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중앙박물관=명품백화점
국립중앙박물관을흔히역사박물관으로알고있지만,거대한‘명품백화점’이기도하다.박물관전시실로들어서면처음만나는‘주먹도끼’한점.수많은주먹도끼가운데이한점이뽑힌까닭은무었일까?다른것들에비해‘크고잘생기고아름다운’명품이기때문이다.당대최고의화가김홍도와이명기가함께그린‘서직수초상’도마찬가지.이그림은‘터럭하나라도다르면그사람이아니다’라는조선초상화그리기원칙을여느초상화보다집요하게따르고있다.62세서직수의눈썹과수염이어떻게얼마나났는지바로확인할수있다.국립중앙박물관에서뿐만아니라우리나라미술을대표하는걸작금동반가사유상은말해무엇할까.
국립중앙박물관은전시실의규모도규모지만무엇보다각시대와분야를대표하는유물들이두루전시되어있다.우리나라뿐만아니라중국이나일본등다른나라유물도만날수있다.『유혹하는유물들』은국립중앙박물관을가득채우고있는이런명품들가운데저자를사로잡은30여가지(정확히는38점)를집중조명한다.‘명품중의명품’,‘국립중앙박물관에서꼭봐야할유물’이라할수있는것들이다.보자마자유혹당한것이있고,처음엔그저그랬는데뒤늦게아름다움에빠져든것이있으며,시간이지날수록더욱사랑하게된것도있다.박물관을수백번드나들며거듭해만난이유물들에저자는자기만의이름표를달아주며애정을쌓아나갔다.예를들어그에게금동반가사유상은‘사유를사유하는시간’이고농경문청동기는‘마법목걸이’다.
우선,유물의아름다움에빠져든사람의고백록
이명품들앞에선우리모습은과연어떨까?의외로많은관람객이유물자체보다‘유물에얽힌역사이야기’를캐느라분주하고,과제로박물관에온학생들은유물보다‘유물설명문’을보느라바쁘다.어쩌면이런모습,즉‘유물로역사공부하기’가‘박물관은재미없어’라는인식을만들어냈을지도모른다.유물이품은역사를캐기전에,유물설명문을보기전에유물의아름다움을우선감상하는건어떨까?만질수는없지만,이리보고저리보고가까이서보고멀리서보면서명품을가슴으로느껴보는건어떨까?이렇게하면아마도유물을보고느끼고받아들이는데정답이란없음을깨닫게될것이다.『유혹하는유물들』은이런방법으로명품과접속해그아름다움에빠져든사람의고백록이다.
‘금동반가사유상’에관한묘사한부분을보자.“힘을주어야할부분은놓치지않고힘을주었다.오른쪽뺨에댄손가락들,특히새끼손가락을보는순간내손가락에도힘이들어간다.사유하는자세를자연스럽게만들려고살짝올린오른쪽무릎의탄력적인곡선과날카롭게솟은몇줄의옷주름이팽팽한긴장감을일으킨다.사유에몰두하다자기도모르게다다른절정의순간을약간구부러진오른쪽엄지발가락으로묘사했다.예리하게관찰하고표현한걸보면‘명품은디테일에강하다’는말이새삼떠오른다.”(62~63쪽)이렇게이책은저자가유물에유혹당하고스며드는여정을보여주는데초점을맞춘다.유물에대한지식대신유물과어떻게만났는지,어떤점을눈여겨봤는지,어떤점이끌렸는지,시간이흐르는동안어떻게바뀌었는지를담았다.또한임지이작가특유의유머러스한그림을더해누구나즐겁고유쾌하게읽을수있도록꾸몄다.
박물관에서어슬렁거리기,멍때리기:유물과친해지는가장쉬운방법
박찬희박물관연구소장박찬희는박물관에자주간다.어림잡아일주일에한두번이상전시를보러,회의를하러,글을쓰러,머리를식히러,가끔은가지않으면허전해서.그에게박물
관은그만큼재미있고매력적인곳이다.
보통은박물관에서혼자전시실을어슬렁거린다.별다른목적없이발길닿는대로,눈길가는대로,마음움직이는대로간다.그러다멈추고보고다시간다.소요(逍遙)하기라고할까.박물관을소요하는건산책과비슷하다.전시실은작은숲이고,유물은나무다.숲을산책하며만나는뜻밖의일로점점내안이가득차는것처럼박물관도그렇다.
어슬렁거리다보면뜻밖의순간을만난다.불현듯,우연처럼다가온다.바로유물에매혹당하는순간이다.볼만큼봐서새로울것없다고여긴유물에서,오랫동안명품으로평가받은유물에서,유명세와는거리가먼유물에서,처음보는낯선유물에서그순간을맞이한다.이럴때면유물과내가강력하게이어졌다는느낌을받는다.모든것이멈춘듯,유물속으로갑자기빨려들어가는듯경이롭다.무방비상태로매혹당한다.그러면애쓰지않고그저그앞에잠시조용히머무른다.그러는사이유물이나에게스며든다.감동을넘어위로와공감을받기도한다.
“푹신한둥근의자에앉아두불상을보고있으면마음이편안해진다.모닥불을보며멍하니있는불멍이있는가하면불상을보고멍하니있는‘불멍’도있다.한번자리를잡으면쉽게일어나지못한다.”(224쪽)
언제이런순간이올지모르지만분명한건,꼭일어난다는거다.다시박물관을가는진짜이유다.그순간부터유물들은박물관만의유물이아니다.내인생의박물관유물목록에오른다.이때부터1일이다.
책속에서
일단전시실에발을디디면신화에나오는거대한강이나타난다.그러면나는깊이를알수없는끝없는물결을따라여행하며전설같은유물과부지런히접속한다.그러는사이여행이끝난다.어떤날은한편의시처럼짧지만강렬하고다른날은단편소설처럼상쾌하고간혹어떤날은장편소설처럼깊고묵직하다.(6쪽)
이제얼굴을볼차례.수염과눈썹을보면깜짝놀랄수밖에없다.‘털하나라도다르게그리면그사람이아니다’라는말을증명이라도하는것같다.62세서직수의눈썹과수염이어떻게얼마나났는지바로확인할수있다.속눈썹도놓치지않고표현했다.특히왼쪽뺨에난점과털은화가의뛰어난관찰력과사실성을보여준다.왼쪽뺨에크기가다른점들이났고,그중한점에털이났다.보일듯말듯한털까지합치면모두세가닥이다.이털을보고있으면집요함에숨이턱막힌다.(35쪽)
힘을주어야할부분은놓치지않고힘을주었다.오른쪽뺨에댄손가락들,특히새끼손가락을보는순간내손가락에도힘이들어간다.사유하는자세를자연스럽게만들려고살짝올린오른쪽무릎의탄력적인곡선과날카롭게솟은몇줄의옷주름이팽팽한긴장감을일으킨다.사유에몰두하다자기도모르게다다른절정의순간을약간구부러진오른쪽엄지발가락으로묘사했다.예리하게관찰하고표현한걸보면‘명품은디테일에강하다’는말이새삼떠오른다.(62~63쪽)
우리나라추상미술의선구자인화가김환기는백자달항아리의매력에빠져한때하루종일이항아리만보기도하고,그림으로남기기도했다.예술가들만그런건아니었다.달항아리앞에서서시간가는줄모르고넋을잃고감상하는사람도있고,지치고힘든일이있을때면박물관달항아리를찾아가는사람도있다.그앞에서달멍을한다.그러면달항아리는넉넉한품으로괜찮다고위로를건네고,있는그대로충분하다며격려를해주는것같다.(107쪽)
국립중앙박물관에있는세국새는새로운국가를향한꿈과좌절의목격자들이다.튼튼한황제국가를향한고종의꿈은제국주의앞에서속절없이무너졌다.이제그꿈은황제가아니라민들의몫이되었다.나라를빼앗기고그로부터9년후,민들은제국이아니라민국을선포했다.
“대한민국은민주공화제로함.”
대한민국임시정부첫헌법의첫조항이었다.(282~283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