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곡하고 싶었지만 : 50년생 이순희의 육아 일기

통곡하고 싶었지만 : 50년생 이순희의 육아 일기

$18.00
Description
우리 시대 내 어머니의 이야기
차별과 혐오와 싸운 삶과 생활의 기록
1950년생 이순희가 1970~1980년대에 아들 둘을 키우면서 쓴 육아 일기를 모았다. 일기는 1975년 10월 28일에 시작된다. 둘째 아들 형수를 낳은 날이다. 아이가 거꾸로 나왔다. 불길한 예감은 적중해 형수는 뇌성마비 판정을 받았다. 이순희는 그날 이후 매일 매일 용기를 냈다. 자신의 성별, 역할, 책임, 사랑, 행복, 정체성을 찾고자 애썼다. 그리고 변하기 시작했다. 아들이 아니라 시대 앞에서 절망했고, 온통 아들로 가득했던 세상을 자신으로 채워나갔다. 그 힘으로 다시 세상과 싸웠다. 고통을 숨기지 않았고, 침묵하지 않았다. 이 일기에 세상이 흔히 바라는 성공 스토리는 없다. 형수는 여전히 목발 없이 걷지 못하며, 이순희가 유명한 사람이 된 것도 아니다. 하지만 모자는 누구보다 환하게 웃으며 이 일기를 마무리한다.
일기는 겨우 스물다섯 살 여성이 부산에서 아이들을 키우면서 겪은 하루하루를 영화처럼 보여준다. 아이를 업고 연탄불에 밥을 지어야 했다. 아이의 목발 때문에 버스를 타는 것이 불가능한데 택시는 매번 잡히지 않았다. 형수를 특수학교 대신 일반 학교에 보냈고, 운동회와 소풍에도 꼭 참여했다. 뇌성마비에 관한 정보를 얻을 곳은 병원이나 물리치료실뿐이었다. 보조기를 여러 차례 바꿨지만, 국가의 보조를 받지 못했다. 시어머니는 늘 이유 없이 구박했고, 남편은 가족에게 무관심해 보였다. 이 모든 일들은 짝을 이뤄 매번 예고 없이 등장했다.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 것 같았고, 싸우는 게 무서웠다. 통곡하고 싶었지만 울지 않았다. 특별해 보이지만, 그 시대 우리 엄마들의 일기장과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다.

저자

이순희

저자:이순희
1950년에울산울주군에서태어났다.초등학교4학년때,시골에계속있으면중학교도가기힘들겠다는생각이들었다.부산에있는삼촌집으로혼자가서“내,내일부터여서학교다닐란다”라고선언했다.부산에서중고등학교를마쳤다.서울에올라가전자회사에서근무하다가고향으로내려왔다.그리고오빠친구와결혼했다.스물세살에첫째를낳았다.둘째아들형수는뇌성마비판정을받았다.두아들을키우면서도자신이사랑하는꽃꽂이를놓지않았다.인생후반부에는사회복지사분야로관심을돌렸다.현재는주로여성장애인가정을지원하는홈헬퍼노동자로일하고있다.형수는대학에가서공부보다장애인인권운동을열심히하더니,졸업후장애인학생지원네트워크를만들었다.

목차


추천사
책을펴내며

1.불길한예감(스물다섯~스물여섯살)
2.믿는만큼되는아이(스물여섯~스물아홉살)
3.오늘의최선(서른~서른한살)
4.엄마의약속(서른둘~서른세살)
5.책임을묻겠습니다(서른넷~서른다섯살)
6.꽃이유일한친구(서른여섯~서른일곱살)
7.마음은엄마한테가있다(서른일곱~서른여덟살)
8.씩씩하게걷기를바란다(마흔일곱~마흔여덟살)

출판사 서평

차별과혐오와싸운삶과생활의기록

1950년에울산울주군에서태어난이순희는동네어른들에게여자는초등학교만나오면된다는말을듣고자랐다.이에이순희는부산에있는삼촌집으로혼자가서“내,내일부터여서학교다닐란다”라고선언했다.국민학교4학년때의일이다.이책은이렇게자기삶에당찼던한아이가자라,아들둘을키우면서쓴육아일기를모았다.

일기는1975년10월28일부터시작된다.둘째아들형수를낳은날이다.아이가거꾸로나왔다.불길한예감은적중했다.형수는뇌성마비판정을받았다.이순희는그날이후매일매일용기를냈다.자신의성별,역할,책임,사랑,행복,정체성을찾고자애썼다.통곡하고싶었지만,울지않았다.그리고변하기시작했다.아들이아니라시대앞에서절망했다.온통아들로만가득했던세상을자신으로채웠다.그힘으로다시세상과싸웠다.고통을숨기지않았다.침묵하지않았다.

이일기에세상이흔히바라는성공스토리는없다.형수는여전히목발없이걷지못한다.저자가유명인물이된것도아니다.하지만모자는누구보다환하게웃으며이일기를마무리한다.이들은이제동지가됐다.저자를설명하는단어는장애가있는자식을훌륭하게키워낸어머니가아니라페미니스트다.아들을설명하는단어는장애를극복한대단한사람이아니라장애인권활동가이다.이세상누구보다서로의서러움과고통을알고,통곡할수있는사이가됐다.목소리를함께내는관계가됐다.이들에게이보다더한해피엔딩은없다.

이순희는두아들을키우면서도자신이사랑하는꽃꽂이를놓지않았다.인생후반부에는사회복지사분야로관심을돌렸다.현재는주로여성장애인가정을지원하는홈헬퍼노동자로일하고있다.형수는대학에가서공부보다장애인인권운동을열심히하더니,졸업후장애인학생지원네트워크를만들었다.

1970~80년을살아간여성의이야기

일기는저자의하루하루를영화처럼보여준다.형수첫번째생일을맞던날,친정엄마가떡을해오자시어머니는고맙다는인사대신“지만아들낳았나,뭐하러친정까지일렀나?”라고타박했다.형수를등에업고불꽃이올라오지않는아궁이앞에서죽을젓느라등을구부렸더니,연탄연기에숨이막힌듯이아이가울어댔다.뇌성마비에관한정보를얻을곳은병원이나물리치료실뿐이었다.보조기를여러차례바꿨지만,국가의보조를받지못했다.아이의목발때문에버스를타는것이불가능한데택시는매번잡히지않았다.형수통학을위해운전면허를따려고했더니,친척들은이순희를두고바람이났다고말했다.이모든일들은짝을이뤄매번예고없이등장했다.

이때저자는주저앉지않았다.형수를특수학교대신일반학교에보냈다.운동회와소풍에도꼭참여했다.결석도지각도허용하지않았다.두아들이같은국민학교를다닐때는첫째아이담임선생님을찾아가“아이한테몸이불편한동생이있다고반아이들에게상처주는분위기라면엄마로서절대수용할수없습니다.저는담임선생님께그책임을묻겠습니다.”라고말했다.

특별해보이지만그시대내어머니들의일기장과별반다르지않을것이다.거대한차별,독재에저항하고사회변혁을이루는것만이투쟁은아니다.우리시대의어머니들은삶과생활속에서맞닥뜨린차별앞에서숨죽이지않았다.그것과싸웠다.본인을위해,그리고나의자식들은그런세상에서살게하지않기위해싸웠다.그래서이일기는누구가는기억해야할투쟁의기록이다.

뇌성마비진단이후이야기

이순희는형수와물리치료를다녀오면그날의치료과정을복기해동작하나하나기록했다.물리치료는가정에서병행해야효과가있다고의사가말했기때문이다.그래서이순희의일기는형수의치료일지가되기도했다.예를들면이런식이다.“반듯이누운상태에서뒤집어서엎드리고다시반듯이눕는과정을반복했다.옆으로몸통을트는자세,팔을괴고엎드리는자세,팔을세워손을펴고방바닥을짚어얼굴을찧지않게기어가는자세를했다.그리고쭉다리를뻗고무릎을움직이면서배로기다가다음단계에는무릎으로기어가야한다.”형수가국민학교3학년이되었을때는이런일도있었다.최선을다해물리치료에매달렸지만,안쪽다리가짧은것같다는진단을받았다.이날을이순희는뇌성마비진단을받았던날보다더야속했다고말했다.악몽같다고일기에적었다.숙제가하나늘었다고표현했다.

재활치료나보조기착용에는정답이없다.몸의성장과같은발달의변화나진학과같은일상의변화에적응하기위한해답을찾는과정일뿐이다.실패가필연적인시간이다.그러나이순희는형수를낳기전까지뇌성마비라는말을들어본적도없었다.스스로정보를찾고해결해야했다.그과정에서과학적검증이덜된방법도시도해야했다.방법을몰랐기때문이다.국가는없었다.

다행인것은물리치료사가있었다.이순희와치료사가협력해형수의발달과정을함께했다.서로를믿고협력했기에형수는목발로스스로이동할수있게됐고,훈련으로스스로식사와글쓰기가가능하게됐다.

이순희와연대했던사람들

이일기의시대배경은언뜻이순희와그가족들에게너무나가혹해보인다.도시가스도없고,택시를쉽게부르는시스템도없다.매순간치열하지않을수없었다.

대신그시대에는그시대의힘이있었다.긴외출을했을때숙모님은탄불을피워뒀다.형수의담임선생님은방학때형수에게손으로쓴긴편지를보내줬다.스쿨버스기사님은형수가가장안전한자리에앉게했다.미술학원원장님이“형수도무슨일이든혼자할수있겠네.”라고말해준덕분에형수는그림에재미를들였다.이순희의친구,이순희남편의친구,형수의친구,형수반의학부모,형수의물리치료사선생님이각자의방식으로이순희와함께했다.그것은이순희가절망하던순간에다시일어나게만드는힘이됐다.

그시절부산이야기

이일기에는1980년대부산감성과지금은사라진언어가생생하게살아있다.경주도투락월드로가족여행을가고,함박스테이크맛이궁금해외식했다.명절에는비누와설탕선물을주고받았다.오락실이생겨아이들이들떴다.독서실이생겼는데그곳이공부하기에어떤곳인지어른들은몰랐다.일반목욕탕요금이950원인데,사우나탕이요금은2,500원인걸알고놀랐다.낯선지하철을탈때남편이잘안내해줘서고맙다는이야기가나온다.친구대신동무나짝지라는말을흔히썼다.

그리고이일기는장애가있는자녀가있는가족이당시의문화를어떻게받아들이는지를보여준다.이순희의가족은급격히들어오는새로운문화를거부하거나포기하지않고모두즐겼다.여행을떠날때는형수가참여하기가장적합한곳으로정했고,백화점바닥이미끄러워도목발을고집했다.사람들의시선을아랑곳하지않았다.