는 것이 마치 자립인 양 생각하는 사람이 대다수다. 하지만 자립은 명사가 아니라 동사다. 바꾸어 말하면, 자립은 관계 속에 몸과 마음을 두는 방법을 아는 것이다.
박동섭은 오랫동안 인류가 이렇게 실체에 붙박인 삶을 살면서 많은 문제를 일으켰으니, 이제는 관계(동사) 중심으로 전환하자고 제안한다. 물론 요즘엔 동사 중심으로 급격하게 운전대를 돌린 사람들, 즉 오로지 동사적 삶이 최고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많다. 하지만 이러한 '도' 아니면 '모' 식의 사고 또한 경계해야 한다. 우리를 성숙으로 이끄는 힘은 ‘관계(동사)와 실체(명사)를 오가는 바지런하고 느릿느릿한 삶’이다.
저자

박동섭

학문간의경계,지역간의경계그리고연령간의경계를종횡무진으로이동하는독립연구자다.○○연구자라는‘고정된아이덴티티’로살아가는일의한계를절감하며‘아이덴티티상실형인간’으로사는실험을계속하고있다.
《우치다선생에게배우는법》,《레프비고츠키》,《해럴드가핑클》,《회화분석》등을썼으며,《수학하는신체》,《수학의선물》,《심리학은아이들편인가》,《스승은있다》,《우치다선생이읽는법》,《단단한삶》,《보이스오브마인드》를비롯한여러책을번역했다.

목차

책을펴내며

1부내눈에비치는모든것이메시지
방귀가선물이되는순간
“나,누나좋아해요”의현상학
가독성의본질은‘쉬움’에있지않다
어른의신
기계는마음을가질수있을까?
얕은도덕과깊은도덕이있을뿐
악이아니라악인부터시작하자
소수파의말하기

2부명사에서동사로
사상은언제부활하는가?
어른이란
자립은명사가아니라동사다
상식에대해상식적으로생각하기
동사로살기가빠지기쉬운함정
교양재생프로그램
과거는가변적이고미래는오지않았다
역사공부는연대표외우기부터
계속하는힘
동사로서의종교
가끔은명사적사고가필요하다

3부몰역사적개체에서사회문화적사이보그로
마리는과연요리를만들었을까?
허구와현실의다툼
사회문화적사이보그인나
남성/여성은사회문화적사이보그와관계없죠?
24초룰이라는디자인된현실
계산하는생명
아빠,그럼지금부터점심밥먹자!
‘일상’에서ㄹ을뺄수있다면

출판사 서평

‘명사적사고’를만나다
“계몽은동사에서명사를잉태시켰으나엉덩이가무거워진명사들은자신을낳아준어머니동사를깔아뭉개고있었다.”
“명사,혹은명사적사고만큼인류사를집요하고지속적으로지배했던발명은없었고,아마앞으로도없을것이다.”
《동사로살다》는철학자김영민이쓴이두문장에서시작되었다.저자박동섭은김영민의《컨텍스트로,패턴으로》에서명사적사고,동사적사고라는말을우연히접했다.처음에이명제는물론이거니와책의내용을전혀알수없었다.생소한어휘꾸러미와낯선논리전개때문에한쪽읽는데한나절걸린적도있다.그런데지금까지한국어로는한번도읽어본적없는,일종의천둥소리같은예지의말을청취했다는느낌이들었다.정성들여듣고온몸으로음미하지않으면안되는말이갑자기세계의벽을뚫고다가온듯했다
박동섭은비고츠키심리학과그로부터파생된사회·문화·역사적접근,그리고상황학습론(SituatedLearning)등에기초한질적심리학,‘담화심리학을연구하는연구자다.최근에는파슨스와뒤르켐등의규범사회학을비판하고새로운사회학을창시한해럴드가핑클의에스노메소돌로지(Ethnomethodology)연구도병행한다.그는비고츠키심리학을만난뒤,마음을일종의고정된실체로간주하는주류심리학이채용하는진리라는이름의박제된절대주의로부터필사적으로벗어나려노력했다.마음은기껏해야우리가만들어낸환상에불과하다는,진리의다른극단인무리(無理)로치닫는무책임한상대주의에보기좋게빠지고말았다.그래서능력,장애,마음은모두환상에불과하다는생각을공고히하는쪽으로달렸다.이러한편협함은극단적인사고(진리혹은무리)말고제3의사고(일리)가있다고역설한김영민의‘일리의철학’과만나면서조금씩무너지기시작했다.《동사로살다》는명사적사고에서동사적사고로나아가는지적여정에관한자기고백이다.

허위상식뒤집기
《동사로살다》는대학강단을떠나독립연구자로사는박동섭의첫철학에세이다.일상언어와학술언어의경계를쉴새없이넘나들며,우리가흔히상식이라고말하는것들의뒤집기를시도한다.한마디로‘허위상식뒤집기’다.김영민,우치다타츠루,레프비고츠키,에마뉘엘레비나스,해럴드가핑클등의사상을지나며저자가발견한우리시대의가장큰허위상식은‘명사적사고’다.
명사적사고란‘객관적사실이실체(명사)로서존재한다’는사고다.김영민은《철학과상상력》에서이렇게정의한다.“‘어디에쌓아둔다’는발상이가능한소이(所以)는인간을,그리고특히정신(mind)을장소적,공간적인개념으로오인한데있다.데카르트가정신의본성을‘사유하는실체’라는말로써파악하려했다는고전적인인용을재론하지않더라도실상‘무엇을담아놓을수있는상자’같은것으로마음을영상화,공간화시키는태도는일상인들이‘마음’에대해갖는기초적인상상력을지배한다.그러나마음을상자같이꽉막혀진어떤것(something)으로보는소위‘명사적사고’(Nounalmodeofthinking)는무슨실험과검증을거쳐밝혀낸생리학적인탐구결과가아니라잘못된유비관계(analogy)가빚은시각적인오류에가깝다.”
이러한명사적사고는생각보다우리일상을깊고넓게지배하고있다.예를들어,사람들은“자립”,“자립”쉽게말한다.하지만자립은단지타인으로부터독립해서생계를꾸리거나,혼자서빨래하고요리하고청소하는것과다르다.정해진수입이있어서집세를내는것은자립의필요조건이지만충분조건은아니다.우리는뭔가에의존하지않으면살아갈수없다.이것은‘사실’이다.동시에우리는자기책임으로뭔가결정을내려야한다.이것은‘이념’이다.그러고보면사실과이념은모순이다.이모순되는요청을잘절충하지않으면우리는살아갈수없다.자립은홀로서면서도의존하는양상에대해끊임없이반성하는태도를가리킨다.그러므로자립한사람은“아,이사람은자립하고있구나.정말훌륭하다.대단하다”와같은주위사람들의승인과경의를버팀목삼아서있는존재이지,혼자서공중에붕떠있는존재가아니다.쉽게말하면자립한사람은다른사람들로부터늘뭔가를부탁받고,조언자로서해야할역할을의뢰받고,의논할일이생겼을때찾아갈수있다.이처럼자립은명사가아니라동사다.바꾸어말하면,자립은관계속에몸과마음을두는방법을아는것이다.
박동섭은오랫동안인류가이렇게실체에붙박인삶을살면서많은문제를일으켰으니,이제는관계(동사)중심으로전환하자고제안한다.

관계와실체를오가는삶
“인간(人間)이라는말을적확하게풀면‘사람과사람사이’다.여기서방점은사람(개인)이아니라‘사이’에있다.그러니까인간이라는말은‘나(명사)’라는존재가아니라나와너사이의움직임(동사)을가리킨다.무인도에서“나는인간”이라고아무리소리쳐보시라.나를불러주는사람이없으면,내목소리를들어주는사람이없으면,너와나‘사이’가없으면나는인간일수없다.사람과사람‘사이’,나와너‘사이’,나와타자‘사이’를사는것,사이를묻는것,사이를만들어가는것,그것이인간삶이다.그리고그사이는오로지행위(동사)로써가로지를수있다.”황경민시인의이글만큼‘동사적사고(삶)’에관한단순명쾌한정의는없어보인다.
물론요즘엔명사에서동사로급격하게운전대를돌린사람들,즉오로지동사적삶이최고라고말하는사람들도많다.《진실따위는중요하지않다(TheDeathofTruth)》를쓴미치코가쿠타니(MichikoKakutani)는포스트모더니즘이파괴한대표적인것으로“언어에대한신뢰”를꼽는다.이책에따르면,데리다철학을미국에도입한몇몇포스트모더니스트는텍스트를“불안정하고환원불가능할정도까지복잡하며독자와관찰자에따라서점점가변의의미가부여”되는것으로보고,텍스트해석에서극단적인상대주의를선포했다.
이세상에객관적사실은존재하지않는다.그러므로모든세계인식은각각의주관적편견에지나지않는다는주장은원리적으로맞다.즉‘앎’으로서는타당하다.우리는객관적사실보다주관적바람을우선시하는경향이있다.‘세계가이랬으면좋겠다’는욕망은‘세계는이런것이다’라는인지를늘압도한다.사회문화적사이보그로태어난이상어쩔수없다.
그렇다고해서만인은객관적실재같은것신경쓰지말고자신의마음에드는망상속에서평온을즐길권리가있다고할수는없다.아무리봐도비상식이기때문이다.물론‘객관적사실은실체(명사)로서존재하지않는다’는명제는한층진화된앎의차원에서는아무런하자가없다.여기서말하는한층진화된앎의차원은명사적사고에서동사적사고로의진화를뜻한다.그런데이동사적사고라는앎이폭주하면비상식이될수있다.따라서이러한'도'아니면'모'식의사고또한경계해야한다.
명사적사고의폐해가크다고해서우리가최종적으로당도해야할목표가동사적사고인것은아니다.우리를진짜성숙으로이끄는힘은‘관계(동사)와실체(명사)를오가는바지런하고느릿느릿한삶’이다.명사적사고에서동사적사고로진화는하나의앎에서다른앎으로갈아타기를통해서가능하다.그러나둘사이의왕복운동은다른앎을통해서는불가능하다.삶그리고몸이성숙하는도정에서나타나는새로운관심의집적과새로운지평에의참여가왕복운동을가능케한다.우리의삶과깨침에따라다른경지와지평이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